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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권력투쟁, 막 올랐다 ③ - 보시라이 운명 태자당 대부 쩡칭홍 손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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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권력투쟁, 막 올랐다 ③ - 보시라이 운명 태자당 대부 쩡칭홍 손안에 있다






2012-02-20 오후 2:49:29 게재











권력의 균형추에서 '제왕의 스승'으로 변신

쩡칭홍 대변언론 '둬웨이신문망' 보시라이 실각 암시

쩡칭홍, 조직·정보 및 치안·군부인맥으로 시진핑 지원



[IMG2]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의 대표적 뉴스 포털사이트인 둬웨이신문망(多維新聞網 http://china.dwnews.com/)이 '보시라이, 제2의 가오강이 될 것인가'라는 중국 공산당 고위 퇴직 간부의 글을 싣고 논쟁을 유도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둬웨이신문망은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는 뉴스 포털사이트이지만 중요한 시기에 태자당의 좌장격인 쩡칭홍(曾慶紅)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사례가 있어 태자당이 보시라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쩡칭홍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관심 = 가오강(高崗)은 항일전쟁 당시 산시성에 혁명근거지를 세워 장정 중인 마오쩌둥 홍군을 지원한 공을 세워 1952년 국가계획위원회 주임으로 승승장구하다 동북지방을 자기의 '독립왕국'으로 변모시키고 라오수스(饒漱石)
상하이 시장과 짜고 반중앙, 반당활동을 하다 체포된 뒤 자살했다.



필자는 가오강이 동북지방을 '독립왕국'으로 변모시키려 한 것을 보시라이의 '충칭왕국'으로, 가오강이 라오수스 상하이 시장과 결탁한 것을 보시라이가 상하이방 출신인 황치판 충칭시장과 함께 왕리쥔 체포 작전에 뛰어든 것으로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황치판은 2007년 사망한 황쥐(黃菊)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비서 출신으로 40여 년 공직생활 중 30여 년을 상하이에서 근무한 상하이방의 핵심 인물이다.



다만 반중앙, 반당활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후진타오 주석이 이끄는 공청단파의
차세대 주자인 왕양 광둥성 서기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고, 미국에 서버를 둔 반체제 사이트인 보쉰닷컴은 시진핑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둬웨이신문망은 지난 2007년 제 17차 전국대표대회가 개막되기 직전 대부분의 언론매체가 리커창을 미래의 황태자로 보도할 때 시진핑의 가능성을 점쳤다. 그해 9월 18일 일본
도쿄신문은 중국공산당 소식통을 인용해 "리커창은 다음 달에 개최되는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에서 두 급을 연이어 뛰어넘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해 후진타오의 자리를 이어 당 총서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해 10월 4일 둬웨이신문망은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9인을 유지하는 구조가 될 뿐만 아니라 3명이 물러나고 4명이 들어올 가능성이 아주 많다. 즉 현재의 정치국 상무위원인 쩡칭홍, 우관정 및 뤄간 3인이 물러나고 현 상하이위원회 서기 시진핑, 랴오닝성위원회 서기 리커창, 중앙조직부 부장 허궈창, 공안부장 저우융캉이 상무위원회로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정치국 상무위원을 연임하는 4명(후진타오, 우방궈, 원자바오, 자칭린)은 원래의 자리를 유지하고, 리창춘은 서열 5위로 올라가며, 6위에 오른 시진핑은 서기처를 주관하고, 서열 7위인 리커창은 상무부총리를 맡고, 허궈창은 중앙기율위원회 서기를, 저우융캉은 예상한 바와 같이 뤄간의 자리를 이어받아 정법위원회 서기를 맡는다는 것이었다. 이 명단은 2주 후에 열린 제17차 전국대표대회 선거 결과와 같았고, 서열마저 완전히 일치했다.



시진핑이 황태자로 지명된 뒤에도 둬웨이월간(多維多維月刊)은 향후 쩡칭홍의 역할과 관련해 의미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둬웨이월간은 "중국 공산당 태자당계가 시진핑의
후원자가 되는 것은 앞으로 그가 성공적으로 보위에 오르는데 있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장쩌민 심복에서 후진타오 우군으로 = 장쩌민의 오른팔이자 상하이방의 대부였던 쩡칭훙은 후 주석 집권 초기 최대 라이벌이자 위협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장쩌민이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발탁돼 올라갈 당시 유일하게 데려온 측근이었던 쩡칭훙은 혁명 1세대 원로인 전 내무부장 쩡산(曾山)과 홍군보육원 창설자인 덩류진(鄧六金)의 아들로 태자당의 리더 역할을 했다.



쩡칭홍은 중국 국무원
석유부 또는 석유학원 출신의 권부 인맥인 '석유방' 출신으로 일찍이 석유방의 큰 형 위추리의 비서와 석유부 부국장을 역임했으며 뒤에 상하이로 내려가 시위원회 부서기까지 올라 시위원회 서기인 장쩌민을 보좌했다.



6·4 톈안먼 사건 이후 그는 장쩌민을 따라 베이징으로 가서 장쩌민을 위해 정적을 제거하는데 앞장섰다. 당시 가장 큰 견제세력인 양상쿤 양바이빙 형제를 위시한 군에서 세력이 강한 양씨 가문의 세력을 와해시켰고, 천시통 등 베이징방을 분쇄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중국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그는 중앙정치국 후보위원과 중앙조직부장을 맡아 고위 관리를 승진시키는 큰 권한을
행사했다. 제16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그는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국가부주석을 맡았다.



공청단을 권력배경으로 둔 후 주석과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른 면모를 보였던 쩡칭훙은 2002년부터 후진타오파에 가세했다. 2002년 가을 16차 당대회 이후 장쩌민은 당 총서기를 후진타오에게 넘겼지만 권력의 핵심인 중앙군사위주석직은 넘기지 않았다. 이 때부터 쩡칭홍은 장쩌민과 거리를 두고 후진타오에게 접근했다. 2004년 9월 중앙위원회 제16기 4중전회의 군사위원회 최고 인사와 관련 장쩌민을 배신했다. 후진타오 진영은 장쩌민의 아들 장멘헝이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체포를 통보하면서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사임할 것을 종용했다. 장쩌민은 쩡칭홍에게 부탁해 해결을 모색했지만 쩡찡홍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군사위 주석직을 사임할 것을 권고했다.



2004년 후진타오가 상하이방과 일전을 벌일 때도 그는 후진타오 편을 들었다. 쩡칭홍은 후진타오가 장쩌민의 중앙군사위 주석이라는 오른 날개와 차기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는 천량위라를 왼날개를 꺾어버리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다.



17차 당대회를 앞두고 장쩌민은 맹렬한 반격에 나섰다. 쩡칭홍의 나이 68세를 거론하며 은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쩡칭홍을 당대회 비서장으로 임명하면서 맞섰다. 하지만 쩡칭홍은 과감히 은퇴를 결정하는 대신 후진타오에게는 시진핑의 차기 총서기를 포함한 상무위원회 진입을
카드로 던졌다. 그리고 장쩌민에게는 이미 은퇴가 결정된 상하이방의 자칭린, 리창춘 두 명의 상무위원회 유임이라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후진타오와 장쩌민, 그리고 쩡칭홍 3인은 마침내 시진핑이 상무위원으로 승진하는 문제에 대해 동의하게 된 것이다.



◆ 장쩌민·후진타오 싸움에 어부지리 =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이 국무원 부총리를 지낼 때 쩡칭홍의 아버지 쩡산은 내무부장으로 두 집안이 매우 가까웠다. 두 사람이 친하게 된 것은 1979년 중난하이에서 함께 비서 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쩡칭홍은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주임인 위추리의 비서였고, 시진핑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인 겅뱌오의 비서였다.



중난하이에서 2년 정도 근무한 뒤 두 사람이 함께 일한 적은 없다. 하지만 시진핑이 푸졘성
성장 시절 푸졘성에 있던 쩡칭홍의 어머니 덩류진의 친족을 잘 돌봐 주었고, 베이징을 방문할 때면 쩡칭홍을 방문했다.



시진핑은 쩡칭홍이 맡았던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정치국 상무위원, 국가부주석, 중앙서기처 서기, 공산당 중앙당교 교장, 홍콩-
마카오 업무조정 소조 조장을 겸임하게 되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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