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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3 04:46:422312 
오씨삼대(伍氏三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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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참(伍參)

기원전 597년 초장왕은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여 정나라를 포위 공격했다. 그해 6월 진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3군을 출동시켰으나 그때 초장왕은 이미 정나라의 항복을 받아내고 필(邲)의 땅에 주둔하면서 군마에 황하의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본국으로 철군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초장왕은 진나라 군대가 이미 황하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군사를 물리치려고 하자 오참은 진군과 결전을 치루어 패업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했고 영운 손숙오(孙叔敖) 승패가 불분명한 전투를 피해 위험을 피해야 한다며 오참을 힐난하며 말했다.

「작년에는 진나라를 원정하였고 지금은 또한 정나라를 원정하여 초나라 군사들은 이미 피로에 지쳐 있다. 그런데 또한 만약에 우리가 진나라 군사들과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비록 그대 오참의 몸을 찢어 그 고기는 먹을 수 있다 하나 어찌 그것만으로 속죄를 다 할 수 있겠는가?」

오참이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만약에 진군과 싸워서 우리가 이긴다면 영윤께서는 앞을 내다보시는 식견이 없음을 보이는 것이며, 그렇지 않고 우리가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면 이 오참의 고기는 당진군이 먹게 될 것입니다. 어찌 초나라 사람들에게 돌아갈 여분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참의 주장은 영윤 손숙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초장왕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자 손숙오는 부대에게 명을 내려 전차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회군길에 오르기 위해 정기를 거꾸로 달고 본국으로의 철군을 위해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자 초장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오참이 초장왕을 독대한 자리에서 말했다.

「진나라의 집정대신의 새로 임명된 순림보(荀林父)는 군대를 지휘할 역량이 부족한 위인입니다. 그를 보좌하는 선곡(先縠)은 괴팍스럽고 부하장병들을 돌볼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상관의 명령을 기꺼이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나라 군대를 지휘하는 삼군의 통령들은 각자가 자신의 군대를 통솔할 수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명령을 따르려고 하나 상관이 없으니 대군은 누구의 명을 따라야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의 싸움에서 진군은 자체 내의 약점으로 틀림없이 패전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초나라 군대는 왕이 친히 통솔하고 있음에도 대신 한 사람이 지휘하는 적군을 피해 우리가 싸움을 피한다면 이는 임금이 신하를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경우와 같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찌 이런 치욕을 참으시려고 하십니까?」

초장왕의 마음은 매우 불쾌해져 곧바로 손숙오에게 전차의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행군하도록 명하여 진나라 군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후에 초나라와 진나라 쌍방의 군대는 필(邲)에서 회전한 결과 진나라를 크게 무찌르고 초장왕은 춘추오패 중 한 자리를 차지했다.



2. 오거(伍擧)

춘추 때 초나라 사람이다. 지금의 안휘성 부남현(阜南县) 초피진(焦陂镇)일대인 초(椒)에 봉해졌음으로 초거(椒举)라고도 부른다. 장왕의 모사였던 오참(伍參)의 아들이며 초평왕(楚平王) 때 태자건의 태부였던 오사(伍奢)의 부친이고 오자서(伍子胥)의 조부다. 기원전 547년 죄에 연루되어 정나라로 도망갔다가 장차 진(晉)나라에 망명하려고준비하고 하던 참에 마침 친구로 지내던 채나라의 성자(聲子)를 만나 초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래서 성자는 초나라에 들어가 당시 영윤이었던 자목(子木) 굴건(屈建)을 만나 옛날 초나라에서 도망친 인재들이 진나라에 중용되어 초나라에 해를 끼쳤는데 지금 다시 진나라로 망명한 초거가 만일 진나라에 중용된다면 틀림없이 초나라의 두통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영윤 자목은 그 즉시 초거의 아들 초명(椒鸣)을 진나라에 보내 그를 모셔오라고 했다. 초재진용(楚材晉用)이라는 고사성어의 출전이다.

초영왕(楚靈王) 3년(기원전 538년)에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초나라와 중원 제후국들과 회맹을 주재했다. 회맹이 끝나자 오거는 영왕에게 만사에 신중하게 처신하며 결코 교만하면 안 된다고 간했다. 오거 역시 초나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사기(史记)·초세가(楚世家)》에「초장왕이 즉위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잔치를 벌려 즐기면서 나라에 『누구든지 감히 내 행동에 대해 간하는 자가 있다면 죽이리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오거(伍擧)가 입조하여 간하려고 할 때 장왕은 오른 팔로는 정희(郑姬)를 왼 팔로는 월녀(越女)를 품고 종과 북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거가 말했다.

『성 밖의 언덕에 새가 한 마리 앉아있는데 3년이 가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장왕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을 뚫고, 삼년 동안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하리라! 그대는 그만 물러가라, 나는 그 새가 무슨 새인지 알고 있노라!』

일명경인(一鸣惊人)이라는 고사성어의 출전이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는 전국책이 기사를 사마천이 잘못 인용한 것이다. 좌전 양공 26년 조의 초재진용(楚材晉用)의 전고는 그 사건이 일어난 기년이나 연대는 의심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초장왕의 즉위년은 기원전 611년이고 초재진용의 전고로 삼고있는 오거의 망명연대는 기원전 547년이다. 오거가 초장왕에게 간할 때 그의 나이를 최대한으로 어리게 잡아 15살로 가정하더라도 초재진용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79세의 노인이 되어 논리상 맞지 않는다. 즉 초장왕에게 간하여 일비충천의 고사에 등장하는 사람은 오거가 아니라 그의 부친 오참이다. 즉 오참은 초장장왕 때의 사람이고 오거는 초장왕의 손자들인 초강왕과 초영왕 때 활약한 사람이다.

《국어(國語)·초어(楚語)》에초영왕이 장화대(章華臺)를 완성한 후에 아름답지 않냐고 묻자 오거가 다음과 같이 간한 내용이 있다.

「군주는 신복(信服)과 은총으로서 아름다움으로 삼으며 백성들을 안락하게 다스림으로써 즐거움을 삼는다 했고, 덕음을 듣는 것을 총(聰)이라고 하고 멀리까지 왕화를 미치게 하는 것을 명(明)이라 했습니다. 토목공사를 일으켜 높게 지은 후에 아름답게 꾸민 누대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으며, 금석포죽(金石匏竹)의 세상의 온갖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락으로 삼지 않습니다. 또한 사치스럽고 음탕한 여인들을 대거 모아 즐기는 것을 명(明)이라 하지 않고 단지 맑은지 탁한지를 살피는 행위를 총이라 합니다.」


3. 오사(伍奢),

춘추 말기 초나라의 대부로 기원전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522년에 죽었다. 봉지는 지금의 안휘성 부남현(阜南县) 초피진(焦陂镇)인 초읍(椒邑)이고 초나라 건계(乾溪)에서 태어났다. 건계는 지금의 안휘성 이신(利辛)이다. 초평왕 때 태자의 태부를 지냈고 초강왕(楚康王)과 초영왕(楚靈王) 때의 중신 오거의 아들이고 오자서(伍子胥)의 아버지다. 초나라 희대의 간신 비무기(费无忌)가 태자를 모함하여 함정에 빠뜨리자 오사가 연좌되어 체포되었다. 오사를 죽일 경우 그의 아들 오상(伍尚)과 오자서(伍子胥)가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을 해칠 것을 걱정한 비무기는 두 사람을 도성으로 부르면서 오사를 방면하겠으나 오지 않으면 곧바로 죽이겠다고 전했다. 오상과 오자서는 두 사람은 자기들이 도성으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그의 부친과 함께 살해될 것을 알았으나 오상은 차마 부친이 혼자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하면서 말했다.

「초왕의 부름에 응한다고 해서 아버님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버님이 그 목숨을 위해 우리들을 부르고 있는데 가지 않았다가 후에 아버님의 원수를 갚지 못하게 된다면 세상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너는 다른 나라로 달아나라! 너는 능히 아버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님의 곁으로 가서 같이 죽겠다!」

오상은 비무기의 부름을 받고 도성으로 들어가 부친과 함께 죽고 오자서는 도주하여 중원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오나라로 들어가 그곳의 군사를 이용하여 부친의 원수를 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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