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간개 > 열국지평설

열국연의 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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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6,520회 작성일 04-05-1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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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개(簡介) 


  중국 역사상 열국연의(列國演義)의 배경무대가 되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라고 구분 짓는 시기는, 주유왕(周幽王)이 견융(犬戎)의 침입을 받아 호경(鎬京) 부근의 여산(驪山)에서 죽고, 그 뒤를 이은 평왕(平王) 의구(宜臼)가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서안의 호경(鎬京)에서 하남성의 락읍(洛邑)으로 동천(東遷)한 기원전 771년부터 시작하여, 섬진(陝秦)의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550년 동안의 시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 기간을 춘추(春秋)와 전국(戰國)으로 나누는데, 춘추는 춘추시기의 후반기에 태어난 공자가 그 기간 동안의 일을 춘추라는 책에 기술한 것 때문이며, 전국이라는 말은 전한(前漢) 때의 유향(劉向)이 쓴 주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를 위주로 저술한 전국책(戰國策)이라는 책에서 유래하였다. 춘추시대는 주나라가 낙읍으로 동천하여 천하의 제후들이 주왕조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독립을 외치기 시작한 시기로부터 당진(唐晉)이 한(韓), 위(魏), 조(趙)로 갈라지는 계기가 된 진양성(晉陽城) 전투가 있었던 기원전 453 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전국시대는 진양성 전투가 벌어진 기원전 453년부터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또한 춘추시기도 다음과 같이 크게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일기(第一期) : BC771-BC685

동주(東周)가 락읍(洛邑)으로 천도(遷都)하는데 큰공을 세운 정(鄭)나라가 중원의 세력을 잡고 특히 정장공(鄭庄公)때에 정나라가 전성기를 이루어 중원의 패자가 된 90년 동안의 시기이다.


제이기(第二期) : BC685-BC591년

BC 685년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즉위하여 관중(管仲)을 등용하여 패자(覇者)의 시대를 열고 그 뒤를 이어 진문공(晉文公), 송양공(宋襄公), 진목공(秦穆公) 및 초성왕(楚成王)이 번갈아 가며 중원의 패권을 차지한 약 90년 동안의 패자(覇者) 시대를 말하며


제삼기(第三期) : BC591-BC 522

패자의 출현으로 중국대륙은 결국은 북쪽 세력을 대표하는 당진(唐晉)과 남쪽 세력을 대표하는 초장왕의 초나라가 중원을 놓고 다투었다. 이 기간 동안 당진과 초나라는 크고 작은 전투를 물경 200회 이상 치러 한 해도 전쟁을 거르지 않은 해가 없었다. 이어서 초나라에서 초평왕(楚平王)이 그의 형 영왕(靈王)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고 다시 오자서(伍子胥) 일가를 죽이자 오자서가 죽음을 피하여 오나라로 망명한 해인 기원전 522년까지의 약 70년간의 시기로 구분되며


제사기(第四期) : BC522-BC453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당진과 다투던 초나라의 배후에 오(吳)나라가 등장하여 초(楚)나라의 망명객 오자서(伍子胥)를 기용함으로써 제후국들의 싸움이 황하 유역에서 장강 유역으로 그 활동영역이 확대되고, 그 결과 오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여 굴복시켜 중원의 패자가 되었으나, 다시 오나라의 배후에서 일어난 월(越)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켜 중원의 패권을 잡았다. 한편 북방의 당진(唐晉)에서는 여섯 가문의 권문세족들끼리 권력다툼을 벌이다 우선 중항씨(中行氏)와 범씨(范氏)가 지(智), 한(韓), 위(魏), 조(趙) 네 집안의 협공으로 멸망당했다. 다시 한위조(韓魏趙) 삼가가 힘을 합하여 네 가문 중에 세력이 가장 컸던 지씨를 진양성(晉陽城) 싸움에서 멸망시키고 지씨 소유의 땅을 삼분하여 후에 독립하여 자기들의 왕조를 열게 된 기원전 453년까지의 약 70년 간의 시기로 구분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53년부터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할 때까지의 기원전 221년 즉 232년 동안의 기간을 말하며 전국시기도 칠웅(七雄)이 병립하여 각 제후들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며 혼전을 거듭하다가 진효공(秦孝公)이 기원전 361년 위(衛)나라 출신의 법가출신 상앙(商鞅)을 기용하여 변법을 시행하여 진나라의 국가체제가 병영국가(兵營國家)화 되고 산업을 장려한 결과 칠웅 중 최강국으로 등장할 때까지의 기간을 전국시기의 초기라 한다면, 상앙의 변법과 부국강병(富國强兵) 책을 취한 진(秦)나라의 세력을 나머지 육국이 연합하여 대항하다가 결국은 각개격파 당하여 최종적으로 진시황에 의해 마지막으로 제나라가 멸망하여 최초로 통일 국가가 된 기원전 221년까지의 기간을 후기라고 구분할 수 있다.


춘추시대와 비교하여 전국시대는 다음과 같이 사회적인 변화가 있었다.


첫째로 중국 고대왕조들의 전통적인 통치방법인 봉건제도가 붕궤(崩潰)되고 군현제(郡縣制)가 확립되었다.


둘째로 서민 출신들의 세객(說客)들과 책사(策士)들이 등장하여 신흥계급으로 등장했다.


셋째로 춘추시대의 성읍국가(城邑國家)라는 형태에서 선으로 연결되는 영토국가로 이행되었다.


넷째로 철제농구의 발명으로 농업생산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 왔다.


다섯째 철제무기의 출현으로 전쟁의 양상은 대규모적이 되었으며 대량 살상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제자백가가 출현하여 기본적인 중국의 사상과 철학들은 모두 이 시기에 출현하였으며 전국시대를 이끌던 사상은 주로 법가(法家)와 종횡가(縱橫家)들에  의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법가로서는 그 시조로 받드는 위(魏)나라의 이회(李悝), 진나라의 변법으로 유명한 상앙(商鞅), 한(韓)나라의 한비자(韓非子), 진시황 때의 이사(李斯), 한(韓)나라의 신불해(申不害)등이 있었으며 종횡가들로 서는 소진(蘇秦), 장의(張儀), 공손연(公孫衍), 진진(陳軫), 등이 있었다.

  결국은 상앙(商鞅)을 위시한 법가들의 사상으로 내정을 정비한 진(秦)나라가 종횡가(縱橫家)인 장의를 등용하여 그 외교력으로 중국을 통일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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