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원작자 풍몽룡의 생애 > 열국지평설

열국연의 원작자 풍몽룡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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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6,117회 작성일 04-05-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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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몽룡의 생애


풍몽룡은 1574년에 나서 그의 나이 72세인 1646년에 죽은 명말과 청초를 살았던 문인이다. 명나라의 뒤를 이은 된 청나라가 새로 선 해는 1636년이며 당시 풍몽룡의 나이는 59세였다. 풍몽룡은 중국의 통속문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가이다. 그는 당시 유명한 화가인 형 풍몽계(馮夢桂) 그리고 시인으로 명성이 있었던 동생 풍몽웅(馮夢熊)과 함께 오하삼풍(吳下三馮)이라고 불리웠다. 몽룡은 심자진(沈自晉)과 함께 당시 문단의 존경받는 선구자로써, 청년시절에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공부하여 벼슬길에 나가기 위해 과거를 봤으나 번번이 낙방한 끝에 그 실의를 술집과 기방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 때의 경험으로 하층민중들의 생활 실상을 잘 알게 되어 통속소설을 쓰게 됨과 동시에 민간에 퍼져 있던 설화들을 수집 편찬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나이 57세 때인 숭정(崇禎) 3년 (1630년)에 이르러서야 과거에 합격하여 지금의 복건성(福建省) 내의 수영(壽寧)의 지현(知縣)이라는 벼슬을 얻어 관리가 되었다. 65세에 벼슬을 버리고 소주(蘇州)로 돌아와 통속문학에 대한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숭정 17년 (1644년) 명나라의 서울인 북경이 이자성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갑신기사(甲申紀事)>라는 글을 써서 농민들의 봉기에 대해 비난했다. 당왕(唐王) 주율건(朱聿健)이 복주에서 명나라의 부흥을 위해 망명정부를 만들었을 때 풍몽룡도 참여하였다. 그는 <중흥기략(中興紀略)>이란 글을 써서 명왕조의 부흥을 희망하고 청나라 통치자에 깊은 적개심을 표현했다. 당왕이 청나라 군사들에게 패한 순치(順治) 3년(1646년)에 죽었다. 청나라 군사들에게 싸움 중에 살해되었다고 하며, 일설에는 소주에 돌아와 명나라를 그리워하다가 울분에 차 죽었다고도 했다. 풍몽룡은 중국의 통속문학에 대한 수집, 정리, 편찬, 간행 등의 사업에 그의 온 생애를 바쳤다. 나관중(羅貫中), 웅대목(熊大木)의 뒤를 이은 명말청초 시대의 통속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웅대목(熊大木)/ 명나라 중엽의 문인으로 <북송지전(北宋之傳)>의 저자이다. 내용은 북송의 양업(楊業) 일가 출신의 장령들이 거란에 항거한 이야기로써 민간에 유전되어 온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북방의 유목민족인 거란 족에 밀려 남쪽으로 쫓겨난 한족들의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편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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