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몽룡의 문학세계 > 열국지평설

풍몽룡의 문학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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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8,053회 작성일 04-05-1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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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몽룡의 문학세계


열국지(列國志)는 명청 교체기의 대표적인 역사소설이다. 열국지의 원작자는 명나라 중엽의 복건성(福建省) 출신의 작가 여소어(余邵魚)가 쓴 모두 20만 자의 글로 기술된 <열국지전(列國志傳)>를 원전으로 한다. 모두 8권으로 구성되어 주무왕(周武王)이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할 때 시작하여 진나라가 육국을 병탄하여 통일 국가를 이룰 때까지의 시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열국지전의 내용은 다루는 기간이 너무 길고 문학적 가치가 매우 낮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어서 명나라 말기에 풍몽룡이 <열국지전(列國志傳)>을 원전으로 하여 개작하고 이름을 <신열국지(新列國志)>라 했다. 우선 분량 면에서 보면 <열국지전>은 20만 자인데 비해 <신열국지>는 80만 자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이며, 시기는 서주시기는 제외시키고 동주시대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할 때가지를 취급했다. 문학적인 가치도 매우 높아 열국지의 원전(原典)으로 인정하고 있다. 후에 청대의 채원방(蔡元放)이 풍몽룡의 <신열국지>에 약간의 수정과 윤색을 가햐고 평어(評語)를 달고 책이름을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라고 명명했다. 신열국지는 봉건지배계급의 입장에 서서 개혁을 통한 봉건제도를 유지시키려는 풍몽룡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봉건사회에 있어서 그 군주들의 추악하고 부패한 행동, 예를 들어 주유왕(周幽王), 위선공(衛宣公), 제양공(齊襄公), 진영공(陳靈公)의 황음(荒淫), 진영공(晉靈公)과 송강왕(宋康王), 초영왕(楚靈王) 등의 잔인무도한 행위 등을 이유로 그들을 살해한 신하들의 행동을 비호하였다. 진영공이 살해된 것을 “ 백성들은 원망한 지 오래니 진후(晉侯)의 죽음을 오히려 통쾌하게 여겼다(百姓怨若日久, 反以晉侯之死爲快)”라 했고 제의공(齊懿公)이 시해된 것을 “ 나라 사람들이 그가 죽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國人方幸其死)”라고 표현했다. 신열국지의 언어는 통속적이며 문학적인 가치면 보다는 역사적인 교훈에 중점을 두었다.


풍몽룡은 또한 단편 소설집<삼언(三言)> 즉 <유세명언(喩世明言)>, <경세통언(經世通言)>, <성세항언(醒世恒言)>을 편찬했고, 장편소설 평요전(平夭傳)을 지어 덧 붙였다. 여어소(余魚邵) 원작소설 열국지전(列國志傳)을 개작하여 신열국지(新列國志)를 지었으며 통속가곡을 수집하여 <괘기아(卦技兒)>, <산가(山歌)> 등의 이름으로 엮었다. 그 외에 풍몽룡은 수많은 저술과 편찬사업을 벌렸으나 그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삼언(三言)>을 편찬한 것이다. <삼언(三言)>은 화본소설(話本小說)을 전파하는 면에서 중요한 작용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의화본(擬話本)의 창작을 직접 추진하였다. 화본소설이란 송(宋), 원(元), 명(明) 삼조(三朝)를 거치면서 민간에 전해 내려온 민담이나 소설을 찻집이나 술집에서 설서인(說書人)이 청중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시용하던 구어체의 소설을 말하며 의화본(擬話本)이란 문인들이 화본소설을 정리 가공하여 편집하다가 그 형태를 본 따 쓴 단편 소설을 말한다.


<삼언(三言)> 각 편은 각기 40편 모두 합하여 120편의 단편으로, 내용은 대부분 시민생활을 반영하여 충정하고 변함없는 애정을 칭송하며 봉건사회의 죄악을 폭로하여 어느정도 진보적 의듸를 지니고 있다. 지복 민중들의 저급한 취미를 표현하는 부분도 있지만 예술적으로 구성의 안배에 뛰어나 고사를 구구절절이 생동적으로 섞고 있다. 또 대화와 행동을 통하여 인물의 성격을 표현한 것도 이주 성공적이다. 120편 가운데 송(宋)과 원(元)의 화본(話本)이 약 1/3을, 명대의 의화본이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풍몽룡 자신의 작품도 일부 섞여 있다. <삼언(三言)> 중 의화본 가운데 특히 뛰어난 작품들의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본다.


첫째 남녀 간의 애정 이야기를 통하여 여성에 대한 봉건제도의 압제와 불합리한 제도를 고발했다. 그 중 <두십랑이 노하여 보물 상자를 강물에 던져 버리다(杜十娘怒沈百寶箱)>와 <기름파는 총각이 명기를 차지하다(賣油郞獨占花魁)>라는 제목이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다. 유명한 명기인 두십낭이 기생생활을 정리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고위관리의 아들인 이갑(李甲)에게 시집을 갔으나 이갑은 돈 때문에 그녀를 장삿꾼인 송부에게 팔아 넘기려고 했다. 이에 두십낭은 이갑과 송부가 보는 앞에서 기생 생활을 하면서 모은 수천금에 해당하는 보물들을 강물 속에 던지고 자기도 물 속에 뛰어 들어 죽는다는 이야기이며, 기름파는 가난한 총각인 진중(秦重)이 명기인 신요금(莘瑤琴)의 사랑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봉건지배계층의 내부모순과 그들의 죄악상을 비난했다. <신소하가 출사표를 알아보다(沈小霞相會出師表)>와 <화원을 가꾸던 노인이 저녁에 선녀를 만나다(灌園叟晩逢仙女)> 등이 있다. 전자는 당시의 지배계급 내에서의 충신과 간신들의 싸움을 직접 반영한 작품이고 후자는 농부출신인 추선(秋先)이라는 노인이 장위(張委)라는 건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화원을 온 마음을 다하여 가꾼 결과 화신(花神)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고 장위는 징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지배계급에 속하는 악한 자들이 백성들의 것을 약탈하는 간악한 행위를 비난했으며 그에 대해 하층 민중들의 반항정신을 그려낸 것이다.


셋째는 친구간의 우정을 칭송하고 신의를 저버린 행위를 비난한 작품이다. <시윤택이 탄궐에서 벗을 만나다(施潤澤灘闕遇友)>, <계원외가 막다른 골목에서 참회하다(桂員外窮途懺悔)>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전자는 소수공업자 사이의 우정을 찬양한 작품이다. 명나라 중엽에 성택진(盛澤鎭)이라는 조그만 고을에서 비단을 짜 팔던 시복(施復)이라는 사람이 비단을 팔고 돌아오던 도중 길에서 6냥 정도되는 은자를 줏었다. 그는 처음에는 기쁜 마음에 “ 이 은자면 비단 틀 한 대는 더 들여놓을 수 있겠구나! 그 비단 틀에서 생산되는 비단을 내다 팔면 일년이면 꾀 재산을 모을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생각한 결과 다른 마음이 들었다. “ 부자가 잃어 버린 것이라면 황소의 몸에서 터럭 한 올 뽑은 것처럼 표시가 나지 않을 것이나 만일 그 사람이 작은 장사꾼이라면 이 여섯 냥의 돈은 그 사람의 목숨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은자를 사용해 버린다면 그 사람의 목숨을 끊는 행위가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시복은 그 은자의 주인을 찾아서 돌려 주었다. 그 은자의 주인은 주은(主恩)이라는 사람으로써 그 역시 누에를 키워 비단을 생산하는 소수공업자였다. 후에 시복은 부족한 뽕잎을 사기 위해 동정산(洞庭山)이라는 곳으로 가다가 도중에 주은을 만나게 되었다. 주은은 옛날 시복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뽕잎을 대주었을 뿐만 아니라 강을 건너다 뒤집혀진 배에서 그를 구원해주었다는 이야기로 소구공업자 사이의 우정을 주제로 해서 쓴 단편소설은 이것이 처음이다.


<삼언(三言)> 중의 의화본은 송조나 원조의 화본의 기본적 특징을 보전하고 있다. 이야기가 곡절적이고 완전하며 줄거리가 뚜렷하며 언어는 비교적 통속적이고 주로 인물의 대화와 행등을 통하여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고 줄거리를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의화본은 때때로 화본보다 편폭이 길고 당시 사회의 인심에 대한 묘사가 세밀히고 인물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다음은 위의 <두십낭이 노하여 보물상자를 강물에 던지다>라는 단편의 마지막 부분이다.


십랑이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여니 안에는 서랍 달린 작은 상자들이 있었다. 십낭이 이갑에게 첫 서랍을 열라고 말하자 그 안에는 비위 귀걸이와 보옥으로 만든 비녀들이 가득한데 그 값은 수백 금에 달할 것 같았다. 십낭이 그것들을 급히 강 속에 던지니 이갑과 손부 및 배 안에 타고 있는 승객들 모두는 놀랐다. 또 이갑에게 서랍 하나를 더 열어 보라하자 그 안에는 옥소(玉簫)와 금관(金管)이 있고 또 다른 서랍을 열어보니 고옥(古玉)과 자금(紫金)으로 만든 노리개가 있는데 그 값은 수 천 금에 달할 것 같았다. 십낭이 그것들을 모조리 강물 속으로 던지니 배 위와 강기슭에 담장처럼 막아서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 아깝도다, 참으로 아깝도다!”라고 일제히 큰 소리로 외쳤지만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마지막 서랍을 여니 그 안에 도 조그만 합이 들어 있었다. 합을 열어보니 야명주(夜明珠)가 있었는데 그 크기가 한 주먹만했다. 그 밖에 조모록(祖母綠), 묘아안(猫兒眼) 등의 여러 가지 보물들은 듣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라 그 값이 얼마나 가겠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갈채를 보내며 우레와 같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십낭이 그 합마저 강물에 던지려고 하니 이갑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크게 뉘우치며 십낭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손부도 와서 말렸다. 십낭은 이갑을 한쪽으로 밀치고 손부를 향해 큰 소리로 욕을 했다.

“ 나와 이갑 공자는 갖은 고생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네가 음탕한 마음을 품고 참언을 해서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을 깨뜨렸다. 너는 나의 원수라, 내가 죽어 혼백이 있어 반드시 천지신명께 호소하여 네가 결코 베개를 높이하며 편안히 살 수 없도록 하겠도다!”

십낭이 다시 이갑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 첩이 수 년 동안 고생을 겪으며 조용히 이 보물들을 모은 것은 두 사람이 한 평생을 잘 살아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공자께서 신의가 깊지 못하여 헛된 말에 현혹되어 도중에 이 첩의 한 조각 진심을 저버리셨습니다. ”

두십낭이 말을 마치고 보물들을 강물 속에 던지고 이어서 자기도 강물에 뛰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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