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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8-21 13:24:363369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건국한 여걸 소서노
양승국

소서노

세계사의 물꼬를 바꾼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들임다. 그러나 국가를 세운 사람들은 "거의" 여성들임다. 그런데 말임다 국가를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뚝딱 맹긴 여성이 있다 이검다. 세계사에서 결코 흔하지 않은 예에 속하는 이 여성을 혹시나 해서 유럽이나 중국역사에서 찾다가는 말짱 황임다. 바로 울나라 여성이니까요.

성 명 : 소서노(召西奴)...女性임
주 소 : 만주 졸본천 (지금의 중국 요녕성 부근)
출 생 : 기원전 69년 경
가 족 : 夫는 사망, 2남(男)의 미망인
직 책 : 나라 바로 세우기 운동본부 회장
재 산 : 토호의 졸부인 父의 재산과 죽은 남편의 유산이 겁나게 많음

요즘으로 치면 꽃제비들이 가장 선호하는 재벌의 미망인 셈임다. 보통 뇬덜 같으면 돈 싸들고, 부동산 고미술품에 투기하러 다니거나 때빼고 광내고 기름쳐서, 젊은 호빠들 사냥에 눈이 벌개질텐데 그녀는 오로지 조국을 극동의 최강국으로 건설하려는 일념뿐임다. 바다건너 멀리 로마가 지중해를 통일(BC 31년)했다는 뉴스를 들은 그녀는 자신도 만주를 포함한 극동을 주무르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져갔는데 32살의 그녀 앞에 홀연히 등장한 놈씨가 바로 주몽이라는 넘임다.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부여 출신 망명객인 21살의 영계 주몽은 소서노를 만나 자신을 국가건설 전문컨설턴트라고 뻥을 치고는 "극동의 허브국가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브리핑을 쫘악 해댐다. 만주를 페어웨이, 한반도를 러프, 황해를 워터해저드, 고비사막을 벙커, 일본을 아일랜드홀, 중원대륙을 그린으로 만들겠다는 주몽의 말빨에 그녀는 막강한 자본력과 화려한 가문을 투입하고 인감도장까지 내줌다. 글고 이왕 주는 김에 화끈하게 몸까지 줘서 둘이는 결혼도 하게 됨다.

5 부족으로 갈라져 빌빌대던 소서노의 텃밭 졸본부여는 자본가 소서노와 컨설턴트 주몽의 환상적 결합에 힘입어 훗날 수,당과 천하를 놓고 맞짱을 뜨는 "고구려"로 리모델링되고 주몽은 아시아를 이끌 차세대 CEO에 1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슴다. "고구려의 건국 이꼬루 주몽"이라는 등식은 남성중심의 왜곡된 역사기술 탓에 우리들에게 그렇게 알려진검다. "주몽이 나라를 기초함에 소서노의 내조가 매우 많았다"라는 기록이 여성에게는 짠돌이 처럼 인색한 삼국사기에 이례적으로 등장하고 있슴다.

그러나 "고생은 나눌수 있어도 성취는 나눌수 없다"는 말처럼 고구려를 신장개업한 소서노와 주몽에게도 암초가 다가오기 시작함다. 그 분열의 단초는 다름아닌 유산상속에 있었슴다.
주몽이 소서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넘은 총각이 아니라 엄연한 유부남이었던 검다. 물론 소서노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슴다. 주몽의 출생국가는 북부여임다. 만주 송화강 유역을 주름잡던 부여는 고조선에 이어 우리 역사상 두번째로 나타난 국가죠.....

북부여 왕의 아들 일곱형제중 한명인 주몽은 설화에 따르면 닷되들이 사이즈의 알에서 태어났담다. 그래 그런지 당시 부여TV 주최 전국 알까기 대회 최다수상자인데다 어릴적부터 활쏘기 등 재능이 뛰어나 왕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슴다. 그러나 장남의 모함과 위협에 쫓기게 되는 신세가 되자 임신한 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저혼자 잘 살겠다고 토껴 망명자로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졸본 부여로 가서 소서노와 결혼, 그녀 도움에 힘입어 고구려를 창업한 "부여판 에비타"였던 거죠.

그런 주몽이 고구려 왕이 된지 19년 됐을 때(BC 19년 4월)... 부여에 남겨 놓고 왔던 아들이 장성하여 고구려로 찾아 온검다. 주몽의 아들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오는 과정은 동화에도 많이 나오죠.
.........중간 생략.......
주몽은 부여를 떠나 도망가면서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일곱 모난 돌 위의 소나무 아래 감춘 유물을 찾는자가 내 아들이다" 청년으로 성장한 유리가 어느 날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어요. 어느날 기둥 아래를 뒤져보니 쪼개진 7번 아이언 헤드조각이 나왔대요. 유리가 그걸 들고 고구려에 가서 왕에게 보여 주었대요. 왕이 자신이 가졌던 헤드조각을 내어 맞춰보니 딱 맞더래요. 왕은 무자게 기뻐하며 유리를 왕자로 삼았대요.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끝.

소서노에게는 전남편에게서 낳은 두 아들(비류, 온조)이 있었고 주몽에 못지않게 그녀도 고구려 건국에 큰 공이 있었으므로 (당시는 모계가 중시되는 부족사회로 여성의 파워가 강했슴다) 당연히 후계자는 그녀의 큰 아들인 비류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검다. 유리가 장성할 동안 거의 고아처럼 자라온게 정 맘에 걸린다면 걍 그럴듯한 특보 자리나 하나 앵겨 주거나
아니면 정부 산하 기관장으로 낙하산 태우면 될 것을 밑도 끝도 없이 코빼기 한번 비치지 않았던 유리를 덜컥 후계자로 앉히다니...

울나라 재벌회사들도 이런 짓거리를 많이 하잔슴까? 전문경영인이 죽을 똥 싸면서 회사를 굵직하게 세워 놓으면 어느날 새파랗게 젊은 회장 아들이 떡하니 윗전에 앉아 전문경영인 밀쳐내고 감놔라 배놔라 하며 주물럭대는 꼴이죠. 어쨌거나 유리가 후계자가 된 뒤 6개월 만에 주몽은 꼴까닥 세상을 떴고, 헤드조각 유리가 왕이 됐슴다. 소서노로서는 눈이 뒤집히고 배알이 꼴리는 일이 벌어 진거죠. 그녀의 측근들은 흥분하며 유리왕과 한판 붙자고 길길이 날뜀다. "선혈이 낭자하도록 싸우자"며 선동하는 측근이 있는가 하면 "나라야 개판이 되던말던 차라리 분당 하자"는 주장도 있었슴다만 소서노는 울나라의 후진 정당이 즐겨하는 짓거리인 내부 분열 대신 스케일 크게 놀자면서 아예 나라를 따로 차리기로 결심한 검다.

소서노는 두 아들과 수많은 신하 백성을 이끌고 만주를 떠나 산넘고 물 건너 한강까지 거침없이 내려 옴다. 미래를 궤뚫어 볼 줄 아는 소서노는 한강 지역이야말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도 끄떡않는 노다지 땅이라고 판단하고 떴다방이 장난칠 겨를도 주지않고 부동산투기 과열지구로 지정함다. 그런데 얼치기 풍수쟁이인 장남 비류가 똥고집을 피워대며 한강대신 미추홀(지금의 인천지역)로 가겠다며 분가를 선언함다. 소서노는 차남인 온조와 한강 유역에 위례성(現 풍납토성)을 쌓고 새 나라를 건국하여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로 현판식을 거행함다. 풍납토성...거...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됨다. 울나라 선사시대의 최대 미스터리중 하나인 이곳의 유물여하에 따라 식민지사관 꼴통 보수역사가와 진보 역사가의 승부가 갈라지는 검다.

한편 장남 비류는 인천으로 가서 나라를 맹길긴 했는데....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백성이 편히 살 수 없어 연일 데모가 나는 반면 어머니가 세운 위례성 백성들은 풍족하게 사는 모습이 뉴스에 보도되자 그만 쪽팔림과 한스러움에 골골 앓다가 죽었다고 함다. 그 뒤 비류가 세운 나라의 백성들이 소서노가 세운 위례성으로 되돌아와 합류하게 됐고 나라인구가 늘었으니 십제(十濟)라는 이름으로는 쫌 거시기 허요~ 해서 나라이름을 백제(百濟)로 리네이밍해서 특허청에 등록했다고 함다. 이 나라가 훗날 동양의 해상왕국으로 발돋움 해 일본의 모태가 되니 소서노의 남다른 혜안이 얼만큼 돋보이는지 알 수 있잖슴가?

비록 후대의 남성중심의 삐뚤어진 역사가들에 의해 고구려 건국의 공은 주몽에게, 백제 건국의 공은 온조에게 돌아갔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소서노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었다고 봐도 됨다. 울나라 역사가 중에서 소서노라는 여걸을 가장 먼저 주목한 신채호 선생은 "소서노는 고구려와 백제의 양국을 건설한 자"라고 조선상고사에서 못 박슴다. 신도시 건설한답시고 수도권 땅값 죄다 들 쑤셔놓질 않나, 언제할지도 모를 행정수도 이전으로 지역 땅값을 올려 놓질 않나, 하여튼 뭔가 건설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개판오분전되는 요즘에 보면.... 사별한 여성의 몸으로...한 나라도 아닌....두 나라를 골육상쟁이나 쟁정도 없이 말끔하게 건설했다는 사실은 고대시대라는 특수성을 떠나 세계역사에도 아주 유례가 드문 일임다.

만일 울나라에서 유전자 복제가 허용된다면 제일 먼저 복제해서 차기 대권주자로 옹립하고 싶은 인물임다.

출전 : 엠파스 블로그 여걸야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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