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한국사
1. 선사
2. 고조선
3. 삼국
4. 남북국
5. 고려
6. 조선전기
7. 조선후기
8. 일제
9. 공화국
10. 통사
· 오늘 :  100 
· 어제 :  327 
· 최대 :  2,389 
· 전체 :  1,382,379 
 
  2004-05-12 15:13:463751 
삼국지로 통해본 고구려 연대기2-산상왕(상)
양승국

삼국지를 통해본 고구려 연대기 2

산상왕(상) 기원 198 - 213년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198

헌제

9년

건안 3년

1. 정월에 조조가 장수를 공격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별 성과가 없이 허도로 귀환했다가 3월에 다시 지금의 하남성 등주(鄧州)인 양(穰) 땅에서 장수를 다시 공격했으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2. 4월에 모사 전풍이 원소에게 허도를 기습하라는 계책을 올렸다는 소문을 듣고 장수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허도로 귀환했다.

3. 5월에 장수를 공격했다. 패주하는 장수의 뒤를 쫓았다.

4. 9월 여포의 부하 장수 고순(高順) 등이 서주의 유비를 공격했다. 유비는 단신으로 달아났다. 조조가 유비와 함께 여포를 공격했다.

5. 11월 순유, 곽가의 계책에 따라 조조가 하비를 세차게 공격하다가 기수(沂水)와 사수(泗水)의 물을 끌어들여 함락시켰다. 조조는 여포와 진궁(陳宮)을 죽이고 여포의 부하 장수였던 장요는 항복했다.

산상왕

원년

고국천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형 한명과 동생이 셋이 있었다. 형은 발기(拔奇)이고 첫째 동생은 형과 동명이인인 발기(發岐)이고 둘째가 연우(延優)고 셋째가 계수이다. 형인 발기는 196년 소노부 3만여 명을 이끌고 공손탁에게 투항한 후에 그의 지원 하에 고구려를 공격해 왔다가 고국천왕과 동생 계수에 의해 싸움에 패하고 공손탁에게로 달아난 바가 있다. 이윽고 국천왕이 죽자 그 왕비가 선왕의 유언이라고 거짓 전하여 둘째인 연우(상산왕)를 왕으로 세웠다. 이에 분격한 발기가 군사를 이끌고 왕성을 석달 이상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발기의 군사들이 불안감을 느껴 모두 달아나자 그는 처자를 데리고 요동태수 공손탁(公孫度)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해 그 군사로 했다. 공손탁에게서 지원을 받은 발기는 고구려를 다시 공격했으나 공손탁에게서 지원을 받은 발기는 고구려를 다시 공격했으나 상산왕의 명을 받든 그 아우 계수가 출전하여 발기와 요동군을 대파하고 그의 형 발기를 사로잡았다.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198

헌제

9년

6. 유표가 다스리던 형주자사 관할의 장사(長沙), 영릉(零陵), 계양(桂陽) 등의 삼군(三郡)이 반하여 조조에게 복속했다.

7. 조조가 표를 올려 오군태수 손책(孫策)을 토역장군(討逆將軍)에 제수하고 오후(吳侯)에 봉했다.

8. 지금의 안휘성 정원현(定遠縣) 동남의

동성(東城) 사람 노숙(魯肅)과 동성(桐城)의 거소(居巢) 사람 주유(周瑜)가 원소(袁紹)를 따라 관도의 싸움에 참가 했으나 원소가 대업을 이룰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관도에서 빠져 나와 장강을 건너 손책에게 귀의하였다.

9. 원소가 계속해서 공손찬을 공격하여 역경(易京)에서 포위했다.

10. 관중의 여러 군벌들이 연합하여 이각(李傕)을 붙잡아 살해했다.

산상왕

원년

계수는 “ 연우 형이 왕위를 형님에게 양보하지 않은 것은 정의로운 아니라고 해서 형님께서 일시적인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나라를 패망시키려 한 것은 더 옳지 못한 일입니다. 도대체 죽은 후에 선조들을 무슨 면목으로 뵈려 하십니까?”라고 그의 형 발기를 질책했다. 발기는 부끄러움과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발기의 란을 간신히 평정한 산상왕은 자기를 왕위에 앉게 해 준 형수인 고국천왕의 비를 왕비로 맞이했다

3. 계수가 발기의 죽음에 대해 매우 슬퍼하며 그 시체를 거두어 가장(假葬)을 한 후에 왕성에 돌아오자 상산왕이 계수를 책망하였다. 계수는 산상왕이 왕위를 그 형인 발기에게 사양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예를 갖추어 연우의 장례를 치루어 주면 백성들의 의혹을 가라 앉힐 수 있을 것이라고 간언하자 산상왕이 계수의 말을 따라 연우의 장례를 후하게 치루게 했다.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199

헌제

10년

건안 4년

1. 봄, 원소가 이경(易京 : 지금의 하북성 웅현)을 함락시키고 공손찬을 죽였다.

2. 원술이 식량과 군자금이 떨어지자 휘하의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6월에 피를 한 말이나 토하고 수춘에서 죽었다.

3. 원소가 사람을 장수에게 보내 회유하려고 하자 모사 가후(賈詡)는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권했다. 11월 장수가 조조에게 항복했다.

4. 손책이 지금의 강서성 남창(南昌)인 예장(豫章)으로 진격하자 태수 화흠(華歆)이 관하의 땅을 들어 손책에게 항복했다. 손책은 예장군을 나누어 여릉군(廬陵郡)을 설치했다.

5. 조조가 회남에 있던 원술(袁術)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유비를 시켜 막게 했으나 유비는 오히려 서주를 차지했다. 이때부터 유비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해서 북쪽의 원소와 연합하여 조조에 대항했다.

산상왕

2

2월에 환도(丸都)에 성(城)을 쌓았다. 환도는 지금의 중국 길림성 집안현(輯安縣)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00

헌제

11년

건안 5년

1. 정월 거기장군(車騎將軍) 동승(董承)이 헌제의 밀조를 받고 조조의 암살을 기도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피살되었다.

2. 조조가 동쪽으로 진격하여 유비를 격파하고 관우를 사로잡았다. 유비는 북쪽의 원소에게 몸을 의탁했다.

3. 조조가 관도(管渡)에 주둔하자 원소가 허도(許都)를 노렸다. 전풍이 공격보다는 수비를 해야 한다고 간했다가 원소의 뜻을 거슬려 감옥에 갇혔다.

4. 2월 조조가 황하를 도강하여 지금의 하남성 준현(浚縣)의 여양(黎陽)에 주둔했다. 원소가 장수 안량(顔良)을 시켜 백마(白馬)를 공격했다. 백마는 지금의 하남성 활현(滑縣) 동쪽에 있던 고을이다.

5. 조조가 관우를 대동하고 백마를 구원하기 위해 출동했다. 관우는 여러 군사들이 보는 가운데 안량의 목을 베고 그 수급을 가지고 돌아왔다.

산상왕

3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00

헌제

11년

6. 조조가 하수의 강안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자 원소가 하수를 건너 그 뒤를 추격했다. 조조가 원소의 군대를 공격하여 그 장수 문추(文醜)의 목을 베었다.

7. 관우가 조조의 진영에서 달아나 유비를 찾아 갔다.

8. 조조가 다시 관도로 이동하여 원소와 대치했다.

9. 7월 유비가 원소의 진영에서 빠져 나와 여남에 주둔하면서 조조의 후방을 교란하자 조인(曹仁)이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10. 10월 조조가 원소의 군량창고인 오소를 기습하여 모두 불태우자 원소는 조조의 진영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원소가 다시 군사를 이동시켜 오소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갔으나 조조의 군사들에게 크게 패했다. 원소의 전군은 두려움에 떨며 어지러워져 크게 무너졌다.

산상왕

3

.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00

헌제

11년

11. 원소는 조조와의 싸움에서 대패하고 근거지로 돌아와 그 수치심으로 출전에 반대한 전풍을 죽였다.

12. 이 해에 오군(吳郡)의 손책이 자객을 만나 죽고 그 동생 손권이 뒤를 이어 주유 및 장소(張昭)와 함께 오군을 다스렸다. 주유가 노숙을 천거하자 노숙은 손권에게 강동을 근거지로 할거하다가 기회를 보아 천하를 통일하라는 계책을 바쳤다.

13. 조조가 표장을 올려 손권을 토로장군(討虜將軍)과 회계태수에 임명했다.

14. 형주의 유표가 198년에 반해 조조에게 붙은 계양, 무릉, 영릉의 삼군을 공격하여 수복했다.

15. 오두미교의 장로(張魯)가 한중(漢中)의 장수(張修)를 쫓아내고 그곳의 수장이 되었다.

산상왕

3

.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01

헌제

12년

건안

6년

1. 여름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하수를 건너 여양(黎陽) 부근의 창정진(倉亭津)에서 원소의 군대를 대파했다.

2. 9월 조조가 여남(汝南)의 유비를 공격해서 패주 시켰다. 유비가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자 유표는 유비에게 신야(新野)을 지키도록 했다.

산상왕

4

.

202

헌제

13년

건안

7

1. 5월에 원소가 죽었다. 심배 등의 가신들이 작은아들 원상(袁尙)을 사위(嗣位)토록 했다. 장자 원담(袁譚)이 스스로 거기장군이라 칭하고 여양에 주둔했다.

2. 9월에 조조가 원담을 공격하자 원상이 구원하기 위해 출동했으나 원가(袁家)의 군사들은 계속해서 싸움에 패했다. 원상이 곽원(郭援)과 그의 외종사촌이며 병주자사인 고간(高幹) 및 흉노의 남선우(南單于)를 보내 하동(河東)을 공격하자 사례교위 종요(鍾繇)가 항복하지 않고 저항했다. 서량의 마등(馬騰)이 그의 아들 마초를 보내 종요를 도왔다.

산상왕

5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02

헌제

13년

3. 원가와 흉노의 군대는 마초와 종요의 군대에 의해 크게 패하고 곽원은 살해 되었다. 흉노의 남선우는 항복했다.

4. 조조가 손권에게 그 아들을 인질로 허도에 보내라는 령을 전하자 손권은 주유의 계책에 따라 조조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산상왕

5

.

203

헌제

14년

건안

8

1. 조조가 여양의 원담과 원상을 공격하자 담과 상은 업(鄴)으로 호퇴하던 중 형제끼리 분란이 일어나 서로 공격했다. 원담이 싸움에 패하여 평원(平原)으로 들어가자 원담이 추격하여 그 성을 포위했다.원담이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 조조가 군사를 내어 원담을 돕자 원상은 포위를 풀고 업성으로 돌아갔다.

2. 손권이 휘하의 장수들을 보내 단양(丹陽), 예장(豫章), 여릉(廬陵)의 각군과 산월(山越) 등의 땅을 점령하여 차지했다..

산상왕

6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04

헌제

15년

건안

9년

1. 조조가 기수(淇水)를 막아 그 물길을 백구(白溝)로 돌려 양식을 수로로 운반할 수 있도록 해서 원가(袁家)의 업성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2. 2월 원상이 심배로 하여금 업도를 지키도록 하고 자기는 원담을 공격하기 위해 평원으로 출동했다. 조조가 업도를 포위하고 토산을 쌓고, 땅굴을 파 공격했다. 5월이 되자 토산과 땅굴이 무너지자 호를 파서 장수(漳水)의 물을 끌어들여 업성을 잠기게 했다. 성안의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었다. 7월에 원상이 업도를 구하기 위해 돌아왔으나 조조의 군사에 의해 대패하고 중산(中山)으로 달아났다.

3. 8월에 심배(審配)의 조카 심영(審榮)이 성문을 열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심배가 조조에게 사로잡혔으나 항복하지 않자 살해되었다.

4. 조조가 기주목(冀州牧)을 겸임했다.

5. 10월 고간이 병주를 들어 조조에게 항복해 왔다.

산상왕

7

1. 3월 초에 왕이 아들이 없어 산천에 나가 기도를 올렸더니 15일에 꿈속에서 천신이 나타나 소후(小后)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해 준다고 말했다.

2. 8월에 국상 을파소가 죽자 고우루(高優婁)를 그 후임으로 삼았다.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04

헌제

15년

건안

9년

6. 같은 달 원담이 중산의 원상을 공격하자 원상은 싸움에서 패하고 지금의 하북성 이현(易縣)인 고안(故安)으로 달아나 유주자사(幽州刺史) 직에 있던 원희(袁熙)에게 몸을 의탁했다. 원희는 원상의 형이다.

7. 조조가 원담을 공격하여 평원에 입성하고 그 주위의 여러 고을을 평정했다.

8. 이 해에 독립적인 지방군벌을 세워 요동을 지배했던 공손탁이 죽고 그의 아들 공손강(公孫康)이 뒤를 이었다.

산상왕

7

205

헌제

16년

건안

10년

1. 조조가 남피에서 원담의 군사를 파하고 그를 잡아 그 가족과 함께 죽였다.

2. 원상과 원희의 장수 초촉(焦觸)과 장남(張南)이 조조에게 항복했다. 원희와 원상은 요서(遼西)의 오환(烏桓)으로 달아났다.

3. 원소의 장군이었다가 조조에게 항복했던 고간(高幹)이 다시 반해 지금의 산서성 남 호관(壺關)에 들어가 농성했다.

산상왕

8

<TD style="BORDER-RIGHT: #000000 0.4pt solid; PADDING-RIGHT: 5.1pt; BORDER-TOP: #000000 0.4pt solid; PADDING-LEFT: 5.1pt; PADDING-BOTTOM: 1.4pt; BORDER-LEFT: #000000 0.4pt solid; PADDING-TOP: 1.4pt; BORDER-BOTTOM: #000000 0.4pt so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06

헌제

17년

건안

11년

목록
9066
[] 북한-살수대첩 `薩水는 중국의 초자하"

[연합뉴스 2004-11-21 11:48] 왕길환 기자 = 북한 평양방송은 21일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612년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의 `살수(薩水
양승국 04-11-22
[]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건국한 여걸 소서노

소서노 세계사의 물꼬를 바꾼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들임다. 그러나 국가를 세운 사람들은 "거의" 여성들임다. 그런데 말임다 국가를 한번도
양승국 04-08-21
[] 고구려는 어디에 있었나?

출전 : 남프라이스 작성자 : 대륙조선 요즘 중화인민 공화국에서 고구려사를 그들의 영역으로 하려한다는 말들이 많다. 과연 그들의 역사연구는
양승국 04-07-16
[] 신라 30대 문무왕 비문(투후내용)과 김씨의 시조 김일제

http://www.khaan.net/cgi-bin/technote/read.cgi?board=SURNAME_ORIGIN&y_number=30&nnew=1 흉노왕의 후손 김일제 유적
양승국 04-06-05
[] 신라인의 기원

한국인들의 성씨는 중국에서 빌려온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중국에는 없는, 토착성이 강한 성씨가 두가지 있는데 바로 김(金)씨와 박(朴)씨다
양승국 04-05-12
[] 나주 반남 고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펌

출전 : www.namprise.com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제 280호 1999.3.1 ---------------------------------------------------------------------
양승국 04-05-12
[] 고구려사의 위기-펌

高句麗史의 危機 (글쓴이 : 朴馨丘) 미련퉁이 2003-07-16 12:43:29, 조회 : 115, 추천 : 11 동프라이즈 개혁의 동이 터오는 그날까지-동프
양승국 04-05-12
[] 삼국지와 고구려

삼국지와 고구려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고구려의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고구려는 삼국지 후반부의 주요 인물인 관구검(母丘儉)의
양승국 04-05-12
[] 고구려 멸망의 원인2

한국상고사학회 펌 작성자 : [지나가며] 고구려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백제의 멸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의 고구려 원정 초기에 신라
양승국 04-05-12
[] 고구려 멸망의 원인1

한국상고사학회 (펌) 작성자 : 무명 '고구려 멸망의 핵심, 대외적 원인' 고구려 멸망의 원인을 한반도 내부의 정황으로만 파악해서는 그 전
양승국 04-05-12
[] 삼국지로 통해 본 고구려 연대기3-산상왕(하)

삼국지로 통해본 고구려연대기3-산상왕(하) 기원 214-227년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양승국 04-05-12
[] 경제학교수의 한일고대사<백제왜>

한국의 고대사 연구의 주류는 일본인들입니다. 일본인 학자들의 연구결과로 형성된 식민사관에 뿌리를 둔 강단사학과 실증사학에 사로잡힌 한국의 역
양승국 04-05-12
[] 삼국지로 통해본 고구려 연대기2-산상왕(상)

삼국지를 통해본 고구려 연대기 2 산상왕(상) 기원 198 - 213년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36.5K 양승국 04-05-12
[] 삼국지로 통해 본 고구려 연대기(1)-고국천왕

고국천왕 (재위 기원 179 - 197년) 고구려 제 9대 왕으로 신대왕의 둘째 아들이고 산상왕의 부왕이다. 삼국지로 통해 본 고구려 연대기
102.3K 양승국 04-05-10
[] 고구려 태조대왕의 업적

94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고구려의 터전을 닦았던 태조대왕은 한국사를 통틀어 왕위에 가장 오랫동안 있었다. 김수로왕은 158년을 재위했다고 하나 신
양승국 04-05-10
[처음][이전][1][2][3][4][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