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중국사
1. 선사
2. 삼대
3. 춘추전국
4. 진한
5. 위진남북
6. 수당오대
7. 송요금원
8. 명청
9. 국공
10. 인민공화국
11. 통사
· 오늘 :  527 
· 어제 :  693 
· 최대 :  2,389 
· 전체 :  1,225,437 
 
  2004-10-04 22:40:218076 
상앙의 변법 내용
양승국

상앙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기원전 390년 경에 태어나서 338년에 죽은 중국역사를 통틀어 변법을 통해 개혁을 단행한 가장 인상적인 정치가다. 전국때 법가로 희성(姬姓)에 공손(公孫) 씨다. 위(衛)나라의 서출 공족으로 공손앙(公孫鞅) 혹은 위앙(衛鞅)이라고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형명학(刑名學)을 좋아하여 이회 즉 이극(李克)과 오기(吳起)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어서 그가 장성하게 되자 위나라 상국에 있었던 공숙좌(公叔좌)의 문객이 되어 그의 중서자(中庶子)가 되었다. 공숙좌는 그가 재능이 있는 선비라는 것을 알고 무슨 일이던 그에게 물어 본 후에 시행했다. 공숙좌가 나이가 들어 임종을 앞두고 위혜왕(魏惠王)에게 자기의 후임으로 위앙을 천거했으나 혜왕은 듣지 않았다.




주현왕 8년 기원전 361년 진효공(秦孝公)이 천하에 인재를 널리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진나라에 들어가 총신 경감(景監)을 통해 진효공을 만나 변법에 대해 유세했다. 진효공이 위앙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를 믿고 중용했다. 진효공 3년 기원전 359년 효공은 상앙을 좌서장(左庶長)에 임명하고 제일차변법을 시행하도록 했다.




백성들을 10가를 십(什), 5가를 오(伍) 묶어 그 중 한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연좌제를 시행하여 모두 벌을 주고 군공(軍功)과 농사(農事), 방적(紡績)의 일을 장려했으며 사사로운 싸움을 금지시켰다. 나라에 아무 공도 세우지 못했음에도 대대로 높은 관직과 봉록을 물려 받는 것을 모두 폐지시키고 전쟁에 나가 세운 공로에 따라 수여하는 20등급의 작위를 제정했다. 농사를 중히 여기고 상업을 억제하였으며 장사를 하거나 생산활동에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은 모두 그 처자와 함께 관노를 만들었다. 태자가 법을 범하자 태부 공자건(公子虔)은 코를 베는 의형에 처하고 태사(太師) 공손고(公孫賈)는 얼굴에 자자(刺字)하여 죄명을 적는 묵형(墨刑)에 처했다. 진효공은 상앙을 대양조(大良造)로 작급을 올렸다.




진효공 12년 기원전 351년 효공은 상앙으로 하여금 제이차변법을 시행하게 했다. 정전제를 폐하고 농로를 바둑판 모양으로 내게 했으며 도량형을 통일하고, 진나라의 모든 국토를 모두 41개의 현으로 재 조직한 다음 각 현에는 중앙에서 파견하는 현승(縣丞)이라는 관리를 파견해서 다스리게 했다. 부자와 형제가 서로 같은 집에서 기거하지 못하도록 금하여 나라의 낙후된 풍습을 고치도록 했다. 다시 그 수도를 역양에서 함양(咸陽)으로 천도하여 중원의 여러 제후국들을 모방하여 궁궐을 지었다. 변법이 진행됨에 따라 진나라는 동원할 수 있는 백성들의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 진나라의 군사력은 대폭적으로 강대해졌다.




효공 22년 기원전 341년 왕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쳐들어가 위나라 장수 공자앙을 사로잡고 위군을 대파했다. 이 공으로 지금의 섬서성 상현(商縣) 동남의 상(商) 땅에 봉해지고 상군이라는 봉호를 받았다. 이로써 그의 이름이 상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효공이 재위 25년 만에 죽고 태자가 즉위하자 그의 태부였던 공자건이 상앙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무고하였다. 상앙은 그의 봉지에서 군사를 일으켜 북쪽으로 나가 정읍을 공격했으나 진나라의 군사들에 의해 패배하고 그는 사로 잡혀 함양시 저자거리에서 거열형에 처해졌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그가 지은 <상군서(商君書)> 29편이 수록되어 있다.




상앙이 시행한 변법의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도읍을 함양으로 정한다.


진나라에서 가장 입지조건이 좋은 곳으로 함양 만한 곳이 없다. 산을 뒤로하고 강을 마주하고 있어 철옹성(鐵瓮城)과 같은 형세를 취하고 있다. 오늘 마땅히 함양으로 천도하여 왕업을 영원히 정하도록 한다.




2. 나라의 행정구역은 모두 현(縣)으로 나눈다.


진나라 땅의 촌(村)과 진(鎭)은 모두 한 곳으로 통합하여 현을 세운다. 매 현마다 영승(令丞) 일 인을 두고 새로운 법의 시행을 감독하게 한다. 자기의 직무에 충실하지 못하는 영승(令丞)은 그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한다




3. 황무지를 개간한다.


모든 교외의 황무지는 개간하여 그 전답을 넓힌다. 거마가 다녀야만 하는 도로와 전답사이의 밭고랑을 제외한 모든 땅은 부근에 사는 거민들로 하여금 개간하여 전답으로 만들어야한다. 곡식이 익을 때를 기다려 땅의 넓이에 따라 조세를 징수한다. 여섯 자를 일보(一步)라 하고 사방 240보의 거리를 재어 일무(一畝)라 한다. 전답의 넓이를 6자 이상 속여 보고할 때는 해당되는 전답은 몰수하여 관아에 귀속시킨다.




4. 부세(賦稅)를 정한다.


모든 세금은 전답의 넓이에 기준하여 부과한다. 기존의 십일조(十一租) 제도인 정전제(井田制)를 폐지한다. 나라의 모든 토지는 관가에 속하며 백성들은 단 한 뼘의 땅이라도 사사로이 소유해서는 안된다




5. 생산에 힘써야한다.


남자는 농사를 힘써 지어야하고 여자는 방적에 전념하여 곡식을 많이 생산하고 천을 많이 짠 백성들은 양민(良民)이라 불러 그 일가의 노역을 면제한다. 생업을 게을리 하여 곡식과 천을 많이 생산하지 못하는 백성들은 그의 전답과 재산을 몰수하여 관가의 노복(奴僕)으로 삼는다. 나무를 태운 재를 길거리에 버린 자는 농사에 게으른 자로 간주한다. 공인과 상인에게는 중한 세금을 징수한다. 한 집에 장정이 두 사람이 있다면 즉시 분가하고 각기 장정세(壯丁稅)를 내야한다. 분가하지 않는 자는 한 사람에게 두 사람 분의 장정세를 부과한다




6. 군공(軍功)을 장려한다


나라의 모든 관작은 모두 군공에 따라 정한다. 적군 한 사람의 목을 벤 자“都?일급의 상을 내리고 뒤로 일보를 후퇴한 자는 참수형에 처한다. 많은 공을 세운 자에게는 높은 관작을 주고 타고 다니는 수레나 의복이 화려해도 금하지 않는다. 비록 부유한 자라 할지라도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지 못한 자는 오로지 베옷을 입고 송아지가 끄는 작은 수레를 타고 다녀야 한다. 군주와 인척이 되는 공족일지라도 전쟁에 나가서 세운 공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친소(親疎)를 정한다. 전쟁에 나가서 공을 세우지 못한 공족은 그 적을 몰수하여 서민으로 만든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싸움을 하는 자는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누구를 막론하고 참수형에 처한다




7. 연좌제(連座制)를 시행한다


백성들을 오가(五家)나 십가(十家)로 연좌하여 서로간에 감시해야 한다. 한 집이 죄를 짓게 되면 나머지 아홉 집이 그 죄를 관가에 고해야 한다. 만일 그 죄를 고하지 않는다면 열 집을 연좌하여 같은 죄를 적용하여 모두 요참형(腰斬刑)에 처한다. 다른 사람의 죄를 고한 자는 전쟁에 나가 적군의 목을 베어 군공(軍功)을 세운 것과 동등한 상을 내린다. 죄를 범한 자 한 사람을 고발하면 한 급의 작위를 올려준다. 사사로이 죄인을 숨겨준 자는 죄인과 동일하게 처벌한다. 객사에 사람을 묶게 할 때는 반드시 증빙서류를 확인하여야 한다.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을 절대 재워주면 안 된다. 집안에 한 사람이라도 죄를 짓게 되면 그 집안 사람은 모두 관아의 노복으로 삼는다




8. 사사로운 싸움을 금한다


사사로운 싸움이란 개인끼리 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일보다 우선해서 벌리는 종족간의 싸움을 말한다. 당시의 중국사회의 풍속은 종족간의 이해관계를 국가의 것보다 우선하고 있었다. 상앙은 국가의 중대사보다 우선하여 벌리는 종족간에 벌어지는 대규모의 싸움을 금한 것이다.




9. 본 정령은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정령이 일단 발하게 되면 그 귀천을 불문하고 모두 받들어 행하여야 한다. 본 정령을 준수하지 않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하여 그 시신을 저자거리에 내다 버려 백성들에게 보인다.


목록
7914
[] 섭정고사고(聶政古事考)

자객섭정(刺客聶政) 1. 섭정이 거문고를 배워 아버지의 원수를 갚다.[聶政學琴報父仇] 채옹(蔡邕)의 금조(琴操) 전국 때 섭정
운영자 15-07-22
[] 공자의 선조들

공자의 선조들 기원전 12세기 경 동이족이 세운 은왕조를 멸하고 주왕조를 창건한 주무왕은 은주(殷紂)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祿父)를 은나라 고
운영자 15-03-23
[] 한비 사상의 현대적 의미와 의의

한비자 -제왕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정치학 교과서- 왕굉빈 해설 황효순 편역 『한비자』는 현대의 중국을 똑바로 이해할 수 있는 지침서
운영자 15-02-09
[] 성복대전의 패장 성득신(成得臣)

성득신(成得臣) 초성왕 때 영윤(令尹)으로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632년에 죽었다. 성은 미(芈)이고 씨는 성(成)이고 이름은 득신(
운영자 14-08-24
[] 꿈속에서 곰과 말곰을 활로 쏘아 잡아 조나라의 건국을 예언한 조앙

꿈속에서 곰과 말곰을 활로 쏘아 잡아 조나라의 건국을 예언한 조앙 趙鞅:夢射熊羆,盼興趙氏 조앙은 춘추말기 당진국의 경대부다.
운영자 14-07-08
[] 위영공(衛靈公) 삼대

위영공(衛靈公) 삼대(三代) 위영공① 39년 기원전 497년, 영공의 부인 남자(南子)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태자 괴외(蒯聵)가 그녀를 죽
운영자 14-06-28
[] 초나라 최초의 도읍 단양(丹陽) 비정고(比定考)

초나라 최초의 도읍 단양(丹陽) 비정고(比定考) 《사기(史記)•초세가(楚世家)》에"주성왕 때 웅역(熊繹)이 문왕과 무왕을 도와 공을 세운 공
운영자 14-06-07
[] 초나라의 막오(莫敖)와 굴하(屈瑕) 이야기

초나라의 막오(莫敖)와 굴하(屈瑕) 이야기 초나라의 관명으로 莫(막)은 크다는 뜻이고 敖(오)는 獒(오)로 맹견을 의미한다. 초나라의 왕족 굴씨들
운영자 14-05-25
[] 전제(田齊) 약사

전제(田齊) 약사 1. 국성(國姓) : 규성전씨(嬀姓田氏) 2. 작위(爵位) : 후작(侯爵), BC 334년에 왕호 사용시작 3. 수도(首都) :
운영자 14-03-03
[] 기원전 494년 부초지전고(夫椒之戰考)

부초지전(夫椒之戰) 1. 원인 기원전 494년에 일어난 오월의 부초지전은 기원전 496년 취리(欈里)의 싸움에서 패전하고 생명을 잃은 오왕
운영자 14-02-04
[] 오씨삼대(伍氏三代)

1. 오참(伍參) 기원전 597년 초장왕은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여 정나라를 포위 공격했다. 그해 6월 진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3군을 출동시켰
운영자 13-12-23
[] 초재진용(楚材晉用) - 초나라의 재목을 진나라가 가져다 쓰다.

초재진용(楚材晉用) 初楚伍參與蔡大師子朝友(초초오참여채대사자조우) 옛날부터 초나라 오참①과 채나라 태사 자조는 친한 사이였다.
운영자 13-12-23
[] 임성삼의 춘추강독

춘추강독(春秋講讀) 공자는 '춘추'를 짓고 나서 "후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 것도 이 춘추를 통하여고, 비난하는 것도 춘추를 통하여 일 것이다
운영자 13-11-29
[] 허목부인(許穆夫人) - 중국 최초의 애국여류시인 -

허목부인(許穆夫人) - 중국 최초의 애국여시인 -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고, 희성에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춘추 때 위나라 여인으로 중국 역
운영자 13-11-29
[] 《오자(吳子)/울료자(尉繚子)》

《오자(吳子)/울료자(尉繚子)》 오자(오기)와 울료자(울료)는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이다. 《손자병법》의 손자에 비해 생소하기는 하지만
운영자 13-09-26
[] 자한(子罕)

자한(子罕) 1. 정국칠목(鄭國七穆) 공자희(公子喜) 정목공(鄭穆公)의 아들로 희성(姬姓)에 이름은 희(喜)다. 자풍(子豊), 자사(子駟)와 동모형
운영자 13-09-03
[] 상앙의 변법 내용

상앙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기원전 390년 경에 태어나서 338년에 죽은 중국역사를 통틀어 변법을 통해 개혁을 단행한 가장 인상적인 정치가다. 전
양승국 04-10-04
[] 상간(桑間)

상간(桑間) ① 은(殷)나라를 멸한 주무왕은 그 땅에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綠父)를 봉한 후에 나라를 패(邶), 용(鄘), 위
운영자 13-01-13
[] 관중이 수행한 경제전쟁의 전말

관중이 수행한 경제전쟁 손자가 말한 바가 있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은 도궁비현(圖窮
운영자 13-01-09
[] 구합제후(九合諸侯)

구합제후(九合諸侯) 제환공이 아홉 번에 걸쳐 제후들을 소집하여 회맹한 일을 말한다. 회맹을 연도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양승국 04-05-11
1 [2][3][4][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