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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세가(孔子世家)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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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11,547회 작성일 09-10-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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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세가(孔子世家)






926. 周室旣衰(주실기쇠),

주왕실이 쇠약해 지자



927. 諸侯恣行(제후자행).

제후들이 말을 듣지 않고 방자해 졌다.



928. 仲尼悼禮廢樂崩(중니도례폐락붕),

예(禮)가 없어지고 악(樂)이 무너지는 것을 슬퍼한 공자가



929. 追脩經術(추수경술),



세상을 구하는 방도를 추구하여



930. 以達王道(이달왕도),

그것으로써 왕도를 달성하고



931. 匡亂世反之于正(광란세반지우정),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아 바른 길로 되돌리려고 하였다.



932. 見其文辭(견기문사),

공자의 저서와 글을 보면



933. 爲天下制儀法(위천하제의법),

천하를 위해서 의례와 법도를 만들었고



934. 垂<六藝>之統紀于后世(수<육예>지통기우후세).

후세에 육예의 기강을 영원히 남겼음을 알 수 있다.



935. 作<孔子世家>第十七(작<공자세가>제십칠)

이에 <공자세가>제십칠을 지었다.






공자는 노나라의 평창향(平昌鄕)②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송나라 사람으로 공방숙(孔方叔)③이다. 방숙은 백하(伯夏)를 낳았고 백하는 숙량흘(叔梁紇)을 낳았다. 흘(紇)은 안씨(顔氏)와 야합(野合)④하여 공자를 낳았다. 안씨는 공자를 낳기 전에 니구(尼丘)⑤에 올라 기도(祈禱)를 올렸다.

공자는 노양공(魯襄公) 22년 기원전 551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머리의 정수리 가운데가 움푹 파져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구(丘)라 지었다. 자는 중니(仲尼)⑥이고 성은 공(孔)이다.

공구(孔丘)가 태어났을 때 그 부친 숙량흘이 죽어 방산(防山)에 묻었다. 방산은 노나라 동쪽에 있었다. 자라서 철이든 공자는 부친의 묘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 했으나 모친은 알려주지 않았다.⑦ 어린 공자가 소꿉장난을 할 때는, 항상 조두(俎豆)⑧를 늘어놓고 예를 갖추어 제례를 올렸다. 이윽고 공자의 모친이 죽자 부친의 묘를 알시 못해 임시로 노성(魯城)의 큰 대로 옆에 있는 오부지구(五父之衢)라는 곳에 빈소를 차렸다.⑨ 이것은 부모를 함께 매장하는 풍속을 지키기 위해 신중을 기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추읍(郰邑) 사람 만보(輓父)의 모친이 공자의 아버지 묘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음으로 비로소 모친의 시신을 방산에 합장할 수 있었다.

공자가 아직 상중에 있을 때 계씨(季氏)⑩들이 노나라의 명사들을 초청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자 공자도 참석하려고 했다. 계손씨들의 가신인 양호(陽虎)⑪가 공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계씨들이 잔치를 여는 목적은 노나라의 명사들을 위해서이지 그대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에 공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갔다.

공자가 17세 때 즉 기원전 535년 노나라 대부 맹리자(孟釐子)⑫가 병이 들어 임종시에 그의 후계자인 아들 의자(懿子)에게 당부했다.

「공구(孔丘)는 송나라에서 멸족된 성인(聖人)의 자손이다. 그 조상인 불보하(弗父何)⑬는 원래 송나라 군주의 적자였으나 그의 동생인 려공(厲公)에게 군주의 자리를 양보했다. 정고보(正考父)⑭ 때에 이르러 대공(戴公), 무공(武公), 선공(宣公)으로부터 세 번 명을 받았는데 받을 때마다 더욱 공손했으며 그래서 정(鼎)에 세겨 넣기를 ‘첫 번째 명에 몸을 숙이고, 두 번째 명에 허리를 굽혀 절하고, 세 번째 명에는 큰절을 한 뒤에 받았다. 길을 걸을 때는 가운데를 걷지 않고 담장 곁에 붙어 다녔으나 아무도 감히 그를 경멸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鼎)에 ’풀과 죽을 쑤어 먹으며 청렴하게 살았다’라고 기록했을 정도로 그의 선조들은 청렴하고 공손했다. 내가 듣기에 성인의 후손들은 군주의 자리에 앉지는 못해도 필시 귀한 신분에 이르는 자가 있다고 했다. 오늘 공구(孔丘)가 비록 나이가 어리다 하나 예법을 좋아하니 그 자가 바로 귀한 신분에 이르게 될 사람이 아니겠는가? 내가 죽게 되거든 너는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맹리자가 죽자 의자(懿子)와 남궁경숙(南宮敬叔)⑮이 공자를 찾아가 예를 배웠다. 이 해에 계무자(季武子)⑯가 죽고 계평자(季平子)⑰가 계손씨들의 종주 자리에 올랐다.

출신이 가난하고 천한 공자가 장성하게 되자 일찍이 계손씨들의 창고를 관리하는 말단 관리가 되었다. 그의 저울질은 공평하였고, 목장의 말단관리가 되었을 때는 가축들은 번식하였다. 그래서 그는 사공(司空)⑱의 직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에 노나라를 떠나게 되었다. 제(齊)나라에 갔으나 배척을 받고, 이어서 송(宋)나라와 위(衛)나라에 차례로 갔으나 모두 쫓겨났다.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난관에 빠지자 다시 노나라로 돌아왔다. 공자는 키가 9자 6치⑲가 되어 사람들은 모두 그를 키다리(長人)이라고 부르고 그의 큰 키를 기이하게 여겼다. 그가 노나라에 돌아온 이유는 노나라 사람들이 잘 대했기 때문이었다.

노나라 남궁경숙(南宮敬叔)이 노후(魯侯)에게 말했다.

「공자와 함께 주나라에 가려고 하니 허락해 주십시오.」

노후가 공자에게 수레 한 대와 말 두 필, 시자(侍者) 한 명을 주어 노나라에 가게 하여 예에 대해 묻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공자는 노자(老子)를 만날 수 있었다. 이윽고 공자가 헤어지려고 할 때 노자가 전송하며 말했다.

「내가 듣기에 부귀한 자는 사람을 전송할 때 재물로써 하고 어진 사람은 사람을 전송할 때 말로써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부귀하자 못하나 어진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으니 내가 그대를 말로써 전송하고자 합니다. ‘총명하고 주도면밀한 사람들은 항상 죽음의 위험이 따라다니는데 이는 다른 사람과 다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며, 박학하며, 언변에 뛰어나고, 식견이 넓은 사람은 그 몸이 위태로운데, 이는 남의 나쁜 점을 들쳐 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자녀 된 자는 마땅히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고 항상 자기 부모를 마음속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남의 신하된 자는 마땅히 자기를 잊고 항상 자기 앞에는 군주가 있는 듯이 행동해야 합니다.’」⑳

그 당시 당진의 평공(平公)이 음탕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권을 전횡하고 있던 육경(六卿)이 동쪽의 제후들을 공격하였다. 또한 초영왕(楚靈王)이 강한 군사들의 힘을 믿고 중원의 제후국들을 넘봤다. 대국 제나라는 노나라와 이웃하고 있었다. 노나라는 소국에 국력이 미약했음으로 초나라에 붙으면 당진이 화를 냈고, 당진에 붙으면 초나라가 군사를 내어 공격해 왔음으로 미처 제나라에 대한 방비를 할 틈이 없었다. 제나라는 이것을 노리고 이윽고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를 쳐들어왔다.

노소공 20년 기원전 522년은 공자의 나이 30세 때다. 제경공(齊景公)과 안영(晏嬰)이 노나라에 왔다. 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 섬진(陝秦)의 목공(穆公)은 변방의 작은 나라의 군주에 불과했음에도 어떻게 해서 그가 패자가 될 수 있었소?」

공자가 대답했다.

「섬진 목공은 비록 소국의 군주였지만 그 뜻이 원대하였고, 그 나라는 비록 중원과 멀리 떨어진 변방에 위치했지만 정도를 행했습니다. 노예의 신분으로 초나라에 도망쳐 살고 있던 백리해㉑를 숫양가죽 5장을 속죄금으로 주고 데려와 감옥에서 꺼내어 포승줄을 풀어준 목공은 그와 3일 밤낮을 서로 대화를 나누어 본 후에 대부에 봉하고 섬진의 정사를 맡겼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천하도 얻을 수 있었지만 단지 패자(覇者)에 머무렀음은 대단치 않은 일입니다.」

노소공 25년은 기원전 517년으로 공자 나이가 35세 되는 해이다. 그 해에 계평자(季平子)가 후소백(郈昭伯)㉒과 투계(鬪鷄)를 하다가 소공에게 죄를 얻었다. 소공은 공실의 군사를 이끌고 계평자를 공격했다. 평자는 맹손씨 및 속손씨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가병을 합쳐 소공을 공격했다. 소공이 싸움에서 지고 제나라로 도망쳤다. 제나라는 소공에게 건후(乾侯)㉓를 주어 살게 했지만 얼마 후에 노나라에 내란이 일어났다. 공자가 제나라에 가서 고소자(高昭子)㉔의 가신이 되어 경공에게 호소하여 노후를 복위시키려고 했다. 제나라의 태사(太師)㉕와 음악에 대해 토론하다가 『소(韶)』㉖ 라는 음악을 듣고 그것을 배우는 3달 동안은 고기 맛을 잃을 정도로 심취하자 제나라 사람이 공자를 칭송하였다.

제경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군주는 군주다워야, 신하는 신하다워야,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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