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身亡國破 東遷洛邑(신망국파 동천낙읍) > 1부(1~13) 제후굴기

제3회 身亡國破 東遷洛邑(신망국파 동천낙읍)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승국 조회 810회 작성일 04-05-19 17:54

본문

第三回


제3회 犬戎主大鬧鎬京 周平王東遷洛邑

견융주는 쳐들어와 호경을 크게어지럽히고

주평왕은 나라를 동천하여 락읍으로 옮겼다.


한편 신후(申侯)가 유왕에게 자기 딸인 신후(申后)를 폐한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간하자 유왕이 군사를 보내어 토벌하려고 했다. 이에 신후는 이웃 국인 견융과 함께 주나라 왕성을 공격하였다. 주왕은 여산으로 달아나 이족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를 올렸으나 아무도 구원하러 오지 않았다. 유왕과 그 어린 아들 백복은 견융군에게 잡혀 죽고 포사는 견융주의 포로가 되었다. 또한 주선왕의 동생이며 유왕의 숙부인 정환공(鄭桓公)은 유왕을 위해 견융군과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주왕으로부터 구원 요청을 받은 제후국들 중 당진의 문후(文侯) 희구(姬仇), 위무공(衛武公) 희화(姬和), 섬진의 양공(襄公) 영개(嬴開), 정환공의 아들 희굴돌(姬掘突)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견융군을 물리치고 신나라에 살고 있던 유왕의 태자였던 의구를 데려와 주왕의 자리에 앉혔다. 이가 주평왕(周平王)이다.


4국의 도움으로 왕성을 점령한 견융군을 간신히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 때는 이미 이민족인 융족들이 대거 왕성 부근으로 이주해 와 주나라는 그들의 세력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으며 더욱이 왕성은 견융군의 침입으로 파괴되어 거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주평왕은 성왕 때 별궁으로 지은 궁전이 온전해 있는 락읍으로 동천하였다. 예전의 주나라 왕성 부근의 땅은 주나라를 구원하는데 공이 있다고 해서 섬진(陝秦)에게 할양했다. 섬진은 주나라를 구원한 공으로 부용국(附庸國)의 지위에서 일약 백작(伯爵) 국으로 승격되고 그 영토도 기산(岐山) 이서 지역을 주왕으로부터 받아 장차 중원의 강국으로 등장하게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것은 모두가 기원전 771년에 생긴 일이며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550년 동안의 시대를 춘추전국시대 혹은 동주시대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