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양론(豫讓論) - 방효유- > 열국지평설

예양론(豫讓論) - 방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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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30회 작성일 19-06-2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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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유(方孝孺)의 예양론(豫讓論)

 

선비나 군자가 몸을 일으켜 임금을 섬기다가 임금으로부터 지기(知己)의 은혜를 받게 되면 지모와 충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모시고 있는 임금을 나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인도해야 한다. 또한 환란이 형체를 갖추기 전에 제거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여 나라를 안전하게 잘 다스림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전하고 임금을 평안하게 모셔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살아서는 신하로써 이름을 남길 수 있고 죽어서는 훌륭한 귀신으로 받들어져 백세에 이르도록 역사서에 찬란히 드리워지게 되니 이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금으로부터 지기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변란이 일어나 위험에 빠지기 전에 구하지 못하고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목숨을 버리면서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놀라게 하는 행위는 군자가 취할 바가 아니다. 이런 관점을 견지하여 예양에 대해 논해 보도록 하겠다.

예양(豫讓)은 지백(智伯)의 가신이 되어 모셨고 조양자(趙襄子)는 지백을 죽였다. 그래서 예양은 죽은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명성은 현혁하게 빛나게 되어 우매한 남자나 무지한 부녀자라 할지라도 예양이 충신이고 의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오호라, 슬프도다! 예양의 죽음은 마땅히 충성스러운 마음에서 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가 택한 죽음의 방법은 충성스럽다고 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어째서인가? 몸에 칠을 하고 숯 덩어리를 삼키는 행위를 하면서 그의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장차 후세에 두 마음을 품고 있는 남의 신하된 자들에게 나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양의 말을 어찌 충성스러운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어서 그는 참의삼약(斬衣三躍), 즉 세 번에 걸쳐 조양자가 내 준 옷을 밟고 찔러 지백의 원한을 갚아주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예양의 행위를 본 조양자가 지백의 가신이 되기 전에 먼저 모셨던 중행씨를 위해서 지백에게는 원수를 갚지 않고 유독 지백만을 위해 죽느냐고 책망했다. 원래 예양은 중행씨의 가신이었다. 중행씨가 지백에게 멸족되자 예양은 지백에게 항복하여 그의 가신이 되었다. 예양이 조양자에게 대답했다.

중행씨는 나를 보통사람으로 대접했소. 그래서 나도 보통사람으로써 보답했소. 그러나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접했소. 그래서 나는 국사로써 그에게 보답하려고 하기 때문이오.

이 말을 논하자면 예양에게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 단규(段規)는 한강자(韓康子) (), 임장(任章)은 위환자(魏桓子) ()를 모셨지만 한·(韓魏) 두 가문의 종주가 그 두 가신을 국사로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단규와 임장은 온힘을 다해 그들의 주인에게 지백이 요청한 땅을 바쳐 그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어 멸망을 재촉해야 한다고 간언했다. 또한 치자(絺疵)도 지백을 섬겼으나 지백은 그를 국사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치자는 한호와 위구의 기색을 살펴 지백에 간했다. 비록 지백이 치자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멸망하고 말았지만 치자가 지백을 위해 행한 지모와 충고는 결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는 훌륭한 일이었다. 예양은 이미 스스로 말하기를 지백이 자신을 국사로 대우했다고 했다. 국사란 나라를 구하는 선비다. 지백이 한 없이 욕심을 부려 남의 땅을 탐하여 멋대로 황당한 짓을 행할 때에 그의 신하였던 예양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서서 온 힘을 다하여 성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해야 했었다.

제후들과 대부들의 땅은 각기 분봉을 받았기 때문에 서로 침략하여 무상으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는 상고시대부터 전해오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른 제후나 대부들의 땅을 취하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땅을 주지 않으면 우리들의 마음에는 분노가 끓게 되고, 그들이 순순히 땅을 바치면 우리들의 마음에는 교만한 마음이 일게 됩니다. 마음이 분노하게 되면 반드시 싸우게 되고 싸우게 되면 또한 패하게 됩니다. 교만한 마음은 남을 업신여기게 되고, 업신여기게 되면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간언했음에도 듣지 않으면 다시 간하고, 여전히 듣지 않으면 또 간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계속 세 번 간해야 했다. 세 번 간했음에도 듣지 않으면 칼을 세운 곳으로 옮겨가 그 날로 죽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비록 완고하고 불민했던 지백도 예양의 지성에 감동하여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대오각성한 지백은 한·위 두 가문과 화해하고 조씨들에 대한 포위를 풀어 지씨들의 종묘를 보존하고 제사를 지켰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예양은 비록 죽었지만 살아있는 것과 같이 되었을 터이니, 어찌 칼로 옷을 찌르는 일보다 나은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예양은 그러한 때를 당하여 자기가 섬기는 주인인 지백의 마음을 깨우치기 위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가 위험에 빠져 죽는 모습만 바라 봤을 뿐이었다. 동남쪽의 월나라가 서북쪽의 진나라 사람들의 마르고 살찐 모습을 관망하듯이 수수방관하며 앉아서 망하는 것만을 기다렸으니 국사의 보답이 어찌 그럴 수 있었단 말인가? 지백이 이미 죽고 나서야 자신의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자객과 같은 무리에 끼어들었으니 어찌 그것이 올바른 길이었다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국사라는 관점에서 논한다면 예양은 그 이름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침에는 원수가 되었다가 저녁때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맺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자들은 또한 예양에게는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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