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토하며 쓴 편지 -보임안서 - > 평설(評說)

피를 토하며 쓴 편지 -보임안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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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7,294회 작성일 13-11-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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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임안서(報任安書)

- 임안에게 보내는 답장 -


김영수


★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이 입사入仕 동기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보임안서報任安書」를 에세이로 소개합니다. 「보임안서」는 『한서』 권62 「사마천전」에 실린 글이지만 옮긴이 김영수가 『사기』의 마지막 편인 「태사공자서」와 함께 묶어 총 130편 『사기』의 서문으로 소개하는 글입니다. 기원전 97년 사마천(당시 49세)은 ‘한 무제의 심기를 건드린 죄(역적을 두둔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사마천은 집필 중이던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남성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자처해 받고 죽음을 면하게 됩니다. 아래 소개될 편지글에는 이 같은 『사기』의 집필 배경이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사마천의 생사관生死觀, 시대에 대한 인식, 역사 기록의 의지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선비였던, 사마천의 동기 임안은 무제 때 파격 기용되어 익주자사益州刺史에 임명되지만, 기원전 91년 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일어난 황태자 유거의 란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사마천은 임안이 익주자사 시절 보내온 편지의 답장을 차일피일 미루다 임안의 투옥 소식을 듣고 답장을 쓰게 되는데, 그 답장이 「보임안서」입니다. 사형을 선고받아 옥에 갇힌 친구(후에 처형당함)에게 한때 사형을 선고받아 옥에 갇혔다가 궁형을 자처해 목숨을 부지한 사마천이 부친 편지글, 일독을 권합니다. - 편집자



1. 답장이 늦어진 연유를 말하다

미천한 태사공① 사마천, 삼가 답장 올립니다②


소경(少卿, 임안의 자) 귀하

지난번 보내 주신 편지에서 저에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밀어주는 것을 책무로 여기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과 기운이 너무 간절하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소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속된 사람들의 말에 따른다고 생각하시어 나무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저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어리석긴 하지만 장자의 유풍이 어떤 것인지는 얻어들은 바 있습니다. 저는 비천한 처지에 빠진 불구자입니다. 무슨 행동을 하든 남의 비난을 받으며, 잘하려고 하여도 반대로 더 나빠질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홀로 우울하고 절망적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습니다③. 왜 그랬겠습니까?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행동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사람을 위하여 단장합니다④.

하지만 저는 몸이 벌써 망가졌으니 아무리 수후(隨侯)나 화씨(和氏)의 주옥과 같은 재능이 있다 한들, 또 허유나 백이와 같이 깨끗하게 행동한다 한들, 영예는커녕 도리어 남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치욕을 당하는 일이 고작일 것입니다.

소경의 편지에 진작 답을 드려야 마땅하지만 마침 황제를 따라 동쪽의 지방을 다녀온 데다 제 개인적인 일에 쫓겼습니다. 만나 뵌 지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바빠서 저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금 소경께서는 불미스러운 죄를 지으신 지 한 달이 지났고, 이제 형을 집행하는 12월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자를 따라 또 옹(雍) 지방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혹시라도 갑자기 당신께서 차마 말하지 못할 일을 당하시고 저는 저대로 저의 불만을 끝내 가까운 사람에게 말할 수 없게 된다면, 당신의 혼백은 영원히 가고 저의 한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저의 고루한 생각을 대략이나마 말씀드리고자 하니 오랫동안 답장 올리지 못하였다고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2. 사마천,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해명하다

자신의 몸을 수양하는 것은 지혜의 표시이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짊의 실마리이며, 주고받는 것은 의리가 드러나는 바이며, 치욕을 당하면 용기로 결단하게 되며, 뜻을 세우는 것은 행동의 목적이라 들었습니다.(자신의 몸을 수양하는 것은 지(智)의 표시이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仁)의 실마리이며, 주고 받는 것은 의(義)가 드러나는 바이며, 치욕을 당하면 용(勇)을 결단하게 되며, 뜻을 세우는 것은 행동의 목적이라고 합니다.)선비는 이 다섯을 갖춘 다음에야 세상에 몸을 맡겨 군자의 대열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려다 도리어 벌을 받는 일보다 더 참혹한 화는 없으며, 마음을 상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슬픔은 없으며,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행동은 없으며, 궁형⑥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은 없습니다. 궁형을 받고 살아남은 사람을 비교하고 헤아린 바는 없으나, 한 세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옛날 위衛나라 영공이 환관인 옹거(雍渠)와 수레를 함께 탔기 때문에 공자는 그곳을 떠나 진陳나라로 갔습니다. 상앙(商鞅)이 환관 경감(景監)의 주선으로 군주를 만나자 조량(趙良)은 떳떳하지 못한 일로 여겼습니다. 환관 조동(趙同)이 황제의 수레를 함께 타자 원사(袁絲)의 안색이 변하였습니다.⑦

이처럼 옛날부터 사람들은 환관과 관계를 가지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대개 중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도 환관과 관련된 일이라면 기분을 상하지 않은 경우가 없는데, 하물며 꼬장꼬장한 선비라면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지금 조정에 아무리 사람이 없다 한들, 저같이 궁형을 받고 살아남은 사람더러 천하의 뛰어난 인재를 추천하라고 하겠습니까?

저는 선친께서 물려주신 가업으로 인하여 황제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벼슬하면서 죄받기를 기다린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여 봅니다. 우선 충성을 바치고 믿음을 다하며, 훌륭한 계책을 세우고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칭송을 들으면서 현명한 군주를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정치의 모자란 것을 메우며 어질고 재능 있는 자를 추천하거나 초야의 숨은 선비를 조정에 드러나게 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밖으로는 전쟁에 참여하여 성을 공격하고 들에서 싸워 적장의 목을 베거나 적군의 깃발을 빼앗은 공도 없습니다. 끝으로 오랫동안 공로를 쌓아서 높은 지위나 후한 녹봉을 받아 친지들에게 광영과 은총을 가져다준 적도 없습니다. 위의 넷 중 어느 하나도 이루지 못하였으며 구차하게 눈치나 보면서⑧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이전에 저는 외람되게 하대부의 말단 대열에 끼여 조정의 논의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나라의 법전에 근거하여 시비를 논하지 못하였고, 깊게 생각하고 살피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지러진 몸으로 뒤치다꺼리나 하는 천한 노예가 되어 비천함 속에 빠져 있는 주제에 새삼 머리를 치켜들고 눈썹을 펴서⑨ 시비를 논하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조정을 업신여기고 같은 시대의 선비를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아! 아아! 저 같은 인간이 새삼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새삼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3. 이릉(李陵)⑩ 사건의 전모를 밝히다

또 일의 시작과 끝은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젊어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정신세계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자라면서 고향 마을에서 어떠한 칭찬도 들은 바 없습니다. 그런데 요행히 주상께서 선친을 봐서 저의 보잘것없는 재주로나마 궁궐을 드나들 수 있게 하셨습니다. 대야를 머리에 인 채 하늘을 볼 수⑪ 없기에 빈객과의 사귐도 끊고 집안일도 돌보지 않고 밤낮없이 미미한 재능이나마 오로지 한마음으로 직무에 최선을 다하여 주상의 눈에 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은 저의 뜻과는 달리 크게 잘못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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