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應夢郊天 掘地見母(응몽교천 굴지현모) > 1부(1~13) 제후굴기

제4회.應夢郊天 掘地見母(응몽교천 굴지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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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770회 작성일 04-05-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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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應夢郊天 掘地見母(응몽교천 굴지현모)

꿈속의 게시로 교천제를 지내 천자에의 꿈을 잉태시키는 진양공과

땅굴 속의 지하에서 모친과 상봉하는 정장공


이윽고 폐태자 되었던 유왕의 아들 의구(宜臼) 즉 주평왕이 주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나 견융의 침입으로 호경은 철저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에 주나라는 당시 성주(成周)라 불리던 동쪽의 낙읍으로 천도하였다. 이 해가 기원전 771년이고 천추전국시대의 시작인 것이다. 부용국의 군주였던 진양공(晉襄公 : 재위 기원전 777-766)이 주나라를 구원하고 이어서 동천하는데 공을 세우자 주왕은 진군(秦君)의 작위(爵位)를 부용국(附庸國)에서 일약 백작국(伯爵國)으로 올리고 예전의 주나라 터전이었던 기산(岐山) 이서(以西)의 땅을 할양했다. 한편 진양공이 꿈속의 계시를 받아 교천제를 지낸 것은 500여 년 후에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것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상징한 것으로써 교천제라는 의식은 천자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양공은 할양 받은 기산 이서의 땅에 진출한 서융(西戎)을 정벌하다가 싸움 중에 그의 재위 12년 만에 전사했지만 이로써 먼 훗날이기는 하지만 섬진(陝秦)이 강대국으로 성장하여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터전이 마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양공(晉襄公)이 죽고 진문공(秦文公 : 재위 기원전 765-716년 )이 뒤를 잇자 섬진이 중국을 통일할 것이라는 징조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주나라가 동천하고 제일 먼저 등장하는 나라가 섬진인 것은 중국을 통일하여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한 나라가 섬진이기 때문에 섬진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섬진으로 끝내겠다는 원작자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무대가 섬진(陝秦)에서 정(鄭)나라로 바뀐다. 정나라는 주선왕(周宣王)의 동생 희우(姬友)가 원래 서주의 도성이었던 호경에서 가까운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화현(華縣)에 봉해졌다가 당시 섬서성 경내로 대거 진출한 견융의 세력을 피해 지금의 하남성 신정시(新鄭市)로 옮겼다. 희우는 유왕 밑에서 사도(司徒)로 있다가 견융군과 싸움 중에 전사하고 그의 봉지를 다스리고 있던 희굴돌(姬掘突) 즉 정무공(鄭武公 : 재위 기원전 770-744)이 그 뒤를 이어 주나라를 도와 견융을 축출하고 주나라가 동천하는데 세운 공으로 주나라의 경사(卿士)가 되어 위후(衛侯) 희화(姬和)와 함께 주나라의 정사를 맡았다. 경사(卿士)란 왕실의 대소사를 관장하던 관직이며 통상적으로 왕성 부근에 식읍(食邑)을 가지고 있거나 중소제후국을 거느리고 있었다. 정무공(鄭武公) 굴돌(掘突)의 뒤를 정장공(鄭庄公 : 재위 기원전 743- 701년) 희오생(姬寤生)이 뒤를 이었으나 그의 동복동생 공숙(共叔) 단(段)으로 하여금 반란을 유발시켜 죽이고 동생을 사주한 모친 무강(武姜)을 유폐시켰다. 공숙단이 반란을 일으킨 해는 정장공 재위 22년 째인 기원전 722년에 일어난 일이다. 다음은 영고숙(穎考叔)이 그의 모친을 유폐시킨 정장공을 설득하기 위해 한 말이다. "이새의 이름은 올빼미라고 합니다. 낮에는 태산처럼 큰 것도 볼 수 없지만, 밤에는 머리카락 한 오라기라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는 밝지만 큰 것에는 어둡습니다. 어릴 때는 그 에미의 젖을 먹고 자라지만 성장하게 되면 그 어미를 쪼아서 먹어버리는 짐승이라 바로 불효를 하는 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이 포획하여 잡아먹고 있습니다. (此鳥名 , 晝不見泰山, 夜能察秋豪, 明于細而暗于大也, 小時其母哺之, 旣長, 乃啄食其母, 此乃不孝之鳥, 故捕而食之)"


영고숙의 말에 감동을 받은 정장공은 그의 모친을 지하의 땅굴 속에서 재회하고 유폐에서 풀어 신정으로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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