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爭車射賢 獻諂弑君 (쟁거사현 헌첨시군) > 1부(1~13) 제후굴기

제7회 爭車射賢 獻諂弑君 (쟁거사현 헌첨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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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765회 작성일 04-05-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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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爭車射賢 獻諂弑君 (쟁거사현 헌첨시군)

수레를 다투다가 현인 영고숙을 활로 쏘아 죽인 정나라의 공손알과

아첨이 안 먹히자 오히려 그 군주를 시해한 노나라의 공자휘


송나라의 사마 공보가(公父嘉)는 송위 두 나라 군사력만으로는 대성(戴城)을 함락시킬 수 없자 다시 채나라에 원군을 청했다. 채나라의 원군이 도착해서 대성에 대한 공격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을 때는 대성은 이미 정장공의 수중에 들어간 후였다. 송위채(宋衛蔡) 삼국의 연합군은 정장공의 신출괴몰한 용병작전에 말려 전멸했다. 이어서 과거에 주천자의 왕명을 빙자해서 송나라를 정벌할 때 그 명에 따르지 않은 성(郕)나라와 허(許)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다시 제노(齊魯) 두 나라와 함께 삼국연합군을 결성했다. 우선 노나라에 인접해 있던 성나라를 공격하자 성나라가 당해내지 못하고 즉시 항복했다. 성나라는 주무왕의 막내 동생 성숙무(成叔武)가 봉해진 나라로 노나라와 인접해 있었다. 제나라의 영토에 병합된 성나라 영토는 후에 노나라에 할양되었다가 삼환씨 중 맹손씨(孟孫氏)들의 식읍이 되었다. 성나라를 정복한 삼국의 군사들은 다시 이동하여 허나라를 공격했다. 허나라를 공격할 때 선두에 서서 용맹을 떨치던 영고숙은 공손알이 뒤에서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 출전을 앞두고 정장공이 상으로 내건 수레를 차지하기 위해 두 사람이 다투었던 일에 대한 복수심에서였다. 허나라는 정나라의 소유가 되었다.


한편 노나라에서는 공자휘가 은공을 시해하고 공자 궤(軌)를 옹립했다. 후일에 제나라의 공주 문강(文姜)과 혼인을 하고 제나라에 부부동반하여 들렸다가 문강과 사통한 제양공에게 살해당한 노환공이 바로 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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