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왕이 장이와 진여의 계책을 받아들여 군사를 서쪽으로 보내지 않고 한광(韓廣)과 이량(李良)을 장수로 삼아 연과 상산(常山)의 땅을 각각 공략하도록 했다. 그리고 장염(張黶)에게는 군사를 이끌고 상당(上黨)을 공략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윽고 한광이 연 땅에 당도하자 연나라 사람들이 그를 연왕으로 세웠다. 조왕이 즉시 장이와 진여와 함께 북쪽으로 진격하여 연나라와의 경계에 이르렀다. 그때 조왕이 진영 밖으로 나갔다가 연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히는 몸이 되었다. 연나라 장수가 조왕을 가둬 놓고 조나라 땅의 반을 주면 조왕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계속해서 조나라의 사자가 연나라 진영으로 갔지만 연나라 진영은 곧바로 사자를 죽이고 조나라 땅만을 요구했다. 이에 장이와 진여가 노심초하고 있는데 조나라 군영의 막사 안에서 잡역을 맡아 하고 있는 군졸 한 명이 자기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장군들을 위해 사자로 가서 연나라 장수를 설득하고 조왕을 모시고 돌아오겠다.」
막사 안의 동료들이 듣고 모두 웃으며 말했다.
「연군 진영에 사자로 열 명이 넘게 갔다가 곧바로 모두 살해되었는데 네가 어떻게 능히 조왕을 데리고 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그 사졸이 곧바로 진영 밖으로 나아가 연나라 영채의 누벽 앞에 당도한 후에 연나라 장수에게 물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아십니까? 연나라 장수가 대답했다.
「조왕의 석방을 위해 오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장이와 진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현능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아십니까?」
「그거야 그들의 왕을 구하려고 하지 않겠느냐?」 이에 조나라 사졸이 웃으면서 말했다.
「장군께서는 그 두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무릇 무신, 장이, 진여는 말에 채찍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조나라의 수십 개의 성을 얻었음으로 그들 각각은 모두 남면하여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어찌 그들이 경상의 자리로 만족하여 인생을 끝내려고 하겠습니까? 신하와 군주의 신분은 결코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독립하여 왕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조나라의 민심을 잡기 위해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먼저 무신이 왕이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명분상으로는 조왕을 구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연나라가 죽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조왕이 죽으면 두 사람은 조나라를 나누어 각각 자립할 겁니다. 무릇 하나의 조나라로도 연나라를 쉽게 여기는데 항차 두 사람의 현능한 왕이 좌우에서 서로 협력하여 자기들의 왕을 죽인 죄를 물어 공격한다면 연나라의 멸망은 불문가지 아니겠습까?」
연나라 장수가 그 사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조왕을 석방했다. 그 사졸은 조왕을 수레에 태우고 조나라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20-01-30 14: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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