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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방의 동주열국지 서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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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5,733회 작성일 04-05-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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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방의 동주열국지 서문-2


책의 이름은 수천 종이지만 그 실체를 궁구해 보면 경(經)과 사(史) 두가지일 따름이다. 경(經)이란 도(道)를 싣는 것이고 사(史)란 사(事)를 기록하는 것이다. 육경(六經)이 그 근원을 열었고, 뒷 사람이 이를 이어서 더욱 발전시켰다. 훈계(訓戒), 논의(論議), 고변(考辨) 같은 것들은 모두 경(經)의 부류이고, 감기(鑑記), 기전(紀傳), 서지(敍志) 등은 모두 사(史)의 부류이다. 육경을 살펴보면 모두 성인(聖人)들의 책이다. 말의 근본에는 반드시 쓰임(用)이 있고 말의 쓰임에는 반드시 그 근본(體)이 존재한다. <역경(易經)>과 <예기(禮記)> 및 <악경(樂經)>은 경(經) 중의 경(經)이지만 사(事)도 기록하고 있다. <시경(詩經)>, <서경(書經)>, <춘추(春秋)>는 경(經) 중의 사(史)인데 동시에 도(道)를 밝히고 있다. 후인들의 재주와 식견이 얕고 짧아서 마침내 갈림이 생겨 그들을 두 가지로 보게 되었으며 이것을 둘로 보는, 즉 어긋남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담(高談), 명리(名理)하는 자들이 항상 박식한 선비들보다 부족한 것이며, 학문이나 견식이 넓은 것을 자랑하는 자들도 그들의 시비의 표준은 간혹 성인과 달랐다. 생각건대, 이(理)에는 두 가지 이치가 없음으로 도를 말하는 서적이 세상에 적잖이 보이지만 그 뛰어난 것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역시 내용을 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기껏해야 주소(注疎)를 보조할 수 있을 따름이지 그 비루한 것은 쓸데없는 찌꺼기요, 보잘 것 없는 의견이나 말일 따름이다. 만약 조금 풀어주면 곧 견강부회(牽强附會)하여 지리멸렬한 폐단이 나오게 된다. 사(事)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아서 나날이 다르고 다달이 바뀌어 천태만상이니, 성인이 지은 책으로 다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 경(經)은 더 증가될 수 없으나 사(史)는 곧 나날이 늘어났다. 사(史)는 진실로 흥망성쇠의 흔적이다. 이미 그러한 것은 사(事)이고 그러하게 되는 것은 리(理)이다. 이(理)는 그 자체는 볼 수 없는 것이고, 사(事)에 의해 드러나는데, 사(事)는 사(史)만큼 갖추어진 것이 없다. 천도(天道)의 감응, 인사의 보시(報施),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간신과 충신의 변별은 모두 여기서 취하게 되니, 사(史)라는 것은 경(經)을 도와 쓰임이 되게 하는 것이고, 또한 가히 경과 겸하여 체(體)를 세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거예(制擧藝)가** 나온 뒤에 경학(經學)이 묻히게 되었으나 첩괄(帖括)은** 과거시험장의 법령을 따랐기에 오히려 그 구절을 외울 수 있었다. 역사학에 이르면 그 책은 내용이 방대하고 문장 또한 간결하고도 오묘할 뿐만 아니라 관직에 나아가는 길과도 상관이 없어서, 전문적이고 이름있는 학자는 몇 명 안된다. 학사나 대부들도 대부분 역사책을 접어 두고 있다가 어쩌다 한 번 펼쳐보게 되면 모두가 잠귀신에게 끌려가 버리고 만다. 후진 초학자들에게 억지로 역사책을 읽히면 모두가 머리를 아파하면서 싸늘한 눈길을 보내며, 마치 고해(苦海)라도 되는 것처럼 역사책을 쳐다본다. <춘추(春秋)> 삼전(三傳) 가운데는 <좌전(左傳)>이 가장 명확하고 내용도 잘 갖추어져 있으나, 경전의 전문가들도 그 문장을 거론할 수 없는데, 나머지 사람들이야 어떠하겠는가! 돌이켜보건대, 사람들이 대부분 역사책은 읽지 못하면서도 소설을 못 읽는 사람은 없다. 소설이란 원래 역사서의 지류이기도하며, 특히 역사서의 문장을 풀어서 설명한 것일 따름이다. 소설을 잘 읽는 사람은 또한 역사서를 읽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음으로 옛사람들이 없애지 않은 것이다.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는 사실에 가까운 것이다. 주나라는 평왕(平王)의 동천부터 진시황에 이르기까지 오백여 년 사이에 수십 개의 열국과 갖가지 재난, 복잡한 일, 번잡한 인물들로 가장 읽기 여려운데, 그 읽기 어려운 바는 다른 역사서의 배가 된다. 그러나 소설로 되어 어린아이들도 읽지 못할 것이 없고, 어린아이까지 역사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크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상에 소설을 읽는 사람은 많지만 끝내 역사를 읽는 것과 같은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대개 소설은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따름이니,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간신과 충신의 행위와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하여는 비록 그 흔적을 나열하긴 했지만 하늘의 도리에 대한 감응이나, 인간사에 대한 보답,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및 간신과 충신의 말과 행동의 득실, 그리고 국가가 흥망성쇠하는 까닭에 대해서는 모두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음으로 독자는 사건이 시작되고 끝나는 경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두울 수 밖에 없으니 또한 그것이 어떻게 학문을 익히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대저 학문을 익히는데 도움이 없다면 읽었어도 읽지 않은 것과 같으니 이는 이익이 없는 책인데 어찌 글을 판각하느라 이조(梨棗)의 화(禍)를** 입힐 수 있겠는가? 서방주(書房主)인 주모(周某) 씨는 이를 깊이 근심하여 나에게 여러 차례 당부하였다. 병인, 정묘 년에 내가 한가로이 집에 있을 때가 많았기에 평가하여 득실을 가르고 그 은미(隱微)함을 골랐다. 비록 당일의 기대에 합당하지 못하고 이론에 의거하여 논단하였기에 시비가 자못 성인에게 부합되지 않으나 박식한 선비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독자의 마음을 확트이게 할 것이며, 사학(史學)에도 혹 작은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고로 그것을 평하고, 이와 같이 서를 지었다.


건륭 17년 봄 칠도몽부(七都夢夫) 채원방(蔡元放)이 적다.


▶제거예(制擧藝)/ 중국 고대에 과거장에 나가 문장을 짓는데, 그 문체가 과거제도에 의해 결정됨으로 제거예라고 하였다. 명청대는 일반적으로 팔고문(八股文)으로 치루어 졌다.

▶첩괄(帖括)/과거 시험의 문체의 형식이다. 당조의 명경과는 첩경(帖經)으로 시험을 보았다. <문헌통고(文獻通考)-선거이(選擧二)>에 의해 익힌 경구는 양쪽을 가리고 가운데 한 줄을 열어 놓고 빈 곳을 메꾸는 것을 첩(帖)이라했다고 했다. 후에 수험생들은 첩경이 외우기 힘이 듬으로해서 기억하기 쉽도록 요점만을 같추려 가결(歌訣)을 만들었는데 이를 첩괄(帖括)이라 한 것이다.

▶이조(梨棗)의 화(禍)/ 옛날에는 책을 판각할 때는 대부분 배나무나 대추나무 목재를 사용했음으로 이조(梨棗)는 서적용 판목(版木)의 대명사가 되었다. 원문의 재리화조(災梨禍棗)라는 말은 이조(梨棗)가 재난과 화를 입었는 뜻으로 필요 없는 책을 마구 판각하여 배나무와 대추나무를 낭비한다고 비유한 것이다.

▶건륭17년/ 서기 1752년을 말한다.





  書之名無慮數十百種,而究其實,不過經與史二者而已。經所以載道,史所以紀事者也。六經開其源,後人踵增焉。訓戒、論議、考辨之屬,皆經之屬也;鑒記、紀傳、敘志之屬,皆史之屬也。
  顧六經者,聖人之書也。言體必有用,言用必有體。《易》與《禮》、《樂》,經中之經也,而事亦紀焉;《詩》、《書》、《春秋》,經中之史也,而道亦彰焉。後人才識淺短,遂不得不歧而貳之。貳之,斯不能不有所戾。故高譚名理者,常絀于博識之士;而自矜該洽者,其是非或謬於聖人。顧理無二致,故言道之書,雖世不乏著,究其精者,亦不過恢張餘蘊,僅可作佐翼注疏。其卑者,糟魄唾餘而已。若稍肆焉,則穿鑿傅會破碎支離之弊出矣。
  至於事則不然,日異月新,千態萬狀,非聖人已然之書所能盡也。故經不能以有所益,而史則日以多;史固盛衰成敗廢興存亡之跡也。已然者事,而所以然者理也。理不可見,依事而彰,而事莫備於史。天道之感召,人事之報施,智愚忠佞賢奸之辨,皆於是乎取之。則史者可以翊經以為用,亦可謂兼經以立體者也。
  自制舉藝出,而經學遂湮,然帖括家以場屋功令,故猶知誦其章句。至於史學,其書既灝瀚,文復簡奧,又無與於進取之途,故專門名家者,代不數人。學士大夫,則多廢焉置之;偶一展卷,率為睡魔作引耳。至於後進初學之士,若強裡史,則不免頭涔涔目森森,直苦海視之矣。《春秋》三傳,《左氏》最為明備,專經者,猶或不能舉其詞,況其他乎?
  顧人多不能讀史,而無人不能讀稗官。稗官固亦史之支派,特更演繹其詞耳。善讀稗官者,亦可進於讀史,故古人不廢《東周列國》一書,稗官之近正者也。周自平轍東移,下逮呂政,上下五百有餘年之間,列國數十,變故萬端,事緒紛糾,人物龐雜,最為棘目聱牙,其難讀更倍於他史。而一變為稗官,則童穉無不可得讀。夫至童穉皆可讀史,豈非大樂極快之事邪?然世之讀稗官者甚眾,而卒不獲讀史之益者何哉?蓋稗官不過紀事而已,其有智愚忠佞賢奸之行事,與國家之興廢存亡盛衰成敗,雖皆臚列其跡,而與天道之感召,人事之報施,智愚忠佞賢奸計言行事之得失,及其所以盛衰成敗廢興存亡之故,固皆未能有所發明,則讀者於事之初終原委,方且懵焉昧之,又安望其有益於學問之數哉?夫既無與於學問之數,則讀猶不讀,是為無益之書,安用災梨禍棗為?坊友周君,深慮於此,囑予者屢矣。
  寅卯之歲,予家居多暇,稍為評焉。條其得失,而抉其隱微,雖未必盡合於當日之指,而依理論斷,是非既頗不謬於聖人,而亦不致遺嗤於博識之士,聊以豁讀者之心目,於史學或亦不無小裨焉。故既為評之,而復之如此。

  乾隆十有七年春,七都夢夫蔡元放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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