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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2 15:15:153735 
삼국지로 통해 본 고구려 연대기3-산상왕(하)
양승국

삼국지로 통해본 고구려연대기3-산상왕(하)

기원 214-227년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14

헌제

24년

건안

19년

1. 3월 조조가 위공(魏公)에 봉해졌다.

2. 10월 복황후가 그의 친정아버지인 복완(伏完)에게 밀조를 내려 조조를 토멸하라고 시켰으나 일이 사전에 발각되었다. 조조는 복윤을 살해했다. 어사대부 치려(郗慮)와 상서령 화흠(華歆)은 복황후의 침실로 난입하여 옥새를 빼앗고 궁궐의 깊은 곳에 가두어 굶어죽게 만들었다.

3. 이 해 겨울 마초가 기산(祁山)을 공격하여 량주를 수복하려고 하자 하후연이 장합과 함께 출전하여 마초를 패주시켰다. 하우현은 계속 서쪽으로 진격하여 한수를 격파했다. 장로가 마초를 용납하지 않자 촉으로 들어가 유비에게 투항했다.

4. 하후연이 포한(枹罕)을 공격하여 30여 년 동안 그 지방의 왕 노릇을 하고 있던 송건(宋建)을 붙잡아 참수하고 농우(隴右) 지방을 평정했다. 포한은 지금의 감숙성 임하현(臨夏縣) 동북이다.

산상왕

16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14

헌제

24년

건안

19년

5. 조조가 여강(廬江) 태수 주광(朱光)에게 환(皖)에 주둔하면서 둔전을 크게 벌리도록 했다. 5월에 손권이 여몽과 감녕을 보내 환을 공격하여 주광등의 위나라 장수들을 사로잡았다. 합비의 수장 장요(張遼)가 주광을 구원하기 위해 출동했으나 도중에 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합비로 돌아갔다. 환성은 지금의 안휘성 잠산현(潛山縣)이다.

6. 이 해 여름에 제갈량이 형주를 관우에게 맡기고 장비와 조운을 데리고 곤란에 처한 유비를 구원하기 위해 서촉으로 들어갔다. 유비는 락성(駱城)을 1년여를 포위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하고 와중에 흐르는 화살에 방통이 전사했다. 이어서 락성을 함락한 유비는 제갈량, 장비, 조운과 회동하여 성도로 진격했다. 유비가 성도를 포위하자 유장은 10일 만에 성을 나와 항복했다. 유비는 스스로 익주목(益州牧)이 되고 제갈량은 익주태수, 법정은 촉군태수가 되었다.

산상왕

16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15

헌제

25년

건안

20년

1. 정월에 조조가 자기의 딸을 황후로 세웠다.

2. 3월 조조가 한수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출정했다. 조조의 군대가 하지(河池)에 이르자 그곳의 토인들인 저인(氐人)들이 길을 막았다. 하지는 지금의 감숙성 휘현(徽縣) 서북이다. 5월에 조조가 저왕(氐王) 두무(竇茂)를 죽이고 그 종족들을 멸했다. 한수의 부장이 한수를 죽이고 조조에게 항복해왔다. 조조의 군대가 한중에 입성했다.

3. 조조가 7월에 양평관(陽平關)을 돌파하자 장로가 도망쳐 파중(巴中)으로 달아났다. 조조가 남정(南鄭)에 입성했다.

4. 주부 사마의와 유엽(劉曄)이 여세를 몰아 촉을 공략하자고 계책을 올렸으나 조조가 듣지 않았다.

5. 11월 장로가 항복하자 조조는 장합에게 삼파(三巴) 즉 파동(巴東), 파서(巴西), 파군(巴郡)의 수비를 맡겼다.

6 장합이 탕거(宕渠)까지 진격했으나 장비와의 싸움에서 지고 멈추었다.

산상왕

17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15

헌제

25년

건안

20년

7. 유비가 익주를 얻자 손권이 형주의 여러 군을 돌려 받으려고 해서 두 세력 간에 충돌이 발생했다. 손권이 장사, 영릉, 계양의 관리들을 임명하여 현지로 보냈으나 관우에 의해 쫓겨났다. 손권은 여몽에게 군사를 주어 삼군(三郡)을 접수하도록 명했다. 유비가 친히 공안을 방문했고 관우와 노숙은 익양(益陽)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대치했다. 유비는 한중이 조조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손권과 강화를 맺고 상수(湘水)를 경계로 형주의 동쪽을 손권에게 할양했다.

8. 8월에 손권이 합비를 공격했으나 장료의 요격으로 싸움에 지고 물러갔다.

산상왕

17

216

헌저

26년

건안 21년

1. 5월 조조가 위왕(魏王)이 되었다. 중위(中尉) 최염(崔琰)이 조조를 비난했다가 옥사했다.

2. 흉노의 남선우 호주천(呼廚泉)이 위왕에게 조현을 드리러 오자 돌려 보내지 않고 건업에 억류시켰다. 조조는 황실의 공녀들을 흉노의 귀족들과 혼인을 맺게 하여 그 외손으로 삼게하고 그들에게 유(劉) 씨성을 하사했다.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17

헌제

27년

건안

22년

1. 유비가 군사를 동원하여 한중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장비를 보내 지금의 감숙성 성현(成縣) 서북의 하변(下辨)에 주둔하도록 했다. 조조가 조홍(曹洪)을 보내 저지하도록 했다.

2. 오나라의 노숙이 죽고 여몽을 그 후임으로 임명했다. 손권이 육손에게 명하여 단양(丹陽)에 할거하고 있던 비잔(費棧)을 토벌하여 산월(山越)을 점령한 후에 그곳 백성들 중 수 만 명의 군사들을 징발했다.

산상왕

17

정월 왕자 교체(郊彘)를 태자로 세웠다.

218

헌제

28년

건안

23년

1. 정월, 금위(金褘), 경기(耿紀), 위황(韋晃), 길본(吉本), 길본의 아들 길막(吉邈) 등이 허창(許昌) 성내에서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 거사하여 조조를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싸움에서 패하고 모두 죽었다.

2. 3월 조홍(曹洪)이 촉군과 싸워 이기고 그 장수 오란(吳蘭)을 붙잡아 죽였다. 장비들이 군사를 거두어 후퇴했다.

3. 유비가 양평관에서 하후연, 장합, 서황 등이 이끄는 위군과 대치했다.

산상왕 18년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18

헌제

28년

건안

23년

4. 조조가 서행하여 장안에 머물렀다. 조조의 둘째 아들 조창(曹彰)이 대군(代郡)의 오환(烏桓) 족을 크게 무찔리고 그 뒤를 추격하여 지금의 하북성 양원현(陽原縣) 동쪽의 상건(桑乾)에 이르렀다. 선비의 추장 가비능(軻比能)이 보고 일족을 거느리고 항복해 왔다. 이로써 중국의 북방은 안정되었다.

5. 완성(宛城)의 수장 후음(侯音)이 기병하여 위나라에 반기를 들자 번성(樊城)에 주둔하고 있던 조인이 후음을 공격했다. 다음해 정월에 조인은 완성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후음을 붙잡아 죽였다.

산상왕 18년

219

헌제

29년

건안

24년

1. 정월 유비가 한중의 정군산(定軍山)으로 진격했다. 황충이 위나라 대장 하후연의 목을 벴다. 위나라 장수들의 장합을 추대하여 하후연의 대신하여 군권을 잡게하자 군심이 안정되었다.

2. 3월 조조가 한중으로 나아가 유비와 대치했다.

3. 5월 조조가 군사를 거두어 장안으로 돌아가자 유비는 한중을 얻게 되었다.

산상왕

19년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19

헌제

29년

건안

24년

4. 조조가 무도(武都)에 살던 저족(氐族) 5만여 명을 부풍과 천수로 옮겨 살게 하여 유비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5. 유비가 맹달(孟達)과 유봉(劉封)을 보내 방릉(房陵)과 상용(上庸)을 취하게 했다. 방릉은 지금의 호북성 방현(房縣)이고 상용은 죽산(竹山)이다.

6. 7월 유비가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에 올랐다. 유비는 위연을 한중태수로 임명하여 지키게 하고 성도로 돌아와 허정(許靖)을 태부(太傅)로, 법정을 상서령(尙書令)으로, 관우를 전장군(前將軍), 장비를 우장군, 마초를 좌장군, 황충을 후장군이르로 삼았다.

형주의 관우는 군사를 남겨 강릉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출전하여 번성의 조인을 공격했다.

7. 8월 관우가 위나라의 군사를 파하고 그 장수 우금(于禁)과 방덕(龐德)을 사로잡았다. 우금은 항복하고 방덕은 뜻을 굽히지 않아 참수되었다.

산상왕

19년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19

헌제

29년

건안

24년

8. 같은 달 관우가 번성에 대해 수공을 가하자 성은 침수되어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안의 군심이 동요되었다. 여남태수 만총이 만약 번성을 빼앗기게 된다면 앞으로는 하수 이남의 땅은 두 번 다시 위나라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인에게 간언하자 조인이 그 말을 쫓아 죽기를 각오하고 성을 굳게 지켰다.

9. 9월 승상부 군사마 사마의가 손권과 연합하여 관우를 협공하자는 계책을 내자 조조가 그 말을 따랐다. 조인을 구원하기 위해 출동한 서황이 관우와 대치했다. 손권의 명을 받은 여몽은 강릉을 기습하여 점령하고 관우가 거느린 군사들의 가족들을 위문하여 그들이 전의를 잃게 만들었다.

10. 11월 관우하가 번성에서 물러나 맥성으로 들어갔으나 손권군에 포위당하자 다시 돌격전을 감행하여 맥성에서 빠져나왔다.

11. 12월 관우가 그 일행과 함께 지금의 호북성 당양 북쪽의 장향(章鄕)에서 오군에게 사로잡혀 참수당했다.

산상왕

19년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19

헌제

29년

건안

24년

12. 같은 달 여몽이 병이 들어 죽었다. 익주목 유장(劉璋)은 이때 공안(公安)에 있다가 손권의 포로가 되었다. 손권은 유장을 익주목으로 임명하여 서천과 가까운 자귀(秭歸)에 머물게 했으나 얼마 있지 않아 죽었다.

13. 조조가 표문을 올려 손권을 표기장군의 부절을 보내고 형주목에 임명하고 남창후(南昌侯)에 봉했다. 손권이 조조에게 서찰을 보내 자신을 신하로 칭하고 천명이 조조에게 있다고 칭하했다. 조조가 손권의 서찰을 읽고 말하기를 “ 어린아이가 나로 하여금 화로불에 뛰어들도록 유인하고 있구나!”라고 했다.

산상왕

19년

220

헌제

20년

연강

延康

원년

1. 정월에 조조가 죽었다. 태자 조비(曹丕)가 위왕과 한나라 승상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 조조와 조비는 당대의 저명한 시인이기도 했다.

2. 2월 위나라의 태중대부(太中大夫) 가후(賈詡)를 태위(太尉)로, 어사대부 화흠을 상국으로 대리(大理) 왕랑(王郞)을 어사대부로 삼았다.

산상왕

20년

기원

중국

고구려

재위

대 사 표

재위왕

대 사 표

220

헌제

20년

연강

延康

원년

황초

원년

3. 상서(尙書) 진군(陳群)이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을 제정하여 각 군에 중정(中正)을 두어 모든 인물들의 구별하여 그 높고 낮음을 결정했다.

4. 7월 유비의 부장 맹달(孟達)이 위나라에 항복한 다음 위장 하후상(夏侯尙)과 서황과 함께 방릉의 유봉을 습격했다. 이로써 촉의 방릉, 상용, 서성(西城)은 위나라 땅이 되었다. 서성은 지금의 섬서성 안강(安康) 서북이다. 유봉은 도망쳐 성도로 갔으나 관운장을 구원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살해 되었다. 유봉은 유비의 양자였다.

5. 10월 조비가 한(漢)나라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위나라를 세웠다. 조비가 위문제다. 이로써 동한은 모두 12명의 황제로 196년 만에 망했고 전한까지 합하면 모두 24명의 황제와 공히 406년만에 망한 것이다.

6. 11월 한헌제를 산양공(山陽公)에 봉하고 조조를 위무제로 추존했다.

7. 12월 락양으로 천도했다.

8. 위나라의 정욱, 하후돈과 촉장 황충이 이 해에 죽었다.

산상왕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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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중국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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