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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01 15:30:102821 
북위(北魏)의 선행국가 대(代)나라를 세운 척발십익건(拓跋什翼鍵)
운영자

척발십익건(拓跋什翼犍 : 320―377年)


선비족으로 평문제(平文帝) 척발욱율(拓跋郁律)의 차자이고 열제(烈帝) 척발예괴(拓跋翳槐)의 동생이다. 오호16국 때 대국(代国)의 군주로 십익건의 형 외괴가 죽자 척발씨의 수장 자리를 잇고 건국(建國)으로 개원했다.

건국 2년(339년) 백관을 설치하여 대나라의 행정조직을 정비했다. 연봉(燕凤)을 장사(长史)에,허겸(许谦)을 낭중령(郎中令)으로 삼고 법치를 천명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동쪽으로 예맥(濊貊)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는 파락나(破落那)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음산(阴山),북쪽으로는 사막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부락이 복속해와 인구는 수십 만에 달하게 되었다.


건국 3년(340年)항산(恒山) 남록의 번치(繁治)에서 운중군의 성락(盛乐)으로 천도했다. 번치는 지금의 산서성 혼원현(渾原縣)이고 성락(盛樂)은 내몽고 화림격이(和林格爾)이다. 후에 흉노의 철불부(铁弗部)와 수년 간 싸움을 수행하기 위해 전연(前燕)과 혼인으로 동맹을 맺었다.


건국 28년(365年) 흉노의 철불부 좌현왕 유위진(刘卫辰)이 대국을 배반하고 전진(前秦)에 붙었다. 척발십익건은 군사를 이끌로 유위진을 토벌하기 위해 출전했다. 십익건은 겁을 먹고 도주하는 유위진의 뒤를 쫓았다. 유위진은 부족을 이끌고 전진에 투항했다.


건국 37년(374年)십익건은 다시 유위진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자 유위진은 싸움에 패하고 남쪽으로 도주했다.


건국 39년(376年)전진왕 부견이 부락(苻洛)에게 20만의 군사를 주어 장모(张蚝) 등과 함께 여러 개의 행군로를 이용하여 유위진을 구원하고 대국의 남쪽 변경을 압박하도록 했다. 선비의 백부(白部)와 독고부(独孤部)는 전진군을 맞이하여 서전에서 승리를 취했으나 선비족 주력군 10만의 기병을 이끈 남부대인 유고인(刘库仁)은 전진군과 석자령(石子岭)에서 싸워 대패하고 말았다. 당시 척발십익건은 몸에 병이 들었고 중신들 중에는 그를 대신할만한 역량이 있는 인재가 없었다. 그래서 십익건은 국인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도망쳐 음산(陰山) 계곡에 숨었다. 그때 설상가상으로 고차국의 여러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십익건은 사면에서 적을 맞이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여 동안 전진의 군사들은 살육과 노략질을 매우 심하게 하여 셀 수도 없이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서서히 본국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십익건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말을 할 때도 숨이 차서 더듬을 정도였다. 십익건은 간신히 운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십익건의 친조카 척발근(拓跋斤)은 그의 형 척발예괴의 아들이다. 척발근은 아버지의 뒤를 이은 십익건으로부터 소흘하게 대접을 받고 있다고 가슴속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척발근은 십익건의 서장자 척발식군(拓跋寔君)에게 말했다.

“모용비(慕容妃)를 총애하고 있는 왕이 그녀가 낳은 아들들이 이미 장성하여 후계로 세우려는 생각을 품고 있어 먼저 장자인 너를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다. 만일 네가 먼저 손을 쓰지 않는다면 큰 화가 너에게 닥치리라!”


십익건의 세자 척발식(拓跋寔)은 5년 전 부친을 구하려다 갈비뼈가 부러져 죽었기 때문에 자신이 서장자 신분의 척발식군은 대나라의 왕위는 자기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사촌형의 도발적인 말을 듣고 일순간에 흉악한 인간으로 변한 척발식군은 척발근과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먼저 모용비의 막사로 쳐들어가 모용비 소생의 이복동생 6명을 살해한 후에 왕의 막사로 뛰어가 병으로 누워있던 십익건을 한 칼에 찔러 죽였다. 그 때 그의 나이는 57세였다.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며 척발씨의 대국(代國)을 부흥으로 이끌었던 노영웅은 결국은 아들이 손에 죽고 말았다.


이로써 대나라는 대란이 일어나 여러 부족들은 도망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대나라에 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전진왕 부견은 다시 대군을 보내 일거에 혼란한 대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부자와 군신관계를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던 유학을 깊이 신봉한 전진왕 부견은 척발식군이 자신의 부군을 살해한 사실을 알고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말했다.

“천하에 어찌 이와 같은 흉악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전진왕 부견은 사람을 보내 척발식군과 척발근을 장안으로 압송해오도록 한 후에 그들의 죄를 천하에 선포하고 거열형에 처해 죽였다.


또 다른 설이 있다. 십익건은 척발식군에 의해 살해 된 것이 아니라 척발규생모 하란부인이 식군이 일으킨 반란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척발규의 이름으로 십익건을 포박하여 전진군에 바치고 투항했다는 설이다. 십익건은 전진에서 몇 년을 더 살다가 병이 악화되어 죽었다는 설은 확실하다. 이는 아마도 후에 북위왕조를 창건자가 된 하란부인과 척발규의 무도한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척발식군에게 시해의 죄를 뒤집어 씌운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역사에는 역시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내막이 있는 법이다. 현대의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사실은 십익건은 아들 척발식군에 의해 살해 된 것이 아니라 생포되어 전진에 압송되었으나 부견이 십익건의 처지를 동정하여 죽이지 않아 몇 년을 더 살다가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북위의 역사를 편찬한 사관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휘(諱), 곡필(曲筆), 은필(隱筆) 등을 통해 대나라 멸국의 사건을 날조하여 역사를 오염시켰다. 북위의 사관이 기록을 왜곡시킨 이유는 선제(先帝) 십익건이 붙잡혀 포승줄에 묶여서 포로로 잡혀간 일을 매우 치욕적인 사건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서를 읽을 때는 마땅히 판본에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특히 “본조(本朝)”에서 편찬한 실록은 은폐하거나 휘(諱)한 사건이 대단히 많기 때문에 해당 사서를 읽을 때는 그 점을 감안하여 머리 속에 의심을 품고 대해야만 비로소 올바른 역사를 인식할 수 있다. 책을 무조건 믿을 것보다는 차라리 읽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할 수 있다.



대나라가 멸망한 12년 후인 386년 척발십억건의 손자 도무제(道武帝) 척발규(拓跋圭)가 척발씨들을 규합하여 대나라를 다시 세웠다가 그 해에 국호를 위(魏)로 고친 후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북위왕조는 십입건을 소성황제(昭成皇帝)라는 시호를 올려 추존했다. 묘호는 고조(高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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