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문의 변(玄武門變)

당왕조가 건국된 후 이세민(李世民)과 태자 이건성(李建成) 사이에 황위계승권을 둘러싼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건성은 적장자로 이미 황태자로 책립되었기 때문에 합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당왕조의 본거지인 농서(隴西)의 사족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오랫동안 관중(關中)을 지켜왔으므로 정치적으로도 확실한 기반을 다져놓고 있었다. 또한 궁중의 비빈들이나 친인척들도 그를 옹호해왔다. 그의 수하에는 위징(魏徵)과 왕규(王珪)를 비롯한 문신들과 풍립(馮立)과 설만철(薛萬徹)을 비롯한 무장들이 있었다. 이건성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2천명의 용사를 모집하여 동궁을 경호하도록 조치해두었다.

당고조 이연(李淵)의 차남이었던 진왕(秦王) 이세민은 최초에 기병했을 때부터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결정적인 공로를 세웠기 때문에 사실상 당제국의 창업자나 다름이 없었다. 오랜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인재들을 자신의 사하로 끌어들였다. 진왕의 부중에는 울지경덕(蔚遲敬德), 진숙보(秦叔寶), 정교금(程咬金) 등의 쟁쟁한 무장과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서무송(徐茂松) 등 다재다능한 문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세민이 이건성을 대신하여 태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연의 넷째 아들인 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은 포악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며 남의 밑에 들어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이름자를 합하면 당(唐)이라는 글자가 된다고 하여 앉아서 천하를 차지할 것이라고 부추기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진왕만 제거한다면 태자가 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쟁쟁한 형제들끼리의 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명약관화했다. 이세민은 이미 자신이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들어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거센 물줄기를 헤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물을 찢고 살아나는 것은 모두 자신의 능력에 달린 문제였다. 그러나 그는 기회가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경솔하게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수많은 전쟁터를 누빈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그는 항상 퇴로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불패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그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동도인 낙양은 역대의 병가들이 반드시 싸워서 차지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그는 낙양에 자신의 세력을 집중시켰다. 신중히 생각한 끝에 그는 대행대공부상서(大行臺工部尙書) 온대아(溫大雅)에게 낙양을 지키게 하고, 형양(滎陽) 출신인 진왕부의 거기장군 장현량(張賢亮)에게 1천명의 무사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낙양에 있는 온대아와 협조하여 몰래 현지의 호걸들을 집결시켜 역량을 비축하라고 명했다. 이세민은 거금을 아끼지 않고 그들을 지원했다.

먼저 움직인 쪽은 이원길이었다. 그는 이연에게 이세민의 심복인 장현량이 법도에 어긋난 짓을 했다고 무고하여 그의 관부를 조사하려고 했다. 장현량은 한 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지만 무죄로 석방되었다. 낙양으로 돌아간 장현량은 여전히 이세민의 지시대로 힘을 비축했다. 이건성과 이원길은 또 다른 계책을 꾸몄다. 어느 날 이건성은 이세민을 불러서 술을 마시다가 술에 독약을 탔다. 그것도 모르고 술을 마신 이세민은 갑자기 심한 통증을 느끼고 엄청난 피를 토했다. 회안왕(淮安王) 이신통(李神通)이 간신히 그를 부축하여 홍의궁(弘義宮)으로 데리고 갔다. 그 사실을 안 이연은 즉시 홍의궁으로 달려가 이세민의 병세를 살폈다. 모든 정황이 확실했지만 형제들끼리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연은 일부러 잘 모르는 것처럼 이건성을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진왕은 평소에도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앞으로는 다시 술을 먹이지 마라.”

또한 이세민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병을 한 이후로 해내(海內)가 평정된 것은 모두 너의 공이다. 처음부터 나는 너에게 황위를 넘겨주려고 했으나 네가 한사코 사양하지 않았느냐? 이미 오래 전에 건성이 태자로 책립되었으나 내가 어떻게 폐립시킬 수가 있겠느냐? 나는 너희 형제가 서로 다투는 것이 싫다. 한꺼번에 도성에 있으면 또 싸우게 될 것이니, 내 생각으로는 네가 너의 임지로 돌아가 낙양을 지키면서 섬서(陝西) 이동 지역을 담당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네가 천자의 깃발을 휘날리면 옛날 한경제(漢景帝)가 양효왕(梁孝王)을 봉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느냐?”

내심으로 그것을 마라고 있던 이세민은 일부러 부황의 곁을 떠나기 싫다고 울었다. 그러자 이연은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천하는 이미 우리 이가가 차지했다. 동도와 서도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니 네가 보고 싶을 때는 내가 찾아가마.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건성과 이원길도 이세민이 장안을 떠나 낙양으로 간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낙양은 이세민의 거점으로 오래 전부터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가버리면 다시는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그들은 어떻게든 이세민이 장안을 떠나는 것을 방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직접 나선다면 이연으로부터 원망을 들을 것이다. 그들은 가까운 대신들을 움직여 몰래 이연에게 다음과 같이 상소했다.

“진왕의 부하들은 낙양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시는 장안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연이 쉽게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않자 이연과 가까운 대신들에게 직접 이해관계를 따지며 설득하라고 했다. 결국 이연은 생각을 바꾸고 말았다.

태자 이건성와 제왕(齊王) 이원길의 이러한 도발에 대해 이세민은 조금도 대응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는 종이호랑이처럼 나약하고 불쌍하게 보였다. 겁에 질린 모습으로 나약하게 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심모원려가 숨어 있었다. 이건성과 이원길은 이세민을 사지로 몰아넣기 위해 서둘렀다. 그들은 후궁의 비빈들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이세민을 비방하는 소문을 유포시켰다. 결국 이연도 한 쪽 말만 곧이듣고 이세민의 죄를 다스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대신 진숙달(陳叔達)이 나서서 다음과 같이 반대했다.

“진왕은 천하에 대공을 세웠으므로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타고난 성품이 굽힐 줄 모르는 진왕이 이유도 없이 비난을 받다가 울분을 참지 못해 중병이라도 걸리게 되면 폐하께서는 그 때 후회하셔도 늦을 것입니다.”

이연도 겨우 마음을 돌렸다. 태자와 제왕이 진왕을 죽여야 한다고 하자 이연은 이렇게 말했다.

“진왕은 천하의 대공을 세웠다. 죄명이 확실치 않은데 죽인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이해를 하겠느냐?”

제왕이 다시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제왕은 동도(東都)에 도착하자마자 사태를 관망하면서 곧바로 장안으로 돌아오지 않고 사방에 돈을 풀어 인심을 샀습니다. 황상의 말도 듣지 않았으니 반란을 도모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벌써 그를 죽였어야 했는데 무슨 이유가 또 필요합니까?”

이연도 진왕의 공이 높아서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제왕이 진왕을 죽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여 찬성하지 않았다. 정치판의 풍운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진왕부에 속한 관리들은 몰려오는 먹구름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왕 이세민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경솔하지 않았다. 그는 오랜 전쟁을 통해 얻은 문신과 무신들을 이끌고 형과 아우를 상대로 일전을 펼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함부로 손을 쓰지 않는 것은 적절한 시기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일대로(以逸待勞)』라는 전략이 떠나지 않았다. 이세민은 상대가 불의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날 때 대의명분을 앞세워 일거에 승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모사 방현령은 진왕의 처남인 장손무기(長孫無忌)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이미 진왕의 형제들끼리 원수지간으로 변했습니다. 일단 사태가 벌어지면 진왕부는 옥석을 막론하고 모두 죽고 맙니다. 이는 국가의 변란이기도 합니다. 진왕께서는 옛날에 일어났던 경우를 본받아야 합니다. 과거에 주공(周公)은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주살하고 태자까지 죽였습니다. 이로써 대당(大唐)의 강산이 튼튼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생사가 걸린 마당에 머뭇거리다가는 일을 망칩니다.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나도 이미 오래 전부터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선생의 말은 나와 같습니다. 지금 빨리 진왕에게 알리겠습니다.”

그는 즉시 진왕을 찾아가 자기의 생각을 밝혔다. 이세민은 방현령을 불러서 함께 상의했다. 방현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왕께서는 세상을 뒤덮을 만한 큰 공을 세웠습니다. 마땅히 그러한 실력자가 제위를 이어야 합니다. 지금 제가 상황을 살펴보니 황제께서는 대왕을 핍박하려고 합니다. 대왕께서는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진왕부의 막료인 두여회도 빨리 결단을 내려 태자와 제왕을 죽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진왕부에 가까운 무장들을 가장 두려워했던 태자와 제왕은 그들을 매수하여 자기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우선 그들의 공작대상이 된 사람은 울지경덕이었다. 그들은 수레에 하나 가득 실은 보물과 함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이 물건이 그대의 집안에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면 좋겠소. 아울러 그대와 우리들이 앞으로 깊은 우정을 나누기 바라오.”

그러나 울지경덕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는 빈한한 집안 출신으로 수나라 말에 천하가 어지러울 때 실수로 도적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죄로 치면 죽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진왕께서는 저에게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진왕을 모셔왔습니다. 큰 은혜와 덕을 생각하면 죽음으로 갚아도 모자랄 것입니다. 저는 전하에게 아무런 공도 세운 것이 없으니 이토록 소중한 상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전하와 사사로운 우정을 나눈다면 불충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를 쫓아 충을 망각한 사람이 전하에게 모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울지경덕으로부터 거절당한 이건성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와의 왕래를 끊었다. 울지경덕은 이와 같은 사실을 즉시 이세민에게 알렸다. 이세민은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의 태산처럼 무거운 충성심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누군가가 북두성에 닿을 만한 보물을 보낸다고 그대에 대한 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보낸 것을 기꺼이 받으시오. 그렇다고 내가 그대를 의심하리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도 마시오. 그대가 태자와 가까이 지낸다면 오히려 그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알아차릴 수 있지 않겠소? 그대가 너무 완강하게 거절하면 자칫 무슨 화가 닥칠지 모르니 적당히 받아두시오.”

울지경덕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지 않은 이원길은 자객을 보내 그를 암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리 그러한 상황을 대비하고 있던 울지경덕은 일부러 자기 집의 모든 문을 열어두고 태연하게 침상에 누어있었다. 자객은 몇 차례 문 앞까지 왔다가 그의 위엄에 놀라 결국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도망쳤다. 울지경덕을 암살하려는 계획이 실패하자 이원길은 이연을 찾아가 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이연은 울지경덕을 체포하여 투옥했다가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세민이 강력하게 변호하자 결국 죽음은 면하게 해 주었다. 이원길은 정교금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정교금은 강주(康州)로 쫓겨나 자사로 강등되었다. 그러자 정교금은 이세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왕의 신변에서 힘이 될만한 부하는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대왕의 안전을 지키겠습니까? 저는 죽어도 가지 않을 것이니 빨리 위기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이원길은 또 금은보화로 단지현(段志玄)이라는 무장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했다. 그러자 이건성은 이원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왕부에 있는 모사들 가운데 두려운 것은 방현령과 두여회뿐입니다.”

그들은 결국 이연의 힘을 빌려 방현령과 두여회를 진왕부에서 내쫓았다.

이건성과 이원길은 진왕부의 인재들을 제거하는 일에 매진했지만 자신들의 발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세민은 이미 태자의 심복 부장 하상(何常)을 비롯한 태자의 부중에서 일하는 왕질(王晊) 등을 끌어들여 간첩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정변이 발생했을 때 이들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진왕부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모신은 이세민의 처남인 장손무기였다. 그와 울지경덕, 고사렴(高士廉), 후군집(侯君集) 등은 다시 한 번 이세민을 찾아가 이건성과 이원길을 죽여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이세민이 결심하기에는 남은 과제가 있었다.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조정의 원로대신들이었다. 그는 이정(李靖)과 이적(李勣)1)을 찾아가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연의 중신이었던 두 사람은 풍부한 군사적 정치적 경륜과 함께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세민을 대상으로 태자와 제왕이 연합하여 격렬한 정치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은 외신(外臣)이므로 궁중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이세민이 아무리 물어도 두 사람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이세민은 그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일촉즉발의 충돌이 벌어지기 전 마침 돌궐(突厥)이 당의 변경을 침입했다. 이건성은 진왕을 박해할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황위계승권을 둘러싼 진왕의 태자 사이의 골육상쟁이 본격화되었다. 이 유혈사태를 ‘현무문(玄武門)의 변’이라고 한다. 이세민은 이 정변의 과정에서 남다른 지모와 과감한 결단력으로 선수를 잡아 결국 승리를 얻어냈다.

돌궐이 변경을 침범했다는 소식을 전해지자 이건성은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이원길이 이세민의 군사를 통솔하여 북정에 나서도록 추천했다. 그들의 음모대로 이연은 울지경덕, 정지절(程知節)2), 단지현, 진숙보 등 진왕부에 있던 장군들을 원정군에 포함시키고 진왕부의 정예병들을 충원하여 이원길의 병력을 보강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음모를 알아차린 왕질은 몰래 진왕부로 들어가 이세민에게 다음과 같이 밀고했다.

“태자께서 제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네가 진왕부의 맹장과 정병들을 제거하고 수 만 명의 병력을 확보했으므로 일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내가 진왕을 곤명지(昆明池)로 불러서 함께 있을 것이니, 네가 자객들을 배치해두었다가 진왕을 죽여라. 먼저 죽인 다음에 부황에게는 갑자기 진왕이 병이 나서 죽었다고 보고하면 된다. 부황은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기회를 노렸다가 사람들을 시켜 부황께 황위를 나에게 양위하라고 권할 것이다. 울지경덕 등은 지금 네 손에 들어 있으니 그들을 모두 생매장하자. 대국이 결정되면 감히 누가 나서서 한 마디라도 하겠느냐?’”

이세민은 왕질의 말을 장손무기에게 그대로 전했다. 장손무기 등은 이세민에게 선수를 써야 한다고 재촉했다. 이세민은 탄식을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배에서 나온 수족들끼리 서로 죽이는 것은 예로부터 가장 한이 되는 일이다. 나는 일찍부터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손을 쓴다면 결국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 후에 다시 저들을 토벌하더라도 도의를 저버리게 된다. 이러한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는가?”

울지경덕이 나서서 강력하게 재촉했다.

“생사가 걸린 일을 누가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모두가 목숨을 걸고 대왕을 옹립하려고 합니다. 이는 하늘이 주신 기회입니다. 커다란 위기가 눈앞에 닥쳤는데 대왕께서는 지금도 한가로운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대왕께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면 사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희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저는 대왕의 곁을 떠나 차라리 산으로 들어가 도둑의 두목이 되어 죽음을 기다리겠습니다.”

장손무기도 다음과 같이 권했다.

“울지경덕의 말을 듣지 않으시면 반드시 일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경덕이 대왕의 곁을 떠난다면 저도 대왕을 보필하지 못하겠으니 그를 따라 가겠습니다.”

이세민은 다시 한 번 망설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그대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자는 뜻이다.”

울지경덕이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왕께서 지금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이전에 세운 모략은 어디로 갔습니까? 커다란 위기가 목전에 다가왔는데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전의 용기는 어디로 갔습니까? 평소에도 대왕께서는 부중에 8백 명의 용사를 길러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손에 들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돌이킬 수 없습니다. 행동에 옮기지 않을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그래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세민은 왕부의 막료들을 불러서 의견을 물었다. 그들도 모두 태자와 제왕이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그들에게 선수를 빼앗기면 대당은 전복될 것이며 진왕이 꿈꾸었던 세상도 사라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여러 사람들은 이세민에게 상고시대의 순(舜)이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묻자 그는 성인이었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그러한 순도 우물을 파러 들어갔을 때 아버지와 형이 묻어서 죽이려고 했으며, 식량 창고에 들어갔을 때는 불을 질러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만약 그 때 순이 죽었더라면 억조창생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 수가 있었겠습니까? 공자께서도 일찍이 작은 매는 맞아야 하지만 심한 매질은 피해서 도망쳐야한다고 했습니다. 순이 가만히 앉아서 죽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가슴속에 큰 뜻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세민은 마지막으로 점을 쳐서 길흉을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막료인 장공근(張公瑾)이 달려와 거북의 껍질을 땅바닥에 집어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점을 치는 것은 잘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할 때입니다. 지금 위기가 목전에 닥쳤는데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점을 쳐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입니까? 만약 결과가 좋지 않다면 거사를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이세민은 무엇을 고민했을까? 그는 수족인 형제를 죽였다는 오명을 덮어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형세가 다급하게 되자 그도 결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획이 확정되자 이세민은 그동안의 부담을 떨치고 본래의 과감한 진왕으로 돌아갔다. 그는 우선 장손무기에게 방현령과 두여회를 부르라고 명하여 함께 의논하자고 했다. 두 사람은 진왕의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물었다.

“황제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들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명을 듣지 않고 사사로이 대왕을 만나러 가면 사죄에 해당합니다. 저희는 감히 대왕의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세민은 크게 노하여 울지경덕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현령과 두여회가 감히 나를 배반하려고 하는구나!”

그는 즉시 패도를 뽑아 울지경덕에게 주며 이렇게 지시했다.

“그대가 가서 두 사람이 오지 않으려는 뜻이 진심이라면 목을 잘라서 오너라!”

울지경덕과 장손무기는 방현령과 두여회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왕의 뜻이 확실합니다. 빨리 함께 가서 구체적인 문제를 상의합시다.”

방현령과 두여회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도사로 분장하고 장손무기와 울지경덕을 따라 진왕부로 갔다. 그들은 조신 부혁(傅奕)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를 하라고 시켰다.

“태백성(太白星)이 진(秦)의 땅에 나타났으니, 진왕이 천하를 잡을 것이라는 예시입니다.”

이세민은 마지막으로 이연의 앞에서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왕패를 집어던지며 이건성과 이원길이 후궁에서 음란한 짓을 했다고 고발했다. 이연이 화를 내자 그 틈을 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형제들에게 아무 잘못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지금 왕세충과 두건덕을 위해 복수하려고 한다고 저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신이 오늘 억울하게 죽으면 다시는 부황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지하에서 혼백이 되어 돌아와 이러한 적신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로소 이연은 크게 놀라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저들을 불러서 심문할 것이니 너는 일찍 조정으로 나오너라!”

무덕(武德) 9년인 626년 6월 4일, 장손무기 등은 이세민을 따라 궁중으로 잠입했다. 이 날 현무문의 수장은 하상이었다. 이세민과 부장들은 이건성이 조금도 눈치를 차리지 못하도록 복병을 현무문에 숨겼다. 이건성과 이원길은 임호전(臨湖殿)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즉시 말을 돌려 군사들을 데리고 오려고 동궁과 제왕부로 달려갔다. 이세민이 부하들을 이끌고 추격하자 이원길은 이세민을 향해 쏘았다. 그러나 워낙 다급하여 제대로 쏠 수가 없었다. 이세민은 곧바로 활을 당겨 이건성을 쏘아 죽였다. 울지경덕이 이끄는 진왕부의 기병 70명이 이원길을 추격하여 활을 쏘아대자 이원길은 말에서 떨어졌다. 이세민이 탄 말이 놀라서 숲으로 들어갔다, 말과 사람이 나뭇가지에 걸려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 이원길이 갑자기 나타나 이세민의 활을 빼앗았다. 이원길이 활로 이세민의 목을 조르고 있을 때 울지경덕이 나타났다. 이원길은 다급하게 도망쳤다. 울지경덕은 그를 추격하여 활로 쏘아 죽였다.

이건성의 부장 풍립(馮立)은 태자와 제왕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설만철, 사숙방(謝叔方)과 함께 동궁과 제왕부의 정병 2천명을 이끌고 현무문으로 달려왔다. 장곤근은 자신의 용력을 믿고 홀로 문을 가로막았다. 동궁과 제왕부의 군사들은 문 밖에서 들어가지 못해 주춤거리고 있었다. 설만철이 군사들에게 북을 치며 고함을 즈르게 하자 진왕부의 군사들도 두려워했다. 울지경덕이 이건성과 이원길의 수급을 들고 나타나자 동궁과 제왕부의 군사들은 주인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쳐버렸다.

쌍방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이연은 대신 배적(裵寂), 소우(蕭瑀), 진숙달 등과 함께 해지(海池)의 배 안에서 이건성과 이원길의 죄상을 조사하는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이세민은 울지경덕에게 궁중의 경계하라고 명했다. 울지경덕이 무장을 하고 나타나자 놀란 이연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울지경덕은 이렇게 대답했다.

“태자와 제왕이 반란을 일으켜 진왕이 진압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신이 곁에서 호위하겠습니다.”

소우, 진숙달 등은 이건성과 이원길의 여러 가지 죄상을 폭로하면서 진왕의 공덕을 높이 칭송했다. 그들은 이세민을 태자로 책립하여 국사를 맡기는 것이 순리라고 설득했다. 이때까지 밖에서는 양쪽의 군사들이 교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울지경덕은 이연에게 모든 병권을 진왕에게 내려준다는 조칙을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사태가 모두 끝났다고 판단한 이연이 사람을 파견하여 성지를 낭독하자 현무문과 동궁에서 저항하던 군사들도 무기를 던지고 항복했다. 이것으로 정변도 끝이 났다.

6일 후에 이연은 이세민을 태자로 책립했다. 무덕 9년인 626년 8월 고조가 퇴위하고 이세민이 황제로 즉위했다. 이듬해 연호를 정관(貞觀)이라 고쳤다. 이세민은 수나라 말의 전란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여 대당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모략에 대한 능력을 정치, 군사, 경제 등으로 돌려 화려한 업적을 쌓았다. 20년 동안 계속된 그의 통치기간을 ‘정관의 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