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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대(黃金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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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14회 작성일 19-06-2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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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대(黃金臺)​

燕山不改色(연산불개색)

연나라 산하는 바뀐 것이 없고


易水無剩聲(이수무승성)

이수의 강물 흐르는 소리도 여전한데

誰知數尺臺(수지수척대)

저 높은 황금대를 지은 뜻을 누가 안다고 하겠는가?

中有萬古情(중유만고정)

만고에 변하지 않는 세상의 인심이 있음을!

 

區區後世人(구구후세인)

그러나 잘고 용렬한 후세 사람들은

猶愛黃金名(유애황금명)

황금이라는 이름에 집착하였도다.

黃金亦何物(황금역하물)

황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能爲賢重輕(능위현중경)

능히 어진 선비들을 중하게도 가볍게도 할 수 있단 말인가?

 

周道日東漸(주도일동점)

주나라의 도리가 동쪽의 땅으로 전해지자

二老皆西行(이노개서행)

두 사람의 어진 사람은 모두 서쪽으로 가버렸다.

養民以致賢(양민이치현)

이에 연나라가 어진 선비를 구하여 백성들을 교화하니

王業自此成(왕업자차성)

왕업은 이로서 스스로 이루어졌도다.

유인(劉因)

원대의 문인. 자는 몽길(夢吉), 호는 정수(靜修)이다. 지금의 하북성 용성(容城) 출신으로 원세조(元世祖) 지원(至元) 19, 서기1282년에 출사하여 승덕랑(承德郞)과 우찬선대부(右贊善大夫)를 지냈다. 이어서 모친이 연로하여 병이 들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모친을 돌봤다. 지원 28, 즉 서기 1291년 다시 원나라 조정은 그를 집현전학사로 임명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고향에서 일생을 마쳤다. 유작으로는 <정수집(靜修集)> 30권이 있다. 유인(劉因)의 작품에는 유민사상(遺民思想)이 많이 반영되어 당시의 백성들로부터 많은 존중을 받았다. 백구, 도원행 등의 작품에서는 부물과 서경 그리고 영사를 막론하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표출되고 있고 감정이 진지하면서도 침통하다. 몇몇 작품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완곡하게 드러나 있다. 언어는 소박하고 시풍은 웅혼하며 의미는 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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