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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4. 자산(子産) 공손교(公孫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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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5,646회 작성일 12-12-1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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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子産) 공손교(公孫僑)

 

정간공(鄭簡公) 원년 기원전 565, 정나라의 여러 공자들이 모의하여 집정(執政) 자리에 올라 전횡을 일삼고 있던 자사(子駟) 공자비(公子騑)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자사가 미리 알고 무리를 모아 오히려 여러 공자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간공 2년 기원전 564, 당진(唐晉)이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정벌하고 정백(鄭伯)과 회맹을 하고 돌아갔다. 그해 겨울 정나라가 당진을 배반하고 초나라와 다시 맹약을 맺었다. 여러 공자들에게 살해당하지나 않을까를 두려워한 자사가 당진과 초나라를 번갈아 가며 강화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이었다.

간공 3년 기원전 563, 정나라의 상국 자사가 스스로 군주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자공(子孔) 공자가(公子嘉)가 울지(尉止)를 시켜 자사를 죽이고 자기가 그의 자리에 대신 오르려고 했다. 간공을 폐하고 군주의 자리를 노리고 있던 자공에게 자산(子産)이 말했다.

자사(子駟)가 자기 스스로 군위에 오르려다가 당신에게 살해 당했는데 오늘 다시 당신이 자사의 뒤를 따르려 하십니까? 그렇게 되면 정나라의 혼란은 끊일 날이 없을 겁니다.

자공이 자산을 말을 듣고 정나라 군주 자리에 오르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

간공 4년 기원전 562, 초나라와 회맹을 맺어 당진국을 배반한 정나라에 대해 분노한 진도공(晉悼公)이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초공왕(楚共王)이 구원군을 이끌고 와서 당진의 군사들을 물리치고 정나라를 구원했다. 초군이 돌아가자 당진군이 다시 쳐들어올 것을 두려워한 정간공이 당진과 수호를 맺으려고 했다. 초나라가 알고 정나라의 사자를 가두었다.

간공 12년 기원전 554, 간공은 제 멋대로 정나라의 국권을 휘두르던 자공을 죽이고 자산을 경()으로 삼았다.

간공 19년 기원전 547, 간공이 당진에 들려 일찍이 손림보(孫林父)의 반란으로 당진에 망명하고 있던 위헌공(衛獻公)을 본국으로 보내 복위시키라고 청했다. 당진의 도움으로 위헌공은 귀국하여 위상공(衛殤公)을 죽이고 위후의 자리에 올랐다. 정간공이 자산을 6개의 고을에 봉했으나 자산이 사양하며 받지 않다가 3개의 고을만을 받았다.

간공 22년 기원전 543, 오나라에서 사절로 연릉(延陵)의 계자(季子)가 들려 자산(子産)을 보더니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거워했다. 계자(季子)가 자산에게 말했다.

정나라의 정사를 맡고 있는 사대부들은 모두 요사한 자들뿐이라 머지않아 재난이 닥쳐와서 나라의 대권은 장차 선생의 손안에 떨어 질 겁니다. 선생께서 만일 나라의 정권을 맡게 된다면 반드시 예의(禮儀)에 따라 나라를 다스려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나라는 필시 참담한 지경에 이르게 되어 마침내는 멸망하고 말 겁니다.

자산이 계자를 후하게 대접했다.

간공 23년 기원전 543, 정나라의 여러 공자들은 군주의 총애를 다투다가 서로 공격하여 죽였다. 그들이 작당하여 자산(子産)까지 죽이려고 하자 공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자산은 인자(仁慈)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정나라가 능히 망하지 않고 사직을 유지하고 있음은 순전히 자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를 죽인다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입니다.

공자들이 결국은 자산(子産)을 죽일 생각을 거두고 물러갔다.

간공 25년 기원전 541, 정나라가 자산을 당진에 사자로 보내 병들어 누워 있던 진평공(晉平公)을 문안하게 하였다. 평공이 자산에게 물었다.

나의 병에 관하여 점을 쳤는데 점괘가 실심(實沈)과 대태(臺駘)를 받들라라고 나왔소. 사관(史官)은 그 뜻을 모르는데 경은 혹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소?

자산이 대답했다.

고신씨(高辛氏)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장자는 이름을 연백(閼伯)이라 했고 차자는 실심(實沈)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깊은 숲속에서 살았는데 서로 용납하지 못하고 매일 창과 칼을 들고 서로 싸웠습니다. 요임금이 그들을 불쾌하게 생각하여 연백(閼伯)을 상구(商丘)로 옮겨 살게 하고 신성(辰星)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습니다. () 땅의 백성들이 그 제사를 이어 받아 계속 지냈기 때문에 신성(辰星)을 상성(商星)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요임금이 실심(實沈)은 대하(大夏)로 보내어 삼성(參星)에 제사지내도록 했습니다. () 땅의 백성들이 삼성에 지내는 제사를 이어받아 하·(夏商) 두 왕조 기간 내내 받들어 오다가 주나라가 들어서자 당숙우(唐叔虞)가 이어 받았습니다. 주무왕 당세에 그의 정비인 읍강(邑姜)이 대숙(大叔)을 회임(懷妊) 했을 때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천제(天帝)가 타나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우()라 짓고 그를 당()에 봉하여 삼성(參星)의 제사를 계속 지내게 하면 그의 자손들을 내가 번성하게 하리라!

그리고 얼마 후에 읍강이 과연 아들을 낳았는데 갓난아이의 손바닥에 우()라는 글자가 써있어 이름을 우()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성왕(成王)이 당을 멸하고 대숙을 그곳에 봉하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삼성(參星)은 진성(晉星)이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실심(實沈)은 곧 삼성(參星)을 말합니다. 그리고 옛날에 금천씨(金天氏)의 후손에 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물을 다스리는 신들의 우두머리인 현명(玄冥)으로써 윤격(允格)과 대태(臺駘)를 낳았습니다. 대태가 현명(玄冥)의 관직을 이어받아 분수(汾水)와 조수(洮水)를 통하게 하고 대택(大澤)에 제방을 새로 쌓고 태원(太原)에서 살았습니다. 전욱(顓頊) 임금이 대태의 공적을 칭찬하여 포상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상으로 분수(汾水) 유역의 땅을 분봉하였습니다. 전욱 임금이 계속해서 심(), (), (), 황국(黃國)등의 네 나라 군주에게 명하여 대태의 제사를 관장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지금은 당진(唐晉)이 분수(汾水) 유역을 통치하면서 분수(汾水) 유역의 국가들을 멸망시켜 자기의 영토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을 헤아려보면 대태(臺駘)는 분수(汾水)와 조수(洮水)의 신()을 말합니다. 그래서 실심과 대태 두 신령은 모두 군후의 몸을 해칠 수 없습니다. 수재나 한발(旱魃)의 재해가 났을 때는 산천의 신령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폭설이나 서리가 내리거나 폭풍우가 몰아 칠 때는 일월성신(日月星辰)에게 제사를 올리면 됩니다. 그래서 군주님의 병은 음식(飮食)을 알맞게 맞추어 드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쁨과 슬픔에 너무 빠지고 여색을 너무 가까이 하셨기 때문에 얻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평공이 숙향(叔向)을 향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오. 자산이야 말로 진실로 박물군자(博物君子)라 할 수 있겠소!

진평공은 좌우에게 명하여 자산을 후하게 대접하게 하였다.

간공 27년 기원전 539, 여름 정간공(鄭簡公)이 조현을 드리기 위해 당진국에 들어갔다. 그해 다시 겨울에 강포한 초나라 영왕(靈王)에게 조현을 올리기 위해 초나라에 들어가자 자산이 호종하였다.

간공 28년 기원전 538, 정간공이 병이 들었다. 자산이 간공을 대리하여 제후들의 회맹장에 나가서 초영왕(楚靈王)과 신성(申城)에서 회맹하였다. 초영왕은 회맹장에서 제나라의 역신 경봉(慶封)을 오나라의 주방(朱方)에서 잡아와 여러 제후들이 보는 앞에서 시군(弑君)의 죄를 물어 죽였다.

간공 36년 기원전 530, 간공이 죽고 그의 아들 녕()이 뒤를 이었다. 이가 정정공(鄭定公)이다. 그해 가을에 정공이 당진에 가서 진소공(晉昭公)에게 조현을 행했다.

정공 원년 기원전 529, 초나라의 공자 거질(去疾)이 형인 초영왕(楚靈王)을 쫓아내고 스스로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초평왕(楚平王)이다. 초평왕이 중원의 제후들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초영왕이 정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

정공 4년 기원전 526, 당진(唐晉)의 소공이 죽었다. 이어서 당진에서는 육경(六卿)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공실의 힘은 더욱 약해졌다. 자산이 한선자(韓宣子)에게 말했다.

인의와 도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덕치야 말로 정권이 공고해지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공 6년 기원전 524, 정나라에 큰 화재가 발생하자 정공이 제사를 지내 불을 끄려고 하였다. 자산이 보고 말했다.

제사를 지내느니 몸을 수양하고 덕정을 행해야 합니다.

정공 8년 기원전 522, 초나라의 태자 건()이 정나라로 도망쳐 왔다.

정공 10년 기원전 520, 초나라의 태자건과 당진이 모의하여 정나라를 습격하려고 하였다. 정나라가 미리 알고 태자건을 잡아서 죽였다. 오자서가 태자건의 아들 미승(羋勝)과 함께 정나라에서 도망쳐 오나라로 들어갔다.

정공 11년 기원전 519, 정공이 당진(唐晉)에 들어가 조현을 올렸다. 당진과 정나라의 군주들이 연합하여 군사를 일으켜 주왕실에 반란을 일으킨 역신들을 잡아서 죽이고 주경왕(周敬王)을 호송하여 왕성으로 보냈다.

정공 13년 기원전 517, 정공이 죽었다. 그 아들 채()가 뒤를 이었다. 이가 헌공(獻公)이다.

헌공이 재위 13년 만인 기원전 510년에 죽고 그의 아들 승()이 뒤를 이어 정백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성공(聲公)이다. 바로 이때 공실보다 세력이 커진 당진의 육경(六卿)이 정나라의 변경을 침략하여 영토의 일부를 빼앗아 갔다. 이 후로 정나라의 세력은 더욱 쇠미해 졌다.

성공 5년 기원전 496년 정나라의 상국 자산(子産)이 죽었다. 정나라 백성들은 모두 애통해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마치 자기의 친척이 죽은 것처럼 자산을 애도(哀悼)했다. 자산은 자국(子國) 공자발(公子發)의 아들이고 발은 정목공(鄭穆公)의 아들로 칠목(七穆)의 한 명이다. 위인이 인자하고 다른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였다. 그리고 군주를 충성스럽고 진실된 마음으로 모셨다. 공자(孔子)가 옛날에 정나라를 지나가실 때에 자산과는 마치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셨다. 자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공자는 비통하게 곡을 하면서 말했다.

인자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산의 마음은 진실로 고대의 성인들 유풍(遺風)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미주

상구(商丘) : 현 하남성 상구시 부근. 상나라의 시조 계()가 살았던 곳이다. 주공이 은나라의 반란을 진압하고 주왕의 서형인 미자개를 상구에 봉하고 은나라의 종묘를 모시도록 하여 송나라의 기원이 되었다.

신성(辰星) : 심수(心宿)을 말하며 상성(商星) 혹은 대화(大火)라고 부르며 28 (宿)의 하나다.

대하(大夏) : 지금의 산서성 성도인 태원시(太原市) 서남. 일설에는 산서성 익성현(翼城縣) 부근이라고도 한다.

삼성(參星) : 28 (宿) 중의 하나다. 삼상(參商)은 삼성(參星)과 상성(商星)을 말한다. 요 임금이 알백(閼伯)을 상구로 보내 제사 지내게 한 별은 상성(商星)이고 그 동생인 실심(實沈)을 대하(大夏)로 보내어 제사 지내게 한 별은 삼성(參星)이다. 상성(商星)은 동쪽을 가리키는 묘() 방향의 별을 말하며 삼성(參星)은 서남쪽의 가리키는 신() 방향의 별로 두 별은 동시에 볼 수 없어 헤어진 후 서로 볼 수 없거나 또는 형제의 사이가 화목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대태(臺駘) : 대태현을 말하며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남쪽의 춘추 때 당진국의 고을이다.

분수(汾水) : 내몽고 남단에서 발원하여 산서성을 북남으로 가로질러 흐르다가 하진(河津)에서 황하와 합류하는 황하의 지류다.

조수(洮水) : 산서성 강현(絳縣)의 청야산(清野山) 동록에서 발원하여 대령(大岭)의 계곡을 지나 속수(涑水)에 흘러들어가는 속수의 지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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