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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27 18:56:3433 
5. 시황동순(始皇東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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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황동순(始皇東巡)
- 진시황이 동쪽의 순행 나가 자신의 공적을 천하에 밝히다. -

시황 27년 기원전 220년, 시황이 농서(隴西)와 북지(北地)를 순수(巡狩)하고 계두산(鷄頭山)을 넘어서 회중(回中)에 이르러 머물며 위수 남안에 신궁(信宮)을 축조했다. 다시 신궁(信宮)의 이름을 극묘(極廟)로 바꾸고 그 모습을 마치 북두칠성의 형상를 닮게 하였다. 극묘(極廟)에서 력산(酈山)까지 길을 뚫어 통하게 하고 감천궁(甘泉宮) 앞에 전전(前殿)을 건설하고 용도(甬道)를 만들어 함양까지 통하게 했다. 그 해에 모든 관리들의 작위를 한 계급씩 올려주었다. 치도(馳道)①를 건설했다.
시황 28년 기원전 219년, 시황이 동쪽의 군현을 순무하기 위해 출행 길에 추역산(鄒嶧山)②에 올랐다. 산 위에 비석을 세우고 노(魯) 땅의 유생(儒生)들과 의논하여 비석에 진나라의 큰 덕을 찬양하는 글을 새겨 넣도록 했다. 다시 유생들에게 봉선(封禪)과 산천에 지내는 망제(望祭 : 명산대천을 찾아서 멀리 쳐다보며 올리는 제사)의 의식에 대해 물었다. 태산에 올라 비석을 세우고 제사를 올린 후에 내려올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큰 나무 밑으로 몸을 피했다. 그래서 시황은 그 나무에게 오대부(五大夫)의 작위를 내렸다. 양보산(梁父山)에 다시 선(禪)을 행하고 다시 그곳에 비석에 비문을 새겼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제께서 보위에 오르시어 세상의 법도를 밝게 하시고 신하들은 마음을 닦고 근신하였다. 황제 재위 26년에 처음으로 천하를 하나로 만드시어 세상의 모든 제후들이 와서 복종하지 않은 자가 없게 되었다. 몸소 먼 변방까지 순수하시어 그곳의 백성들을 진무하시고 태산에 올라 동쪽의 끝을 바라보시니 따르던 신하들이 황제의 행적과 사업의 본업을 생각하여 황제가 이룩한 공덕을 찬양하였다. 천하는 치세의 도가 행해져 태평성대가 되었도다. 모든 산업은 그 마땅함을 찾고 일체의 법칙은 크게 진작되어 대의는 맑고, 밝으며, 아름답고 선하게 되어 후대 자손들에게 전하여 영원히 승계 되어 변하지 않게 될 지어다. 성스러운 황제께서는 영명(英明) 통달하시어 이미 천하를 평정하시고 추호도 국정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도다. 매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시고 저녁에는 잠자리에 늦게 드시면서 천하를 이롭게 할 원대한 계획을 도모하시고 백성들을 깨우치고 나라를 흥성 시킬 일에 골몰하셨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널리 깨우치고 멀거나 가까운 곳을 물론하고 치세를 이루어 황제의 성스러운 뜻을 사람이면 사람마다 높이어 받들었다.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을 분명히 구분하셨고 남녀가 각기 예에 따라 유별하게 하였고 개개인의 직분에 충실하게 하셨다. 안과 밖이 분명히 구분되게 빛을 비추고 황제가 임하는 곳은 모두가 청정하고 편안하게 되었도다. 후세 사람들은 황제의 은혜로운 정치를 영원히 이어 받을 지어다. 교화는 영원히 행해져야 할 것이며 이 유조(遺詔)는 반드시 받들 것을 힘써 경계(儆戒)하노라!」
시황이 양보산에서 내려와 발해만을 끼고 돌아 동쪽으로 가서 황현(黃縣)과 추현(腄縣)을 지나 성산(成山)에 올랐다. 다시 서쪽의 추현(腄縣)으로 나가 지부산(之罘山)에 올라 그 곳에 비석을 세우고 진나라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새기도록 했다.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낭야산(琅邪山)에 오르자 매우 기뻐하며 그 곳에서 3개월을 머물렀다. 다시 그 곳의 백성들 3만 호를 낭야대(琅邪臺) 밑으로 옮겨 살게 하고 나이가 12세 미만인 사람들에게는 그 요역(徭役)과 부세(賦稅)를 면제해 주었다. 낭야대를 증축하고 석비를 세우고 진나라의 공덕을 노래한 시를 새기고는 자기의 득의한 심정을 노래했다.
「황제께서 재위에 계신지 28년만에 새로운 시대를 여시였다. 법도가 바르게 정비되고, 만물의 질서가 바로 잡히니 인사를 분명히 하시고 부자지간은 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성스러운 지혜와 인의로써 천하의 도리를 밝히셨다. 또한 동쪽으로 나가시어 그 땅을 순무하셨다. 대사를 끝내시니 곧 바닷가에 당도하셨다. 황제의 공덕으로 모두가 본업에 열심히 살고 있다. 농업은 장려하시고 말업(末業)은 억제하니 백성들의 생활은 풍부하게 되고 온 천하는 한 마음 한뜻이 되었다. 기계와 기구의 규격은 한가지로 통일 하셨고 문자는 한가지로만 쓰게 만드셨다. 해와 달이 비추는 곳에 배와 수레가 다닐 수 있게 만드셨다. 사람들은 모두가 그 수명대로 천수를 누리고 살게 되어 누구나 뜻한 바를 얻지 못한 자가 없게 되었다. 사시의 때에 맞추어 일을 행하시니 과연 대진(大秦)의 황제폐하이시로다. 열악한 습속을 정비하시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천리 길을 가시어 백성들을 밤낮으로 돌보시느라 쉴 틈이 없으셨다. 의심을 없애고 법률을 정하시니 백성들 중 아무도 법과 기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없게 되었다. 지방을 다스리는 수령들이 나누어 일을 맡으니 각 급 관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알게 되어 모든 조치는 타당하게 되고 바르게 되지 않은 것은 없었다. 황제의 지혜로움이 사방을 밝히기 때문이다. 존비와 귀천은 모두 자기의 분수를 넘지 않으며 간사한 자는 용납하지 않으며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만을 구하셨다. 일이 크거나 작거나 있는 힘을 다하여 감히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셨다. 먼 지방의 궁벽한 곳의 관리도 오로지 엄숙하고 장엄한 태도로 임하여 정직과 충성을 다해 정치가 상궤를 벗어나지 않게 하셨다. 세상을 어지럽힌 자는 죽이고 세상에 해를 끼친 자는 제거하시어 이를 일으키시어 복을 가져다 주셨다. 때에 맞추어 일을 조절하니 모든 성읍은 번창하게 되었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게 하기 위해 군사와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육친(六親)들이 서로 보살피며 의지하니 세상에 도적이 없게 되었다. 백성들이 교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세상의 법령과 제도를 빠짐없이 알게 되었다. 육합(六合) 안의 모든 천지만물은 황제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도다. 서쪽으로는 유사(流沙)를 건넜고 남쪽으로는 북호(北戶), 동쪽으로는 동해(東海), 북쪽으로는 대하(大夏)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넓히셨다. 세상의 어디에 살던 사람이건 황제의 신하가 아닌 사람은 없게 되었다. 이룩하신 공덕은 오제(五帝)를 뛰어넘으시고 그 은혜는 말과 소에게도 미쳤다. 황제의 은덕을 입지 않은 것은 없어 각기 자기 자리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천하를 하나로 합치고 호칭을 황제로 한 시황은 동쪽의 땅으로 순행을 행하여 백성들을 위무하고 랑야(琅邪)에 이르렀다. 시황을 수종한 열후(列侯) 무성후(武城侯) 왕리(王離), 열후(列侯) 통무후(通武侯) 왕분(王賁), 윤후(倫侯) 건성후(建成侯) 조해(趙亥), 윤후(倫侯) 창무후(昌武侯) 성(成), 윤후 무신후(武信侯) 풍무택(馮毋擇), 승상(丞相) 외림(隗林), 승상(丞相) 왕관(王綰), 경(卿) 이사(李斯), 경(卿) 왕무(王戊), 오대부(五大夫) 양규(楊樛) 등이 해상(海上)에서 의논하였다.
「옛날의 임금이란 다스렸던 땅은 불과 1000리를 넘지 못했고 제후들은 각기 그들이 봉해진 땅에 의지하여 어떤 제후들은 래조하여 조현을 하고 어떤 제후들은 조현을 드리지 않으면서 서로 간에 강역들을 침략하고 천하를 어지럽혀 전쟁이 그치지 않았으나 그들은 자기들의 업적을 돌이나 청동에 새겨 스스로 기념했다. 옛날의 삼황오제는 그 가르침이 같지 않은 관계로 세상의 법도가 분명하지 않게 되자 귀신들의 힘을 빌려 원방(遠方)을 속였다. 그러나 실제와 명분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지배는 오래가지 않았으며 그들의 몸이 죽기도 전에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법도가 행해지지 않게 되었다. 오늘 황제가 해내(海內)를 통일하여 모두 군현으로 만드셨으니 세상은 평화롭게 되었다. 종묘의 덕을 밝히시고 도를 체득하여 덕을 행하셨으니 황제란 존호를 크게 이루셨다. 이에 군신들이 의논하여 황제가 이룩한 공덕을 칭송하고 비문에 새겨 후세에 영원히 전하고자 한다.」
해상에서 의논이 끝나자 제인(齊人) 서불(徐市) 등이 서장(書狀)을 올려 바다 가운데에 삼신산(三神山)이 있는데 이름하여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嬴洲山)이라고 하는데 신선(神仙)이 산다고 했다. 몸을 정결히 간수한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명을 청하여 삼신산의 신선을 찾겠다고 했다. 그래서 서불(徐市)에게 동남동녀 수천 명을 주어 바다로 나가게 하여 신선을 모셔오라고 했다.
시황이 도성으로 돌아오던 중 팽성을 지날 때 목욕재계하고 사당에 올라 기도하기를 사수(泗水)에 빠진 주정(周鼎)을 건지기 위해 천여 명의 인부들을 물속으로 들여보내 찾아보게 하였으나 결국은 찾지 못했다. 이어서 시황이 행렬을 서남쪽으로 바꾸어 회수(淮水)를 건너 형산(衡山)과 남군(南郡)을 각각 방문했다. 다시 시황 일행의 행렬이 부강(浮江)을 건너 상산사(湘山祠)에 이르렀다. 길을 가던 중에 큰바람을 만나 오랜 시간 동안 상강(湘江)을 건널 수 없었다. 시황이 주위의 박사(博士)들에게 물었다.
「상군(湘君)은 어떤 신(神)인가?」
박사들이 대답했다.
「듣자오니 요임금의 딸이며 순임금의 부인입니다. 상군이 죽어 장사 지낸 곳이라고 합니다.」
진시황이 듣고 화를 내며 3천 명의 죄수들을 풀어 상산(湘山)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게 하여 붉은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렸다. 남군(南郡)으로 나와 무관(武關)을 통과하여 함양으로 돌아왔다.

주석
①치도(馳道) : 진나라가 건설한 황제전용 도로다. 진시황 27년 기원전 220년 공사를 시작했다. 함양을 중심으로 2개의 간선도로가 있었다. 하나는 동쪽의 연(燕)과 제(齊)로 통했고, 다른 하나는 남쪽의 오(吳)와 초(楚)로 통했다. 도로의 넓이는 50보(약 70미터)에 3장(약 6.5미터 마다 가로수를 심고 그 밖에는 축대를 두껍게 쌓아 철추를 가지고 암살하려고 하는 자객을 피하려고 했다. 가로수의 수종은 모두 청송이었다.
②추역산 :고대의 산이름으로 주역산(邾嶧山), 추산(鄒山), 혹은 역산(嶧山)으로도 불린다. 지금의 산동성 추현(鄒縣) 동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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