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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의 위기-펌
양승국

高句麗史의 危機 (글쓴이 : 朴馨丘)
미련퉁이 2003-07-16 12:43:29, 조회 : 115, 추천 : 11


동프라이즈
개혁의 동이 터오는 그날까지-동프라이즈 (http://www.dongprise.com ) 2003-07-19


고구려사(BC 37-AD 668)ㅡ. 어찌 중국사로 해석하게 할 것인가? 한국사의 고대사는 중국사의 일부가 아니다. 중국 동북(滿州)지방 일부 지식인들의 왜곡과 혼란을 유도하는 간교한 정치적 목적이 불쾌하다. 영토문제의 분란에 초점을 둔 차단계획의 일환으로 심히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를 중국 변방민족 정권으로 규정한 오만 무례한 귀속권 주장은 규탄돼야 한다. 한국사에 대한 방자한 도전이다. 이를 두고 더 좌시할 수 없다. 이 기회에 남북이 결속해 분연히 궐기해야 한다. 저네들의 가소롭고 맹랑한 백일몽을 단호히 분쇄하는데 대오를 가다듬어야 된다.

중국의 사학계는 고구려사를 통째로 중국사에 포함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남북 민족의 무기력한 반응은 왜 또 중국사로 인정한다는 묵시적 현상인가? 그들은 평양(平壤) 천도(427 장수왕長壽王) 이후까지 흡수하려고 넘나본다.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 변강사지 연구중심이 목하 지속적으로 관련 논문 70 여 편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현지 조선족 연구자들조차 이를 긍정하듯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개탄스럽다. 저들 중구인 연구진은 그 동안(2002.7.9-2003.7.13) 관련 포럼에 100여 명을 동원했다. 이들은 길림(吉林), 흑룡강(黑龍江), 요녕(遼寧) 등 동북 3성 사회과학원과 지역대학 및 그 연구진으로 형성된 조직적인 골격이다. 이들은 1983년 발족된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 대표 왕락림王洛林 사회과학 부원장)으로 알려진다.

고구려족ㅡ. 비 한족(漢族)인 부여족 지족이다. 송화강 유역에서 발원해 BC 2세기께는 압록강 유역까지 남진했다. 여러 부족 사회에서 해모수와 유화의 아들 고주몽이 졸본 부여(桓仁)에 역사적인 고구려를 세웠다. 찬란한 고구려 문화는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의 19, 20대 시대에 황금기를 이룬다. 그 영토 또한 북은 송화강, 서는 요하(遼河), 남은 한강이남 아산, 삼척을 잇는 전성기를 과시했다. 중국의 수(隋)나라, 당(唐)나라 때의 고구려의 판도다. 우리 삼국시대 가운데 가장 빠르고 화려하게 발달한 예명의 영광이 고구려 문화가 아니던가!.

고구려의 영광ㅡ. 한(韓)민족의 정신적 근간을 이룬 서사시(敍事詩)적 파노라마였다. 압록강 유역과 대동강 유역 세 곳인 환인((桓仁), 집안(輯安), 평양(平壤)의 고분문화를 통해 우아하고 수준 높은 생활 단면을 분석하게 했다. 집안 고분 10여 기와 평양 일대에서 수집된 사신도, 당초문, 사냥, 건축양식, 전투, 씨름, 무용, 그리고 연화문, 환문, 묘비문 등은 고분 문화의 정수가 아닐 수 없다. 부장품으로는 철제품, 도제품, 금귀고리, 동 팔찌, 철제 거울 등, 신라나 백제의 유물보다 정교하고 아름답다. 삼국시대의 찬란한 문화의 슬기를 읽게 하고 남는다.

문학예술에 있어서도 단연 앞선다. 오늘에까지 전해지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반한(反漢)적 민족주의 색채에 일관된 특색을 발산하고 있다. `삼국사기' 등에서 저자의 사대주의 사상이 혐오감을 짙게 하지만, 고구려 문학 예술은 반 외세의 저항정신으로 충만해 있다. 한체시가(漢體詩歌)로 유리왕(BC 19-AD 18)의「황조가(黃鳥歌)」, 을지문덕의「유우중문시(遺于仲文詩)」, 그리고 속곡(俗曲)으로 「래원성가(來遠城歌)」「연양가(延陽歌)」「명주가(溟州歌)」를 들 수 있다. 특히 속곡 3 곡은 「고랴사(高麗史)」에 전해진다. 이들 작품에서 조우하게 되는 고구려족의 강렬한 개성과 그 결속력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한한 감명으로 충격을 가해온다.

「황조가(黃鳥歌)」는 서사시요,. 유리왕은 멋스런 풍류 시인이었다. 중국문화에 한 때 도취된 그는 한족여성을 찬미했지만, 고유문화의 보수와 반 한적 자주성을 되찾아 고구려인의 민족성을 잘 부각했다. 五言ㆍ四句「유우중문시(遺于仲文詩)」는 투철한 반수(反隋)정신과 냉소적 저항의식을 극명하게 나타냈다. 612년(영양왕瓔陽王 23) 여름 7월, `살수대전'에서의 30만 수나라 병력의 소탕은 참으로 빛나는 전과였다. 적장 우중문(于仲文)을 유인해 지략을 자랑한 을지문덕의 풍모를 이 시에서 다시 우러른다. 고구려의 귀족들이나 군사전문가들은 정복자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이 강했고 일반 민중의 의식 또한 혼연 일치의 상황에서 일탈하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인이 평가하는 고구려 정신! 신라 정신과는 다분히 다르다. 북방 기마 민족으로 압록강 연안 험준한 환경에서 익힌 고구려인의 일상성은 바로 혁명정신을 체질화하고 있어 지극히 배타적이었다. 그 같은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문학 작품은 다음 3편에서 더욱 불을 보듯 밝게 한다. 래원성(來遠城), 연양(延陽), 명주(溟州) 등은, 수나라를 거부하고 탈출해 귀순하는 사람들을 우대한 `래원(來遠)'이라든가, 남에게 한 번 몸을 주었으면 두 사람을 섬기지 않는다는 절개와 지조를 `연양(延陽)'에서, 그리고 시대적 인격과 예술의 본질로 신뢰와 책임 완성을 돕는 결혼관이 `명주(溟州)'에서 긍지를 높여, 고구려인의 이미지를 더욱 농후하게 한다.

배타성 강한 고구려인ㅡ. 한(漢)족에 대한 경멸과 반항주의를 몇 편의 문예작품에서 보듯, 그 결벽성 강한 민족정신으로 일관된 고구려사가 중국사에 귀속된다니, 빛나는 조상의 얼이 입을 오염이란 더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고구려 시대인에 대한 이 치욕적인 모독을 그 후예들이 어쩌자고 침묵으로 외면하려 하는가? 우리는 고구려가 이름 없는 중국 변방 소국이었다 해도, 그 후예로써 선대의 얼을 오늘에 분명히 재조명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누구인가? 중국의 음모는 분쇄돼야 한다.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고려사 탈취의 프로젝트는 당장 폐기하라고 외치자! 남북 협동으로 간악한 흉계 와해에 적극 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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