열국연의 머리말 > 열국지평설

열국연의 머리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승국 조회 6,787회 작성일 04-05-12 14:41

본문

운영자의 말


열국연의라는 책은 명말 후반에 나서 청나라 초반을 살다 간 풍몽룡(馮夢龍)이라는 사람이 정사인 춘추, 사기, 전국책을 원전으로 하여 그것들을 묶어 역사소설로 각색하여 신열국지(新列國志)라는 이름으로 저술한 책이다. 신열국지라고 이름지은 것은 명나라 중엽의 여어소(余魚邵)가 열국지전(列國志傳)이란 이름으로 저술한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국지전은 그 내용에 있어서 서주가 창건되고 동주가 망할 때까지의 내용을 20만 자의 글로 되어 있어 언급한 역사도 너무 길고 그 문학적 가치도 높지 않아 풍몽룡이 다시 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열국연의라는 책은 다른 역사소설과는 달리 유독 한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중에 특히 초반부는 시경(詩經)의 시가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간혹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는 주역의 각종 괘사, 그리고 전국책을 기저로 하는 제자 백가들의 사상들, 정사에 해당하는 춘추좌전과 사마천의 사기 등 중국고전의 대부분을 자연히 접할 수 있다. 중국의 역사소설, 즉 정사를 각색하여 소설화시킨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 답답함이란 본문의 내용에 나오는 지명에 대한 설명이 없고 그 이동거리나 지형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당시에 사용하던 용어에 대한 설명이 없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등장 인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리고 잃어 버릴만 하면 나타나 그 대목을 다시 찾기 위해 앞의 페이지를 다시 찾다가 결국은 지쳐 떨어졌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은 중국에서의 삼 년 동안의 생활을 끝내고 1999년 가을에 귀국하여 시중에 기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는 책을 구해 읽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수많은 오자(誤字)와 무책임한 번역,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모호한 표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분이 무성의하게 번역되어 출간되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차제에 부족한 재주나마 그 동안 생각했던 역사소설에 필수적이라 생각했던 지도를 넣고 다시 난해한 용어들, 그리고 수천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 그리고 지명을 주해로 넣고 다시 별책부록으로 사전을 만들고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나라의 연혁과 그 역사를 간추리고 후면에 사마천의 연표를 번역하여 각국의 역사와 그리고 각국의 합종연횡 사항을 유기적으로 파악하여 책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했다.


동양 문화의 근원은 중국이라 말할 수 있으며 중국 문화는 기본적으로 춘추전국시대 때에 형성된 것을 동시대에 활동했던 제자백가(諸子百家)들에 의해 정리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한문의 고사성어(古事成語)의 많은 부분이 이때 형성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교의 교리가 사회에 정착되지 않았고 또한 불교도 전래되기 전의 사회였다.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은 인간세상 너머의 저승을 너무 먼데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 있는 현세와 죽어서 가는 저승세계의 사이를 매우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여 현세와 저승을 넘나드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참으로 인간적인 종교관을 갖고 있었다. 노자의 자연에 근거를 둔 도교나 인간 생활에 있어서의 규범을 정한 유교는 노자나 공자 한 사람이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춘추 때 살고 있었던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사상을 노자와 공자가 정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열국연의의 내용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내용은 분명히 권선징악의 내용 이외의 다른 것이 있다. 즉 의(義)와 충(忠)과 덕(德)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뜻하는 바는 유가들이 말하는 전통적인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의(義)와 충(忠)이라는 것은 덕(德)에 대한 상대 개념이다. 즉 남에게 베푸는 것을 덕(德)이라 하여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관이라고 하면 의(義)와 충(忠)은 덕을 수혜 받은 자가 반드시 지켜야할 규범인 것이다. 덕을 입으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의(義)라하고 그 갚는 정도에 따라 행하는 것이 충(忠)인 것이다. 이것은 공경이나 사대부 계급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군왕이나 최하층민인 야인(野人)이나 천인(賤人)들에게도 적용된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고사에 나오는 저승에서 온 노인, 진목공(秦穆公)을 구해준 기산(岐山)밑에 살던 야인(野人)들, 초장왕(楚庄王)의 절영회(絶纓會)에 나오는 당교(唐狡), 당진의 재상 조돈(趙盾)이 준 음식으로 아사 직전에 살아난 영첩(靈輒), 지백(智伯)의 모사였다가 지백이 죽자 끝까지 그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던 예양(禮讓) 등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은, 덕의 수혜를 입은 자가 야인(野人)이건 사대부(士大夫)건 구분 없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행하는 것을 의(義)라고 한다면, 충(忠)이라는 개념은 그 의(義)의 정도를 어느 수준에서 행하느냐의 상대적인 문제이지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받은 만큼 성실하게 갚는 것이 충이라는 개념인 것이다. 임면권자가 대해 주는 만큼 모시다가 후에 소외당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행위는,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가치판단인 것이다. 유교경전의 가장 대표적인 교리라고 할 수 있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전통적인 유교사상과는 달리 자기를 인정해 주는 수많은 군주를 찾아서 중원천지를 방황했던 공자의 행동이나 관점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열국연의를 숙독해 보면 알 수 있는 사항이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수 천년 전의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 현세를 살고 있는 우리 한국 사람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마는 그러나 우리문화의 근원은 대부분이 그곳에서 나왔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현세의 삶도 지금으로 부터 2500년 전을 전후한 당시 중국의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형성해 놓은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면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어지러운 세상을 고단하게 살아가는 현시대인으로써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