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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드라마의 놀라운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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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드라마의 놀라운 역사왜곡


신동아|기사입력 2007-10-25 11:00










[신동아]







고구려를 소재로 한 역사 드라마들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MBC의 ‘주몽’은 절찬리에 종영했고, SBS의 ‘연개소문’은 비록 숱한 잡음이 일었으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현재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이야기가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주몽’이 끝나자 각 TV 방송국은 그 여세를 몰아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일생을 그린 ‘태왕사신기’를 방영하기 시작했으며 ‘대무신왕’(고구려 3대왕)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의 파상적인 동북공정에 반발해 역풍을 일으킨 국민정서를 타고 연일 인기몰이에 나선 이들 드라마는 자라나는 세대와 사실(史實)에 목마른 성인 시청자에게 살아 움직이는 교과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對)국민 접근성에 있어 영상 매체는 활자 매체에 비해 본질적 우월성을 지녔다. 따라서 TV 드라마가 갖는 지식 전파자로서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방송 3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는 차원에서 고구려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마땅히 권장돼야 할 일이다.



알다시피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동명성왕 주몽(또는 추모)에 의해 창업돼 서기 668년 멸망하기까지 동아시아에서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한 부강한 나라였다. 우리 머릿속에 고구려는 서토(西土·중국)의 여러 나라와 맞서 싸우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킨 당당한 나라로 각인돼 있다. 우리는 이런 역사물을 통해 과거를 공부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史實 무시, 국민 무시



문제는 이들 드라마에 고증을 무시한 사실(史實)이 섞여 버젓이 방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 드라마도 픽션인 까닭에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돼야 하며 재미있는 허구의 캐릭터가 등장할 수 있다. 극의 구성도 가공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 연대기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인물, 그와 연관된 사건들, 이미 검증이 끝난 중요한 팩트(fact)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이런 역사적 팩트들이 마구 가공되면서 지금 각급 학교의 국사 교사는 엄청난 혼란에 직면해 있다. 안시성 싸움을 승리로 이끈 사람이 양만춘이 아니라 연개소문이라는 둥, 검모잠의 고구려 부흥운동에 대조영이 앞장섰다는 둥 학생들은 드라마에 나온 내용을 사실인 양 착각한 나머지 교사의 말이나 교과서의 내용을 믿지 못한다. 만일 드라마에 나온 잘못된 사실과 관련된 문제가 대입 수학능력시험이나 국가 공인 시험에 출제돼 낙방한다면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드라마 작가들이 원작(原作) 없이 대본을 쓰는 것도 문제다. 이들은 내친김에 드라마의 내용을 바탕으로 원작 아닌 원작을 만들어 책장사를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역사소설은 애정소설과 다르다. 역사소설은 사서(史書)에 대한 정확한 학습과 사실 확인, 현지 취재 등 수년, 수십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되는 거대한 결과물이다. 최근 ‘대발해’를 발간한 김홍신씨는 20년간의 고증기간을 거쳤다 하고, 김훈씨는 ‘칼의 노래’를 쓰면서 치아가 8개나 빠졌다고 한다. 역사소설은 결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드라마 작가들은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풍부하고도 독창적인 극본을 쓰려는 본연의 자세로 하루빨리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고구려 드라마에 나타난 잘못된 사실은 무엇일까. 틀린 내용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지만 국사교과서나 정사(正史)에 반하는 내용, 그중에서도 자라나는 세대들의 역사 교육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만 열거해본다. 우선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대조영’부터 살펴보자.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매국노 집단이 미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혹은 과장되게 사대화(事大化)하는 경향도 있다. 이럴 경우 시청자는 스스로 우리 역사를 비하하고 패배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대조영의 출생년도를 너무 이른 시기로 설정했기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드라마는 대조영의 출생년도를 서기 645년(실제는 663년으로 추정)으로 설정했다. 이대로라면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에 대조영은 이미 24세의 청년이다. 고대나 중세엔 15세쯤이면 성년으로 인정했기에 24세라면 충분히 장수의 직(職)을 가지고 활약할 수 있었다. 드라마도 이에 맞추어 대조영을 고당(高唐)전쟁의 영웅으로 묘사하며 극을 전개했다. 그러나 ‘신당서’ ‘구당서’ ‘삼국사기’ 어디에도 대조영이 고당전쟁에서 활약했다는 기록은 없다. 이렇듯 역사적 인물의 연대기가 뒤죽박죽이라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구분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연표 참조)



걸사비우는 대조영의 의제(義弟)가 아니다







드라마에서는 걸사비우가 대조영의 의제로 나온다. 이것 또한 잘못된 설정이다. ‘신당서’에 따르면 대중상이 696년 요서에서 봉기를 일으키자 측천무후는 걸사비우를 ‘허국공’으로, 걸걸중상(대중상)을 ‘진국공’으로 책봉해 이들을 회유하려 했다. 이는 대중상과 걸사비우가 같은 반열에 있었음을 증명한다. 걸사비우는 대중상의 동료나 의제로 처리했어야 했다.



설인귀는 초인적 영웅이 아니라 졸장













중국 창바이 조선족 자치현에 있는 발해시대 영광탑.
중국 창바이 조선족 자치현에 있는 발해시대 영광탑.

설인귀는 평민 출신으로 당 태종에 의해 발탁돼 나중에 안동도호까지 역임했지만 사료에 나오는 그의 활약상은 보잘것없다. ‘삼국사기’에는 645년 고당전투에서 잠깐 승리했을 뿐 658년 고당전투에서 고구려에 크게 패한 것으로 기술된다. 물론 고구려의 패색이 짙어가는 667년과 668년 고당전쟁에서는 당군이 승리했다. 하지만 675년 신라와의 전투에서 크게 패했으며 676년에 신라군과 맞붙은 기벌포 전투에서도 서전은 승리했으나 결국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게다가 설인귀는 평양과 신성에만 머물지 않고 당나라의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나와 있듯 설인귀는 670년 티베트의 총사령관 논 흠릉과의 대비천 전투에서 10만 대군이 전멸하는 대패를 당했다. ‘구당서’에는 설인귀가 말년에 광서성 상주로 유배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뤄 보면 그는 675~676년 나당(羅唐)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숙청당했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그가 안동도호를 계속 역임했다는 드라마의 설정은 잘못된 것이다. 어느 면으로 보나 드라마에 나온 것 같은 거물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적국의 장수를 사실과 다르게 미화하는 것 또한 큰 문제다.



제1차 고당전쟁(645년)의 요동성주는 고사계가 아니다



드라마에서는 당의 요동성주로 고사계(高舍鷄)가 나온다. 고사계는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나라로 건너가 하서군의 사진교장이 된 인물이다. 그의 아들이 그 유명한 고선지(高仙芝) 장군이다. 고선지는 20세 때 아버지를 따라 안서 지역으로 출전하기 시작해 맹활약했으나 755년 모함에 의해 40여 세에 유명을 달리한다. 요동성은 고구려에서는 평양성 다음의 큰 성으로, 최소한 40대 중반의 욕살이 성주를 역임했을 터이다. 드라마의 설정대로라면 고사계는 730년경 130세의 나이에 20세인 아들 고선지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안서로 출정한 것이 된다. 요동성주로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야 했다.



당의 강하왕 도종은 고구려에서 죽지 않았다



‘대조영’에선 강하왕(江夏王) 이도종(李道宗)이 안시성 전투 후 퇴각하는 당 태종을 구하려다 연개소문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강화왕 도종은 이후 설연타 정벌에 참가했으며 서기 653년 장손무기와 저수량의 무고에 의해 상주로 유배돼 죽임을 당했다고 사료에 분명하게 나와 있다.



방효태 총관을 다섯 살짜리 대조영이 죽였다?



당군의 총관 방효태는 서기 662년 평양으로 쳐들어왔다 연개소문에게 대패해 13명의 아들이 포함된 7만 군사 전원과 함께 죽임을 당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수대첩이다. 한편 평양성 근처에 진을 치고 있던 소정방은 방효태의 패전 소식에 놀라 김유신이 배달해준 쌀로 밥을 지어 먹고 황급히 퇴각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총관 방효태가 설인귀의 일개 부장으로 나온다.



설인귀는 이미 658년 고구려 전투에서 패했기에 이 전투에는 참여하지도 못했으며 한낱 무명의 장수였을 뿐이다. 별 5개의 원수급 사령관이 별 2개짜리 소장의 부하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이때 대조영은 5세 정도였을 터인데, 그 꼬맹이가 방효태를 죽인 장군으로 나온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연개소문은 설인귀의 독화살에 맞지 않았다



연개소문은 663년 10월쯤 죽었다는 게 요즘 역사학계의 견해다. 드라마에서는 연개소문이 설인귀의 독화살에 맞는 것으로 나오는데, 어느 사료를 보더라도 그가 설인귀의 독화살에 맞았다는 기록은 없다. 연개소문의 지위는 태왕을 능가할 만큼 막강한 태대막리지(太大莫離支)였다. 그런 그가 당나라 일개 장수와 맞서 싸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고구려를 당에 비해 아주 작은 소국으로 바라본 사대적 시각에서 나온 오류다.



할아버지 연남생이 소녀 고숙영에게 연정을 품었다?



드라마에서는 남생이 대막리지 취임 전후의 시기에도 고숙영에게 연정을 품고 청혼하는 것처럼 나온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연개소문이 죽은 후 큰아들 남생이 국내를 순시할 때 자신의 아들 헌충이 동생 남건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다른 아들 헌성을 당나라에 보내 구원을 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시 남생의 아들은 이미 살해당할 만큼 장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동생도 사신을 갈 정도였음을 고려하면 연남생은 당시 당연히 유부남이었고, 장년이 아니라 노년이었다고 봐야 옳다. 그런 연남생이 젊은 공주 고숙영에게 연정을 품고 결혼을 청했다는 설정은 무리다.



의형제까지 만들면서 왜 친동생을 버렸나







대조영에겐 친아우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대야발(大野勃)’로 훗날 그 후손은 발해 10대 왕인 선왕(宣王) 대인수가 돼 왕계를 이었다. 그는 특히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연대기로 유명한 ‘단기고사’를 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삼촌뻘인 걸사비우와 흑수돌을 대조영의 의형제로 만들어 드라마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정작 역사적 사실에 드러난, 그리고 발해의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대야발을 빠뜨린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대조영은 검모잠-고안승 정권에 참여한 적이 없다













중국 지린시 부여왕궁 추정지.
중국 지린시 부여왕궁 추정지.

‘구당서’에 이르기를 ‘고려(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 일가는 영주로 옮겨 기거했다’고 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군은 고구려의 주요 인물을 상당수 당나라로 끌고 갔으며 이 중 일부는 요서 영주에 정착했다. 이때 대씨 일가도 영주에 정착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비슷한 시기에 지리적으로 정반대쪽에 위치한, 황해도 지역에서 일어난 검모잠-고안승 정권의 고구려 부흥운동에 대중상-대조영 부자를 등장시킨다. 그러고는 검모잠과 고안승 간에 벌어진 알력 싸움의 최대 피해자가 대조영 세력인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대중상 일가는 시간적, 지리적으로 검모잠-고안승 정권에 참여할 수 없다. 이와 관련된 기록도 전무하다.



보장태왕은 설인귀의 부하가 아니다



고구려의 마지막 태왕인 보장태왕은 677년 요동주 도독인 조선국왕으로 부임한 후 고구려 부흥운동을 벌이다 발각돼 4년 후인 681년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공주로 유배됐다. 그가 조선국왕이 된 것도 당나라가 고구려 유민과 신라 사이에 이간 책동을 벌이려 쓴 허수아비 술책일 따름이다. 태왕인 그는 죽는 날까지 당당했다. 그런 그가-비록 고구려 부흥운동을 위해 일부러 속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당나라 일개 졸장인 설인귀의 부하로 나오는 설정은 역사왜곡을 넘어 고구려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다.



SBS ‘연개소문’의 경우 MBC ‘주몽’과 달리 정통사극을 표방했기에 사태가 좀더 심각하다. 이 사극의 대본 작가는 ‘연개소문’ 방영에 앞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선 기획 드라마”라고 기염을 토했다. 고증을 근거로 해 자주적인 한민족의 주체성을 세우기 위한 대본을 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드라마 ‘연개소문’에는 우리에게 흔히 ‘삼국지’로 알려진 ‘중국의 삼국지연의’의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삼국지 떠올리게 하는 ‘연개소문’



조선의 대학자 기대승이 선조 임금에게 아뢰기를 “중국의 삼국지는 믿을 수 없는 자가 쓴 나쁜 책”이라 했다. 과연 이런 책에 근거한 대본을 가지고 중국의 음흉한 술책에 맞설 수 있을까. 굳이 저들의 책에서 빌려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드라마화할 수 있는 소재가 우리의 고대 역사다. ‘연개소문’은 이미 종영됐지만 드라마에 나타난 각 사건과 장면의 진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안시성 전투 때 연개소문은 안시성에 없었다



드라마에서 연개소문은 안시성에 갇혀 있었고 안시성의 군사들은 굶주림에 갖은 고생을 한 것으로 나온다. 안시성 전투는 제1차 고당전쟁의 끝맺음 전쟁이다. 당시 연개소문은 평양성에서 군사들을 총지휘하고 있었으며, 고정의 고연수 고혜진 등의 장수에게 15만 군사를 내줘 안시성 옆에 있는 주필산으로 보냈다. 어떻게 일국의 총지휘관이 조그만 안시성에 갇혀 있었겠는가. 그 어떤 사료에도 연개소문이 안시성 전투를 직접 지휘했다거나 안시성 안에 연개소문이 갇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더구나 성주인 양만춘이 이끄는 안시성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고 있었다. 안시성은 5만평도 안 되는 조그만 산성으로, 요동성과 같이 식량의 보급처였다. 게다가 안시성 공격에 포차가 등장했는데, 안시성은 험한 산꼭대기에 있는 산성이기에 평지형 공성(攻城) 무기인 포차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대중상이 130세에 발해를 세웠다?



대중상(대걸중상)은 대조영의 아버지로 서기 696년 요서에서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독립전쟁을 일으켜 만주 동모산에 발해를 세운 인물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수(隋) 문제가 고구려에 국서를 보내며 위협하는 시기인 서기 600년에 대조영이 이미 30~40세의 장군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대중상은 696년 나이 130~140세 때 유민들을 이끌고 봉기했단 말인가. 그는 보장태왕이 당나라에 잡혀간 후 요동주 도독인 조선국왕으로 봉해지는 677년에 청장년의 나이(35~40세)로 활동해야 사실에 맞는 설정이다.



을지문덕과 강이식은 같은 시대 사람이 아니다



드라마에선 을지문덕 장군과 강이식 장군이 동시대 사람으로 나이도 비슷하게 나온다. 또 1차 고수(高隋)전쟁에서 두 사람 모두 공을 세우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강이식은 제1차 고수전쟁 때 활약한 사람이고, 을지문덕은 제2차 고수전쟁(살수대첩)을 승리로 이끈 사람이다. 1차 고수전쟁 당시 을지문덕은 강이식 장군의 부관 정도인 젊은 장교로 나왔어야 했다. 아니면 을지문덕의 출현을 제2차 고수전쟁으로 미뤄야 했다.



이 대목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있다. 드라마에서 을지문덕 군영의 문지기 장수가 신분증을 보여달라며 왕을 제지하는 컷이 바로 그것.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왕은 국군의 최고 통치권자다. 특히 영양왕은 수나라와 4번 싸워 모두 이겼을 정도로 강단 있고 전략이 뛰어났으며 훌륭한 태왕이었다. 을지문덕은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이 설정이 사실이라면 을지문덕을 포함해 그 문지기 장수의 일가는 삼족(三族)이 죽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과 망자(亡者)가 어떻게…







‘연개소문’에 나오는 주요 인물의 나이는 서력 600년을 기준으로 연개소문이 17세쯤, 신라의 김유신이 18세 정도, 그의 여동생인 문희(무열왕 김춘추의 부인)와 보희가 15~16세,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이 16세, 대걸중상이 30~40세쯤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연개소문은-비록 여러 견해가 있지만-서기 605~617년쯤 태어난 인물이라는 것에는 이설이 없다. 알다시피 수 양제는 604년 형제들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후 612년 113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다. 그 유명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그때의 일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연개소문은 수 양제의 아버지인 수 문제 때부터 등장해 활약을 펼친다. 김유신의 출생년도는 595년, 김흠순은 599년, 문희와 보희는 608년 어귀에 태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열왕 김춘추는 604년생. 드라마에서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기껏해야 걸음마를 뗀 아이가 청장년으로 나와 이미 죽은 귀신들과 시쳇말로 ‘생쇼’를 벌이고 있다. 606년에 죽은 미실이 김유신의 애인 천관녀의 수양어머니로 나온 게 대표적인 사례다(연표 참조).



연개소문은 김유신의 몸종이나 적수가 될 수 없다













3~4세기 고구려 도읍지였던 중국 지린성 지안현 장수왕릉(장군총).
3~4세기 고구려 도읍지였던 중국 지린성 지안현 장수왕릉(장군총).

연개소문은 동부 대인 연태조의 아들로 귀하게 태어났다. 그는 불과 10대 초반의 나이로 벼슬길에 올랐을 정도로 화려하게 성장했다. 연개소문이 김유신의 하인이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김유신이 10대 중후반이던 시절 연개소문은 태어나지 않았거나 갓난아기였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연개소문이 신라의 화랑 김유신의 하인이며 그의 여동생 보희를 사랑한 것으로 나온다. 이는 김유신을 높이며 연개소문을 비하한 김부식의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왜(倭)는 백제를 침범한 적이 없다



드라마에서는 제1차 고수전쟁에서 승리한 고구려가 천하의 제국들을 모아놓고 복창을 시키는 것으로 나온다. 이때 강이식 장군은 백제를 침략하는 왜의 사신을 준절히 꾸짖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우리 정사인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물론 ‘일본서기’나 ‘수서’ ‘신당서’ ‘구당서’ ‘자치통감’ 어디에도 왜가 백제를 공격했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백제 동성왕의 둘째아들이며 무령왕의 동생인 남백제왕 사아가 당시 왜에서 폭정을 일삼던 가야계의 대화국왕을 축출하고 왜를 통일해 계명왕(계이타이천황)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전부터 왜는 백제의 속국 혹은 분국(分國)이었다.



설인귀가 연개소문과 1대 1 대결?



‘연개소문’에서 설인귀는 만고의 영웅으로 나온다. ‘대조영’에서도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데, 대본 작가들은 어떤 영문인지 침략자들을 미화하기에 바쁘다. 이는 우리 스스로 열등한 민족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패배주의에 빠지는 행위다. 도대체 설인귀가 누구인가. 그는 한낱 이름 없는 소졸 출신으로 운 좋게 당 태종의 눈에 띄어 장수가 된 자일 뿐이다. 그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 자체가 상상력 부재의 산물이다. 사료에는 소정방, 이세적 등이 주요 인물로 나온다. 중국에서 횡행하는 경극(京劇)에서 설인귀가 연개소문을 물리치며 대활약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연개소문이 설인귀를 만났을 가능성도 없다. 중국 경극의 내용을 그대로 드라마에 대입한 것은 오히려 중국의 동북공정을 도와주는 일이다.



연개소문이 道敎 유입을 반대했다?



연개소문은 도교를 옹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영류왕이 서토에서 도교를 받아들이려 했을 때 도교가 민족정신을 말살한다며 반발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일연의 ‘삼국유사’에도 나오듯 연개소문은 앞장서서 도교를 받아들였고 불교를 탄압했다.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한 명분은 연개소문의 거사였지 도교 탄압이 아니었다. 이는 삼국시대 한반도의 종교 유입에 대해 학생들의 오해를 살 수 있는 잘못된 설정이다.



12세의 연남생이 제1차 고당전쟁에서 활약?



드라마에서는 연남생이 청장년으로 서기 645년에 고구려를 침공한 당군과 싸우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는 서기 634년 태어났다. 제1차 고당전쟁 당시 연남생의 나이는 불과 12세에 불과했다.



연남생은 중국 여자의 아들이다?



드라마에서 연개소문은 수나라의 군웅이자 반란집단의 우두머리인 이밀의 조카딸과 결혼해 큰아들 남생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야사와 정사 그 어디에도 연개소문이 중국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은 없다. 이는 대당 강경파인 연개소문의 성격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남생의 생모가 중국인이었다면 연개소문의 후계자로 행세할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드라마에서 이밀과 양현감 등 수나라 시대 인물들의 삶은 거의 사실 그대로 보여주면서 연개소문을 이밀의 사위로 설정한 것은 학생들에게 연남생이 중국인의 자식이라고 오해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당은 압록수 전투에서 고구려에 승리한 게 아니라 대패했다



드라마에서 계필하력이 이끄는 당군이 압록수 전투에서 남생의 고구려군을 격파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야말로 중국측 역사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만일 계필하력이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당시 왜 소정방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평양으로 내려가지 않고 당나라로 소환되어 갔겠는가. 계필하력은 압록수 패전의 책임을 추궁당해 천진에 머물러 있다 당 고종의 용서를 받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이 사수전투에서 대패한 것도 압록수 전투에서 패한 때문이었다.



북한산성 전투의 주인공은 연남생이 아니라 뇌음신



드라마에서는 고구려가 신라를 공격한 북한산성 전투(보장왕 661년)의 장군으로 연개소문의 아들들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삼국사기 등 사료에는 분명히 북한산성에 출전한 장수를 뇌음신(惱音信)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뇌음신은 북한산성을 공격했으나 당군의 고구려 침입으로 인해 군사를 물렸다.











고·백·신은 ‘삼한’이 아니라 ‘삼국’이다



드라마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을 삼한(三韓)이라 부른다. 삼한이라면 마한, 진한, 변한 등 충청도 공주 이남에 있는 나라들의 총칭이다. 우리나라를 삼한이라 부른 것은 일제 식민사관(史觀)의 대표적 결과물이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이래로 부여, 고구려, 낙랑국, 예맥, 그리고 마한, 진한, 변한으로 구성된 나라였다. 삼한은 우리 민족과 넓은 땅의 일부일 뿐이다.



한나라 치켜세운 ‘주몽’



드라마 ‘주몽’을 끝까지 본 초등학생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부여는 아주 나쁜 나라이고 우리 조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드라마에서 부여는 동명성왕 주몽을 학대하고 죽이려 한 적대국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립국가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한나라의 주구(走狗)나 신하 나라로 묘사돼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부여는 한나라의 한 지방쯤으로 인식된다. 토끼 잡으려다 송아지를 잃어버린 격이다. 부여는 상고사에서 고조선과 함께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던 우리 역사의 맹주였다. 굳이 사료에 나온 사실을 뒤바꿔가며 같은 민족을 원수로 만들어놓은 이유가 뭘까.



금와왕이 유화부인을 살해했다?



‘주몽’에는 금와왕이 칼로 유화부인을 베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크게 잘못된 설정이다. 잘 알려진 대로 사료에는 금와가 유화부인을 사랑했고 후궁인 그녀와의 소생으로 주몽이라는 왕자를 뒀다고 나와 있다. 금와는 정실 소생인 대소태자와 그 형제들이 주몽을 시기하자 여러모로 주몽을 돌봐주었다. 금와왕은 고구려 동명성왕 14년, 기원전 24년 8월, 유화부인이 죽자 태후의 예로 장사까지 지내준 후덕한 사람이다.



비류·온조의 생부가 해부루왕 庶孫 우태?



이 드라마에서는 백제를 세운 비류와 온조의 아버지가 우태라고 설정한다. 그러나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편에 보면 ‘주몽이 부여왕의 둘째딸과 결혼해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씌어 있다. 더 확실한 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현재까진 이것이 정설이다. 일연의 ‘삼국유사’ 권3 남부여, 전백제편에도 ‘비류와 온조는 주몽의 자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우태는 해부루왕의 서손(庶孫)으로 나오는데, 해부루왕은 자식이 없어 금와를 양자로 들인 사람이다.



한나라에는 철기군이 없었다



드라마 ‘주몽’에서는 한나라의 군사로 철기군을 등장시켰는데, 당시 한군은 두루마기나 걸친 농민병이 대부분이었으며, 중국인들은 역사상 철기군을 가진 적이 없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북선을 이끌고 이순신 장군과 싸웠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5권 동천왕 편에 ‘서력 246년,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입할 때 동천왕이 철기군을 이끌고 맞섰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철기군은 우리나라의 전매특허였다.



현토 태수가 만주 패자인 부여왕을 오라 가라?



드라마 ‘주몽’은 우리의 부여가 한(漢)나라의 지배를 받은 것처럼 설정했다. 드라마를 보면 현토(현도)의 태수라는 자가 부여 금와왕을 좌지우지한다. 현도 태수라 하면 지금의 강화군수쯤 되는 자다. 한나라의 태수 따위가 상고시대 만주의 패자인 부여왕을 오라 가라 할 수 있었을까.



재미는 재미, 역사는 역사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들은 서토의 광대한 지역을 점유하며 당당한 삶을 살았다. 때로는 전쟁으로 중국을 괴롭히고, 국력이 약해지는 시기는 외교로 이를 돌파하며 동북아 패자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온 나라 사람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때, 고증을 완전히 무시한 천박한 대본으로 우리 역사를 모욕해선 안 된다. 스스로 고증을 할 수 없다면 고증이 잘된 원작소설을 택해 그것을 기준으로 드라마 대본을 쓰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재미는 재미고, 역사는 역사다. 재미있게 하기 위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역사를 제멋대로 바꿔서는 안 될 일이다. 이것이 역사 드라마가 일반 드라마와 다른 점이자 그것의 존재 이유다.



임동주 역사소설가, 재야 사학자 profdrl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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