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방의 동주열국지 서문-1 > 열국지평설

채원방의 동주열국지 서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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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6,637회 작성일 04-05-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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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방의 동주열국지 서문-1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는 다른 소설과 같지 않아서 다른 소설들은 모두 가공적인 이야기이니, 예를 들어서 주나라의 창건에 관한 소설인 <봉신연의(封神演義)>나 108인의 도적들의 이야기 <수호지(水滸志)>, 그리고 <서유기(西遊記)>들은 모두 근거 없이 지어낸 이야기들이다. 그 중 <삼국지(三國志)> 같은 소설은 가장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또한 그 가운데 만들어 낸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열국지(列國志)>는 그렇지 않아서, 하나의 사실이 있으면 그 하나를 말하고, 하나의 구절이 있으면 그 하나를 말하니, 사실조차 다 기록하지 못하는데 또 무슨 여유가 있어 덧붙여 꾸미겠는가? 그러므로 <열국지(列國志)>를 읽을 때는 모두 정사(正史)로 간주해야지 소설의 하나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는 원래 특별히 동주시대 때 열국들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평왕(平王) 때에 동천(東遷)이 있었고, 그 뒤를 이은 환왕(桓王) 때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열국지(列國志)>는 서주의 선왕(宣王) 때부터 시작되는데 대개 평왕이 동천한 것은 견융의 란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견융의 란은 유왕(幽王)이 포사(褒姒)를 총애하여 백복(伯服)을 태자로 세운 것으로 일어난 일이니 포사로 인한 화는 오히려 선왕 때부터 뿌리는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라가 망하리라는 동요가 선왕 때에 이미 있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선왕부터 서술하여야 그 내력이 분명해 질 것이다. 일과 사람에 대해서는 나무를 거꾸로 하여 뿌리를 찾듯이 기록하였는데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이치다.

<열국지(列國志)>는 대체로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저본(底本)으로 하였으며 <국어(國語)>, <전국책(戰國策)>, <오월춘추(吳越春秋)> 등의 책으로 보완했다. 그럼으로 문장의 기세가 그다지 한결 같지 못하다. 독자들은 문장 자체에서 의의를 찾지 말아야할 것이다.


열국의 일은 고금의 첫째가는 기국(奇國)이요, 또한 세상에서 첫째가는 변국이다. 세상의 어지러움은 이미 극도에 이르렀고,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정신은 살아 있게 마련이다. 주왕실의 쇠약함은 이미 극도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쇠약해도 망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5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실로 기이하다. 주나라에서 진나라까지는 고금의 변동의 중요관건이었다. 그 변동은 동천 이후부터 일기 시작해서 차츰 변해 온 것이다. 그 중 세운(世運)의 승강(昇降), 풍속의 후박(厚薄), 인정의 순리(淳漓), 제도의 개혁 등은 모두 서로 같지 않다. 자제들이 세심하게 살핀다면 큰 학문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용병의 예를 든다면 춘추시대에는 춘추시대의 병이고, 전국시대는 전국시대의 병이니 말할 필요도 없이 크게 달랐다. 춘추시대에서도 제환공과 진문공은 크게 달랐다. 제환공 때의 용병은 죄상을 밝혀 징벌하는 것으로 결국은 동맹을 이루도록 청하는 것에 불과하다. 진문공 때에 이르러는 걸핏하면 전부 없애는 것을 일삼았다. 이는 바로 세상이 크게 변한 것 중의 한 작은 변화이다. 제환공 때의 용병은 백, 천에 불과하나 진문공 때에는 병력이 크게 증강되어 한 번 전쟁을 하면 늘 만 명에 이른다. 제환공 때의 용병은 정정당당하게 싸웠다. 그러나 진문공 때에는 간교한 계책이 많이 행해졌다. 오히려 그 때에 이르러는 그 세가 어쩔 수 없게 되어 바로 천운이 옮겨가는 곳이 되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로 송양공과 같이 화를 자초하여 패했을 것이다. 김성탄(金聖嘆)은 <수호지(水滸志)>, <서상기(西廂記)>를 평하기를 자제들에게 유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에 장점이 있다면 문장을 짓는 방법에 불과하다. 이제 자제들이 열국지를 읽으면 그 안에 많은 실질적인 학문이 있으니, 어찌 <수호지(水滸志)>, <서상기(西廂記)>와 함께 논할 수 있겠는가?

자제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은 늘 고생스럽고 매우 어려운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각고하여 연구하고 심취하여 싫증내지 않는 자는 천성이 본래 고매하고 학문과 인연이 있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은 백 중에 한둘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책을 읽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만약에 그에게 도리와 학문을 논한 책을 읽게 하면 서로 저촉되어 용납되지 않으나, 패관(稗官)의 소설은 즐겨 읽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하니만 패관의 소설이 비록 좋다 하여도 결국은 타당치 못한 부분이 있다. 대개 그 놀랍고 즐거운 일은 문인이 다만 문장의 즐거움만 찾은 것임으로, 자제들은 그들의 성령을 해치게 될 것이다. 내가 이제 <열국지(列國志)>를 평하는데, 만약 이것을 바로 경서(經書)라 한다 해도 결국은 소설의 형태임으로 자제들이 즐겨 읽어 서로 저촉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라고 해서 사사건건 모두가 경에서 전해내려 온 것임으로 자제들이 읽으면 마치 <춘추(春秋)>, <좌전(左傳)>, <국어(國語)>, 전국책<(戰國策)>을 읽어 익힌 것과 같으니,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누군가가 말하기를 <열국지(列國志)> 역시 완벽하게 잘된 책은 아니어서 자제들과 더불어 읽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그 가운데에는 교만, 음탕하고 마음을 해치고 이치에 어긋난 일을 많아서 자제들이 보면 그들에게 사악한 마음을 일으키게 될까 두렵다는 것이다. 이는 실로 시골의 고루한 훈장 선생의 견해이거나, 아니면 도학을 빌어 어린아이들에게 억지로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무릇 성인의 책은 선악이 병존하나 선은 권고하기에 족하고, 악은 경계하기에 족할 따름이다. 다른 소설은 선악의 경계에 있어서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그보다 못한 것은 음란함과 간악함에 더욱 지나치게 신경써 과장하였으니, 이는 바로 김성탄(金聖嘆)이 말한바, 사람은 죽이고 그책은 불살라서 절대로 자제들이 읽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국지(列國志)>에서 선악을 펼친 것은 모두 옛 경서를 본으로 했기에 진실로 선은 권고하기에 족하고 악은 경계하기에 족하다 하였는데, 어찌 교만, 음탕함과 마음을 해치고 이치에 어긋남을 꺼리겠는가?

다른 책도 역시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논하고 있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행하도록 하나, 그것의 내용은 단지 우언(寓言)일 뿐이다. 다만 <열국지(列國志)> 안의 내용은 모두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에 그 권선징악의 내용은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게 한다.

<열국지(列國志)>에는 오류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좌전(左傳)>, <사기(史記)>의 기사에는 모두 송양공(宋襄公)의 부인 왕희(王姬)가 공자포(公子鮑)와 정을 통하려고만 했지 실제로는 행하지 않았다고 나온다. 그러나 열국지에는 왕희가 공자포와 정을 통했다고 한다. 또한 송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간악함을 알지 못하고 좋아하니, 일이 중대함으로 바로 잡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다른 또 하나의 예로 혜성(彗星)이 북두에 있으면 주로 송(宋), 제(齊), 당진(唐晉) 등의 삼국의 군주가 죽거나 난을 겪는다고 주나라의 내사(內史) 숙복(叔服)이라는 사람이 점을 쳐 예언 한 것인데, 이와는 달리 <열국지(列國志)>에서는 제나라의 공자상(公子商)이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하여 얻은 점괘라 하였다. 이와 같은 오류는 매우 많아 두루 다 언급할 수 없다.


** 김성탄(金聖嘆)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 1661년에 죽은 청나라 초기의 문예평론가로 원래의 성은 장(張)이고, 이름은 위(<口+胃>) 혹은 인서(人瑞)다. 성탄(聖嘆)은 그의 자이며,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집안이 가난하여 고독하게 자라다가 명나라가 멸망하자 세상을 백안시하고 불전(佛典)을 좋아하여 승려와 사귀었고 반속적(反俗的)이며 예의범절을 무시한 언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문집인 벽암록(碧巖錄)에서 25칙(則)을 뽑아 비주(批注)한 <성인천안(聖人千案)>을 쓰고 <제육재자서서상기(第六才子書西廂記)>의 비평을 완성하고, 두보(杜甫)의 시를 평하고, 칠언율시(七言律詩)의 평(評)인 <당재자시(唐才子詩)> 갑집(甲集) 8권을 아들 옹(雍)에게 구수(口授)하였다. 지식인과 악덕 관리의 항쟁에 휩쓸려 반역죄로 남경에서 참수되어 50여 생애를 마쳤다. 성격이 오만하고 자유분방하며 그 문장은 기이하였다. <수호전(水滸傳)>은 71회 이후로 나관중(羅貫中)의 속작이라 하여 잘라버리고 <서상기(西廂記)>는 5절(折)을 속본이라 하여 자구(字句)에 손을 대어 고치고 비평하였다.


**서상기(西廂記)
중국 원나라 때 왕실보(王實甫)가 지은 잡극이다. 13세기 후반 북경을 중심으로 융성기를 맞이했던 시기에 나온 원잡극이다. 학업을 위해 유학을 온 서생 장공(張珙)과 최상국(崔相國)의 딸 앵앵(鶯鶯)의 사랑이 산서성 동쪽의 보구사(普救寺)를 무대로 펼쳐지는데, 이 이야기는 원래 당나라 때의 대시인인 원진(元<禾+眞>)이 지은 소설 앵앵전(鶯鶯傳)을 각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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