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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재교수의 술과 한시 "의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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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53회 작성일 19-04-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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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재교수의 술과 한시]

 

'의영회(擬詠懷)’

 

유신(庾信)

 

 

步兵未飲酒(보병미음주)

완보병처럼 술을 질펀하게 마시지도 못하고

 

中散未彈琴(중산미탄금)

혜중산처럼 초연하게 거문고를 연주하지도 못한다.

 

索索無眞氣(색색무진기)

묵묵히 참다운 본성을 지켜낼 방도가 없어

 

昏昏有俗心(혼혼유속심)

혼미한 생각으로 속된 명리를 쫓고 말았다.

 

涸鮒常思水(학부상사수)

말라가는 물웅덩이의 붕어는 간절히 물을 기대하고

 

驚飛每失林(경비매실림)

놀라서 날아가는 새들은 매번 돌아갈 숲을 잃는다.

 

風雲能變色(풍운능변색)

바람과 구름은 갑자기 변화를 일으켜

 

松竹且悲吟(송죽차비음)

불굴의 송죽은 바람에 쓰러져 슬피 우는데

 

由來不得意(유래부득의)

나는 그 후로는 뜻을 얻지 못한 건

 

何必往長岑(하필왕장잠)

하필이면 먼 장잠까지 올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 시는 남조 양()나라 때의 유신(庾信: 513~581)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의영회(擬詠懷)라는 제목의 27() 연작시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다.

 

젊어서부터 천재로 명성을 날렸고 19살에 초찬박사(鈔撰博士)에 임명되어 건강령(建康令)까지 올랐던 그는 양무제(梁武帝) 말엽에 후경(侯景)의 반란으로 건강성이 함락되자 강릉(江陵)으로 달아나 당시 양원제(梁元帝) 소역(蕭繹)에게 몸을 맡겼다. 하지만 승성(承聖) 3(554)에 그는 사신으로 파견되어 서위(西魏)의 수도 장안(長安)으로 갔고, 그가 도착하고 얼마 후 서위는 강릉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양원제를 살해했다. 이 바람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장안에 발이 묶여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라는 고위 벼슬까지 지내야 했지만, 고향인 강남을 떠나 북방에 억류된 채 망국(亡國)의 회한까지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 바로 이런 극한의 경험을 통해 그의 사상과 문학 창작은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으니, 한때 나긋나긋하고 화려한 묘사로 궁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이른바 궁체시(宮體詩)’의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의 시는 비유와 풍자를 통해 자신의 신세를 한타하고 슬퍼하는 진지한 내용과 참신한 수사법을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만년의 시 창작을 대표하는 의영회는 완적(阮籍: 210~263, 자는 사종[嗣宗])영회시를 흉내 낸 것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오로지 자신만의 개성과 감성으로 채워져서 전혀 새로운 면모를 이루어냈다.

 

보병교위(歩兵校尉)라는 말단을 벼슬을 살면서 어지러운 현실 정치와 집요한 생명의 위협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완적은 술을 통해 자유와 해방을 만끽했고, 중산대부(中散大夫)를 지냈던 혜강(嵇康: 224~263, 자는 숙야[叔夜])은 거문고를 통해 부귀공명의 추악한 욕망과 위선적인 예교(禮敎)로 얼룩진 세속을 피해 죽림(竹林)’에서 노닐고자 했다. 그러나 길이 끝나는 곳까지 수레를 몰고 나가 벌판 끝에서 통곡하며 가슴에 쌓인 울분을 토하고, 60일 동안 술에서 깨어나지 않음으로써 호시탐탐 그의 목숨을 노리던 종회(鍾會: 225~264, 자는 사계[士季])와 사마소(司馬昭: 211~265, 자는 자상[子上])의 마수(魔手)를 피했던 완적은 끝내 강압에 못 이겨 사마소에게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라는 권진표(勸進表)를 써주고 한두 달 만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나야 했다. 또한 종회의 모함으로 39살의 나이에 사마소에게 피살당한 혜강은 형장에서 거문고를 들고 유명한 광릉산(廣陵散)을 연주한 후 의연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 연작시의 첫머리에서 유신이 완적과 혜강을 거론한 것은 똑같이 난세에 처했지만 그들처럼 술이나 거문고로 세속의 추한 고뇌를 끊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로 인해 그들 두 선현(先賢)에게 느끼는 부끄러움을 토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는 물이 말라가는 수레바퀴 자국 안에서 물을 찾는 붕어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전국책(戰國策)에는 화살도 없이 시위를 놓는 소리만으로 기러기를 떨어뜨린 이야기가 들어 있다. 한 되의 물만 있으면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수레바퀴 자국 안의 붕어에게 서강(西江) 즉 촉강(蜀江)의 강물을 끌어다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그 붕어의 말처럼 조만간 건어물 가게에서 보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또한 이미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기러기는 시위를 놓는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놀라 정신없이 날아서 달아나려 하다가 결국 무리를 잃고 만다. 막다른 궁지에 몰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전전긍긍하는 이들 붕어와 기러기는 결국 시인 자신의 현재 처지를 비유하고 있다.

 

전쟁의 풍운을 겪고 강릉으로 갔지만 겨우 3년 만에 군주가 죽고 나라가 망하는 변고가 일어났고, 사신으로 서위에 갔던 자신은 결국 절조(節操)를 지키지 못한 채 이국의 도읍에서 벼슬살이를 하며 비통한 시만 읊조리고 있다. 이리하여 그 동안 품어 왔던 뜻을 이제는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상관의 심기를 거슬러 먼 요동(遼東)의 장잠현(長岑縣)의 현령으로 쫓겨났다가 결국 벼슬을 접고 귀향하여 쓸쓸히 죽어갔던 서한(西漢) 때의 최인(崔駰: ?~92)과 같은 전철을 밟을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처럼 북방에 머물면서 진지한 무게가 담긴 작품들을 지어내면서 그는 의영회시외에도 원가행(怨歌行), 망야(望野), 연가행(燕歌行), 기서릉(寄徐陵), 화간법사삼절(和侃法師三絶)등등의 유명한 걸작들을 다수 창작했다. 또한 이 무렵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애강남부(哀江南賻)를 비롯해서 고수부(枯樹賦)죽장부(竹杖賦), 소원부(小園賦), 상심부(傷心賦)등의 서정적인 작품들도 산문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당나라 때 두보(杜甫)희위육젉(戱爲六絶句)에서, “유신의 문장은 늙어서 다시 완성되어, 드높고 힘찬 표현으로 거침없이 뜻을 나타냈다.[庾信文章老更成, 凌雲健筆意縱橫]”라고 칭송했다.

 

 

 搖落秋爲氣(요락추위기)

시들어 기후는 가을이 되었나니

 

凄凉多怨情(처량다원정)

처량하게 원망도 많구나.

 

啼枯湘水竹(제고상수죽)

두 왕비의 울음에 상수의 대나무 말랐고

 

哭壊杞梁城(곡괴기량성)

기량의 아내 통곡에 성이 무너졌구나.

 

天亡遭憤戰(천만조분전)

하늘이 망하게 하려고 격한 전쟁 만나게 하니

 

日蹙値愁兵(일축치수병)

태양도 움츠러들어 병사들 시름겹게 했지.

 

直虹朝映壘(직홍조영루)

반듯한 무지개 아침이면 보루를 비추고


長星夜落營(장성야락영)

긴 꼬리를 가진 별 밤이면 영채에 떨어졌지

 

楚歌饒恨曲(초가요한곡)

초나라 노래에는 한 맺힌 곡조 풍성하고

 

南風多死聲(남풍다사성)

남풍의 노래에는 죽음의 소리 많이 들어 있구나

 

眼前一杯酒(안전일배주)

눈앞에 한 잔의 술 놓여 있거늘

 

誰論身後名(수논신후명)

누가 죽은 뒤의 명예를 따지겠는가?

 

나라의 운세도 시인 자신의 운명도 만물이 조락하는 가을처럼 처량하고 쓸쓸하여 부질없는 원망만 늘어난다. 성스러운 순() 임금이 죽어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두 왕비의 눈물은 상수(湘水) 강가의 대나무에 얼룩을 만들었고, 제나라 기량(杞梁)의 아내가 토해내는 비통한 곡소리에 제나라 성벽이 무너졌다는 전설을 빌려 강릉(江陵)의 패전으로 양나라 군주와 신하들이 살육을 당하고, 수많은 백성이 죽고 다쳐서 가정마저 풍비박산해버린 비극을 묘사했다. 적국에 사신으로 가 있던 몸으로 어쩌지도 못하는 운명 같은 비극은 이미 보루에 드리운 무지개와 영채에 떨어진 긴 꼬리의 별똥별[長星]이 예고한 것이었다. 무지개의 머리와 꼬리가 땅에 닿으면 전쟁으로 피가 흐를 징조라는 별점의 예와 위()나라를 정벌하러 나섰다가 위수(渭水) 남쪽에서 긴 꼬리의 별똥별이 영채로 떨어진 뒤에 제갈량은 군영에서 죽고 촉한(蜀漢)의 군대는 영채를 불태우고 패전하며 장수들 간에 서로 원망하며 칼을 휘두르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 서술은 양나라 원제가 강릉에서 패하여 죽기 전부터 하늘이 내린 징조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운명론적인 서술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막다른 곳에 몰린 항우(項羽)처럼, 기세가 약한 남풍처럼 허약하게 진()나라에게 패전해버린 초()나라의 경우처럼, 옛 초나라 땅인 강릉에 도읍을 세운 양나라와 원제는 비극적인 운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망해버린 조국에 대한 무력한 회고와 애도의 끝에는 훗날에 대한 염려 따위는 모두 무시하고 눈앞의 술과 쾌락에만 매달렸던 양 원제와 조정 신하들에 대한 원망과 질책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백운재 교수

 

[칼럼니스트 소개]

백운재 교수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1999)를 취득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하늘을 나는 수레(2003),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2010), 전통시기 중국의 서사론(2004)등의 저서와 두보, 이하 등의 중국 시와 베이징(1997), 서유기(2004), 홍루몽(2012), 유림외사(2009), 양주화방록(2010)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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