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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28:234546 
제39회. 授詞却敵(수사각적), 伐衛破曹(벌위파적)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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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39회

授詞却敵 伐衛破曹(수사각적 벌위파조)

유하혜①로부터 계책을 받아 침략군을 물리친 전희(展喜)와

위(衛)와 조(曹)를 정벌하여 옛날의 원한을 갚는 진문공

1. 수사각적(授詞却敵)

- 유하혜(柳下惠)의 지혜를 빌려 적군을 격퇴시킨 전희 -

당진의 문공이 온(溫), 원(原), 양번(陽樊), 찬모(攢茅) 등 네 고을을 접수하여 조쇠와 극진을 남겨 지키도록 하고 자신은 본대의 병력을 이끌고 곧바로 태항산(太行山) 남쪽으로 나아갔다.

이때가 주양왕 17년 기원전 635년의 일이었다.

한편 제나라의 효공도 역시 부군 제환공이 이룩한 방백의 자리를 이어 받으려는 생각을 줄곧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제효공은 무휴(無虧)의 란 때 무휴를 지원했던 노희공에 대해 원한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제효공은 송양공이 주재한 녹상(鹿上)의 회맹에서 서명을 하지 않아 송나라와 사이가 벌어졌으며, 다시 초성왕이 주재한 우(盂) 땅의 회맹에는 아예 참석도 하지 않아 초나라와도 등을 돌려 고립되었다. 중원의 제후들 마음은 이미 제나라를 떠났기 때문에 임치성에는 각국에서 보내는 조빙 사절도 옛날처럼 오지 않았다. 효공은 마음속으로 분노하며 제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세 나라를 차례로 쳐들어가 용병을 하여 선군인 제환공의 이룬 업적을 다시 재현시키려고 했다. 군신들을 소집하여 모이도록 한 제효공이 물었다.

「선군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해를 거르지 않고 나라 밖으로 정벌을 나갔고, 하루라도 전투를 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소. 오늘 조당에 편안히 앉아 있는 과인의 모습은 마치 단단한 껍질 안에 안주하고 있는 달팽이의 신세와 같아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는 처지라 심히 부끄럽소. 옛날 노후가 무휴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끌고 쳐들어와 과인을 심히 어렵게 만든 적 있었소. 이에 과인은 늦기는 했지만 그 죄를 물으려 하오. 지금 노나라는 북쪽으로는 위나라와 손을 잡고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통호하고 있소. 만약 노나라가 이 두 나라와 힘을 합쳐 우리 제나라를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감당하겠소? 내가 들으니 요사이 노나라에 기근이 들었다 하는데 이 기회를 틈타 군사를 일으켜 그들의 계획을 미리 막고자 하는데 여러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의견을 말해 보시오.」

상경 고호(高虎)가 상주하였다.

「노나라가 여러 제후국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어, 비록 우리가 군사를 출동시켜 정벌한다고 해도 별로 성과가 없을 듯합니다.」

「비록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한 번 시도해 보면 여러 제후들의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오.」

제효공은 즉시200승의 병거와 그에 따르는 보졸을 친히 인솔하여 노나라의 북쪽 국경을 향해 진격했다.

노나라의 변방을 지키는 수장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사태의 급함을 고했다. 그때 노나라는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싸울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대부 장손신(臧孫辰)②이 노희공에게 말했다.

「제나라는 옛날에 우리가 무휴를 돕기 위해 군사를 동원한 일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즐겨 싸우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싸워 봐야 이길 수 없습니다. 청컨대 임기응변에 능한 사절을 보내 사죄하여 제군을 물러가게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노나라에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있습니까?」

「신이 추천할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선공 때 사공(司空) 벼슬을 한 무해(無駭)라는 사람의 아들인데 성은 전(展)이고 이름은 획(獲)이라 하며 자는 자금(子禽)입니다. 형법을 주관하는 사사(士師)의 벼슬을 지냈는데 식읍은 유하(柳下)에 있습니다.이 사람은 외유내강의 성격에 아는 것이 많아 세상사의 모든 일에 통달한 위인입니다. 옛날에 그가 관직에 있을 때 법을 집행하다가 시세를 따르지 않고 윗사람의 뜻을 거슬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은둔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을 불러내어 제나라 진영에 사자로 보낸다면 주군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고 제나라의 군사를 물러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인도 이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현재 자기 식읍인 유하(柳下)에 있습니다.」

희공이 즉시 사람을 시켜 불러오게 했으나 전획은 병을 핑계로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장손신이 다시 희공에게 말했다.

「지금 이름이 희(喜)라는 전흭의 종제가 조정에 하급 관료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도 구변이 다소 있으니 전희에게 명하여 전획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라고 하신다면 필시 그 방법을 알아 가지고 올 것입니다.」

희공이 장손진의 말을 따랐다. 전희가 유하에 당도하여 전획을 만나 희공의 명을 전했다. 전획이 대답했다.

「제나라가 우리 노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 이유는 제환공의 패업을 계승하려는 뜻에서이다. 무릇 방백을 도모하려고 하는 자는 주왕실을 받드는 일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주나라의 개국조 무왕이 약속한 말을 가지고 제나라를 책한다면 어찌 뒷일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전흭으로부터 깨우침을 얻은 전희가 유하에서 돌아와 희공에게 전획의 말을 전하면서 고했다.

「신은 형님으로부터 제나라 군사를 능히 물리칠 수 있는 계책을 얻었습니다.」

그때 노희공은 이미 제나라 군사들을 호군(犒軍)할 물품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희생에 필요한 짐승, 술과 곡식 및 비단 등의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물품들을 준비하여 실은 여러 대의 수레를 전희에게 주어 제나라 군중으로 보냈다. 전희가 노나라 북쪽 경계로 달려갔으나 그때까지 제나라 군사들은 당도하지 않고 있었다. 전희는 제나라 군사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 문남(汶南)③의 땅에이르자 그곳에서 제군(齊軍) 선발대와 만날 수 있었다. 제나라의 선봉군 대장은 최요(崔夭)가 이끌고 있었다. 전희가 가져간 예물을 접수한 최요가 전희를 본군으로 인도하여 제효공을 접견시켰다. 전희는 자기가 가지고온 호군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효공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전하께서 군사를 일으켜 친히 폐국의 경계에 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신 과군께서, 신으로 하여금 상국의 군사를 호군하라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

「노후가 과인이 군사를 일으켜 정벌을 한다고 하니 간담이 서늘해졌기 때문이라!」

「소인배 같은 사람들은 혹시나 간담이 서늘해질지 몰라도 저희 노나라에 그런 소인배가 있는지 소신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소인배가 아니고 군자 된 사람이라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너희 노나라에는 이제 시백(施伯)만한 지혜를 갖춘 문관도 이미 없고 조귀(曹劌)처럼 용기 있는 무장도 더 이상 없다. 더욱이 기근이 들어 들판에는 풀잎도 하나 없는데 무엇을 믿고 두렵지 않다고 하느냐?」

「저희 노나라같은 소국이 믿을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단지 믿고 있는 것은 옛날 주나라 천자께서 내리신 분부 밖에는 없습니다. 옛날 주무왕께서는 태공을 전하의 나라인 제(齊)에 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드님이신 성왕(成王)께서는 우리의 선조이신 백금(伯禽)을 노(魯)에 봉하시었습니다. 주성왕께서는 태공과 백금의 부친이신 주공에게 희생(犧牲)을 잡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면서 서로 맹세하게 하셨습니다. 그 맹세에 이르기를 『대대손손 두 사람의 자손들은 왕실을 받들고 서로 해치지 않겠노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서약서로 만들어 맹부(盟府)에 보관하고 지금도 태사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고 있습니다. 환공께서는 아홉 번이나 제후들을 불러 회맹하실 때에도 우리의 선군이신 장공(庄公)과 가(柯)④ 땅의 회맹에서 그 왕명을 받들기로 다시 한 번 확인하셨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제후의 자리를 물려 받아 군위에 오르신지 이제 9년이 되어, 우리 노나라의 군신들은 목을 길게 내밀고 제나라를 쳐다보며 ‘선공이신 제환공께서 이룩한 백업을 계승하려고 그 동안 애써 배우고 수양을 하였으니 이제는 제후들과 친목을 도모 할 때가 되었겠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군주님께서 우리나라를 정벌하시는 일은 선왕의 명을 버리시고 태공의 맹세를 어길 뿐만 아니라 환공께서 이룩하신 백업을 무너뜨리고 나라 사이의 좋은 관계를 원수지간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저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군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절대 그리 되지는 않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어찌 군주님의 군사들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대는 돌아가서 노후에게 내가‘노나라와 수호를 하고 싶다.’라고 전하라! 나는 다시는 군사를 동원하지 않겠노라!」

효공이 말을 마치고 즉시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잠연(潛淵) 선생은 장손신이 유하에 현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를 천거하여 조정에서 같이 일을 하지 않은 행위를 시를 지어 비난했다.

북변의 봉화를 보고 노나라가 위험에 빠진 줄 알았다.

몇 마디 말로 적군을 물리친 공은 만고에 드문 일이었으나

장손신은 그런 현자를 위해 길을 열지 않아

유하읍의 전획은 초야에 묻혀 살다 죽었다.

北望烽烟魯勢危(북망봉연노세위)

片言退敵奏功奇(편언퇴적주공기)

臧孫不肯開賢路(장손불긍패현로)

柳下仍淹展士師(유하냉엄전사사)

2. 稚子慧眼(치자혜안)

- 어린 동자 위가(蔿賈)의 혜안 -

전희가 노나라로 돌아와서 희공에게 복명했다. 장손신이 말했다.

「제나라의 군사들이 비록 물러갔다 하나 그것은 실은 우리나라를 가볍게 보고 한 짓입니다. 신이 청컨대 중수(仲遂) 공자와 함께 초나라에 가서 군사를 청해 제나라를 정벌하도록 하여 제후로 하여금 감히 우리 노나라를 엿보지 못하게끔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수년 동단 노나라의 복이 될 것입니다.」

노희공이 그의 말을 쫓아 즉시 공자수(公子遂)를 정사로 장손신을 부사로 하여 초나라에 사절로 보냈다. 장손신은 원래 초나라 대장 성득신과는 서로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먼저 찾아가 초왕의 접견을 청했다. 성득신은 노나라 사신 일행을 초왕 앞으로 인도하여 접견하도록 했다. 장손신이 초왕을 뵙고 말했다.

「제나라는 녹상(鹿上)의 맹세를 어겨 배반하였고, 송나라는 초나라에 대항하여 홍수(泓水)에서 서로 싸웠음으로 두 나라는 모두 초나라의 원수가 됩니다. 대왕께서 만약 이 두 나라에게 죄를 물으시겠다면 우리 노후께서는 나라의 온힘을 기울려 대왕의 향도가 되어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초성왕이 듣고 대단히 기뻐했다. 성왕은 즉시 성득신을 대장으로 신공(申公) 숙후(叔侯)를 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를 정벌도록 명했다. 초나라 군사들은 제나라의 양곡(陽谷)⑤ 땅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성득신은 당시 초나라 본국에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제환공의 아들 공자옹(公子雍)을 불러다 양곡에 봉하고, 다시 효공이 즉위할 때 송나라 군사들에게 쫓겨 노나라로 달아나 살고 있던 옹무(雍巫)를 불러다 그곳의 읍재(邑宰)로 삼았다. 그때 제환공이 죽자 공자들의 란을 피해 섬진으로 달아났던 공자옹은 다시 초나라로 옮겨가 살고 있었다.⑥ 이어서 갑병 천 명과 함께 신공 숙후를 남겨 놓아 제나라의 군사들이 공격해 오면 노나라의 지원을 받아서 지키도록 한 후에 개선하고 돌아온 성득신이 초왕에게 복명했다. 그때 영윤 자문(子文)이 나이가 이미 들어 모든 정사를 성득신에게 넘기고 싶다는 뜻을 초성왕에게 청했다. 성왕이 듣고 말했다.

「과인이 송나라에 원한이 있다고는 하나, 제나라에는 그보다 원한이 더 깊었었습니다. 자옥(子玉)이 이미 제나라를 정벌하여 나의 원한을 갚아 주었으니 경은 나를 위하여 송나라를 정벌하여 정나라의 원수도 함께 갚아 주기 바랍니다. 경이 개선하여 돌아온 후에 경의 뜻을 들어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신의 재주는 자옥에 훨씬 못 미칩니다. 원컨대 임무를 자옥에게 대신하게끔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제가 군사를 끌고 원정을 나갔다가는 대왕의 일을 그르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해서입니다.」

「송나라가 이제 갓 당진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우리 초나라가 송나라를 정벌한다면 당진은 틀림없이 송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군사를 보낼 것입니다. 당진과 송 두 나라를 동시에 상대하려면 경이 아니면 불가합니다. 경은 사양하지 말고 나를 위해 출정해 주기 바랍니다.」

성왕은 즉시 자문에게 명하여 규(暌)⑦ 땅에서 병거와 군사들과 거마를 사열하게 하고 군법을 밝히게 했다. 자문이 마음속으로 자옥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마음으로 매일 모든 일을 대강대강 하여 오전 중에 끝마치고 한 사람의 병사들도 벌주지 않았다. 성왕이 보고 말했다.

「경은 군사를 사열하는데 단 한사람도 벌주지 않는데 그런 방법으로 어찌 위엄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신의 재주와 기력은 마치 만든 지 오래되어 늘어진 강노(强弩)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위엄을 세우시려고 하신다면 자옥이 아니면 불가합니다.」

성왕이 다시 성득신을 불러 군사들을 위(蔿)⑧ 땅에다 모이게 하고 병사들과 거마를 사열하게 했다. 그러자 모든 일은 정밀하고 치밀할 뿐만 아니라 군법도 엄히 세워 죄를 지은 자는 용서하지 않고 처벌하여 하루 종일이 걸려서야 치병의 일을 끝낼 수가 있었다. 채찍형에 해당하는 벌을 받은 병사의 수는 7명이며 귀를 뚫는 형벌을 받은 자는 3명이었다. 이윽고 병사들의 사열을 끝내고 종과 북소리를 높이라고 명하자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고 정기는 일신되어 힘차게 펄럭였다. 성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과연 자옥은 장군의 재목이로다!

자문이 다시 정사를 자옥에게 넘겨야 한다고 청하자 성왕이 그때서야 비로소 허락하고 성득신을 영윤에 임명하여 군사의 일을 장악하게 했다. 군신들 모두가 찾아와 자문이 천거한 자옥이 영윤에 임명된 일을 축하했다. 자문은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모인 군신들을 접대했다. 그때 문무백관들은 모두 모였지만 단지 대부 위여신(蔿呂臣) 한 사람만은 불편한 몸으로 인해 참석할 수 없었다. 연회에서 술잔이 몇 순 배 돌아 군신들 모두가 술이 거나하게 되었을 때 심부름하는 사람이 와서 자문에게 고했다.

「문 밖에 어린 동자아이가 와서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자문이 접견을 허락하고 데려오라고 했다. 자문의 면전에 선 동자 아이가 두 손을 높이 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린 후에 천연덕스럽게 자리를 찾아가 말석에 앉았다. 이어서 술을 마시며 음식을 들고 고기를 마음껏 먹는데 마치 자기 앞에 아무도 없는 듯이 방약무인하게 굴었다. 사람들 중에 그 아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곧 위여신의 아들로 이름이 위가(蔿賈)였다. 위가의 나이는 당시 겨우 13세의 어린 동자였다. 자문이 위가의 태도가 범상치 않다고 여겨 가까이 불러 물었다.

「오늘 나라에서 대장 한 사람을 얻어 원로대신들이 모두 나에게 경하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그대 동자만은 유독 경하의 말을 올리지 않으니 어찌된 연유인가?」

위가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여러 대신들께서는 경하의 말을 올리셨지만 어리석은 저는 조상(弔喪)을 올려야 되겠습니다.」

자문이 듣고 노하여 말했다.

「네가 조상 운운하니 그 이유가 무엇이냐?」

「어리석은 소인이 보건대, 자옥이라는 위인은 매사에 용력만을 믿고 일에 임하고 일을 결단하는데 밝지 못합니다. 능히 앞으로 나갈 수는 있지만 뒤로 물러설 줄 모릅니다. 따라서 그를 싸움을 돕는 일에는 쓸 수 있지만 전권을 맡기면 안 됩니다. 만약 그에게 군정을 모두 위임한다면 필시 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라는 옛말은 자옥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한 사람을 천거하여 나라를 그르치게 하니 어찌 경하의 말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기다렸다가 그가 싸움에 지지 않음을 보고 경하의 말을 올려도 늦지는 않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자문의 좌우에 있던 군신들이 말했다.

「이 어린아이가 지껄이는 철없는 소리에 괘념치 마시기 바랍니다.」

위가가 말을 마치더니 크게 웃으며 자리에서 물러 나와 밖으로 물러갔다. 여러 대신들도 모두 헤어져 자문의 집에서 나왔다.

3. 호학지장 방능용병(好學之將 方能用兵)

- 학문이 깊은 장수만이 용병을 잘할 수 있다. -

다음날 성득신을 대장으로 임명한 성왕은 친히 대군을 이끌고 출동하여 도중에 진(陳), 채(蔡), 정(鄭), 허(許) 등의 사국 제후의 군사들을 규합한 후에 송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이윽고 초나라와 사로 제후국 병사들이 송나라에 경계를 넘어 민읍(緡邑)⑨을 포위했다. 송성공(宋成公)은 사마 공손고(公孫固)를 시켜 당진에 가서 사태의 위급함을 고하며 구원을 청하게 했다. 당진의 문공이 군신들을 모이게 한 후 그 대책을 물었다. 선진(先軫)이 앞으로 나와 진언했다.

「오늘날 천하의 정세는 초나라가 강대한 자기의 힘만을 오로지 믿고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옛날 주군이 초나라에 몸을 의탁하고 계실 때 사사로이 받은 은혜가 있었다고 해서 더 이상 더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초나라는 이미 제나라를 정벌해 양곡땅을 점령한 후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어 이미 중원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중원의 재난을 구하고 환난을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이번의 거사로 초나라를 정벌하여 위엄을 세운다면 백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병화를 당하고 있는 제와 송 두 나라를 도우려면 어찌 해야 합니까?」

호언이 말했다.

「초나라가 조(曹)나라와 얼마 전에 통호를 하고 다시 새로이 위나라와 혼인을 하여 인척지간을 맺었습니다. 이 두 나라는 모두 주공의 원수나라입니다. 만약 군사를 일으켜 조위(曹衛) 두 나라를 토벌한다면 초나라는 이 두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필시 군사를 움직일 것입니다. 이로써 제나라와 송나라는 초나라의 군사적인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계책입니다.」

문공은 즉시 그 계책을 공손고에게 일러주며, 송나라에 돌아가 수비만을 굳게 하고 있으면 머지않아 초나라의 군사가 스스로 포위를 풀고 물러나게 하겠다는 뜻을 송공에게 전하게 했다. 공손고가 명을 받고 송나라로 돌아갔다. 문공이 군사의 수가 적음을 걱정하자 조쇠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옛 제도에 제일 큰 나라에는3군이 있었고 그보다 못한 나라에는 2군, 그리고 소국은 1군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이신 곡옥(曲沃)의 무공(武公)깨서는 주왕실로부터 1군을 둘 수 있다는 명을 받았습니다. 후에 헌공께서는 군사의 수를 좌우 양군으로 늘려 곽(霍), 위(魏), 우(虞), 괵(虢)등을 멸하고 영지를 사방 천리로 늘리셨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나라로서는 지금의 2군으로 된 군제를 3군으로 늘려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제를3군으로 늘린다 해도 갓 모집한 군사들을 즉시 싸움에 투입할 수 있겠습니까?」

조쇠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백성들은 비록 쉽게 모을 수는 있지만 군법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 싸움에 임하면 또한 쉽게 흩어집니다. 주군께서는 크게 사냥대회를 열고 군사들에게 군례에 대한 시범을 보이시어 그들로 하여금 신분의 높고 낮음과 나이의 많고 적음에 순서가 있다는 점을 알게 하여 자신의 상사를 위해서는 몸을 바치며 죽음도 불사한다는 정신으로 무장시킨 후에나 병사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문공이 다시 물었다.

「군제를3군으로 한다면 필시 원수를 세워야 하는데 누가 적임자이겠습니까?」

「무릇 대장의 재목에는 용력보다는 지혜를 갖춘 사람이 낫고 지혜 있는 사람보다는 학문이 있는 사람이 낫다고 했습니다. 주군께서 지혜와 용력이 있는 사람을 대장으로 구하신다면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나, 만약 학문이 있는 사람을 구하신다면 신의 소견으로는 오로지 극곡(郤縠) 한 사람 뿐인가 합니다. 극곡은 이제 나이 50이 조금 넘었는데 항상 학문에 열중하며 결코 실증이 내는 법이 없으며 예(禮)와 악(樂)에 능통하며 시(詩), 서(書)에도 조예가 깊습니다. 무릇 <예(禮)>, <악(樂)>, <시(詩)>, <서(書)>는 주왕실의 선왕들께서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세운 법(法)과 덕(德)이며 또한 의(義)입니다. 백성들의 생활은 덕과 의를 그 근본으로 삼고 군사의 일은 백성들이 또한 그 근본으로 삼습니다. 오로지 덕과 의를 갖춘 자만이 능히 백성들의 고달픔을 불쌍히 여길 줄 알고 또한 백성들의 고달픔을 불쌍히 여기는 자만이 군사를 능히 부릴 수 있습니다.」

「잘 알았소!」

문공이 즉시 극곡을 불러 원수로 삼고자 했으나 극곡이 사양했다. 문공이 말했다.

「과인이 경을 아는데 어찌하여 사양합니까?」

문공이 재삼 강권하자 극곡이 원수의 직을 받아 들였다. 태사에게 점을 쳐 길일을 택하여 피려(被廬)⑩의 땅에 큰 사냥대회를 열도록 명한 문공은 군사들을 중, 상, 하 3군으로 나누고 극곡을 중군원수에 임명했다. 그밖에 중군부장에는 극진(郤溱)을 임명하고, 기만(祁瞞)에게는 중군원수의 대장기와 북을 관장하도록 했다. 이어서 상군주장에는 호언을 임명하려고 했으나 호언이 사양하면서 말했다.

「신에게는 형님이 계신데 어찌 동생이 형을 앞설 수 있겠습니까?」

문공이 마음을 바꾸어 호모를 상군주장으로 하고 호언을 부장으로 명했다. 이어서 하군주장에 조쇠를 시키려고 하였으나 조쇠도 사양하면서 말했다.

「신은 올곧고 신중하기로는 란지(欒枝)만 못하고 지략을 짜는 능력은 선진(先軫)만 못하며 여러 가지 세상일에 통하기는 서신(胥臣)만 못합니다.」

문공은 조쇠의 말을 쫓아 하군주장에는 란지를, 부장에는 선진을 임명하고 이어서 순림보(荀林父)를 어융(御戎)으로 삼고 위주는 군주를 호위하는 차우(車右)에 명했다. 다시 조쇠는 군사의 일을 총 감독하는 대사마의 직에 명했다.⑪

마침내 각군의 부서가 정해지나 극곡이 등단하여 큰소리로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그가 북을 세 번 울리자 진법을 펴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나이가 적은 군사는 앞에 서고 나이가 많은 군사는 뒤에 세웠다. 군사들은 앉았다 일어서고 앞으로 나갔다고 뒤로 물러나는데 같이 따라 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가르쳤다. 세 번을 가르쳐도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군령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하여 장수들이 서로 의견을 나눈 뒤에 법규에 따라 형벌을 가했다. 계속해서 3일 동안을 조련한 결과 진법의 변화를 마음먹은 대로 지휘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장수들은 극곡이 관대할 때는 관대하고 엄하게 할 때는 엄하게 하는데 그 경우가 하나도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이 없어 마음속으로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훈련을 끝내고 명금(鳴金)을 불어 군사들을 거두려고 하는 순간 홀연히 장수가 서는 지휘대 밑에서 일진광풍이 일어나더니 깃대가 부려지면서 원수기가 땅으로 넘어졌다. 여러 장수들이 불길한 징조에 안색이 변하여 안절부절못하자 극곡이 말했다.

「원수기가 부러져 넘어졌으니 주장이 전사할 징조입니다. 나는 주군 곁에 여러분들과 같이 오래 머물면서 모시지 못할 운명이나 주공께서는 필히 대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장수들이 그 연고를 물었으나 극곡은 얼굴에 미소만을 띄운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가 주양왕 19년 기원전 633년 겨울철 12월의 일이었다.

4. 伐衛破曹(벌위파조)

- 위나라를 정벌하고 조나라를 격파하여 옛날의 원한을 갚다. -

다음 해 봄 당진의 문공은 군사를 나누어 조(曹)와 위(衛) 두 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군신들을 소집한 후에 먼저 극곡에게 그 계책을 물었다. 극곡이 계책을 말했다.

「신은 이미 선진과 상의하여 대책을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금일에 있어서 우리의 군사를 양로로 나누어 조와 위 두 나라를 동시에 정벌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또한 동시에 초나라와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공께서는 마땅히 조나라를 정벌한다고 위나라에게 길을 빌려 달라고 하십시오. 조나라와 관계가 좋은 위나라는 우리의 청을 틀림없이 거절할 것입니다. 계획대로 우리는 즉시 남쪽으로 우회하여 하수의 하류 쪽에서 도하해서 위나라의 경계로 곧바로 쳐들어간다면 이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법이니 소위 ‘갑자기 울리는 번개소리에는 귀 막을 틈도 없다’⑫는 전법은 이를 두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그리 되면 승산은 십중팔구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위나라를 정벌한 여세를 타고 파죽의 기세로 조나라의 국경에 임합니다. 평소에 백성들에게 신망을 잃고 있는 조백(曹伯) 양(襄)이 위나라가 싸움에서 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우리 당진군의 위세에 지레 겁먹게 되고 그렇게 되면 조나라도 역시 쉽게 격파할 수 있습니다.」

문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극원수는 말 그대로 배움이 많은 장수입니다!」

문공은 즉시 사자를 위나라에 보내 조나라를 친다고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위나라 대부 원훤(元咺)이 위성공(衛成公)에게 말했다.

「진후가 옛날 천하를 유랑하며 우리 위나라를 통과하게 되었을 때 그에게 선군께서는 예를 갖추어 접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일 길을 빌려 달라고 하니 주군께서는 반드시 당진의 요청을 허락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당진의 군주는 조나라를 치기 전에 우리 위나라를 먼저 정벌할 것입니다.」

「우리 위와 조 두 나라는 초나라를 섬기고 있는데 만약 조나라를 정벌하는 길을 빌려준다면 당진과 결맹도 하기 전에 먼저 초나라의 분노부터 사지 않겠는가? 당진의 분노를 산다면 의지할 수 있는 초나라라도 있겠지만 만약 초나라의 분노를 산다면 그때는 누구를 믿어야 하겠는가?」

위성공은 원훤이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당진군에게 길을 빌려줄 수 없다고 통고했다. 당진의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자 문공이 말했다.

「극곡 원수의 생각에 벗어남이 없구나!」

문공이 즉시 군사들을 남쪽으로 우회시켜 하수를 건너 오록(五鹿)의 들판에 당도했다. 감개가 무량한 문공이 말했다.

「아! 슬프구나! 이곳이 그 옛날 개자추가 자기 허벅지 살로 국을 끓여 나에게 바친 곳이 아닌가?」

문공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처연해지며 눈물을 흘렸다. 여러 제장들 역시 탄식해 마지않으며 슬퍼했다. 위주가 보고 말했다.

「여기 있는 저희들은 위나라의 도성을 함락시켜 주군을 위해 옛날의 치욕을 갚아 드리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탄식하며 눈물만 흘리십니까?」

중군부장 선진이 위주의 말을 받았다.

「위주 장군의 말이 옳습니다. 원컨대 저에게 본부의 군사를 얼마간 떼어 주시면 앞으로 나가 혼자의 힘으로 오록의 땅을 취하겠습니다.」

문공이 그 말을 장하게 여겨 허락했다. 위주가 곁에 있다가 말했다.

「소장도 같이 출전하여 선장군을 돕고 싶습니다.」

문공이 허락하자 두 장수가 병거에 올라 오록성을 향해 전진했다. 선진이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수많은 기치를 준비하게 하고는 산 속의 숲과 높은 언덕을 지나는 곳마다 기를 꽂아 두게 하여 깃발들이 숲을 뚫고 나와 산을 덮게 하였다. 위주가 보고 말했다.

「내가 듣기에‘군사들을 움직일 때는 아무도 몰래 은밀히 하라’고 했는데 오늘은 가는 곳마다 깃발을 꽂아 표시를 하여 오히려 적군들에게 일부러 알려 대비하게끔 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옛날 제나라를 신하가 군주를 모시듯이 깍듯하게 받들었던 위나라가 마음을 바꾸어 초나라를 섬기고 있습니다. 위나라의 사대부들이 위후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복종하지 않으면서 혹시 중원의 열국들이 와서 토벌을 하지 않을까 매일 노심초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공께서 제환공이 이룩한 백업을 이어 받으시고자 하시는 마당에 우리들 군사들은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큰 소리를 내어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위주가 선진의 말에 승복했다. 한편 오록성의 백성들은 불시에 당진의 군사들이 몰려오자 성루에 올라 성 밖을 살폈다. 그들은 주위의 온산을 뒤덮고 있는 당진군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뿐이며 병사의 많고 적음은 정히 알 수 없었다. 당진군의 허장성세에 놀란 성안이나 성밖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모두 앞 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록성의 성주가 도망가는 백성들 앞을 막았으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선진이 이끄는 군사들이 오록성 앞에 당도했을 때는 아무도 지키는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아 북소리를 한번 울림으로써 성은 함락되었다. 선진이 오록성을 점령했다는 승전보를 문공에게 올렸다. 문공이 기뻐하며 호언을 향해 말했다.

「외숙께서 천거한 사람의 진가가 오늘 나타난 것 같습니다.」

곧이어 노장 극보양(郤步揚)을 오록성에 남겨 지키게 하고 본대의 대군은 다시 이동하여 렴우(斂盂)⑬에 진을 치게 하였다. 바야흐로 위나라 도성의 함락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극곡이 병이 들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문공이 놀라 친히 왕림하여 문병했다. 극곡이 문공을 보고 말했다.

「신은 세상에 흔하지 않은 귀중한 은혜를 주공께 입었습니다. 원래 신명을 다 바쳐 저를 알아준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으나 하늘이 허락한 명이 이제 다 한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원수기가 돌풍에 부러짐으로써 나의 수명에 대한 예언의 징조가 나타나 이제 저의 목숨은 조석지간에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직 주군께 미처 드리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경이 무슨 말을 하던 과인이 어찌 가르침을 듣지 않겠소?」

「주공께서 조와 위 두 나라를 정벌하시는 목적은 원래 초나라를 제압하기 위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은 제(齊)와 섬진(陝秦) 두 나라와 힘을 빌려야 합니다. 그러나 섬진은 멀고 제나라는 가깝습니다. 주군께서는 속히 사자를 제나라에 보내어 동맹을 맺으십시오. 최근에 이르러 초나라와 관계가 악화된 제나라 역시 우리와 동맹을 맺어야할 처지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제나라와 통호하면 위와 조 두 나라는 두려워하여 틀림없이 항복해 올 것입니다. 연후에 섬진과 다시 수호를 맺어야 초나라를 제압하는 만전지책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수의 말대로 행하겠소!」

문공이 즉시 사자를 제나라에 보내 과거에 환공에게서 입은 은혜를 생각하여 제나라와 동맹을 맺어 초나라에 같이 대항하기를 원한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그때 제나라에서는 제효공은 이미 죽어, 제나라의 사대부들이 그의 동생 공자반(公子潘)을 군주로 옹립한 후였다. 이가 제소공(齊昭公)이다. 공자반은 갈영(葛嬴)의 소생인데 군위를 새롭게 이어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백성들에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보여 주어야 할 입장에 있었다. 제소공은 그때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당진과 결맹을 맺어 초나라에 빼앗긴 양곡의 땅을 되찾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후가 염우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소공은 당일로 어가를 타고 출발하여 위나라 땅을 통과하여 문공을 만나러 갔다. 한편 오록의 땅이 이미 함락되어 당진에게 빼앗기자 당황한 위성공은 영속(寧速)의 아들 영유(寧兪)를 문공에게 사절로 보내어 자기가 지은 죄의 용서를 빌고 화의를 청하게 했다. 문공이 말했다.

「위나라가 우리에게 길을 빌려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두려운 마음에 마지 못해 청하는 화의는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위라고 믿을 수 없다. 과인은 조석지간에 위나라 도성이 있는 초구(楚丘)의 땅을 휩쓸어 평지로 만들어 버리리라!」

영유가 돌아와 위후에게 복명했다. 그때 위나라 도성인 초구성 안의 군민들은 당진군이 조만 간에 당도하여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저녁 내내 잠도 자지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영유가 성공에게 말했다.

「진후의 분노가 극에 달해 나라의 사대부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차라리 성 밖으로 나가 잠시 피해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주공께서 이미 성 밖으로 탈출하셨다는 사실을 진후가 알게 되면 아마도 우리 초구성을 공격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진후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다시 통호를 사정하면 다행히 사직은 보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공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선군께서 불행한 처지에서 유랑하며 떠돌던 공자에게 실례를 하고 과인도 또한 잠시 사리에 밝지 못하여 길을 빌려주지 않아 일이 이지경이 되었다. 그 폐해가 나라 안의 사대부들에게까지 미치게 하였으니 과인 역시 나라 안에 남아 있기에는 면목이 없구나!」

위성공은 즉시 대부 원훤(元咺)과 동생 숙무(叔武)에게 나라를 섭정하게 하고 자기는 양우(襄牛)⑭라는 땅으로 달아나 머물렀다. 성공은 한편으로 대부 손염(孫炎)을 초나라에 보내 구원군을 요청했다.

그때가 주양왕20년 기원전 632년 봄 2월의 일이었다. 염옹(髥翁)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어째서 환난 중의 귀인을 손님으로 모시려고 했겠는가?

서로가 다투어 여인과 말을 바치는 것을 괴이타고 했는데

누가 알았겠는가? 오록 땅을 빼앗아 간 사람이

옛날에 구걸하러 다니던 유랑공자였을 줄을!

患難何須具主賓(환난하수구주빈)

納姬贈馬怪紛紛(납희증마괴분분)

須知五鹿開疆者(수지오록개강자)

便是當年求乞人(편시당년구걸인)

5. 暴尸發墓(폭시발묘)

- 시체를 성루에 전시하자 무덤을 파서 대항하다. -

한편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된 극곡은 같은 달에 숨을 거두었다. 문공이 애석해 하며 사람을 시켜 그의 시신을 호송하여 본국으로 보냈다. 그 후임에 오록을 취한 공을 들어 선진을 중군원수로 직을 높이고 서신을 임용하여 하군 부장으로 삼아 선진이 맡고 있던 직을 계승하게 하였다. 전에 조쇠가 서신은 아는 바가 많다고 천거했기 때문에 문공이 기억하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 기용한 것이다. 문공은 위나라를 빨리 공격하고 싶어 했다. 선진이 문공의 마음을 헤아리고 간했다.

「본래 초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하고 있는 제와 송 두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왔지만 아직 두 나라를 위험으로부터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두 나라가 먼저 망해 버리면, 작은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와주어야 하는 방백의 임무를 다 하지 못하는 일이 됩니다. 더욱이 위나라가 무도하기는 하나 그 군주가 나라밖으로 탈출해 버려 위나라의 운명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상황인데 차라리 군사를 움직여 조나라를 정벌한다면 초나라 군사가 위나라를 구원하러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조나라에 있어 초나라의 의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문공이 선진의 의견을 받아들여 초구성에 대한 포위를 풀고 군사를 돌려 조나라를 정벌하기로 했다. 그해 3월 당진의 군사들은 조나라로 이동하여 그 도성을 포위했다. 조공공이 군신들을 조당에 모이게 하여 그 대책을 물었다. 대부 희부기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당진의 군주가 이번에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는 옛날 주군께서 그가 유랑할 때 그의 변협(騈脅)을 보신다고 하면서 모욕을 가한 일에 대한 원한을 풀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분노가 매우 깊으니 대항할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신으로 하여금 사자에 명하시어 우리가 범한 죄의 용서를 빌고 화의를 청하도록 하여 나라와 백성들의 환난을 구하십시오.」

「당진의 군주가 위나라도 용서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인들 용서하겠는가?」

그때 대부벼슬을 하고 있던 우랑(于郞)이란 자가 나와서 말했다.

「신이 들으니 당진의 군주가 옛날 우리나라를 통과하기 위해 머무르고 있을 때 희부기는 사사로이 음식을 준비하여 바쳤다 합니다. 오늘 다시 사자로 가기를 자청하니 이것은 나라를 팔아먹고자 하는 계획입니다. 희부기의 말을 들어주시면 안 됩니다. 주공께서 먼저 희부기를 참하시면 신이 당진의 군사들을 물리칠 계책을 내놓겠습니다.」

「희부기는 나라에 불충하였다고는 하나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공신의 집안이라 죽음만을 면하게 하고 그의 관직은 박탈하도록 하겠다.」

이것은 마치‘창문을 닫아걸고 문 앞에 아름다운 달이 떠있는 줄도 모르고 단지 매화 타령만 하고 있었다.’⑮라는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조공공이 우랑에게 물었다.

「어떤 계책을 가지고 있는가?」

「당진의 군주는 자신의 큰 세력만을 믿고 그 마음이 필히 교만해 졌을 것입니다. 신이 거짓으로 항복한다는 밀서를 써서 황혼 무렵에 문을 열어 성을 바치겠다는 약조를 하겠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는 미리 정예한 병사들을 쇠뇌로 무장시켜 성안의 빈터에 매복시킨 후에 진후가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신호로 삼아 성문을 내려 가두어놓고 매복하고 있던 궁노수들에게 일제히 화살을 쏘게 하면 당진의 군주는 수많은 화살 밑에서 고슴도치가 되어 죽을 것입니다.」

조공공이 우랑의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진문공이 우랑으로부터 성을 열어 바치겠다는 내용의 밀서를 받았다. 선진이 보고 말했다.

「조나라는 싸움도 하기 전이라 아직 그 군사들이 꺾이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항복을 제의해 오니 아마도 거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선진은 즉시 군중에 수염이 길게 나고 신체가 우람한 군졸을 한 사람 뽑아 군주가 입는 옷을 입힌 후 그 역할을 대행하게 했다. 그때 문공을 따라 종군하여 군중에 있던 시인 발제(勃鞮)가 가짜 군주가 탄 수레를 몰겠다고 자청했다. 이윽고 황혼 무렵이 되자 성의 왼쪽에서 항복을 표시하는 깃발이 오르더니 성문이 크게 열렸다. 문공으로 위장한 당진의 군사가 5백여 명의 군졸들을 데리고 호기(豪氣)를 부리며 성안으로 들어갔다. 당진의 군사들이 반도 들어가기 전에 성안의 빈터에서 딱따기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는 순간 갑자기 수많은 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날아왔다. 군주로 위장한 군졸이 어가를 황급히 뒤로 돌리려 하였으나 성문이 이미 닫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애석하게도 파란 많은 생을 살아온 당진의 시인 발제와 300여 명의 군졸들은 일시에 목숨을 잃어 한 무더기의 시체더미를 이루게 되었다. 진후가 직접 들어가지 않은 것은 참으로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직접 성안으로 들어갔더라면 이것은 마치 ‘곤강(崑崗)⑯)에 불이 나니 옥석이 모두 불에 타는 구나!’⑰라는 말과 같은 상황이 될 뻔 했다. 당진의 문공이 옛날에 조나라를 지나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조나라 사람들 중에는 문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날 황혼 무렵에는 너무 창졸간이라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랑은 단지 당진의 군주가 란전 중에 죽은 줄로만 알고 조공공 앞에서 허풍을 떨면서 우쭐거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날이 밝아 시체들을 확인한 결과 죽은 당진의 군주는 가짜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랑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그전 날 저녁 가짜 군주를 따라가다 성문이 닫히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한200여 명의 군사들이 도망쳐와 문공에게 고했다. 문공이 크게 노하여 조나라 도성에 대한 공격을 더욱 세차게 퍼붓도록 명했다. 우랑이 다시 조공공에게 계책을 내었다.

「화살에 맞아 죽은 진나라의 시체를 성루에 늘어놓아 적군에게 보이면 그들은 필시 간담이 서늘해져 우리 조성에 대한 공격에 온힘을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며칠만 더 버틴다면 초나라의 구원병이 필히 도착하여 당진군을 물치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군심을 동요시키는 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조공공이 우랑의 계책을 다시 따라 진군의 시체를 말뚝에 묶어 성루에 메달아 놓자 당진의 군사들은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며 입으로는 원망하며 탄식하는 소리를 끊이지 않고 했다. 문공이 선진을 보고 말했다.

「군심이 두려움에 떨어 동요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조나라 사대부들의 분묘는 모두 성문 밖 서쪽에 있습니다. 군사들 일부를 따로 떼어 묘지 주위에다 진영을 치게 하고 그 분묘들을 파내게 한다면 성안의 백성들은 필히 두려워하여 조성의 인심이 어지러워 질 것입니다. 그런 다음 기회를 보아 공격하면 조성을 쉽게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선원수의 생각대로 하시오.」

선진이 즉시 군중에 영을 내려 소문이 퍼지게 했다.

「우리들은 조나라 백성들의 무덤을 파 전사한 당진군의 원수를 갚아야겠다.」

호모와 호언 형제에게 소속부대를 끌고 가서 묘지 주위에 진채를 세우게 한 후에 괭이와 삽을 준비시켜 다음날 정오까지 시간을 정하여 유골을 파내어 바친 사람 모두에게는 상을 주겠다고 공포했다. 조성내의 군민들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조공공이 사람을 시켜 성루에 올라가 당진군의 진영에 대고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

「우리 조상들의 분묘를 파헤치는 행위를 멈추시오. 이번에는 진정으로 항복을 하겠소!」

선진도 역시 군사 한사람을 시켜 대답하게 했다.

「너희들은 우리 군사들을 속여서 유인하여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또다시 시체를 성루에다 늘어놓아 죽은 사람을 다시 욕보였다. 그래서 우리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너희들 조상들 무덤을 파헤쳐 이에 대한 보복을 하려고 했다. 너희들이 죽은 우리 군사들의 시신을 거두어 염을 한 후에 관에 넣어 우리에게 보내면 우리도 군사를 물리쳐 너희들 조상들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중지하겠다.」

조성의 성루에 있던 사람이 다시 외쳤다.

「그 일을 다 마치려면3일간의 말미가 필요하오.」

선진이 다시 그 군사에게 대답하게 하였다.

「3일 내에 시신을 넣은 관을 보내지 않아 우리가 너희들 조상들을 욕보이더라도 탓하지 말라!」

조공공이 과연 성 위에 늘어져 있던 시체를 모두 거두어 그 숫자를 헤아린 후에 나무를 준비하여 관을 짜도록 했다. 3일이 지나가기 전에 당진군의 시신을 성대히 염하고 관속에 넣어 모두 수레에 실었다. 한편 선진은 그사이에 계책을 하나 세웠다. 호모와 호언 및 란지와 서신 등에게 병거를 정돈하게 하여 군사들을 사대로 나누어 성문 앞에 매복하게 한 후에 조나라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관을 보내기 위해 나오면 사대문에서 일제히 공격해 성안으로 진격해 돌입하도록 했다. 약속한 3일이 지나고 4일째가 되자 선진이 사람을 시켜 성 위에다 대고 외치게 했다.

「약속한3일이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 시신을 넣은 관을 보내지 않는가?」

조나라 성루에 군사가 앞으로 나오며 외쳤다.

「포위망을 풀고 뒤로5리를 물러나면 즉시 시신을 보내겠다.」

선진이 문공에게 고하고 군사들을 뒤로 물러나도록 명했다. 과연 당진의 군사들이 5리를 뒤로 물러나니 조성의 사대문이 모두 열리며 관을 실은 수레들이 성밖으로 나왔다. 대략 수레의 삼분의 일쯤이 밖으로 나왔을 때 즈음하여 갑자기 포성이 크게 한 번 울리더니 사대문 앞에 매복하고 있던 당진의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성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나라 군사들은 관을 실은 수레들이 넘어져 입구가 막혀 갑자기 성문을 닫을 수가 없게 되었다. 혼란한 틈을 타서 당진군이 성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조공공은 성 위에서 조군을 지휘하며 당진의 군사들을 막았다. 성밖에 있던 위주가 조공공을 발견하고 수레 안에서 몸을 솟구쳐 성 위로 올라가더니 조공공의 가슴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달려들어 포승줄로 묶어 버렸다. 성벽을 넘어 도망치려던 우랑은 전힐에게 잡혀 목이 잘렸다. 문공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성루에 올라 승전보를 받았다. 위주는 포승줄에 묶인 조공공을 데려오고 전힐은 우랑의 수급을 가져와 각각 문공에게 바쳤다. 그 밖의 장수들도 자기들이 잡거나 얻은 전리품들을 모두 문공에게 바쳤다. 문공이 명하여 조나라의 사대부들의 명부를 가져오게 하여 살펴보았는데 초헌(軺軒)을 탈 수 있는 대부이상의 벼슬을 갖은자가 300명이 넘었다. 문공은 명부에 적혀있던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 명부에 희부기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좌우에게 물으니 아는 사람이 있어 대답했다.

「희부기는 조공공에게 화의를 맺도록 권유했다가 대부의 벼슬을 박탈당하고 이제는 평민이 되었습니다.」

문공이 즉시 조공공에게 그의 죄를 열거하며 말했다.

「너는 우매하여 나라 안에 있는 단 한 명의 현신도 능히 쓰지 못하고 오히려 일반 소인배들만 임용하여 마치 어린아이들이 장난치듯이 나라 일을 봐 왔으니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문공이 다시 목소리를 높여 지시했다.

「대채에 감금했다가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긴 후에 내가 처분을 내리리라!」

진문공은 초헌을 타고 다니면서 거들먹거렸던300명이 넘는 조나라의 소인배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도륙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군사들의 노고에 상으로 나누어주었다. 문공은 옛날에 조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희부기가 음식을 준비하여 접대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 가족을 북문에 살게 하고 그 일대의 땅을 주면서 영을 내렸다.

「이곳에서 큰 소리로 소란을 피워 놀라게 하거나 이곳에 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손대는 자가 있다면 참수형에 처하리라!」

문공이 여러 장수들의 할 일을 조정하여 반은 성에 남아 지키게 하고 반은 자기를 따라 성 밖으로 나가 영채를 세워 묶게 하였다. 호증(胡曾)선생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조백은 현자를 태만히 대하여 포로가 되었지만

희부기는 은혜를 베풀어 죽음을 면했다!

목전의 일도 알지 못하고 방편을 행하지 않으면

뒤로 넘어진 다음에야 시비를 알 수 있으리라!

曹伯慢賢遭縶虜(조백만현조집로)

負羈行惠免誅夷(부기행혜면주이)

眼前不肯行方便(안전불긍행방편)

到后方知是與非(도후방지시여비)

6. 盤飧焚死(반손분사)

- 저녁밥을 바친 일로 시기를 받아 불에 타죽은 희부기 -

한편 위주(魏犨), 전힐(顚頡) 두 사람은 평소에 자기들의 공이 높음을 과신한 나머지 교만하고 방자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금일에 문공이 영을 내려 희씨 일가를 싸고도는 모습을 보자 위주가 노하여 말했다.

「우리들은 금일 조나라의 군주를 사로잡고 또한 적장의 목을 베었는데 주공께서는 우리들에게 포상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하시고, 그까짓 한 번 얻어 먹은 음식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듯 정성을 다해 마음을 쓰시니, 진실로 가볍고 무거운 것을 가리지 못하는 행위가 아니신가?」

「희부기가 후일에 당진에서 벼슬을 하게 되면 틀림없이 중용 될 것이오. 나중에 그가 주공의 총애를 믿고 우리들을 업신여긴다면 우리의 체면이 무엇이 되겠소? 차라리 그의 집에 불을 놓아 죽여 그 후환을 없애버리는 편이 어떻겠소? 주공이 나중에 아시더라도 차마 우리들을 말씀하신 대로 참수형에 처하시기까지야 하시겠소?」

「장군의 말에 도리가 있소!」

두 사람이 같이 술을 마시면서 저녁때가 되기를 기다려 비밀리에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희부기의 집을 에워싼 후에 집의 앞문과 뒷문에서 동시에 불을 놓게 하자 화염이 충천했다. 술에 취한 위주가 용력을 과시하기 위해 몸을 솟구쳐 대문 위에 올라섰다. 이윽고 불길이 발밑으로 다가오자 다시 지붕의 처마 밑에 있는 낙수받이로 비호처럼 뛰어 건너 희부기를 집안에서 찾아내어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집의 대들보와 서까래가 불에 탄 나머지 갑자기 밑으로 큰소리를 내면서 무너져 내렸다. 와중에 위주가 땅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발이 걸려 넘어져 하늘만 쳐다보며 꼼짝 못하게 되었다. 다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시에 불이 붙은 기둥 하나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땅위에 드러누운 위주의 가슴을 강타했다. 위주는 가슴에 통증이 심하게 왔으나 아무소리도 지르지도 못하고 입에서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 냈다. 위주의 주위 사방에는 불덩어리들이 난무하였다. 위주가 최후로 남아 있던 힘을 발휘하여 순식간에 몸을 솟구쳐 정원의 기둥 위로 올라가 다시 이층으로 뛰어 올라 이러 저리 몇 바퀴 돈 다음 불길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몸에 입고 있던 의복들은 모두 불길에 타고 있어 모두 벗어 던져 버리자 위주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어 버렸으나 간신히 불 속에서 타죽는 것만은 면하게 되었다. 위주가 비록 용맹하기는 했으나 기진맥진한 나머지 땅바닥에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바로 전힐이 달려와 위주를 부축하여 공지로 가서 휴식을 취하게 한 후에 옷을 구해서 몸을 가리고 같이 수레에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아픈 몸을 치료했다.

한편 성안에 묶고 있던 호언과 서신 등이 북문에서 불이 난 모습을 보자 혹시 조나라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나 의심하여 황망히 군사를 이끌고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달려갔다. 희부기의 집에 불이 난 사실을 알게 된 호언 등은 급히 군사들을 시켜 불을 끄게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희부기의 집은 10중 7-8은 다 타 버린 뒤였다. 가솔들을 이끌고 불을 끄고 있던 중에 연기에 중독 되어 땅바닥에 쓰러진 희부기를 사람들이 구하려고 달려들었으나 다시 천장 위에서 떨어지는 불기둥에 휩싸여 화상을 입어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그 처가 보고 말했다.

「희씨들의 후사를 여기서 끊어지게 할 수 없다! 」

희부기의 처가 즉시 그녀의 다섯 살 난 아들 희록(僖祿)을 품에 안고 후원으로 달려가 오물이 가득 찬 연못가운데로 뛰어들어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시간이 어느덧 오경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불길이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희씨 집안의 장정도 여러 사람이나 불길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희부기 집 근방에 있던 백성들의 집도 수십 채나 불에 탔다. 호언과 서신은 위주와 전힐이 저지른 방화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라 감히 감출 수 없어 문공이 묶고 있는 대채에 비보를 띄웠다. 성에서 5리 되는 곳의 대채에 묶고 있던 문공은 그날 밤 비록 성안에서 화광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기는 했으나 그리 확실하지 않아 아침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호언과 서신이 보낸 사람으로부터 보고받고 사정을 알게 된 문공은 즉시 어가를 움직여 성안으로 들어가 먼저 북문으로 가서 희부기의 상태를 살폈다. 희부기는 눈을 한번 크게 뜨고 문공을 보더니 숨을 거뒀다. 문공이 탄식해 마지않았다. 부기의 처가 다섯 살 난 외동아들인 희록을 안고서 땅에 엎드려 대성통곡했다. 문공도 역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희부인께서는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과인이 그대를 위해 어린아이를 보살펴 주겠소.」

문공은 즉시 희부기의 처가 가슴에 안고 있던 희록에게 대부의 벼슬을 내렸다. 황금과 비단을 후하게 내리고 부기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른 후에 그 모자를 당진의 도성으로 옮겨 살게 했다. 후에 조백이 문공에게서 용서를 받고 풀려 나와 조나라를 다시 다스리게 되었을 때 희부기의 처가 고향에 돌아가 조상의 무덤에 제사를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여 조나라에 돌아올 수 있었다. 장성한 희록은 조나라에서 대부 벼슬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나중의 일이다.

희부기의 장례를 끝내고 그 가족들의 안배를 끝낸 문공은 그날로 사마 조쇠에게 명하여 군주의 명을 어기고 방화를 한 죄에 대하여 의논한 끝에 위주와 전힐을 처형하려고 하였다. 조쇠가 문공에게 간했다.

「이 두 사람은 주공께서 유랑하실 때에19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며 생사고락을 같이했습니다. 근자에 또한 큰공도 세웠으니 용서하심이 옳을 것 같습니다.」

문공이 노하여 말했다.

「내가 백성들로 부터 믿음을 얻고 있음은 영(令)이 서기 때문이오. 신하들이 나의 영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어찌 신하라 할 수 있겠소? 또한 그로 인하여 군주가 신하들에게 영을 행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군자라 할 수 없소. 군주답지 못하고 또한 신하답지 못하니 내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소? 나를 위해 고생한 대부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만약에 모두가 영을 범하고 멋대로 행한다면 이후로 내거 어찌 영을 세울 수 있겠소?」

조쇠가 다시 주청하였다.

「주공의 말씀은 심히 타당합니다. 그러나 위주는 재주와 용기가 여러 장수들 중 단연 뛰어난 인재라 죽이는 것은 너무 애석한 일입니다. 또한 그의 죄는 전힐의 부추김을 뒤따랐다고 하오니 신의 소견으로는 전힐 한 사람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경종을 울릴 수 있는데 하필이면 두 사람을 같이 죽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위주가 가슴에 상처를 입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조석지간에 죽게 되었다는데 그런 사람을 애석히 여겨 나의 영을 어긴 행위를 불문에 부치자고 하십니까?」

「신이 청하옵건대 주공의 명으로써 그를 한번 찾아가 그가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 같으면 주군의 말씀대로 참형에 처하고 만약에 아직 일어나서 돌아다닐 수 있다면 원컨대, 용맹한 장수를 살려놓아 나중에 위급한 일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문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문공은 즉시 전힐에게는 순림보(荀林父)를 보내 소환하고, 위주에게는 조쇠를 보내 그의 병세를 살펴보게 했다.

『제40회로 계속』

주석

①유하혜(柳下惠)/ 춘추 초기 노나라의 대부로써 전(展) 성에 이름은 획(獲)이다. 식읍(食邑)이 유하(柳下)이고 시호(諡號)가 혜(惠)다. 중국 춘추 시대 노(魯)나라 때의 현자(賢者)다. 자는 금(禽) 혹은 계(季)이고 유하(柳下)에서 살았으므로 이것이 호가 되었으며, 문인들이 혜(惠)라는 시호를 올렸으므로 유하혜라고 했다. 노나라에서 형옥(刑獄)의 일을 관장하는 사사(士師) 벼슬을 살았다. 노희공(魯僖公) 26년 기원전 634년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그는 사람을 제나라 진영으로 보내 그 군사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는 변설에 능하고 예절에 밝아 이름이 높아 공자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또한 직도(直道)를 지켜 임금을 섬기고 진정한 화(和)를 이룬 사람이라고 해서 맹자에 의해 이윤(伊尹), 백이(伯夷),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춘추 시대 대도(大盜)이며 악인(惡人)의 대명사로 쓰이는 도척(盜跖)은 그의 동생이다. 이에 따라 형제간에 현인과 대악인이 있을 때 이들에 비유하였다. 논어18편 미자(微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유하혜는 사사(士師)였는데, 세 차례나 쫓겨났다. 사람들이 보고 말하기를 ‘ 다른 데로 가 버릴 수 없었던가요?’ 하고 말하자, 그는 ‘곧은 도리로 남을 섬기자면 어디에 간들 세 차례는 쫓겨나지 않겠소? 정도를 굽혀서 남을 섬길진대 하필이면 부모의 나라를 떠나야 한단 말이오?’ 하였다. (柳下惠爲士師, 三黜. 人曰子未可以去乎. 曰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또한 맹자 공손축(公孫丑) 장(章)에 백이, 이윤, 공자와 함께 그의 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 섬기기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였고, 작은 벼슬도 사양하지 아니하였다. 나아가서는 자기의 재주를 숨기지 않았고, 반드시 정당한 도로써 일하였고,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궁에 빠져도 근심하지 아니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너그럽게 대하였고,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내 곁에서 벌거벗고 있다 한들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하혜의 기풍을 듣게 되면 비루한 사나이도 너그럽게 되고, 천박한 사나이도 후덕하게 되었던 것이다.]

②장손신(臧孫辰)/ 춘추 노희공(魯僖公: 재위 전660-627) 재위 시 태어났으나 정확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617년에 죽은 노나라의 정경이다. 성은 장손(臧孫)에 이름은 신(辰)이다. 시호는 문(文)이고 자가 중(仲)이라 장문중(臧文仲)이라고 했다. 종법(宗法)과 행정에 밝아 노년에 노나라의 중신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각 제후국들은 연대하여 서로 도와야한다고 역설했다. 제나라에 들어가 식량을 구입하여 기근으로 굶주리고 있던 노나라의 백성들을 구휼했다. 또한 당시의 패권국 당진국에 들어가 진문공에게 죄를 지어 억류당하고 있던 위성공(衛成公)의 석방을 주선하여 제후국들 간의 친선을 촉진시켰다. 점복(占卜)과 귀신의 일에 너무 집착하여 당시의 식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③문남(汶南)/ 제나라와 노나라의 경계를 이루었던 문수(汶水) 남쪽 강안의 땅을 말한다.

④가(柯)/ 제환공(齊桓公)이 노장공(魯庄公)과 만나 회맹할 때 조말(曺沫)이라는 무장이 따라가 제환공을 단검으로 위협하여 제나라에 빼앗긴 땅을 다시 돌려 받은 곳.

⑤양곡(陽谷)/ 지금의 산동성 동평현(東平縣) 북쪽에 있었던 고을로 하남성과의 경계에 있는 동평호(東平湖) 동안의 고을이다.

⑥제환공 사후 제나라 공자들이 벌린 후계자 싸움의 내용은 본서32회 참조.

⑦규(暌)/ 위치미상

⑧위(蔿)/ 위치미상

⑨민읍(緡邑)/지금의 산동성 금향현(金鄕縣) 부근. 금향현은 미산호(微山湖) 중간 서쪽 약 20키로 되는 하남성과의 접경지역에 있다.

⑩피려(被廬)/ 위치미상

⑪각군의 주장(主將) 및 부장(副將)과 기타 직무별 목록표

군별(軍別)

주장(主將)

부장(副將)

중군(中軍)

극곡(郤穀)

극진(郤溱)

상군(上軍)

호모(狐毛)

호언(狐偃)

하군(下軍)

란지(欒枝)

선진(先軫)

기타(其他)

① 어융(御戎):순림보(荀林父)/차우車右):위주(魏犨)/대사마(大司馬):조쇠(趙衰)/기만(祁瞞):장(掌)대장기(大將旗)와북(鼓)

⑫迅雷不及掩耳(신뇌불급엄이)

⑬렴우(斂盂)/지금의 하남성 농양현(濃陽縣) 동남에 있던 고을로써 이 일이 있고 난 후 진문공(晉文公)이 제소공(齊昭公)을 이곳에 만나 회맹했다. 제나라와 회맹을 맺은 진문공은 성복(城濮)에서 초나라의 군사를 대파하고 중원의 패권을 잡는다

⑭양우(襄牛)/ 위(衛)나라의 영토로써 지금의 하남성 수현(睢縣) 경내.

⑮閉門不管窓前月, 吩咐梅花自主張

⑯곤강(崑崗)/ 곤산(昆山)의 옛 이름이며 곤륜산을 말한다. 옛날부터 옥의 산지로 유명했다.

⑰昆崗失火, 玉石俱焚

평설

기원전 632년 당진국이 조(曹)와 위(衛) 두 나라를 공격하고 송(宋)나를 구원했다. “ 위나라를 정벌하고 조나라를 공격하는 진문공” 편에서 당진군이 승리를 얻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1. 시기선택이 좋았다.

초왕이 송나라를 공격하여 중원에 전쟁이 발발하자 당진국은 재난을 구원하고 백성들을 보살핀다는 명분으로 패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당진국이 이러한 명분과 의로써 한 번 호령을 발하자 중원의 제후국들은 각기 지지를 표명했다. 왜냐하면 중원제후국들에게 당시 초나라라는 존재는 변방의 만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2. 전략의 내용이 훌륭했다.

진군목표의 제후국으로 조(曹)와 위(衛) 두 나라를 겨냥함으로써 초군이 구원하기 위하여 달려오도록 유인하여 그 결과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은 것이다. 그 전략은 초나라의 위성국 조와 위 두 나라를 먼저 공격함으로 해서 송나라를 구원함과 동시에 중원에서의 초나라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3. 군사력을 증강했다.

주례에 의하면 ‘ 대국은 3군’이라는 규정에 따라 진헌공 때 2군 편제였던 군대를 3군으로 증편하여 군사력에 있어서 우위를 점했다. 군대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배우는데 싫증을 내지 않는 학자 출신의 인사를 원수로 기용했다. 원수를 임명할 때 적용했던 기준으로써, 용기있는 자보다는 지혜있는 자가, 지혜있는 자보다는 보다 학문있는 자 보다 낫다는 원칙은 오늘 날도 통용되고 있다.

4. 엄격한 군사훈련의 실시

진법연습, 공수의 반복적 훈련, 엄격한 군율의 실시는 당진국의 군대를 정공과 기습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지휘관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5. 적절한 계략을 사용했다.

첫째는 조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길을 빌리려는 행위이다. 위나라가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아 확실히 알고 있음에도 위나라를 향해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둘째는 출기불의(出其不意) 작전이다. 진군로를 길게 우회하여 황하를 건너 위나라를 기습할 때 전개한 작전은 마치 번개가 치는 듯이 신속하여 미처 그 소리에 귀를 막을 틈도 주지 않을 정도의 호탕한 기세였다.

셋째는 먼저 소리를 높여 사람들의 정신을 빼앗았다. 대군이 지나가는 곳은 모두 기치를 무성하게 꼽아 고의로 위나라 백성들이 당진군의 공격을 알게 했다.

넷째는 제(齊)나라와 동맹을 맺은 것이다. 지리적으로 제나라와 가까운 위나라는 원래 제나라의 위성국이었다. 초나라를 받들게 된 것은 그래 오랜 된 일이 아니었다. 당진국이 위나라의 오록(五鹿) 땅을 점령하고 그 즉시 제나라와 동맹을 맺고 대초연합전선을 결성했다.

다섯째는 초군을 위나라로 유인한 뒤에 당진군 자신은 조나라를 공격한 것이다. 당진이 위나라를 멸하지 않고 존속시킨 것은 초군을 유인하여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기 위한 작전이었다.

7. 장계취계(將計就計)

당진군이 조나라를 정벌하는데 사용했던 매우 눈에 띠는 특이한 작전이다. 강대한 당진군에 맞선 조군은 먼저 사항계(詐降計)를 사용하여 진문공을 자기들 성안으로 유인하여 사로잡으려고 기도했다. 이에 당진군은 군사들 중 한 명을 선발하여 진문공으로 변장시켜 일지의 군사들과 함께 조나라 성안으로 진입시켰다. 그래서 조나라는 그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당진군은 큰 손실을 입는 것을 면했다. 이어서 조군이 성벽 위에 올라 조군의 성안에서 전사한 군사들의 시신을 내 던져 당진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려고 했다. 이에 당진군도 같이 첨예한 방법으로 대응했다. 즉 당진군은 성 밖에 있는 조나라 사람들의 선조들이 무덤을 파헤치겠다고 하면서 조나라가 전사한 당진군의 시신을 모두 관에 넣어 성 밖으로 내보내라고 요청한 것이다. 조군이 관을 전달하기 위해 성문을 열고 나오자 그 틈을 이용하여 당진군이 성안으로 돌입하여 일거에 조나라를 멸하고 조나라 군주 조공공(曹共公)을 사로잡았다.

장계취계는 피동적인 외형에 안에는 주동적인 내용을 갖춘 전략으로 위난을 벗어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금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와 같은 전략의 구사는 상대방이 생각하는 바와 꼭 들어맞아 득의양양하여 우쭐거리는 사이 경계심을 잃고 해이해져 자기편으로써는 비교적 적은 대가를 치르고 큰 이익을 취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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