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지록위마(指鹿爲馬)
- 사슴을 말이라고 칭하여 권력을 과시하는 조고. -

이세 황제 3년 기원전 207년, 진나라의 토벌군을 이끈 장함이 정도에서 초나라 기의군을 대파하고 항량을 전사시킨 후에 북상하여 조왕 조헐(趙歇)과 상국 장이(張耳)가 도망쳐 농성하고 있던 거록(鉅鹿)을 포위했다. 이에 항량의 뒤를 이은 초나라의 상장군이 된 항우(項羽)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진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거록을 구했다.
여름 장함이 여러 차례 싸움에서 지자 이세가 사자를 보내어 질책했다. 장함이 두려워하여 장사 사마흔을 보내 자기가 싸움에 진 사연을 설명하게 했다. 조고가 접견도 허락하지 않고 아무런 지시도 내려주지 않았다. 사마흔이 두려워하여 도망쳤다. 조고가 군사를 풀어 잡아들이게 했으나 뒤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사마흔이 장함을 보고 말했다.
「조고가 모든 일을 중간에서 전단하고 있어 장군께서 싸워 공을 세운다고 해도 죽게 되고 공을 세우지 못하면 못한 대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항우가 진나라 군사들을 세차게 공격하여 왕리(王離)를 사로잡고 장함 등은 군사를 거느리고 제후들에게 항복해 왔다.
한편 이세는 이사가 죽자 조고를 중승상(中丞相)중승상(中丞相) : 조고가 궁중에서 일했던 환관출신이기 때문에 중자를 붙였다.
에 임명하여 진나라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전결하도록 했다.
그해 8월 기해일에 조고가 란을 일으켜 이세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군신들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을까 걱정하여 먼저 군신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사슴 한 마리를 이세황제에게 바치며 말했다.
「이것은 말이옵니다.」
이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승상이 잘못 알고 계십니다. 어찌하여 사슴을 말이라고 하십니까?」
이세가 좌우를 보고 물었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침묵하고 어떤 사람은 말이라고 하면서 조고에 아첨하며 따랐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사슴이라고 했다. 이세가 놀라 스스로 미혹되었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태복(太蔔)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태복이 말했다.
「폐하께서 봄과 가을에 교외에 나가 제사를 올려 종묘들의 신령들을 받들 때 재계(齋戒)재계(齋戒) : 고대에 제사를 지낼 때 금기시 했던 계율을 말한다. 여자를 멀리하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불온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
를 분명하게 행하지 않아 이렇듯 정신이 혼미해지셨습니다. 마땅히 재계를 행하여 덕을 쌓아야만합니다.」
그래서 이세는 즉시 재계를 행하기 위해 상림원으로 들어갔다. 매일 활을 들고 사냥을 나가 놀던 이세가 어느 날 길을 잘못 들어 상림원으로 들어온 행인을 활로 쏘아 죽였다. 조고가 그의 사위인 함양령(咸陽令) 염락(閻樂)을 시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도적이 사람을 죽여 상림원으로 옮겨 놓았다고 탄핵하도록 했다. 조고가 이세에게 간했다.
「천자께서 무고한 사람을 죽였으니 이것은 하늘이 금하는 일입니다. 귀신들이 제사 밥을 먹지 않고 하늘로 하여금 재앙을 내릴 겁니다. 마땅히 멀리 떨어져 별궁으로 몸을 피해 재앙을 면하십시오.」
즉시 상림원에서 나와 망이궁(望夷宮)망이궁(望夷宮) : 지금의 섬서성 경양현(涇陽縣)에 있던 진나라의 별궁이다. 함양 북동 약 30키로에 있다.
으로 거처를 옮긴 이세가 밤에 잠을 자다가 자기의 좌참마(左驂馬)를 물어뜯는 백호를 죽이는 꿈을 꾸고 나서 마음이 매우 불쾌하여 점을 쳐서 해몽을 하게 하였다. 점괘가 다음과 같이 나왔다.
「경수(涇水)의 귀신이 재앙을 일으킬 것이다.」
이세가 곧 망이궁에서 목욕재계하고 경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백마 4마리를 물에 던져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