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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26:194231 
제36회. 親讐免禍 (친수면화) 三立晉君(삼립진군)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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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36회

親讐免禍三立晉君(친수면화 삼립진군)

원수를 용납하여 화를 면하는 진문공(晉文公)과

당진의 군주를 세 번 세우는 진목공(秦穆公)

1. 철수개화(鐵樹開花)

- 때가 되면 쇠막대기에도 꽃이 피는 법이다. -

공자 중이를 따라 섬진에 들어와서 머물고 있던 호모(狐毛), 호언(狐偃) 형제는 부친 호들이 회공(懷公)에게 해를 당해 참수형에 처해 졌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일행을 이끌고 찾아온 조쇠가 호씨 형제를 위로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슬퍼만 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차제에 공자님을 만나 뵙고 대사를 상의해 봅시다.」

호씨 형제가 눈물을 거두고 조쇠 등의 일행과 같이 가서 중이를 만났다. 호언이 말했다.

「혜공이 이미 죽고 그 아들 어(圉)가 뒤를 이어 당진의 새로운 군주 자리에 올랐습니다. 신군이 나라 밖으로 출망(出亡) 중인 당진의 모든 선비들에게 기한을 정하여 들어오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만일 기한 내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죄를 가족들에게 묻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친이 명을 어기고 우리 두 형제를 부르지 않자 괘씸하게 생각한 신군이 부친을 살해했습니다.」

호씨 형제가 말을 마치자 가슴이 메어져 다시 통곡했다. 중이가 위로의 말했다.

「두 외숙은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귀국하여 복국하게 되면 원수를 필히 갚아 주리다!」

중이는 즉시 수레를 준비하게 하여 목공에게 가서 당진의 정세를 고했다. 목공이 말했다.

「이것은 하늘이 당진을 공자에게 주려고 하는 징조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과인이 마땅히 공자를 위하여 이 일을 맡으리라!」

조쇠가 중이를 대신해 말했다.

「전하께서 공자님을 위해 힘이 되려고 하신다면 마땅히 시간을 다투어 행하십시오. 태자어가 개원하고 태묘에 그의 즉위를 고하게 되면 군신간의 직분이 정해져 일이 어렵게 꼬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목공이 조쇠의 말에 동의하고 마음속에 새겼다. 중이가 목공에게 감사의 말을 표하고 관사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는 데 문을 지키는 관리가 들어와서 고했다.

「당진에서 사람이 와서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고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접견을 허락한 중이가 이름과 성을 묻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신은 대부 란지(欒枝)의 아들 란돈(欒盾)이라고 합니다. 새로 즉위한 군주는 시기하는 마음이 많아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써 위엄을 세우고 있어, 백성들은 모두가 원한을 품고 군신들은 마음속으로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군의 심복으로는 오로지 여성(呂省)과 극예(郤芮) 두 사람 뿐으로 극보양(郤步揚), 한간(韓簡) 등의 원로대신들과는 사이가 소원하여 임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밖의 다른 대부들도 모두 신군의 처사에 마음속으로 심히 불복하고 있어 만일 공자께서 귀국하신다 해도 그들의 저항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의 부친께서 이미 극진(郤溱), 주지교(舟之僑) 등과 약속하여 가병을 모아 공자님이 당도하시면 안에서 내응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란돈의 전하는 말에 크게 고무된 중이는 그에게 돌아오는 새해에는 기필코 하수를 건너 본국으로 귀국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이의 약속을 받아 낸 란돈은 곧바로 당진으로 돌아갔다. 중이가 하늘을 향하여 축원하는 기도를 올리고 시초(蓍草)를 뽑아 점을 쳐 태괘(泰卦)①라는 점괘를 얻었다. 육효(六爻)의 점사가 모두 길했다. 중이가 의심하여 호언을 불러 점괘의 길흉을 물었다. 호언이 절을 올리고 칭하의 말을 올렸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 짝을 지어 같이 즐기고 작은 것은 가고 큰 것이 도래할 대길의 괘입니다. 공자님의 이번 행차는 나라를 얻으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업도 함께 이루게 된다는 괘입니다.」

중이가 란돈이 전하고 간 말을 전하자 호언이 듣고 말했다.

「공자께서는 내일 당장 진백을 뵙고 군사를 청하십시오! 일이 늦어져 실기하면 안 됩니다.」

호언의 말을 따라 중이가 다음날 다시 입조하여 목공을 알현하고 란돈과 약속한 일을 고했다. 목공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과인은 공자가 하루라도 빨리 귀국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섬진의 사대부들이 우리의 일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중입니다. 과인은 마땅히 공자의 귀국행차를 하수 강안까지 전송하리라!」

중이가 인사를 드리고 물러 나왔다. 목공이 중이를 도와 당진의 군주로 세우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한 비표가 달려와 선봉이 되어 있는 힘을 다하여 돕겠다고 자원했다. 목공이 허락했다. 비표는 당진의 혜공에게 살해된 비정보의 아들로 란을 피해 섬진으로 들어와 대부의 직에 있으면서 부친의 원수를 갚을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태사가 길일을 점쳐 그해 겨울12월로 출병일로 택했다. 목공이 출병하기3일 전에 구룡산(九龍山)에다 연회를 열고 중이의 출발을 축하했다. 이와 함게 중이에게 벽옥10쌍, 마필400마리를 하사하고 심지어는 수레의 겉을 둘러칠 장막과 수레 안의 바닥에 깔 자리 등 온갖 기물을 준비하여 주고 그 밖의 양식과 마초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중이를 끝까지 따라 다녔던 조쇠 등 아홉 사람에게는 각기 벽옥 한 쌍씩과 말 네 필을 따로 주었다. 중이와 그 일행들은 목공에게 재배하고 감사의 말을 올렸다.

이윽고 출병하는 날이 되자 목공이 백리해(百里奚), 요여(繇余), 공자집(公子縶), 공손지(公孫枝), 선봉 비표(丕豹) 등과 함께 병거400승을 손수 거느리고 공자 중이를 호위하여 옹성(雍城)의 동문을 나와 하수를 향해 군사들을 행군시켰다. 섬진의 세자 앵(罃)은 평소에 중이와 서로 가까이 지냈던 관계로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여 차마 헤어지지 못하고 위양(渭陽)②까지 따라와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했다. 당시중이가 당진으로 들어갈 때의 모습을 노래한 시가 있다.

호랑이 같은 맹장에 이리와 같은 정예한 병사들인데

모두가 공자를 도와 국경밖에 섰다.

회공이 호돌을 죽여 스스로를 허물었으니

어찌 손바닥만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었겠는가?

猛將精兵似虎狼(맹장정병사호랑)

共扶公子立邊疆(공부공자입변강)

懷公空自誅狐突(회고공자주호돌)

只手安能掩太陽(지수안능엄태양)

2. 침벽맹하(沈璧盟河)

- 벽옥을 물속에 던져 노신들과 영화를 같이 누리겠다고 하수의 신에게 맹세하는 진문공-

주양왕16년인 기원전635년은 당진의 회공(懷公) 어(圉) 원년이다. 그 해 봄 정월에 섬진의 목공과 당진의 공자 중이는 행군을 계속하여 황하 강변에 당도했다. 그때는 이미 강을 건너는데 필요한 배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목공이 다시 전별연을 마련하여 중이의 전도를 빌어 주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번에 공자가 귀국하여 군위에 오르게 되면 혜공 부자처럼 절대 과인부부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될 것이오!」

목공이 즉시 군사를 반으로 나누어 그 절반을 공자집과 비표에게 주면서 중이를 당진의 도성까지 호송하라고 명하고 자기는 남은 절반의 군사를 이끌고 황하 서안에 주둔하며 바람에 펄럭이는 정기(旌旗)를 바라보며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호숙(壺叔)은 공자 중이와 그 일행들의 재물과 가재를 맡아 관리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당진으로부터 공자를 따라나서서 조와 위나라 사이를 굶주리며 유랑할 때 죽을 뻔 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또한 바꾸어 입을 옷도 없었고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있는 양식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윽고 오늘은 황하를 건너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행장을 수습하게 되었다. 그는 매일 사용하여 부서져 못쓰게 된 대나무 그릇과 나무로 깎아 만든 목기에 해진 돗자리와 찢어진 수레의 휘장하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챙기고 심지어는 먹다 남은 술과 음식까지도 마치 귀한 보물처럼 다루며 하나도 빠짐없이 배 안으로 옮겨 싣게 했다. 중이가 보고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오늘 당진에 들어가 군주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데 그때가 되면 진귀한 음식과 보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부서져 못쓰게 된 물건들이 도대체 어디에 소용이 된단 말인가?」

중이는 그 즉시 호숙에게 큰소리를 쳐서 오래 동안 가지고 다녔던 기구들을 강물 속으로 던지게 하여 하나도 남겨 놓지 않도록 했다. 호언이 보고 한탄했다.

「공자께서 아직 부귀를 얻기도 전에 옛날의 어려웠을 때의 처지를 먼저 잊고자 하니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옛 사람은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구하지 않겠는가? 곤궁할 때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 준 우리들을 마치 오래 사용하여 부서지고 헤어진 일반 기물처럼 여기는 뜻이니 나는 저 험난했던19년 동안의 고생을 헛되게 할 수야 있겠는가? 오늘 아직 강을 건너기 전인 이 기회를 이용하여 주군의 곁을 떠나야 후일에 다시 서로 생각할 때가 있지 않겠는가?」

호언이 즉시 목공이 준 백옥 한 쌍을 들고 나와 중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바치면서 말했다.

「공자께서 지금 강을 건너시게 되시면 그곳은 바로 꿈에도 그리던 당진의 땅입니다. 안으로는 수많은 당진의 신하들이, 밖으로는 섬진의 장수들이 공자님을 도울 것이라, 신은 당진의 국권이 혹시라도 공자님의 손에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신의 한 몸은 공자님을 따라 간들 아무런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원컨대 섬진에 남아서 공자님의 외신이 되고자 합니다. 제가 받은 백옥 한 쌍을 바치오니 저의 조그만 성의를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중이가 크게 놀라 말했다.

「내가 바야흐로 외숙과 같이 부귀를 함께 누리고자 하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십니까?」

「신에게는 공자님께 세 가지의 죄를 지었음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감히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그 세 가지 죄란 도대체 무엇 무엇이오?」

「신이 듣기에 ‘성스러운 신하는 능히 그 군주를 높일 수 있으며 어진 신하는 능히 그 군주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다’ 했습니다. 지금 신이 불초하여 공자님으로 하여금 오록(五鹿)③의 땅에서 곤궁하게 했으니 그 첫 번째 죄이고 조·위(曹衛) 두 나라로부터 모욕을 받게 했으니 그 두 번째이며 공자께서 술에 취한 틈을 이용하여 제나라에서 끌고 나와 공자의 분노를 샀으니 그 세 번째 죄입니다. 아직까지 공자께서 객지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시게 되었다면 제가 감히 떠나겠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으나 오늘 드디어 고국 땅으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신은20년 가까이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하도 놀랜 일을 많이 당하여 혼백이 끊어질 지경에 있으며 피로한 심신은 닳아져 없어질 찰나에 있습니다. 이는 마치 저 닳아 헤어져 깨져서 다시 꺼내어 쓸 수 없는 그릇이거나, 찢어지고 부서져 다시는 수레를 치장하는 데 사용할 수 없는 돗자리나 장막과 같은 신세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때문에 신이 공자님의 곁에 남아 있더라도 전혀 이로운 점도 없고, 또한 신이 비록 떠나더라도 손해되는 일도 없다고 생각되어, 이에 신이 공자님 곁을 떠나고자 간청을 올리는 것입니다.」

중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외숙께서 나를 이렇듯 심히 책망하니 이는 나의 크나큰 허물이라!」

중이는 그 즉시 호숙에게 명하여 이미 버린 기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거두어 배에 다시 싣게 하고 강을 향해 맹세했다.

「내가 환국 후 당진의 군위에 올랐을 때 만약 여러분들의 노고를 잊고 또한 그들과 같이 힘을 합하여 정사에 힘쓰지 않는다면 내 후손들은 끊어질 것이다!」

중이가 말을 마치자 호언이 가져와서 바치려고 한 벽옥을 집어서 강물에 던져 버리고 다시 맹세했다.

「하백은 이것으로서 내가 한 말을 지켜보시라!」

그때 다른 배에 타고 있던 개자추가 중이와 호언이 서로 맹세를 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공자가 환국할 수 있는 것은 곧 하늘의 뜻이라 하겠는데 어찌 자범이 하늘의 공을 훔치려 하는가? 이렇듯 부귀나 탐하는 무리들과 같이 조정에 나가서 벼슬을 한다는 것은 나의 수치로다!」

이때부터 개자추는 물러나 초야에 묻혀 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중이가 황하를 건너 동쪽을 향하여 계속 진군한 끝에 영호(令狐)④라는 곳에 당도했다. 영호를 지키는 관리의 이름은 등혼(鄧惛)이었다. 그는 군사를 소집하여 성에 올라 중이의 군사에 대항했다. 섬진군이 영호성을 겹겹이 애워 싼 후에 공격을 퍼부었다. 와중에 선봉장 비표가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돌격하여 먼저 성루에 오르더니 마침내 성을 함락시키고 등혼을 잡아 참수했다. 영호가 섬진군의 일격에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주위의 상천(桑泉), 구쇠(臼衰), 망풍(望風) 등의 성주들이 달려와 중이에게 항복했다. 하곡의 여러 성주들이 중이에게 항복했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놀란 회공은 당진의 경내에 있던 모든 군사와 병거들을 소집하여 여성을 대장으로 극예를 부장으로 삼아 중이와 섬진군을 막도록 했다. 여·극 두 사람은 당진군을 이끌고 출병하여 여류(廬柳)에서 섬진군의 진격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섬진군의 용맹을 겁낸 당진의 군사들은 감히 앞으로 나가 싸우려는 생각을 갖지 못하고 진채만을 굳게 지킬 뿐이었다. 섬진의 대장 공자집이 사람을 시켜 목공이 쓴 편지를 여성과 극예의 군중에 보냈다.

「과인이 당진에게 베푼 은혜는 가히 지극하다 하겠다. 부자가 대를 이어 은혜를 저버리고 우리 섬진을 보기를 마치 원수 대하듯이 했다. 과인이 그 부친 되는 자에게는 참았으나 다시 그 아들 되는 자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공자 중이는 그 사람됨이 어질고 은혜로운 사람이라 천하에 이름을 얻고 있으며 많은 재사들이 그를 보좌하고 있다. 또한 하늘과 백성들이 번갈아 가며 돕고 있어 나라밖이나 나라안이나 천하의 인심이 모두 그에게 쏠리고 있다. 과인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하수 강안에 주둔하고 공자집에게 명하여 중이 공자를 호송하여 환국시켜 당진의 사직을 이어 제사를 올리라고 했다. 그대 대부들은 만약에 어진 것과 어리석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다면 창을 돌려 잡고 나와서 중이 공자를 영접하여 이 한 번의 거사로 화를 복으로 만들어야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여성과 극예가 목공의 편지를 읽기를 마치고 반 시각이 지나도록 서로 입을 열지 않았다. 우선 섬진의 군사들에 대항하여 싸움을 하고 싶어도 마음속으로 옛날 용문산에서 싸울 때처럼 용맹한 섬진의 군사들을 이길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항복하자니 또한 중이가 자기들에게 원한을 품고서 이극과 비정보의 원수를 갚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결국 이리저리 생각한 끝에 한 가지 궁리를 짜내어 즉시 공자집에게 답장을 썼다.

「중이 공자님에게 죄를 지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그것 때문에 감히 갑옷을 벗이 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님을 추대하려고 하는 일은 실은 우리들도 바라던 바입니다. 만일 공자님을 따라다니며 유랑생활을 하셨던 여러분들이 다 같이 우리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하늘과 태양을 향해 맹세하고 공자께서 그것을 책임지시겠다고 하신다면 저희가 어찌 감히 명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공자집은 두 사람이 보낸 답장을 읽고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그는 즉시 단거를 타고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류로 달려갔다. 극예와 여성 두 사람이 흔연한 마음으로 진영 밖으로 나와서 마중했다. 여·극 두 사람은 자기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말했다.

「우리들이 항복하고 중이 공자님을 맞이하고 싶으나, 단지 공자께서 용납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주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약속을 해주신다면 믿고 항복하겠습니다. 」

「대부들께서 만약 군사를 서북쪽으로 물리친다면 제가 두 분의 진실 된 마음을 공자께 고하겠습니다. 맹세로써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공자집의 여성과 극예가 허락하고 공자집과 헤어진 후 즉시 군령을 내려 군사들을 뒤로 물리쳐 순성(郇城)⑥에 주둔했다. 중이가 호언을 시켜 공자집과 같이 순성으로 가서 여성과 극예 두 사람과 만나 보도록 명했다. 여·극 두 사람과 만난 호언은 희생을 잡아 삽혈을 한 후에 다 같이 힘을 합하여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중이를 당진의 군주로 추대하기로 맹세했다. 맹세의 의식을 끝낸 여·극 두 사람은 사람을 호언에게 딸려 구쇠로 보내어, 중이를 순성으로 모셔 오게 했다. 이윽고 순성에 당도한 중이를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은 대군의 사열대 앞에서 영접하고 중이를 당진의 군주로 받들겠다고 군사들 앞에서 선포했다.

한편 강도(絳都)에 남아 있던 회공은 여성과 극예로부터 오래도록 소식이 없어 싸움을 독촉하기 위해 시인 발제를 사자로 보냈다. 당진군이 주둔하고 있던 여류를 향하여 달려가던 발제는 도중에 여성과 극예가 군사들을 순성으로 물리치고 호언, 공자집과 강화를 맺은 뒤에 회공을 버리고 중이를 추대하기로 한 소식을 들었다. 발제가 가던 길을 멈추고 강도로 돌아와 회공에게 고했다. 회공이 크게 놀라 급히 극보양, 한간, 란지, 사회 등 일반 대신들을 불러 대책을 물으려고 했다. 그러나 회공이 부른 일반 대신들이란 모두가 공자 중이를 따르던 사람들이었다. 평소에 회공이 모든 일을 여성과 극예 두 사람에게만 맡기고 자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이제 와서 불러 대책을 의논한다고 하자 마음속으로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불평했다.

「지금 주군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여성과 극예가 오히려 배반을 하여 일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있는데 지금에 와서야 우리를 불러 대책을 묻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회공이 부른 대신들은 하나같이 병을 핑계하거나 급한 용무를 대어 한 사람도 응하지 않았다. 회공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옛날에 몰래 도망치면 안 되었던 일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와 섬진의 환심을 잃게 되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 버렸구나!」

발제가 곁에 있다가 말했다.

「당진의 모든 신하들이 신군을 맞이하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신이 말고삐를 잡겠으니 잠시 고량국(高梁國)⑦으로 몸을 피하였다가 다시 자세한 계책을 세우십시오.」

회공은 발제가 모는 수레를 타고 고량국으로 도망쳤다.

한편 중이는 여성과 극예의 영접을 받고 당진군 진영으로 들어갔다. 여·극 두 사람이 막사 안에서 무릎을 끓고 머리를 조아리며 죄의 용서를 빌자 중이가 좋은 말로 위로했다. 이어서 조쇠, 호언, 서신 등 공자를 따라 다니며 유랑생활을 했던 여러 사람이 서로 상견하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토로하여 누구도 두 사람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있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줬다. 두 사람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중이를 모시고 곡옥성으로 입성하여 무공을 모신 묘에 들어가 참배했다. 란지, 극진(郤溱)을 위시하여 사회, 주지교, 양설직(陽舌職), 순림보(荀林父), 선멸(先蔑), 기정(祁鄭), 선도(先都) 등30여 명에 달하는 당진국의 구신들이 강도를 나와 곡옥으로 들어와 어가를 모셨다. 극보양, 양요미, 한간, 가복도 등의 또 다른 무리는 모두 강도 성문 밖 교외까지 나와 영접했다. 중이가 강성에 들어와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올랐다. 이가 역사상 유명한 진문공(晉文公)이다.

중이가 헌공에게 쫓겨 적(翟)으로 도망칠 때가 그의 나이43 세였고 다시 발제의 추격을 받아 제나라로 도망쳐 갈 때가55세였으며61세에 섬진의 목공 도움으로 당진에 환국하여 군위에 오르니 이때가 그의 나이 이미62세였다. 진후의 자리에 즉위한 문공은 즉시 자객을 고량에 보내 회공을 죽였다. 회공은 그 전 해9월에 군위에 올라 당년2월에 피살되었으니 군주로 있던 날수는 모두 합하여6달 미만이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 옛날 신성(新城)의 교외에 사는 무당에게 태자 신생(申生)의 혼령이 나타나 혜공이 저지른 죄를 그의 자손에게 물어 참수시키겠다는 말을 호돌에게 전하게 했는게 회공이 참수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일은 아마도 그 예언이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겠다. - 시인 발제가 회공의 시체를 거두어 장례를 치른 후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 숨었다.

문공이 연회를 열어 섬진의 장수 공자집 등의 노고를 위로하고 군사들에게는 음식을 많이 준비하게 하여 배불리 먹였다. 비표가 땅에 엎드려 통곡을 하고 그의 부친 비정보의 묘를 개장하고자 문공에게 청했다. 문공이 허락하고 비표에게 당진에 남아 자기 곁에 머물도록 권했다. 비표가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이미 섬진의 신하가 된 몸입니다. 어찌 감히 두 임금을 섬기겠습니까?」

공자집과 함께 섬진으로 들어간 비표는 하수 서쪽에 주둔하고 있던 목공에게 복명했다. 목공은 즉시 군사들을 이끌고 옹성으로 돌아갔다. 사관이 시를 지어 목공이 행한 일을 칭송했다.

수레바퀴 소리 요란하게 병거를 몰아 하수를 건넜다.

용과 호랑이가 때를 만났으니 그 기상이 장하도다!

만일 옹주의 정의로운 군사가 없었다면

사람들의 도움만으로 중이가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轔轔車騎過河東(린린거기과하동)

龍虎乘時氣象雄(용호승시기상웅)

假使雍州無義旅(가사옹주무의려)

縱然多助怎成功(종연다조매성공)

3. 親讐免禍(친수면화)

- 시인 발제를 용서하여 목숨을 구한 진문공-

한편 섬진의 군사력에 압박을 받아 비록 일시적으로 항복은 했으나 조쇠나 호언, 서신 등 여러 사람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극예와 여성은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나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군주 자리에 즉위한 문공을 살펴본 두 사람은, 공이 있다고 작위를 올리지도 그렇다고 죄가 있다고 죽이지도 않아 그 거동을 예측할 수 없어 의심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곧이어 두 사람은 가병을 이끌고 란을 일으켜 궁궐을 태워 혼란해진 틈을 타서 중이를 죽이고 여러 공자들 중에 한사람을 추대하여 군위에 올리기로 모의했다. 그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

「조정에 벼슬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같이 더불어 일을 도모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시인 발제가 옛날에 중이에게 깊은 원한을 샀는데 오늘 중이가 즉위하였으니 발제 자신도 잡혀 죽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그 담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니 불러와 같이 일을 도모할 수 있음이라!」

두 사람이 심복을 시켜 발제를 찾아 불러오게 했다. 얼마 후에 심복이 발제를 찾아 데려왔다. 두 사람은 궁궐에 불을 질러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중이를 죽이기로 한 계획을 발제에게 말하고 중이를 살해하는 일을 맡도록 했다. 발제가 듣고 흔쾌히 동의했다. 세 사람이 삽혈의 의식을 행하고 하늘에 맹세했다. 그들은2월 그믐날 다 같이 서로 만나 한 밤중에 일제히 거사하기로 약속했다. 여극 두 사람은 각기 자기들의 봉읍으로 돌아가서 비밀리에 가병들을 모았다.

그러나 발제는 비록 두 사람 면전에서 거사를 같이 하기로 허락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내키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당시에 선군의 명을 받아 포성으로 가서 중이 공자를 잡으려고 했고 또한 혜공이 시켜 적 땅에 있던 공자를 암살하려고 했었다. 그때의 일은 마치 걸왕(桀王)이 기르는 개가 요(堯)임금을 보고 짖는 것과 같은 이치라 각기 그 모시던 주인을 위해 한 일이었다. 오늘 회공이 이미 죽고 중이가 즉위하였으니 당진은 이제 바야흐로 안정되려고 하는 순간에 또다시 이렇게 대역무도한 일을 일으키자고 나에게 제의를 하니 이것은 중이가 하늘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하늘이 돕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일도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설사 중이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 곁에는 십 수 연간을 같이 유랑생활을 해 왔던 수많은 호걸들이 있는데 그들이 나를 그대로 놔두겠는가? 차라리 새로 즉위한 중이를 몰래 찾아가 이 일을 알린다면 오히려 나의 위급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음이라! 이것이야말로 매우 훌륭한 계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발제가 궁리한 끝에 한 가지 계획을 생각해 내고 혼자 말했다.

「나는 이미 죄를 지어 도망 다니는 사람이라 직접 궁궐을 찾더라도 새로운 군주를 만나기 힘들 것이다.」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린 발제는 호언의 집을 찾아가 면담을 청했다. 크게 놀란 호언이 발제를 보고 물었다.

「너는 신군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인데 멀리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어찌하여 이렇게 야심한 밤에 나를 찾아왔느냐?」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신군을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입니다. 원컨대 국구께서는 저를 이끌어 신군을 한번 뵙게 주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가 주공을 알현하려고 하는 행위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인 줄 아느냐?」

「제가 매우 중대한 기밀을 알고 있어 이를 신군에게 고하여 한 나라 임금의 목숨을 구하고자 합니다. 반드시 주공을 뵙고서야 말씀을 올릴 수 있습니다.」

발제의 말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호언이 즉시 그를 데리고 궁궐로 들어가 문공의 접견을 청했다. 문공을 알현한 호언이 발제가 뵙고 아뢸 말씀이 있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고 고했다. 문공이 듣고 말했다.

「발제란 놈이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단 말이요? 아마도 그것을 핑계 삼아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수작일 것이요. 외숙께서 알아서 정황에 따라 죄를 주든지 아니면 용서를 하든지 하십시오.」

「깊은 산중의 나무꾼의 비천한 말도 옛날의 성인들은 귀담아 들었습니다. 주공께서 군위에 오르신 지가 어제라 마땅히 작은 원한을 잊으시고 충언의 말을 널리 구하여야만 합니다. 절대 물리치시면 안 되는 일 입니다.」

문공이 아직도 석연치 않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근시를 불러 자기의 말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발제에 전하게 하여 옛날 일을 책했다.

「너는 옛날에 포성에서 과인의 소매 자락을 칼로 베었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나는 너의 칼 아래 비명횡사 할 뻔했다. 여기에 아직도 그때 입던 옷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다. 이 옷을 볼 때마다 너에 대한 원한을 잊을 수 없었다. 또 네가 적(翟) 땅에 와서 나를 죽이려고 할 때 혜공이3일의 기한을 주고 길을 떠나라고 했는데 너는 다음 날 바로 길을 떠나 다시 한 번 너에게 죽을 뻔했다. 요행히 하늘이 도와 너의 독수를 피할 수 있었다. 지금 과인이 입국하여 이 나라의 군주가 되었는데 너는 무슨 낯짝으로 나를 만나러 왔느냐? 빨리 도망쳐서 몸을 피하지 않고 이곳에 얼씬거리면 너를 잡아 참수형에 처하리라!」

발제가 듣고 소리를 크게 내어 웃고는 문공의 말을 전하러 온 근시에게 자기가 한 말을 문공에게 전하게 했다.

「주공이 나라밖에서19년 동안이나 유랑생활을 했다는데 아직도 세상물정을 잘 배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주공께서는 선군 헌공과는 부자지간이고 혜공은 즉 주공의 동생입니다. 그 부친 되는 사람이 그 자식과 원수가 되고 또한 그 동생이란 사람이 그 형 되는 사람과 원수가 되었는데 하물며 보잘 것 없는 시인 주제인 발제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발제는 한갓 미관말직에 있던 사람이라 그때는 오로지 헌공과 혜공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어찌 주공이 있는 줄 알았겠습니까? 옛날에 관중(管仲)이 공자규(公子糾)를 위해 활을 쏘아 환공의 허리띠를 맞추었지만 환공은 관중을 용서하고 임용하여 뒤이어 천하를 호령하는 백주(伯主)가 되었습니다. 주공의 소견이 이렇게 좁아 터져 허리띠에 화살을 맞은 원한을 잊으시지 않으시겠다니 이는 맹주가 되고자 하시는 뜻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신을 보지 않겠다고 하니 이것은 신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으나 단지 제가 가버린다면 머지않아 주공의 몸에 닥칠 화가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호언이 근시가 전하는 발제의 말을 듣고 문공에게 상주했다.

「발제가 필시 중요한 기밀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주군께서는 불러서 만나 보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문공이 즉시 발제를 불러오도록 명했다. 발제가 문공을 보자 죄를 빌지 않고 단지 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경하를 올리옵니다!」

「과인이 군위에 오른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너는 이제야 축하의 말을 하니 너무 늦지 않았느냐?」

「주군께서 비록 즉위는 하셨다 해도 아직 경하의 말을 듣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저의 말을 듣게 되신다면 주공의 군위는 그때서야 안정될 것인데 어찌 늦다고 하십니까?」

문공이 그때서야 좌우에 있던 시종을 물리치고 진지한 자세로 그 연유를 물었다. 발제는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이 장차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고했다.

「지금 여·극의 무리들이 성중에 가득 차 있고 또한 그들이 자기들의 봉읍으로 가서 가병들을 모으고 있는 중 입니다. 주공께서 만약에 이 틈을 이용하여 호국구와 같이 평복으로 갈아입고 이곳 도성을 탈출하여 섬진으로 돌아가 그곳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들어오신다면 두 사람의 반란을 진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이곳에 남아 내응하여 두 적신을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곁에 시종하던 호언이 듣고 말했다.

「일이 이미 급하게 되었으니 신이 전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나라의 일은 모두 자여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공이 발제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매사에 조심하여 몸을 보중하라. 내 마땅히 돌아와 중상을 내리리라!」

발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드린 후에 물러갔다.

4. 야분공궁(夜焚公宮)

- 진문공을 살해하기 위해 야음을 틈타 공궁을 불태우는 여극(呂) 일당-

발제가 물러가자 문공과 호언은 오랫동안 상의한 끝에 좌우에게 온거(溫車)를 준비하여 단지 극소수만의 인원만을 궁궐의 후문에 대기토록 명을 내리고, 심복 내시에게는 절대 이 일을 누설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지자 평상시대로 잠자리에 들은 척 하다가 오경을 알리는 북소리를 듣고 자리에 일어난 문공은 내시를 불러 오한이 나고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어린 내시에게 등불을 밝혀 들게 하고는 측간으로 행차했다. 측간의 후문으로 나온 문공은 호언과 같이 수레를 타고 성문을 빠져 나와 서쪽의 섬진을 향해 달려갔다.

이윽고 새벽이 되자 궁중에는 주공이 병이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러 군신들이 모두 침실 앞에 와서 문안을 올리려 했으나 아무도 문공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궁중에는 그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되어 백관들이 모두 조문 앞에 모여 문공이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궁궐의 내실로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게 했다. 문공의 침실은 붉은 빛 두 문짝이 꼭 닫히고 문 위에는 정사를 보지 않겠다는 면조패(免朝牌)가 달려 있었다. 침실 문을 지키던 군사가 말했다.

「주공께서 어제 밤에 한질을 얻으시어 침상에서 주무시지 못했습니다. 3월 초나 되어야 정사를 보실 수 있어 그때나 여러 대부님들을 접견하시겠다는 명이 있었습니다.」

조쇠가 듣고 한탄했다.

「주공이 새로 즉위하신 지가 오래 되지 않아 처리해야 할일들이 태산과 같이 많은데 갑자기 병이 나셨다고 하니 이것은 마치 ‘하늘에서 부는 바람과 구름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사람의 화복은 조석지간에 변한다’라는 말과 같구나!」

여러 사람들이 문지기가 한말을 사실로 믿고 탄식을 하면서 각기 흩어져 돌아갔다. 백관들 틈에 끼어 있던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은 문공이 병이 나서3월 초까지 조당에 나와 정사를 보지 못하게 됐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기뻐했다.

「하늘이 우리보고 중이를 죽이라고 하는구나!」

한편 호언과 같이 몰래 강성을 빠져 나온 문공은 당진의 땅을 벗어나 하수를 건너 섬진의 땅에 들어섰다. 문공이 밀서 한 통을 써서 사람 편에 보내 섬진의 목공에게 왕성(王城)에서 만나기를 청했다. 진후가 비밀리에 다시 섬진으로 돌아와 회견을 청하는 편지를 받은 목공은 마음속으로 당진에 변란이 일어난 것으로 짐작했다. 목공은 즉시 사냥을 나간다는 핑계를 대고 왕성으로 나와 문공을 만났다. 상견례를 마친 문공은 자기가 그렇게 황급히 돌아온 연유를 목공에게 설명했다. 목공이 듣고 웃으면서 위로의 말을 했다.

「천명이 이미 정해 졌는데 여·극과 같은 무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진에 남아 있는 군주의 여러 신하들이 능히 도적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목공은 즉시 대장 공손지에게 군사를 주어 하수를 건너는 나루에 진을 쳐 주둔하게 하고 강도의 소식을 정탐한 후에 스스로 알아서 대응하도록 명했다. 문공은 왕성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한편 발제는 여성과 극예의 의심을 살까 두려워하여 거사를 하기로 한 날 수 일 전부터 극예의 집으로 들어가 거사에 대한 대비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기숙했다. 이윽고 거사를 하기로 한2월 그믐날이 되자 발제가 극예에게 말했다.

「중이가 내일 아침 일찍 조당에 나와 정사를 볼 예정이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그의 병은 그리 심하지 않은 듯합니다. 궁궐에 불이 나면 반드시 밖으로 뛰어 나오게 되어 있으니 여대부께서는 궁궐의 앞문을 지키시고 극대부께서는 후문을 지키십시오. 저는 가병들을 데리고 조문에 있다가 불을 끄지 못하게 막겠습니다. 중이가 비록 날개가 달려있다 한들 도망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발제의 생각에 동의한 극예가 여성에게 계획을 전했다. 그날 저녁 여극의 가병들이 각기 무기와 불을 붙이는 기구들을 들고 와서 사방으로 흩어져 매복하고 있다가 시간이 대략 삼경쯤 되었을 때 공궁에 불을 질렀다. 공궁의 불길은 시간이 감에 따라 거세지면서 흉맹하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잠이 들어 있던 중에 소란한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궁인들은 단지 궁궐 안에서 실화를 하여 일어난 불로 여기고 알고 놀라기는 했으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궁인들이 모두 일어나 불을 끄려고 달려들었으나 화광이 충천한 가운데 과(戈)를 들고 무장한 무사들이 부산하게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큰소리로 ‘ 중이를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라!’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불길을 만난 궁인들은 머리를 태우고 이마를 데였으며, 무기를 갖은자들을 만난 궁인들은 사지를 상하고 몸을 다쳤다.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차마 귀를 막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여성이 검을 빼 들고 침실로 뛰어 들어 문공을 찾았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극예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극예도 역시 칼을 빼 들고 후문을 통하여 궁궐로 들어와 여성을 보자 물었다.

「중이는 죽였습니까?」

여성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단지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죽이지 못했음을 알렸다. 화광을 무릅쓰고 문공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색을 하던 여․극두 사람은 갑자기 궁궐 밖에서 일어나는 함성소리를 듣게 되었다. 발제가 황망 중에 뛰어와 두 사람에게 고했다.

「호씨(狐氏), 조씨(趙氏), 란씨(欒氏), 위씨(魏氏) 등의 각 종족들이 그들의 가병을 거느리고 불을 끄기 위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만약에 날이 밝게 되어 나라 안의 모든 사대부들이 모이게 되면 우리들이 빠져나가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이곳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신군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 다시 대책을 세우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이때까지 중이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던 여성과 극예는 마음이 이미 초조하게 되어 다른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휘하의 무리들을 불러들여 조문을 통하여 궁궐을 빠져 나왔다. 사관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무정한 화마는 공궁을 불사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중이는 이미 섬진의 왕성에 가 있음을 몰랐다.

진문공이 옷소매가 잘린 한만을 고집했었다면

어떻게 몰래 탈출하여 장인과 만날 수 있었겠는가?

毒火無情殺械成(독화무정살계성)

誰知車駕在王城(수지거가재왕성)

晉侯若記留袂恨(진후약기유몌한)

安得潛行會舅甥(안득잠행회구생)

5. 삼립진군(三立晉君)

- 당진의 군주를 세 번째 세우는 진목공-

한편 호모, 조쇠, 란지, 위주 등 각 대부들은 궁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문중의 가병들을 모아 물통과 갈고리 등을 준비하여 불을 끄기 위해 달려와서는, 한편으로는 장막을 걷어 내어 불을 끄게 하고 한편으로는 방화를 한 무사들과 싸웠다. 와중에 날이 밝아 오면서 불길이 잡히자 불은 곧 여생과 극예 두 사람이 반역을 꾀하여 한 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진의 군신들은 황망 중에 신군이 보이지 않자 모두들 크게 놀랐다. 문공이 궁궐을 나갈 때 뒤의 일을 당부했던 내시가 불길 속에서 뛰어나오며 여러 대부들에게 고했다.

「주공이 수 일 전 새벽 오고(五鼓) 때 옷을 평복으로 갈아입으시고 궁궐 밖으로 나가시는 모습을 봤는데 어디로 가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조쇠가 듣고 말했다.

「호국구께서는 집히는 바가 없으십니까?」

호모가 대답했다.

「동생 자범도 역시 수일 전에 입궁 하더니 그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주군과 자범이 같이 보이지 않으니 이것은 두 역적 놈의 역모를 미리 알고 피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들은 반란자들을 찾아내고 도성을 엄중히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불에 탄 궁궐을 수리하면서 주공을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분기탱천한 위주가 말했다.

「두 역적 놈들이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불태우고 주공을 시해하려고 했으니 지금도 아마도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 것이오. 나에게 한 떼의 군마를 내주시면 뒤를 쫓아가 역적놈들의 목을 베어 오겠소!」

조쇠가 허락하지 않았다.

「군사를 동원하는 일은 나라를 움직이는 큰 권력입니다. 주공이 계시지 않은데 누가 감히 군사를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두 역적이 비록 도망을 칠 수 있더라도 머지않아 그들의 목을 벨 수 있을 것이오.」

한편 가병을 이끌고 성밖에 주둔하고 있던 여성과 극예 일당은 문공이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여러 대부들이 성문을 닫고 엄하게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여러 대부들이 군사를 이끌고 성문을 나와 추격해 오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다른 나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단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발제가 두 사람을 속여 말했다.

「당진의 군주들을 폐하고 또 새로 세운 일들은 모두가 진백이 주동하여 세운 계획에 의해서입니다. 진백과는 원래 면식이 있으신 두 분 대부께서 거짓으로 궁궐에 불이 나서 중이가 타 죽게 되었다고 편지를 써서 전하신 후에 군주를 직접 찾아가 지금 섬진에 망명해 있는 공자옹(公子雍)을 맞아들여 새로운 군주로 세우겠다고 청하십시오. 중이가 비록 죽지는 않았다고 해도 새로운 군주를 세워 기정사실로 만들어 놓는다면 다시 들어와 군주 자리에 앉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성이 말했다.

「진백과는 옛날에 왕성에서 회맹⑧을 맺을 때 내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본적이 있습니다. 금일 내가 그에게 몸을 의탁하러 찾아가는 행위는 이 시점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진백이 우리를 용납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발제가 먼저 가서 진백의 의중을 떠보겠다고 자청했다.

「제가 먼저 섬진으로 가서 두 대부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만일 진백이 허락한다면 그 즉시 우리 모두가 그곳으로 가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진백이 우리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다른 대책을 세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발제가 황하를 건너는 나루에 당도하여 탐문한 결과 공손지가 대군을 이끌고 강 건너 섬진 쪽의 강안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시 하수를 건너 공손지를 찾아간 발제는 자기 생각을 말하고 또한 여성과 극예와 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했다. 공손지가 듣고 말했다.

「두 적신이 이미 우리에게 투항하려는 뜻을 전하니 마땅히 이곳으로 유인한 후 죽여서 국법을 밝혀야 되겠습니다. 마땅한 구실을 붙여 그들을 이곳으로 유인하십시오.」

공손지가 즉시 편지를 써서 발제에게 주어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을 유인해 오도록 했다.

「과군께서 귀국의 중이를 입국시켜 군위에 오르게 한 이유는 귀국의 땅을 할양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과군께서 본인에게 하수의 서안에 주둔하도록 명하신 것은 귀국의 신군도 옛날의 혜공처럼 약속을 저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한 끝에 귀국과의 국경을 명확히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신군이 궁궐에서 일어난 화재에 몸을 상하여 두 대부께서 공자옹을 추대하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저희 군주께서도 원하시는 일입니다. 대부들께서는 속히 이쪽으로 오셔서 같이 대책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편지를 읽어본 여극 두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그 즉시 배를 타고 하수를 건너 공손지가 주둔하고 있던 하서의 땅으로 들어왔다. 공손지가 군중에서 나와 두 사람을 영접하고 서로 상견례를 행한 후에 좌정하여 환담을 나누었다. 공손지의 환대를 받은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손지는 이미 사람을 목공에게 보내 여성과 극예의 일을 미리 고해놓고 있었다. 문공이 머무르고 있던 왕성에 이미 당도해 있던 목공은 공손지가 여성과 극예를 유인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수를 건너 하서로 들어온 여성과 극예는 공손지의 군영에3일을 보낸 후에 목공의 접견을 청했다. 공손지가 말했다.

「저희 군주님은 현재 왕성에서 두 대부님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같이 가서 뵐 수 있습니다. 병거와 군사들은 잠시 이곳에 머물게 하다가 저희 군주님을 알현하고 돌아온 후에 같이 하수를 건너면 어떻습니까?」

여성과 극예가 공손지의 말대로 자기들이 거느리고 온 병거와 군사들을 자기들이 돌아올 때까지 공손지의 군영에 머물게 했다. 공손지와 여극 일행이 왕성의 성문 앞에 당도하자 발제와 공손지가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 목공에게 저간의 일들을 고했다. 목공은 비표를 시켜 여생과 극예 두 사람을 마중하게 했다. 문공이 병풍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던 여극 두 사람이 당으로 들어와 목공을 배알하고 공자옹을 옹립하려는 뜻을 말했다. 목공이 듣고 말했다.

「공자옹은 이미 이곳에 와서 두 대부를 기다리고 있소!」

여와 극이 같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원하옵건대 뵙고 싶습니다.」

목공이 소리쳐 불렀다.

「신군은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목공이 앉아 있던 옥좌 뒤에 둘러쳐진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의 귀인이 서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두 손을 앞으로 포개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성과 극예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그 사람은 바로 문공 중이였다. 여성과 극예가 놀라 혼비백산하여 땅에 엎드린 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목공이 문공을 자기가 앉은 옥좌에 오르게 하여 동석했다. 문공이 두 사람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역적 놈들아! 내가 너희에게 섭섭하게 대하지 않았는데 어찌 반역을 꾀한단 말인가? 만약 발제가 미리 고하여 궁궐을 아무도 몰래 빠져 나올 수 없었다면 나의 몸은 이미 불에 타서 잿가루로 변했음이라!」

여성과 극예는 이때서야 발제에게 속은 사실을 알고 분한 마음에 문공에게 말했다.

「발제도 실은 삽혈을 행하여 우리와 같이 공모하였습니다. 원컨대 같이 죽여주십시오!」

문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발제가 만약에 너희들과 같이 삽혈을 하지 않았다면 어찌 네 놈들의 모의를 알 수 있었겠느냐?」

문공이 즉시 큰 소리로 영을 내리자 무사들이 들어와 두 사람을 잡아서 포승줄로 묶어 대령시켰다. 다시 무사들에게 명을 내려 밖으로 끌고 나가 참수형에 처하라고 하고, 발제에게 따라가서 무사들을 감시하도록 명했다. 이윽고 무사들이 두 사람의 목을 가져와서 옥좌 앞에 대령했다.

여성과 극예도 혜공과 회공을 보좌한 당대의 영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회공의 명을 받아 여류(廬柳)에 주둔할 때 목숨을 탐하지 않고 중이에게 대항하여 생을 끝냈더라면 충신이라는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이에게 투항을 하고 다시 반역을 꾀하여 결국에 가서는 공손지에게 유인당하여 왕성에서 죽게 되어 몸과 이름도 모두 보존하지 못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문공이 즉시 여성과 극예의 수급을 발제에게 주어 하서 땅에 남아 있던 두 사람이 데리고 온 무리들에게 보인 후 그들을 달래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과 극예를 잡아서 죽였다는 소식을 당진의 나라 안에 전하게 하자 여러 대부들은 모두 기뻐하며 말했다.

「이것은 자여가 이미 예측한 바로다!」

조쇠 등이 서둘러 어가를 준비하여 하수의 동쪽 강변으로 가서 문공을 영접했다.

<제37회로 계속>

주석

①태괘(泰卦)/ 주역64괘 중11번 째의 지천태(地天泰: 상하가 화합하고 태평할 괘)의 괘로서 건하(乾下) 곤상(坤上)이다. 각 효사(爻辭)는 다음과 같다.

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吉 잔뿌리를 뽑으니 서로 엉켜있다. 동류들과 같이 정벌하러 가면 길하다. 九二/包荒用馮河 不遐遺朋亡 得尙于中行 오랑캐 족속을 포섭하여 맨 몸으로 강을 건넌다. 먼 데 남아 있는 사람을 버리지 않으면 친구를 잃게 되나 중용의 도를 숭상하여 그것을 얻게 된다. 九三/无平不陂无往不復 艱貞无咎 勿恤其孚 于食有福 아무리 평탄한 것이라도 나중에 가서는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곧고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그 성실함이 있으니 근심 하지 말라. 식복이 있느니라. 六四/翩翩 不富以其隣 不戒以孚 새가 훨훨 날아가는 모습이다. 부유하다 생각지 말고 이웃과 서로 사귀어야 한다. 서로 경계하지 않고 진실 된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느니라. 六五/帝乙歸妹 以祉元吉 제을 임금이 누이를 시집보낸다. 행복하게 되니 크게 길하리라. 上六/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 성이 무너져 다시 웅덩이가 된다. 군사를 쓰지 말 것이다. 도성에서 명령을 내린다. 말씀이 올바르더라도 부끄러움이 되리라.

②위양(渭陽)/ 양(陽)이란 말은 산의 경우는 남쪽을 강의 경우는 북쪽을 가리킨다. 즉 위양이라 함은 위수(渭水)의 북쪽 땅이라는 뜻으로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섬진의 세자 앵(罃)이 외숙인 중이(重耳)를 전송하면서 부른 노래가 『시경(詩經)․국풍(國風)․진풍(秦風)』에 『위양(渭陽)』이란 제목 실려 있다.󰡔춘추전(春秋傳)󰡕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진헌공이 제강(齊姜)을 간음하여 진목부인(秦穆夫人)과 태자 신생을 낳고 다시 견융의 여인을 취하여 호희(狐姬)는 중이를 낳고 소융자(小戎子)는 이오를 낳았으며 다시 여융주(驪戎主)의 딸 여희(驪姬)는 해제(奚齊)를 낳고 여희의 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가 세 공자를 참소하자 태자 신생은 자살했고, 중이와 이오는 모두 나라 밖으로 도망쳤다. 헌공이 죽자 해제와 탁자가 뒤를 이었으나 모두 대부 리극(里克)에게 시해되었다. 이에 진목공이 이오를 진(晉)나라로 보내 진후로 세우니 이가 진혜공(晉惠公)이다. 진혜공이 죽자 진목공이 다시 중이를 진(晉)나라에 들여보내 진후(晉侯)로 세우니 이가 진문공이다.」

我送舅氏(아송구씨)

외삼촌을 배웅하려

曰至渭陽(왈지위양)

위수 북쪽에 이르렀네

何以贈之(하이증지)

무엇으로 선물할까?

路車乘黃(로거승황)

수레와 노란 말 네 필로 하지

부(賦)다. 구씨(舅氏)는 진강공(秦康公)의 외숙으로 진문공 중이를 말한다. 진강공은 진목공의 세자 앵(罃)의 시호다. 외국에 망명하여 살고 있던 중이를 목공이 불러 진(晉)나라로 복국시켜 진후의 자리에 앉히려고 했다. 이에 당시 태자의 신분이었던 강공이 위양으로 나가 전송하면서 이 시 를 지어 노래했다. 위(渭)는지금의 섬서성을 동서로 흐르는 강 이름이다. 진(秦)나라는 당시 옹(雍)에 도읍했다. 위양에 이르렀다는 말은 아마도 동쪽으로 행차하여 함양(咸陽) 땅 부근에서 맞이했을 것이다. 로거(路車)는 제후가 타는 수레다.

我送舅氏(아송구씨)

외삼촌을 배웅하니

悠悠我思(유유아사)

유유한 나의 생각

何以贈之(하이증지)

무엇으로 선물할까?

瓊瑰玉佩(경괴옥패)

경괴(瓊瑰)와 패옥으로 하지

부(賦)이다. 유유(悠悠)는 긺이다. 모서에는 당시 강공 모부인인 목희(穆姬)가 이미 졸했음으로 강공이 외삼촌을 본국으로 보내면서 모부인이 계시지 않음을 슬퍼했다고 했다. 혹자는 「“목희(穆姬)가 죽은 것을 상고할 수 없으니, 이는 다만 외숙과 작별하면서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경괴(瓊瑰)는 옥 다음가는 보석이다.

③오록(五鹿)/ 중이 일행이 적(翟) 나라에서 몸을 피하여 제나라로 가던 도중에 위나라로부터 입국을 거절당하자 가지고 간 양식이 떨어져 개자추(介子推)가 허벅지 살을 떼어 국을 끓여 바친 곳. 지금의 하북성과 경계인 하남성 복양시(濮陽市) 북40키로 되는 곳의 청풍현(淸豊縣) 북.

④영호(令狐)/지금의 산서성 임의현(臨猗縣) 부근

⑤순성(郇城)/지금의 산서성 임의현(臨猗縣) 남의 우두진(牛杜鎭)에 있었던 춘추 때 당진의 성읍

⑥고량국(高梁國)/ 지금의 산서성 임분시(臨汾市) 동북에 있었던 이민족 국가

⑦왕성(王城)의 회맹/본서 제31회 참조. 한원(韓原)에서의 진진대전 결과 당진의 혜공이 섬진의 목공에게 포로가 되었다. 목공이 혜공의 귀환 조건으로 당진의 하외오성(河外五城)을 할양하라고 요구하자, 여성)이 당진의 사절이 되어 하수 서안에 있던 섬진의 왕성 땅에 가서 그곳의 지도와 호구(戶口)의 목록을 목공에게 바치고 혜공을 귀환시킨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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