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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29:024497 
제40회. 詭謀激將(궤모격장), 城濮大戰(성복대전)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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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40회

詭謀激將 城濮大戰(궤모격장 성복대전)

기묘한 계책으로 적장을 격분시켜

성복(城濮)에서 초군을 크게 물리친 당진의 장수 선진

1. 賞罰分明(상벌분명)

- 전힐을 죽이고 위주를 파면하여 상벌을 분명히 밝힌 진문공

조쇠가 문공의 밀지를 받들어 위주의 병세를 살피기 위해 수레를 타고 그의 숙소를 찾아갔다. 그때 가슴에 중상을 입고 상처가 악화되어 침상에 누워 있던 위주는 시종으로부터 사람이 찾아 왔다는 전갈을 받자 물었다.

「찾아온 사람이 누구냐?」

시종이 대답했다.

「대사마 조쇠대부께서 혼자 수레를 타고 오셨습니다. 」

「이것은 나의 생사여부를 탐문하여 내가 저지른 죄를 추궁하기 위한 행차임에 틀림없다.」

위주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에게 명하여 비단을 가져오게 하여 자기 가슴의 상처 부위를 싸맨 후에 의관을 정제하고 밖으로 나가 조쇠를 맞이하려고 하였다. 시종들이 만류하면서 말했다.

「장군은 병은 위독한데 지금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위주가 소리쳐 말했다.

「내가 죽을병이 들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 잔말이 많으냐?」

위주는 의복을 평상시처럼 차려입고 나와서 조쇠를 맞이했다. 조쇠가 발에 들어와 좌정한 다음 물었다.

「제가 듣자 하니 장군의 병이 위중하다고 하던데 이렇듯 일어나셔서 기동을 하셔도 괜찮으십니까? 주공께서는 이 쇠(衰)를 시켜 아파 고생하시는 장군을 위문하라 하셨습니다.」

「주군의 명이 이렇듯 자애로운데 어찌 감히 제가 누워서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통증이 있다 하나 가슴을 비단으로 단단히 동여 메고 대감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이 주(犨)는 지은 죄가 마땅히 죽음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용서를 받는다면 아직 남아 있는 목숨을 바쳐 주군에게 입은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어찌 감히 스스로 편안함을 추구하겠습니까?」

위주가 말을 마치더니 위로 세 번을 허공에 뛰어오르고 다시 몸을 굽혀 세 번 춤을 췄다. 조쇠가 보더니 말했다.

「장군은 부디 몸을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이 쇠가 주공에게 말씀을 올려 드리리다!」

조쇠가 돌아와 문공에게 복명했다.

「위주장군이 비록 상처가 심하기는 하지만 아직 공중으로 뛰어 오르고 춤을 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하로써의 예의를 잃지 않아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용서를 하시면 후에 필히 죽을힘을 다하여 공을 세워 은혜에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단지 법을 세워 다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려고 했을 뿐이오. 과인인들 어찌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는 일을 좋아하겠소!」

그리고 잠시 후에 순림보가 전힐(顚頡)을 잡아 문공 앞으로 끌고 왔다. 문공이 보고 큰소리로 책했다.

「그대는 무슨 마음으로 희대부의 집에 불을 질러서 다 태워 버렸느냐?」

「개자추는 허벅지 살을 베어 내서 국을 끓여 주군께 바쳤음에도 산에 기거하다가 결국 불에 타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물며 음식 몇 가지를 바치고 불에 타 죽는 일이 그렇게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신은 단지 희부기를 개산에 있는 개자추의 사당으로 보내려 한 것뿐입니다.」

문공이 더욱 노하여 큰소리로 말했다.

「개자추는 나에게서 벼슬을 하기 싫고 해서 도망친 사람이다. 어찌 과인에게 허물을 따진단 말이냐?」

문공이 사마 조쇠를 향하여 물었다.

「전힐이 주모하여 위주와 함께 불러 질러 희부기를 죽게 만들었다. 나의 명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했으니 그 죄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참수형에 해당합니다.」

문공이 군리에게 형을 집행하라고 큰소리로 명했다. 도부수들이 들어와 전힐을 진채의 원문 밖으로 끌고 나가 그의 목을 참했다. 사람을 시켜 전힐의 수급을 희부기의 집에 가져가게 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명한 문공은 다시 영을 내려 그 수급을 가져가 북문 위에 효수하도록 했다.

「이후로 과인의 영을 어긴 자는 이처럼 효수형에 처하겠노라!」

문공이 다시 조쇠에게 물었다.

「위주가 전힐을 막지 못하고 같이 영을 어겼으니 이는 무슨 죄에 해당하는가?」

「마땅히 그의 작위와 봉록을 삭탈하고 후에 공을 세워 속죄토록 해야 합니다.」

문공이 즉시 위주를 차우(車右)의 직에서 파면하여 서민으로 만들고 주지교(舟之僑)로 하여금 그 직을 대행하도록 했다. 당진군의 장수들과 군졸들은 모두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전힐과 위주는 주군을19년 동안이나 따라 다니면서 큰공을 세웠음에도 군명을 단 한 번 어김으로써 한 사람은 주륙을 당하고 한 사람은 작위와 봉록이 삭탈되고 차우장군에서 파면되었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나라의 법에 사사로움이 없으니 우리 모두 는 각기 부디 근신해야 할 것이다!」

이후로 삼군의 군기가 엄숙해지고 군명의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사관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엄한 법에만 의지하려고 하는데

사은과 공의를 동시에 행함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한 번의 잘못으로 지은 죄를 옛 공으로도 속죄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어찌하여 반손 한 끼를 바쳐 세운 공이라고 참지 못 했는가?

亂國全凭用法嚴(란국전빙용법엄)

私勞公義兩難兼(사노공의양난겸)

只因違命功難贖(지인위명공난속)

豈爲盤飧一夕淹(개위반손일석엄)

2. 詭謀激將(궤모격장)

- 속임수로 적장을 격분시키는 당진군의 중군원수 선진. -

한편 초성왕은 송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민읍(緡邑)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후 곧바로 군사를 움직여 송나라 도성인 수양성(睢陽城)을 향해 진격했다. 이윽고 초나라 군사들이 수양성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사방에서 진지를 쌓기 시작했다. 초성왕은 송나라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시에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 낼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좌우의 측근 한 사람이 들어와 보고하였다.

「위나라에서 손염(孫炎)을 사신으로 보내와 사태의 위급함을 알려 왔습니다.」

초왕이 손염을 들어오게 하여 그 까닭을 물었다. 손염은 당진의 군사가 오록(五鹿)을 취하고, 위군은 도성 밖으로 몸을 피해 양우(襄牛)로 달아난 일의 전말을 세세하게 고하면서 말했다.

「만약 구원병이 더 이상 지체되면 초구성은 지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위후가 위태롭게 되었다니 내가 부득이 구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성왕은 즉시 신(申)과 식(息) 두 고을의 군사를 나누어 그 반은 원수 성득신에게 주어 수양성 밖에 계속 주둔하며 송나라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도록 명하고 동시에 투월초(鬪越椒), 투발(鬪勃), 완춘(宛春) 등의 일반 장수들과 여러 제후국들의 군사들도 남아서 성득신을 돕도록 했다. 성왕 자신은 위여신(蔿呂臣), 투의신(鬪宜申) 등의 장수와 양광(兩廣)①의 군사들로 이루어진 중군을 이끌고 친히 위나라를 구하기 위해 북쪽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진(陳), 채(蔡), 정(鄭), 허(許) 등의4국 제후들은 본국에 변란이 있을까 걱정하여 각각 자기나라로 돌아갔으나 그들의 군사들은 각기 휘하의 장수들에게 맡겨 초나라 진영에 남아 있도록 했다. 진나라는 원선(轅選)을, 채나라는 공자앙(公子印)을, 정나라는 석계(石癸)를, 허나라는 백주(百疇)를 남겨 그 군사들과 함께 모두 성득신의 지휘에 따르게 했다.

한편 초성왕이 이끄는 초군의 행렬이 목적지인 위나라의 초구를 향해 반쯤 진군했을 때는, 당진의 군사들은 이미 위나라를 떠나 조나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성왕은 위나라로 가던 행군의 방향을 바꾸어 조나라로 향했다. 조나라로 향한 행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탐병이 달려와 고했다.

「조나라 도성은 이미 함락 당하고 조백(曹伯)은 당진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초왕이 놀라면서 말했다.

「당진군의 용병술이 어찌 이리 귀신과 같이 신속하다는 말인가?」

성왕은 즉시 군사들을 신성(新城)②에 주둔하게 하고 사람을 제나라의 양곡(陽谷)으로 보내어 공자옹과 옹무에게 군사를 이끌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공 숙후를 제나라에 사자로 보내어 양곡의 땅을 제나라에 돌려주면서 강화를 맺자고 청했다. 성왕은 이어서 사람을 송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성득신에게 보내 군사를 이끌고 철수하라는 명령과 함께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진후가 천하를19년간이나 유랑한 끝에 나이가 육순이 넘어 군주 자리에 올랐다.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어 백성들의 마음을 꿰뚫고 있으며 또한 하늘이 아마도 그에게 천명을 내려 당진국을 번창시키도록 하고 있으니 우리 초나라로서는 능히 대적할 수 없음이라! 차라리 우리가 양보하는 편이 좋겠다.」

성왕이 다시 명령을 발하여 양곡의 땅에 있던 초군은 모두 철수시키고 신공 숙후를 제나라에 사절로 보내 양곡의 땅을 돌려주고 수호를 맺도록 했다. 그러나 성득신만은 스스로의 재주를 믿고 성왕의 명에 불복하면서 여러 장군들에게 말했다.

「송나라 도성의 함락이 이제 목전에 있는데 어찌하여 철수를 명한단 말인가?」

투월초도 역시 성득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성득신이 투월초를 성왕에게 사자로 보내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원컨대 조금만 말미를 주시면 수양성을 파한 후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 갈 수 있습니다. 만약 당진군과 조우하게 된다면 원컨대 목숨을 걸고 한 번 싸워 보겠으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제가 싸움에 이기지 못한다면 군법을 받아 참수된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성왕이 자문의 의견을 물었다.

「내가 자옥에게 철수를 명한 이유는 자옥이 굳이 당진과 결전을 하려고 하기 때문인데 경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자문이 대답했다.

「당진이 송나라를 구하려고 하는 이유는 백업에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진이 백업을 이루게 되면 우리 초나라로에는 이롭지 않습니다. 당진과 대항할 수 있는 나라는 지금으로서는 오직 우리 초나라 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당진군을 피한다면 그것은 바로 당진국을 천하의 방백으로 인정하는 행위가 됩니다. 또한 조와 위 두 나라는 지금 우리 초나라를 받들고 있습니다. 당진의 군사를 피해 군사를 철수시키는 초나라의 모습을 두 나라가 보게 되면 그들은 필시 우리를 버리고 당진에 붙을 것입니다. 잠시 현재의 상태에서 소강국면을 유지하다가 조와 위 두 나라의 마음을 안정시킨 후에 철수시키면 이 또한 한 가지 방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대왕께서는 자옥에게 명하여 절대 경솔하게 군사를 움직여 당진과 정면으로 전투를 벌리지 않도록 당부하십시오. 그러다가 기회를 보아 송나라와 강화를 맺은 후에 퇴각한다면 우리는 남쪽과 북쪽에서 동시에 아무 것도 잃지 않고 현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성왕은 자문의 말대로 투월초에게 성득신은 함부로 싸움을 벌려서는 안 될 것이며 오로지 화전(和戰)만을 허락한다는 명령을 전하게 했다. 투월초가 돌아와 전하는 초왕의 명을 들은 성득신은 우선 군사를 철수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송나라를 공격하는데 더욱 마음이 급해져 주야로 쉬지 않고 싸움을 독려했다.

한편 송성공은 당진군이 먼저 조와 위 두 나라를 토벌하게 되면 송나라 도성 수양성의 포위는 자연히 풀릴 것이라는 공손고의 보고를 믿고 있는 힘을 다하여 성을 지켰다. 그리고 얼마 후에 초성왕이 초군의 반을 이끌고 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으로 안도했으나 초군 대장 성득신이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송성에 대한 공격을 더욱 세차게 해오자 사태가 급박해 졌음을 알고 마음이 황망하게 되었다. 대부 문윤반(門尹般)이 송성공에게 진언했다.

「당진군은 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초군이 송나라로부터 군사를 물리쳤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지 아직도 남은 초군이 여전히 송나라를 포위하고 세차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성을 탈출하여 다시 한 번 당진의 군주를 만나 구원을 청해 보겠습니다.」

「또다시 구원을 청하러 가는데 빈손으로 가서 가능하겠는가?」

송성공은 즉시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보옥과 귀중한 기물들을 적어 장부로 만들어 당진의 군주에게 바치고 이로써 군사를 보내어 구원을 청하게 했다. 재물들의 목록을 적은 장부를 품속에 넣고 초나라 진영이 조용해 질 때를 기다리던 문윤반은 다시 성공에게 말하여 자기를 도와서 동행할 사람을 한 명 요청했다. 송성공이 화수노(華秀老)에게 명하여 문윤반과 함께 동행하도록 했다. 이윽고 밤이 되자 두 사람이 성공에게 작별인사를 올리고 초나라 진영의 정세를 살핀 후 밧줄을 타고 성 밑으로 내려와 초군 진영을 몰래 통과했다. 중도에 계속 길을 물어 그곳이 어디인지는 몰랐지만 드디어 당진의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진채가 세워진 문 앞으로 달려가 자기들이 송나라에서 왔음을 알리게 했다. 문윤반과 화수노가 문공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 송나라는 이제 조석지간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군주께서는 변변치 못하오나 사직에 제사지낼 때 사용하던 보기들을 이 문서에 적어 저에게 주셨습니다. 원컨대 받아 주시어 불쌍한 저희들을 구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공이 선진에게 말했다.

「송나라의 일이 이렇듯 급하게 되었으니 만일 가서 구하지 않는다면 송나라는 망할 것이다. 또한 구하러 간다면 필시 초나라와 전면전을 벌려야 할텐데 극곡이 죽기 전에 나에게 말하기를 제와 섬진의 도움 없이는 초나라와 싸우지 말라 하였다. 오늘 초나라가 양곡의 땅을 제나라에 돌려주고 강화조약을 맺었다. 또한 섬진과 초나라는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우리를 기꺼이 도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선진이 말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제와 섬진 두 나라가 우리에게 스스로 찾아와 초나라와 싸움을 청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문공이 기뻐하며 다시 물었다.

「경은 도대체 무슨 묘책이 있기에 제와 섬진 두 나라로 하여금 스스로 와서 초나라와 싸우게 만들 수 있단 말이오!」

「송나라가 우리에게 뇌물로 바치겠다고 장부에 적어서 가져온 재물들은 적은 수량이 아닙니다. 뇌물을 받고 그들을 구한다면 주군께서 어떻게 의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우리가 송나라를 구원하더라도 그 뇌물들은 돌려주어야만 합니다. 대신 송나라 사신들을 시켜 우리에게 바치겠다고 목록으로 만들어 가져온 재물들을 나누어서 제와 섬진에게 바치도록 한 후에 두 나라로 하여금 초나라에게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어주라고 요청하게 하십시오. 자기들의 군사력이 능히 초나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제와 섬진 두 나라는 틀림없이 뇌물이 탐이나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어달라고 청할 것입니다. 만약 초나라가 두 나라의 요청을 물리치고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지 않게 되면 이는 자연히 초나라와 제·진(齊秦) 두 나라 사이에는 틈이 생겨 사이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초나라가 제와 섬진 두 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어 주면 제와 섬진은 송나라로 하여금 초나라를 맹주로 받들라고 할텐데 그리되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신은 그때를 대비해서 계책이 하나 더 있는데 능히 초나라로 하여금 제와 섬진의 요청을 거절하게 할 수 있습니다. 」

「어떤 계책이오?」

「원래 초나라는 조·위(曹衛) 두 나라에 대해서는 중원을 경영하려는 계책의 일환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집착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미 위나라 군주를 내 쫓았으며 조나라 군주는 사로잡아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나라 영토는 우리의 수중에 있으며 또한 그 영토는 송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만약 두 나라의 영토를 쪼개어 그 일부를 송나라에 떼어 준다고 하면 초나라는 송나라에 대한 원한이 더욱 깊어져 제와 섬진 두 나라의 요청을 묵살하고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결코 풀지 않을 것입니다.」

문공이 선진의 설명을 듣고 나더니 박수를 치며 훌륭한 계책이라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이어서 문윤반이 장부에 적어 가지고 온 보옥과 귀중한 기물들을 두 개의 목록으로 나누어 적게 한 후에 제와 섬진에게 각각 가져가 바치게 했다. 서로 의논하여 문윤반은 제나라로 화수노는 섬진으로 가기로 정한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각기 그 군주를 상견할 때는 극진하고 간곡한 마음으로 구원을 청하여 반드시 일을 성사시켜 나라를 지켜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화수노가 제나라에 당도하여 소공을 배알하고 말했다.

「당진과 초나라가 서로 사이가 벌어져 우리가 당한 이번 난국은 상국의 도움이 없으면 풀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찾아와 구원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상국의 수고로 인하여 우리가 사직을 보전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기물을 감히 아깝다 하지 않고 바칠 뿐만 아니라 연년세세로 사절을 보내어 우호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소공이 물었다.

「지금 초나라 군주는 어디에 있는가?」

「초왕도 역시 우리나라의 도성에 대한 포위를 풀어 줄 뜻으로 이미 군사를 이끌고 신성(申城)으로 물러갔습니다. 단지 초나라 영윤 성득신만이 초나라의 정사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에서 군사를 물리치지 않고 우리의 도성을 조석지간에 함락시킬 수 있다고 호언하면서 물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상국으로부터 도움을 청하고자 이렇게 온 것입니다.」

「초왕이 옛날에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양곡의 땅을 빼앗아 가더니 얼마 전에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고는 화의를 맺고 군사를 철수 시켰다. 이것은 공을 탐하고 싶은 마음을 버렸기 때문이다. 아직도 초나라의 영윤 성득신이 수양성에 대한 포위를 풀어 주지 않고 있다 하니 과인이 송나라를 위해서 간곡한 마음으로 한번 청해 보리라!」

제소공은 즉시 최요를 사자로 명하여 곧바로 송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초군 진영으로 달려가 성득신을 만나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어 줄 것을 청하게 했다. 한편 문윤반도 섬진의 도성으로 달려가 역시 화수노가 제후에게 말한 것처럼 그 군주인 목공(穆公)에게 호소하였다. 목공도 역시 공자집(公子縶)에게 명하여 송나라 땅에 주둔하고 있던 초군 진영으로 보내 성득신에게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어 줄 것을 청하게 했다. 제와 섬진 두 나라는 사전에 이 일에 대해 의논한 일이 없이 각기 사자를 보내어 초나라 진영에 당도한 후에야 두 나라가 동시에 송나라를 위해 초나라에 화전을 청하러 오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문윤반과 화수노가 당진군 진영으로 돌아와서 문공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문공이 듣고 말했다.

「과인이 이미 조와 위 두 나라를 멸했는데 그 땅이 송나라와 근접해 있어 감히 우리의 땅으로 만들 수가 없소! 」

문공은 즉시 명하여 조와 위 두 나라의 영토에서 일부를 쪼개 송나라에 할양하라고 했다. 호언에게는 문윤반을 데리고 가서 위나라 땅을, 서신에게는 화수노를 데리고 가서 조나라 땅을 인수시키도록 명했다. 그 땅을 다스리던 위와 조 두 나라의 수장들은 모두 쫓겨났다. 최요와 공자집은 그때 마침 송나라와의 강화를 위해 성득신의 막하에 있던 중에 당진의 군사들에게 쫓겨난 위와 조 두 나라의 수장들이 줄을 지어 쫓겨와 성득신에게 호소하면서 말했다.

「송나라 대부 문윤반과 화수노가 당진의 위세를 이용하여 본국의 전답과 호구를 나누더니 빼앗아 갔습니다.」

성득신이 듣고 크게 노하여 제와 섬진 두 나라에서 온 사자들에게 말했다.

「송나라 사람들이 조와 위 두 나라를 속이기를 이와 같이 하니 어찌 내가 강화를 맺을 수 있겠소? 나는 감히 두 나라 군주의 명을 받들지 못하겠소! 지금까지 상의했던 일은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최요와 공자집이 그 동안에 자기들이 노력한 일이 한꺼번에 허사가 되어 버리자 즉시 작별을 고하고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진문공은 성득신이 제와 섬진 두 나라가 청한 강화를 거절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미리 사람을 보내 중도에서 두 나라의 사신을 맞이하여 당진의 군영으로 데리고 오게 하였다. 문공이 성대하게 음식을 준비하여 두 나라 사신을 접대하면서 말했다.

「초나라 장수 성득신은 오만무례하고 난폭한 자입니다. 우리 당진이 그와 교전하게 될 때 원컨대 두 나라의 도움을 얻고 싶습니다.」

최요와 공자집은 문공의 말을 듣고 각기 자신의 군주에게 고하겠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한편 성득신은 초나라의 여러 장수들 앞에서 맹세했다.

「조와 위 두 나라를 다시 복국시키지 않으면 나는 살아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장군 완춘(宛春)이 나와서 계책을 말했다.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군사들에게 수고로움을 끼치지 않고도 조와 위 두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계책입니다.」

「어떤 계책이오?」

「당진의 군주가 위후는 쫓아내고 조백은 사로잡아 그들의 진영에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송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원수께서 만일 사자를 한 명 당진의 진영으로 보내 좋은 말로 강화를 청하면서 당진이 조와 위나라를 복국시키고 또한 두 나라에서 빼앗아 송나라에 준 땅을 모두 각기 그 나라에 돌려준다면 우리도 역시 송나라에 대한 포위망을 풀겠다고 하십시오. 이리 되면 모든 나라들이 군사를 쉬게 할 수 있을 터이니 이것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당진이 우리의 강화조약을 거절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가?」

「원수께서는 먼저 포위망을 풀 예정이라고 미리 소문을 내어 송나라 사람들이 분명히 알게 하신 후에 잠시 수양성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십시오. 송나라 사람들에게는 초나라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마치 거꾸로 매달린 사람이 줄이 풀어지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간절한 바램입니다. 그런 와중에 진후가 우리가 제시한 강화조약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조와 위 두 나라가 당진에게 원한을 갖게 될 뿐 아니라 송나라 역시 수양성에 대한 포위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당진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분노할 것입니다. 이리되면 세 나라의 원한을 모아 당진 한 나라에 대항하게 되니 우리가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가 당진의 진영에 사자로 가겠소?」

「원수께서 만약 맡길만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완춘이 감히 청하겠습니다.」

성득신이 즉시 수양성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게 하고 완춘을 강화사절로 명해 당진의 진영으로 보냈다. 완춘은 단거로 당진의 진영으로 달려가 진문공을 접견하고 성득신의 편지를 전했다.

「군주 전하의 외신 성득신이 절을 올립니다. 초나라에 있어서 위와 조 두 나라는 마치 당진에 있어서 송나라와 같습니다. 군주께서 만약 위후를 복국시키고 조백을 풀어 군위에 앉게 한다면 성득신 또한 송성에 대한 포위를 거두겠습니다. 이로써 피차간에 화의를 이루어 도탄에 빠져 고생하고 있는 뭇 백성들을 구하고자 합니다.」

완춘의 전하는 편지를 미처 다 읽기도 전에 호언이 군신들 반열에서 앞으로 나오더니 이빨을 갈고 눈을 부릅뜨면서 완춘을 향해 소리쳤다.

「자옥이라는 놈은 도리가 없는 놈이로다! 아직 망하지도 않는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어 주는 일과 이미 망해 버린 두 나라를 다시 복국시키는 일을 같이 맞바꾸자 하니 어찌 이다지도 뻔뻔하단 말인가?」

선진이 재빨리 호언의 발꿈치를 밟아 제지시키며 완춘에게 말했다.

「조와 위 두 나라의 죄는 멸망에 이를 정도로 중하지 않으니 우리 주군께서도 역시 두 나라의 군주들을 복위시킬 마음을 먹고 있었소! 잠시 진영 뒤에 있는 방으로 가서 쉬고 계시면 우리 군신들이 상의하여 시행하는 방법을 의논해 보겠소!」

란지가 완춘을 인도하여 진영 뒤쪽으로 데려 갔다. 호언이 선진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원수께서는 정말로 완춘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려고 하십니까?」

「완춘의 제시한 강화조건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 받아 주는 것은 더욱 불가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완춘이 이곳에 온 목적은 모두 자옥의 간계에 따라 자기는 덕을 베풀고 원망은 모두 우리 당진에게 넘기려고 하는 수작입니다. 성득신이 내민 강화조건의 거절은 곧 세 나라를 버리는 일과 같아 그들의 원망은 모두 당진에게 돌아 올 것입니다. 또한 강화조건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즉 세 나라가 복국 된다는 의미인데, 결국 세 나라에 베푼 덕은 모두 초나라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비밀리에 조와 위 두 나라 군주에게 복위시켜주겠다고 약속하여 초나라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다음 다시 완춘을 붙잡아 감금해서 성득신을 격노케 해야 합니다. 그는 원래 성격이 강직하고 조급하여 필시 군사를 이동하여 우리와 결전을 서두를 것입니다. 이것은 송성에 대한 포위망을 풀어달라고 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풀어지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일 자옥이 스스로 송과 통하여 화의를 맺는다면 우리는 송나라를 잃게 될 뿐입니다.」

문공이 듣고 선진의 계책을 칭송해 마지않으나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있던 불편한 마음을 토로했다.

「원수의 계책이 대단히 훌륭합니다. 단지 옛날에 초왕에게서 깊은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 과인이 이번에 그의 사자를 잡아 억류시킨다면 신의를 저버리지나 않게 되지나 않는지 걱정됩니다.」

란지가 나서서 말했다.

「형만(荊蠻)의 초나라가 소국들은 병탄하고 큰나라는 능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중화 열국의 큰 치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군께서 패업에 뜻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러나 장차 패업을 이루시려고 하신다면 그 치욕은 바로 주군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구구하게 사사로이 입은 은혜에 연연하십니까?」

문공이 깨닫고 말했다.

「경의 말이 아니었다면 과인이 깨닫지 못할 뻔했습니다.」

문공이 즉시 란지에게 명하여 완춘을 붙잡아 오록으로 압송하게 하여 그곳을 지키던 수장 극보양(郤步揚)에게 넘겨주어 감시를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한편으로는 완춘을 따라왔던 시종을 불러 완춘을 잡아 가둔 일을 말하고 초군진영으로 돌아가 성득신에게 전하게 했다.

「완춘이 무례하여 이미 우리가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다. 영윤마저 잡으면 함께 참수형에 처하려고 한다.」

완춘의 시종이 머리를 움츠리며 재빨리 달아났다. 완춘에 대한 일을 끝낸 문공이 사람을 조공공에게 보내 자기 말을 전하게 했다.

「과인이 유랑할 때 받은 수모만을 생각하여 귀군에게서 어찌 과도한 것만을 구하겠소? 귀군에게 이렇듯 석연치 않은 행동을 하게 된 원래 이유는 귀군이 초나라 편에 섰기 때문이오. 귀군께서 편지를 한 장 써서 초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당진과 수호를 맺겠다고 통지를 한다면 즉시 조나라를 복국시켜 귀군에게 돌려주겠소.」

조공공이 자기를 석방하고 조나라를 복국시켜 준다는 말에 반색하며 즉시 편지를 써서 성득신에게 보냈다.

「과인은 우리 조나라의 사직이 끊기고 죽음을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부득이 당진을 섬기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과인은 초나라를 다시 상국을 받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상국이 만약 능히 당진의 군사를 몰아내어 내가 이렇게 노심초사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감히 두 마음을 품을 수 있었겠소? 」

문공이 다시 사람을 양우(襄牛)에 피신하고 있던 위성공에게도 파견해서 초나라에 단교를 통고하는 편지를 보내면 복국을 허락한다고 전했다. 성공이 크게 기뻐하였다. 영유가 간하였다.

「이것은 당진의 반간계입니다. 쉽게 믿으시면 안 됩니다.」

성공이 영유의 말을 듣지 않고 역시 편지를 써서 성득신에게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대개 조공공의 것과 비슷했다.

그때 당진 진영으로 사자로 보냈던 완춘이 억류되어 구금된 사실을 전해들은 성득신은 큰소리로 울부짖고 발을 동동 구르며 당진의 진영을 향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중이란 놈아! 간신히 목숨만을 부지하며 도망 다니다가 다시 굶어 죽기 직전에 살아남은 늙은 도적놈아! 당초에 우리나라에 빌어먹고 있을 때 내가 한칼에 요절을 내 죽여 버리려 하다가 살려 주었더니 이제 자기 나라로 돌아가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듯 사람을 기만하느냐! 자고로 두 나라가 교전 중에 있을 때는 사자로 온 사람에게는 죄를 논하지 않거늘 어찌하여 내가 보낸 사신을 잡아다 가둔단 말인가! 내가 당장 네놈을 찾아가 너와 경우를 한번 따지리라!」

성득신 화를 내며 씩씩거리고 있는 중에 다시 어린 사졸이 장막 안으로 들어오더니 보고하였다.

「조와 위 두 나라에서 사절이 각각 편지를 원수님에게 바치기 위해 당도해 있습니다. 」

성득신이 보고를 받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위후는 도망 중이고 조백은 잡혀서 당진의 군중에 갇혀있는데 무엇을 나에게 통보한다는 것인가? 이것은 필시 당진이 강화조역을 거절하여 모든 일이 파탄이 나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도 몰래 나에게 보고하려고 하는 것 같으니 이것은 곧 하늘이 나를 도와 일을 이루게 함이리라!」

성득신이 소졸이 가져온 편지의 겉봉을 뜯고 읽었다. 그 내용은 거의 비슷하였으나, 성득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초나라와는 절교를 하고 당진을 따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성득신의 가슴속에서 다시 울화가 일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한 줄기의 불같은 분노가 되어 머리 위로 삼천 장이나 솟구쳐 올랐다. 성득신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소리쳤다.

「이 두 개의 편지는 늙은 도적놈이 두 나라 군주를 협박하여 쓰게 한 것이다. 진실로 교활한 늙은 도적이로다! 금일 너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으리라! 내 반드시 목숨을 걸고 결전을 하리라!」

성득신은 즉시3군에게 분부하여 송성에 대한 포위를 풀고 한편으로는 당진군 주둔지를 찾게 하여 그곳으로 군사를 진격시키라는 명령을 발하면서 말했다.

「먼저 당진군을 격파한 다음 다시 돌아온다 한들 송나라가 어디로 도망가겠는가?」

투월초가 말했다.

「대왕께서 우리에게 당진군을 경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원수께서 기어코 싸우시려고 하신다면 다시 한 번 품하신 후에 행하셔야 합니다. 더욱이 제와 섬진 두 나라는 이미 송을 위하여 온정을 청하였음에도 원수께서 들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원한을 품고 있어, 우리와 당진군이 교전에 들어가면 그들은 틀림없이 군사를 보내어 당진을 도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비록 진(陳), 채(蔡), 허(許), 정(鄭) 네 나라가 돕고 있으나 그 국력에 있어서는 섬진이나 제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합니다. 반드시 입조하여 원군을 청하여야만 당진의 연합군과 결전을 할 수 있습니다.」

「번거롭겠지만 장군께서 한번 다녀와 주면 고맙겠소! 이 일은 신속히 행해야만 합니다.」

투월초가 성득신의 영을 받들어 곧바로 신성(申城)으로 가서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초성왕을 배알하고 당진과 결전을 해야할 전후사정을 말하고 증원군을 청했다. 초왕이 듣고 화를 내며 말했다.

「과인이 싸우지 말라고 경계를 주었다. 자옥이 군사를 끌고 가서 싸움을 하기를 이렇듯 강요하니 능히 승리를 자신할 수 있는가?」

「원수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마땅히 군령을 달게 받으리라!’」

초왕이 선뜻 내키지 않아 즉시 투의신에게 양광의 전차부대 중 서광의 군사를 주어 성득신을 돕게 했다. ― 초나라 군제에 양광이라는 군대가 있었다. 동광은 전투 시 좌측을 담당하고 서광은 우측을 담당하였는데 모든 정예병들은 동광에 편성시켰다. 단지 서광의 군사들이라야 모두 합하여 천여 명에 불과하고 또한 약졸과 노병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은 곧 초왕이 혹시 성득신이 싸움에 지지나 않을까 의심하여 많은 군사들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서광의 병사들만 보낸 것이었다― 성득신의 아들 성대심(成大心)은 문중의 사람들을 모두 모아 약6백여 명을 무장시켜 싸움을 도우러 가겠다고 자청하고 나서자 초왕이 허락하였다. 투의신이 투월초와 동행하여 송성 앞에 아직 진을 치고 있던 성득신의 진중에 당도하였다. 성득신이 도착한 지원병의 수가 적은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분노가 더욱 끓어 큰 소리로 외쳤다.

「비록 지원병이 없다 한들 우리가 어찌 당진과 같은 허약한 나라의 군사를 이기지 못하겠는가?」

성득신은 그날로 사국의 군사들을 이끌고 있는 장수들과 약조를 한 후에 진채를 뽑고 군사들을 당진군이 주둔하고 있는 조나라 경계로 행군시켰다. 이 모든 것은 선진의 능란한 계책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오랫동안 수양성을 핍박만 했지 공도 미처 세우기도 전에

발연히 한번 성을 내고 군주의 군사들과 결전하려고 했다.

비록 하늘을 찌를 듯한 용맹을 지닌 성득신인들

모두 선진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라!

久困睢陽功未收(구곤수양공미수)

勃然一怒戰君侯(발연일노전군후)

得臣縱有沖天志(득신종유충천지)

怎脫今朝先軫謀(즘탈금조선진모)

3. 退避三舍(퇴피삼사)

- 초군에게 삼사의 거리를 양보하여 신의를 지킨 진문공-

성득신이 서광의 전차병과 성씨 문중의 사람들로 구성된 병사들을 초군 주력으로 이루어진 중군에 합쳐 자기 휘하에 두고 신성(申城)의 증원군은 허나라의 병사들을 합하여 투의신에게 지휘토록 하여 좌군을, 투발에게는 식읍(息邑)의 병사들과 진(陳), 채(蔡) 두 나라의 병사들을 합하여 우군을 맡게 했다. 이윽고 성득신은 비바람이 몰아치듯 군사들을 휘몰아 당진의 진채가 있는 조성부근에 당도하여 세 곳에다 진영을 세웠다. 문공이 여러 장수들을 불러 계책을 물었다. 선진이 먼저 말했다.

「제가 초군을 이곳으로 오도록 유인한 목적은 이곳에서 싸워 그들을 꺾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초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한 이래 송나라로 싸움터를 옮긴 후 장시간 포위공격을 하던 끝에 지금 이곳으로 다시 왔습니다. 이것은 초군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있음을 말합니다. 이제 초나라와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싸우더라도 결코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호언이 앞으로 나와 진언했다.

「주공께서 옛날 초나라에 머물 때 초왕 면전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후일 중원에서 초군과 만나 교전하게 되는 상황을 만나게 되면 당진군을 삼사(三舍)의 거리만큼 뒤로 물러나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초나라와 바로 교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천하에 신의를 잃는 행위입니다. 주공께서는 옛날에 원성(原城)의 백성들에게도 신의를 잃지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초왕에게 신의를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필히 초군을 피해3사의 거리를 후퇴해서 초왕과의 약속을 지키십시오.」

호언의 말에 여러 장수들이 얼굴에 정색을 하고 말했다.

「군주가 적국의 신하를 상대로 뒤로 물러난다면 그 치욕이 작지 않습니다. 절대 불가합니다.」

호언이 다시 말했다.

「자옥이 비록 성격이 강직하고 잔인한 사람이긴 하지만 옛날 우리가 초왕에게서 받은 은혜는 결코 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초왕의 군사를 피하는 것이지 자옥을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장수들이 호언을 향해 물었다.

「만약 초나라 군사들이 우리들의 뒤를 계속 추격해 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약 우리가 군사를 물리친다면 초나라도 같이 물러나 송나라도 다시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퇴각을 했음에도 뒤를 따라 추격해 온다면 이것은 즉 신하된 자가 군주를 핍박하는 행위가 되어 그 잘못은 초나라 쪽에 있게 됩니다. 우리가 피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추격하여 사태가 어쩔 수 없이 되면 우리 군사들의 마음에는 분노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의 군대는 교만하고 우리의 군사들은 초나라에 분노하는 마음을 품게 되는데 어찌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문공이 결심하고 말했다.

「자범(子犯)의 말이 옳습니다.」

문공은 즉시 삼군에 영을 내려 모두 뒤로 후퇴하도록 했다. 당진의 군사들이30리를 뒤로 후퇴하자 군리가 와서 품했다.

「이미 일사(一舍)의 거리를 물러났습니다. 」

문공이 대답했다.

「아직 충분치 않다.」

다시 일사의 거리를 뒤로 물러났으나 문공이 진채를 세우지 못하게 하고 다시 일사의 거리를 더 물러나 모두3사 즉90리를 물러나 성복(城濮)이라는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문공은 군사들에게3사를 쉬지 않고 행군시킨 후에야 진채를 세우고 말을 쉬게 했다. 이때 제소공은 상경 국의중(國懿仲)의 아들 국귀보(國歸父)를 대장으로 최요를 부장으로 임명하여 대군을 이끌고 싸움터로 행군하여 당진군을 돕도록 명했다. 또한 섬진의 목공도 역시 그의 둘째 아들 소자은(小子憖)을 대장으로 백을병을 부장으로 삼아 대병을 거느리고 당진군의 주둔지로 행군하여 초나라와의 싸움을 돕도록 했다. 두 나라의 군사들이 모두 성복에 당도하여 당진군의 주위에 진채를 세웠다. 초나라의 포위에서 벗어난 송나라도 역시 얼마간의 군사를 내어 사마 공손고를 대장으로 삼아 당진의 진영으로 보내 감사의 말을 전하게 하고 군중에 남아 싸움을 돕도록 했다.

한편 당진의 군사들이 갑자기 진채를 뽑아 뒤로 후퇴하는 모습을 본 초군은 모두 기뻐하자 투발이 말했다.

「당진이 군주의 신분으로 신하된 자를 피하니 이것 역시 우리들에게 영예스러운 일입니다. 이쯤에서 군사를 물리침이 옳을 것 같습니다. 비록 공을 세우지는 못했으나 죽을죄는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득신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대왕에게 원군을 청하면서 이미 군령장을 바쳤다. 만약 싸움도 한 번 하지 않고 어떻게 왕께 복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진의 군사들이 퇴각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겁을 먹고 있다는 뜻이다. 마땅히 뒤를 쫓아야 한다.」

성득신이 속히 당진의 군사들의 뒤를 추격하라는 군령을 내렸다. 당진군의 뒤를 쫓아90리를 행군한 초군은 마침내 당진군이 주둔하고 있는 성복의 땅에 이르게 되었다. 성득신이 지세를 살펴 산을 뒤로하고 늪을 앞으로 하여 험지를 의지하여 영채를 세우게 했다. 당진의 장수들이 초나라가 진채를 세우는 모습을 보고 선진에게 말했다.

「초군이 험지에 의지하여 진채를 세우게 되면 후에 싸움이 일어날 경우 공격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마땅히 군사를 내어 저곳을 빼앗아 차지해야 합니다.」

「무릇 험지에 의지하여 진채를 세우는 일은 수비를 굳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옥이 멀리서 행군하여 왔으니 그 뜻은 싸우는 데에 있지 지키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비록 험지에 의지하여 영채를 세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때 문공도 역시 초나라와 회전을 벌리는 일에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한 모습이었다. 호언이 짐작하고 말했다.

「금일 대치 상태를 보니 양군은 필히 교전하여 승패를 내고 말겠다는 기세입니다. 싸워서 이긴다면 천하의 제후들을 아우르는 방백이 될 수 있고, 설사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당진국은 태항산(太行山)과 하수에 의지하여 스스로 지킬 수 있습니다. 초나라가 어찌 우리 당진국의 강역을 넘볼 수 있겠습니까?」

문공이 그래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그날 밤에 잠자리에 들어 꿈을 꾸었다. 옛날 유랑생활 끝에 초나라에 들어가 몸을 맡기고 있을 때였는데 초왕과 수박(手搏)놀이를 하다가 문공이 힘이 다하여 땅에 넘어져서 하늘을 향하여 들어 눕게 되었다. 초왕이 문공의 배 위에 올라타고서는 주먹으로 문공의 머리를 쳤다. 문공의 머리가 깨지자 초왕이 손으로 문공의 뇌수를 꺼내 먹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문공은 꿈속의 일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문공은 자기와 같은 막사 안에서 머물러 자고 있던 호언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꿈속에서 초왕과 싸웠는데 이기지 못하고 또 초왕에게 나의 뇌수를 먹히게 되니 이것이 좋지 않은 징조 같아 걱정되오!」

호언이 칭하의 말을 했다.

「그 꿈은 크게 길할 징조입니다. 주군께서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어째서 입니까?」

「주군께서 땅에 넘어져 하늘을 쳐다보시고 계셨으니 이것은 곧 하늘의 보살핌을 받으신다는 뜻이며 초왕이 주군의 몸에 엎드린 것은 곧 땅에 꿇어앉아 죄의 용서를 비는 형상이며 뇌라는 것은 본시 부드러운 것이라 주군께서 뇌를 초나라에 준 것은 곧 부드러운 것으로써 강한 초나라를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찌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호언의 해몽으로 문공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 오자 군리가 와서 보고하였다.

「초군의 진영에서 전서를 보내왔습니다.」

문공이 전서의 겉봉을 뜯어서 읽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군주 전하의 군사들과 전쟁놀이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군주께서 수레의 횡목(橫木)에 기대어 관전하신다면 이 득신도 같이 주시해 보겠습니다.」

호언이 보고 말했다.

「무릇 전쟁이란 나라의 흥망이 달린 매우 위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놀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성득신은 전쟁을 벌리는 일을 신중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어찌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문공이 란지로 하여금 성득신의 전서에 대해 답서를 써서 보내게 하였다.

「과인이 옛날 귀국의 왕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삼사의 거리를 뒤로 후퇴하여 감히 장군의 군사들과의 싸움을 피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장군이 기어이 당진과 초군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내가 어찌 명을 따르지 않겠는가! 내일 아침 서로 출전하여 대전토록 하리라!」

4. 성복대전(城濮大戰)

- 성복에서 천하의 패권을 놓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리다. -

초나라 진영의 사자가 돌아간 다음 문공이 선진을 시켜 다시 군사들을 사열하게 하니 모두700승의 병거에 보졸들은5만에 달했다. 제나라와 섬진의 지원군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였다. 문공이 성복 땅의 고대 유신씨(有莘氏)③의 유적에 올라 당진의 군사들을 살펴보았다. 군사들이 상하의 구분이 뚜렷했고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나는데 절도가 있었다. 문공이 보고 탄식했다.

「이것은 죽은 극곡이 훈련시켜 나에게 넘겨준 군사들이라! 이만하면 적군과 한번 싸워 볼만하겠다.」

문공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산 위의 나무들을 베어 전투에 필요한 기구들을 준비하게 했다. 선진은 병사들과 장수들에게 각각 맡은바 임무를 부여했다. 호모와 호언 형제에게는 당진의 상군과 섬진의 부장 백을병이 지휘하는 섬진군을 이끌고 투의신이 지휘하는 초나라의 좌군을 맡게 하고, 란지와 서신에게는 당진의 하군과 제군의 부장 최요와 그 군사들을 이끌고 투발의 초나라 우군을 대적하게 했다. 그 밖의 장수들에게도 각기 맡아야할 임무를 상세히 일러주고 자기와 극진 그리고 기만은 중군을 진채로 연결하여 성득신과 대적하도록 했다. 한편 순림보(荀林父)와 사회(士會)에게는 각기5천의 군사를 따로 떼어 주어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 언제든지 선진의 지시에 따라 다른 부대를 지원할 수 있는 기동부대를 따로 편성하여 두었다. 다른 한편 귀국보(國歸父)와 소자은(小子憖)에게는 각각 자기들이 이끌고 온 본국의 병사들을 인솔하여 지름길로 초군의 배후로 돌아 매복하게 하고 초군이 싸움에 지고 퇴각할 때를 기다려 그들의 대채로 돌입하게 했다. 이때 위주는 가슴의 상처가 이미 다 나아서 선봉을 스스로 자청하고 나섰다. 선진이 위주를 보고 말했다.

「노장군께는 제가 별도로 드릴 임무가 있습니다. 이곳 유신에서 남쪽으로 가다 보면 지명 이름이 공상(空桑)④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초나라의 연곡(連谷)⑤으로 통하는 길목입니다. 장군께서는 한 떼의 군마를 데리고 그곳에 가서 매복하고 있다가 패주하는 초군들의 퇴로를 끊으시면 틀림없이 초나라 대장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위주가 즐거운 마음으로 물러 나와 군사를 이끌고 공상이라는 곳으로 향해 달려갔다. 조쇠(趙衰), 손백규(孫伯糾), 양설돌(羊舌突), 모패(茅茷) 등 일반 문무대신들은 옛 유신씨의 산상에서 전투를 관전하는 문공을 호위했다. 다시 주지교에게 명하여 하수의 남쪽 강안에 배들을 모아 놓고 정비한 후 기다리게 하여 초나라에서 얻은 치중들을 실어 나르는데 착오가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라고 했다. 이윽고 다음날이 되어 날이 밝자 당진군이 유신의 북쪽에다 진을 펼치자 초군은 그 반대편인 남쪽에다 진을 쳤다. 양군이 모두 삼군으로 편성되어 있어 각기 작전계획대로 부서를 맡아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성득신이 먼저 영을 내려 지시했다.

「좌우의 군이 먼저 진격하면 중군이 뒤를 따른다.」

한편 당진의 하군대장 란지는 초나라 우군이 진·채(陳蔡) 두 나라의 군사들을 전대(前隊)로 삼았음을 알고 기뻐하며 말했다.

「선진원수께서 나에게 비밀리에 ‘진과 채 두 나라 병사들은 겁이 많아 쉽게 흩어질 것이다’라고 알려주셨다. 먼저 진채 두 나라의 군사를 꺾는다면 초나라의 우군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란지는 즉시 백을병에게 명하여 섬진군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 초군에게 싸움을 걸도록 했다. 진(陳)나라의 장수 원선(轅選)과 채나라의 공자앙(公子卬)은 초나라의 우군대장 투발(鬪發)이 보는 앞에서 공을 세우고 싶어 앞 다투어 병거를 타고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백을병과 맞서 싸우기 위해 출전했다. 진과 채의 두 장수가 백을병과 미처 접전을 하기도 전에 후위에 있던 당진의 군사들이 갑자기 뒤로 후퇴를 시작했다. 원선과 공자앙이 뒤를 쫓자 갑자기 대패기가 꽂혀 있던 진영의 문이 열리더니 대포소리가 한번 울림과 동시에 서신이 한 떼의 수많은 전차를 이끌고 앞으로 치달려 나왔다. 그런데 당진군의 병거를 끄는 말들은 모두 그 겉에다 호랑이 가죽이 씌워져 있었다. 초군과 진채 두 나라 소속의 병거를 끌고 있던 말들이 보고 진짜 호랑인 줄로 알고 놀라 방향을 바꾸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병거를 모는 마부들이 아무리 고삐를 잡아 당겨 멈추게 하려고 했으나 어쩌는 수가 없었다. 초군의 병거들은 방향을 바꾸어 자기 진영을 향해 돌진하여 투발이 이끌던 후위군의 진영을 혼란에 빠뜨렸다. 서신과 백을병은 초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하여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서신은 도끼로 공지앙을 찍어 병거 밑으로 떨어뜨리고 백을병은 활을 날려 투발의 얼굴을 맞췄다. 투발은 얼굴에 꽂혀있는 화살을 뽑을 새도 없이 도망치기에 바빠 초나라의 우군은 싸움에서 크게 패하여 란전 중에 죽은 군사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일장의 전투가 끝나자 란지가 군졸들에게 진채 두 나라 군사들의 옷으로 바꿔 입혀 그들의 깃발을 들고 초나라 본영으로 달려가 고하게 했다.

「우군이 이미 당진군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속히 군사를 앞으로 진격시키면 큰공을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성득신이 진채 두 나라 군사로 분장한 당진군의 거짓보고를 듣고 병거의 횡목에 기대어 전투가 진행되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당진군이 북쪽으로 분주히 달려가며 일으키는 연기와 먼지가 온 하늘을 덮고 있는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당진군이 패주하는 것으로 생각한 성득신이 기뻐하며 말했다.

「과연 당진의 하군이 싸움에서 패해 달아나고 있구나!」

성득신은 급히 좌군에게 속히 앞으로 전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적진에 대패기가 높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본 투의신은 그곳이 적군의 대장이 있는 곳으로 생각하여 맹렬한 기세로 짓 쳐들어갔다. 호언이 그의 앞을 가로막자 두 사람 사이에 접전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몇 합도 채 겨루기 전에 갑자기 당진군의 뒤쪽에서 큰 혼란이 일어나자 호언은 싸움을 멈추고 몸을 돌려 영문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대패기 역시 호언을 따라 뒤로 이동해 갔다. 당진군이 이미 붕궤되었다고 생각한 투의신은 정·허(鄭許) 두 나라 장수들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하여 호언의 뒤를 추격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갑자기 북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선진과 극진이 당진군의 중군에 속한 한 떼의 정예병들을 이끌고 초군의 대열 옆에서 나타나 그 허리를 끊었다. 당진군의 진채를 향해 달아나던 호언과 호모도 몸을 돌려 다시 투의신의 앞을 가로막고 대항해 오자 투의신은 양쪽에서 적군을 맞이하게 되었다. 와중에 정허 두 나라의 병사들이 놀라 먼저 흩어져 전장에서 달아나자 투의신은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어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하여 달아났다. 그러나 투의신의 앞에 나라 장수 최요가 이끄는 제군이 새롭게 나타나 초군을 향해 공격을 맹렬리 퍼부었다. 초나라 병사들은 당해내지 못하고 거마와 기타 병장기들을 모두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투의신 역시 병거를 버리고 일반 보졸들 중에 섞여 산에 기어올라 간신히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원래 당진의 하군은 거짓으로 북쪽으로 달아나는 척하며 먼지와 연기를 일으켜 초군을 유인한 작전으로써 하군대장 란지의 계책이었다. 유신의 뒷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병거 뒤에 메달아 달리게 하여 먼지와 연기를 일으켜 온 들판을 뽀얗게 만들어 초나라의 좌군을 속여 그들로 하여금 공을 다투게 하여 전장으로 유인해 낸 것이었다. 호언 역시 대패기를 자신의 병거에 세우고 달리게 한 목적은 당진군이 패하여 도망치는 모습으로 보이게 하여 초군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결국 호언은 패전계(敗戰計)로 초나라의 좌군을 유인하여 궤멸시킨 것이다. 선진이 일찍이 전황의 전개를 예상하고 기만에게 대장기를 중군에 세우게 하여 적이 쳐들어와 싸움을 걸어오더라도 절대로 나가서 싸움에 응하지 말고 지키기만 하라고 명하고, 자기는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진영의 뒷문으로 나아가 초나라 좌군의 허리를 끊어 호모와 호언형제들과 앞뒤에서 협공하여 대승을 거둔 것이었다. 이것은 모두가 선진이 미리 계획한 작전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이를 두고 지은 시가 있다.

임기응변의 작전에 장대한 진영을 무엇에 쓰겠는가?

선진의 신묘한 계책은 아무도 당할 수 없었네!

단지 병거를 끄는 말에 호랑이 가죽을 씌운 것만으로도

초나라의 좌군과 우군은 궤멸시킬 수 있었다.

臨機何用陣堂堂(임기하용진당당)

先軫奇謀不可當(선진기모불가당)

只用虎皮蒙馬計(지용호피몽마계)

楚軍左右盡奔亡(초군좌우진분망)

한편 초군대장 성득신은 비록 자기의 용기와 재주를 과신하여 싸움을 걸었지만 초왕이 두 번에 걸쳐 조심해서 싸움에 임하라는 경고를 받았음을 상기하고 십분 자중했다. 초나라의 좌군과 우군이 모두 당진군과의 싸움에서 이미 승리를 취했다는 거짓보고 접한 성득신은 당진군의 본대를 추격하기 위해서 즉시 북소리를 크게 울려 진군을 명하고 그 아들 성대심을 선봉으로 세워 진채 밖으로 출격시켰다. 당진군의 중군장수 기만은 선진이 출전할 때 지키기만 하라는 명에 따라 진채만 굳게 지키고 초군의 싸움에 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초나라 중군의 진영에서 다시 한 번 북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성대심이 화극(畵戟)을 손에 꼬나 쥐고 당진군의 진채 앞으로 나와 무예를 뽐냈다. 기만이 보고 참지 못하여 사람을 시켜 초나라의 장수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다. 정탐병이 돌아와 말했다.

「초군 대장 성득신의 아들로15세 먹은 어린아이입니다.」

기만이 말했다.

「어린 동자 놈이 어찌 어른들의 일에 끼어든단 말인가? 내 나가서 맨손으로 동자 놈을 잡아와 우리 중군도 공을 세워 보리라!」

즉시 기만은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출진의 북소리를 올려라!」

이윽고 당진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북소리가 한번 나더니 중군의 영문이 열리고 기만이 칼을 들고 뛰어나와 나이 어린 성대심과 칼싸움을 벌렸다. 두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20여 합이나 싸웠는데도 승부를 낼 수 없었다. 그때 초나라 본영 원문 앞에 꽂혀 있던 원수기 밑에 대기하고 있던 투월초가 성대심이 적장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자 즉시 병거를 몰아 앞으로 달려 나오면서 활에 화살을 재고 두 사람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을 노려보다가 이윽고 기회를 포착하고 활시위를 당겼다. 투월초가 쏜 화살이 날라 가 기만의 투구 끈을 맞추었다. 기만이 놀라서 군사들을 물리쳐 본진의 영문을 열고 퇴각하고 싶었으나 초군의 대병이 뒤를 추격하여 영채 안으로 쇄도해 진입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감히 영문을 열게 하지 못하고 진지 주위를 돌며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기만의 뒤를 추격하던 투월초가 소리쳐 외쳤다.

「도망치는 패장을 쫓아다닐 필요가 없다. 본진으로 돌입하여 적군의 대장 선진을 사로잡아라!」

< 제41회로 계속>

주석

①양광(兩廣)/ 초나라의 군사 편제로써 좌우(左右)에 두 개의 광(廣)을 두었는데 일광(一廣)은 병거150승으로 구성되어있었다.

②신성(新城)/ 위치미상.

③유신씨(有莘氏)/ 하나라 말기에 지금의 하남성 조현(曹縣) 북10키로 있었던 소제후국이다. 은본기에 “ 이윤은 곧 유신씨의 잉신(媵臣)이었다.”라고 했다. 사기정의에 따르면 “ 유신씨의 고지는 변주(汴州)의 진류현(陳留縣) 경내다.‘라고 했다. 또 주본기에 ”주왕(紂王)이 서백을 잡아 유리(羑里)에 유폐(幽閉)시키자 굉요(閎夭) 등의 신하들이 걱정하여 유신씨(有莘氏)의 미녀와 세상의 진기한 보물들을 모아 은나라의 총신 비중(費仲)을 매수하여 주왕(紂王)에게 가져다 바쳐 문왕을 석방시켰다.“라고 했다. 또 주문왕의 비 태사(太姒)는 유신씨 왕의 딸이라고 했다.

④공상(空桑)/ 이윤의 모친은 이수(伊水)의 강변에서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치는 노예였다. 그녀의 모친이 이윤을 임신했을 때 꿈속에 신령이 나타나 “절구 속에서 물이 솟아나거던 동쪽을 향해 달아나되 절대 뒤를 돌아보니 말라!”라고 했다. 그 다음 날 과연 절구통에서 샘물이 솟구쳐 흘렀다. 원래 마음씨가 착했던 여인은 황급히 주변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달려가 홍수가 났음을 알린 후에 동쪽을 향해20리쯤 달렸을 때 마을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뒤를 돌아봤다. 마을은 갑자기 불어난 홍수로 떠내려 가버리고 망망한 물결만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결국 신령의 경고를 무시한 그녀는 몸이 속이 빈 뽕나무 즉 공상(空桑)로 변하고 말았다. 그때 유신씨(有莘氏)의 뽕잎을 따던 처녀가 공상에서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 데리고 가서 유신씨의 왕에게 바쳤다. 유신씨의 왕은 어린 아이를 요리사에게 맡겨 기른 후에 노예로 부리도록 했다. 공상의 위치는 帝王世紀의 기록에 따른 杞縣志에 의하면 지금의 하남 雍丘縣으로 지금의 하남성 開封市 杞縣 경내 空桑城의 유지로 비정하고 있다.

⑤연곡(連谷)/ 확실하지는 않으나 지금의 호북성 양번시(襄樊市) 경내 서쪽 의 곡성현(谷城縣)이라는 설이 있다.

【평 설】

진문공의 패자가 되기 위한 전략은 “ 報施救患(보시구환) 取威定覇(취위정패)”의8개 글자이다( 좌전 희공27년조 기사). 그의 모든 군사행동은 보시(報施)라는 원리에 한 치도 벗어남이 없었다. 그렇다면 보(報)와 시(施)는 무엇을 말하는가? 시(施)는 진문공이 유랑생활할 때 그가 받은 은혜-즉 제후국의 군주들이 그에게 베푼 예우와 후대를 말하는 것이고 보(報)는 은혜를 갚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구(救)는 강대한 초나라의 세력이 중원으로 북상함으로 해서 제후국이 입게 되는 환난 즉 침략과 신복(臣服) 상태에서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무력을 시위하고 권위를 세움으로써 패자로써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진문공이 패권투쟁을 벌릴 때는 남방에서 일어난 초나라의 세력이 중원의 제후국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을 때였다. 당진국이 강성해져 패권투쟁에 끼어들자 초나라 세력권으로 들어간 중원제후국들에게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초나라와 당진국은 남북 양쪽에 세력권을 형성하여 중원제후국들을 호령했다. 와중에 세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몰두하고 있는 섬진이 중원의 서쪽에, 비록 패권을 잃었지만 여전히 대국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제나라가 동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초나라가 당진국의 위성국 송나라를 공격하자 당진국은 초나라의 위성국이었던 위(衛)와 조(曹) 두 나라를 공격한 것은 실제로는 초나라와 당진국이라는 양 강대국 사이에 진행된 중원쟁탈전의 일환으로 벌어진 패권전쟁이었던 것이다.

당진군이 조위(曹衛) 두 나라를 공격한 목적은 초군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던 송나라의 도성 수양성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조위(曹衛) 두 나라는 진문공이 유랑생활 할 때 홀대한 나라였었고, 송나라는 비록 홍수대전에서 패하여 송양공은 부상당하고 나라의 재정은 어려웠지만 중이에 대한 접대를 극진히 한 나라였었다. 그러나 당진군이 조나라를 점령하고 위군을 무찔렀으나 초군은 두 나라의 구원을 위해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지 않았다. 그래서 당진군은 할 수 없이 직접 초군과의 회전을 통해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기 위해 남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같은 형세 하에 당진군과 초군 쌍방 중 누가 제(齊)와 섬진(陝秦)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냐가 전투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관건이 되었다. 그래서 당진군과 초군은 섬진과 제 두 나라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행동을 취했다. 우선 초군은 송나라의 포위를 풀고 북상하면서 황망 중에 예전에 점령했던 땅을 돌려주면서 제나라와 동맹을 맺고자 했으며, 섬진과는 충돌을 가능하면 피해 우호관계를 유지하려고 시도했다. 초나라가 제와 섬진 두 나라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홍구(鴻溝)라는 운하를 굴착하려고 하는 상황 하에서 당진국은 송나라로 하여금 뇌물을 제와 섬진 두 나라에 바치며 그들로 하여금 초와 송 두 나라의 싸움을 중지하도록 요청하게 했다. 초나라가 섬진과 제나라의 화전요청을 거절하게끔 국면을 조성한 당진국은 다시 고의적으로 조위(曹衛) 두 나라 영토를 떼어 송나라에 합병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초나라는 송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깊이 품게 되었다. 제나라와 섬진이 송나라를 위해 초나라에 다시 화전을 중재했지만 초나라는 단호히 거절했다. 기회를 잡은 진문공은 힘을 합쳐 두 나라의 중재요청을 거절한 초군을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이로써 초군은3:1의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초군은 그 동안 피동적인 자세에 머물렀던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당진국이 조위(曹衛) 두 나라를 복국시켜주면 초나라는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겠다.’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 조건은 초나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이미 망한 두 나라와 아직 건재해 있는 송나라와 바꾸자고 한 것은 초나라로써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진국이 초나라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조, 위, 송 세 나라는 모두 당진국에게 그 책임을 돌리게 되고 만약 세 나라의 원망을 피하기 위해 초나라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세 나라는 초나라의 은덕으로 여기게 되는 기묘한 책략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곤경에 처한 당진군은 초나라의 사자를 구류시켜 놓고 조위(曹衛) 두 나라 군주를 시켜 초군 진영에 초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면 두 군주에게 나라를 다시 돌려주겠다고 회유했다. 그것으로써 초나라의 의도는 완전히 무산되었다. 결국은 초나라는 어쩔 수 없이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북상하여 당진군과 결전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로써 춘추시대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성복대전이 서막이 오른 것이다.

그리고 초나라는 섬진과 제나라가 초나라의 반대편 대열에 참가함으로 해서 고립되었고, 또한 군사력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이것은 격렬한 전쟁의 와중에서 진문공은 외교전을 전개하여 획득한 성과로써 그가 지혜와 책략이 매우 뛰어난 군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성복(城濮)에서 크게 싸우는 당진(唐晉)과 초(楚) 두 나라” 편은 춘추시대 전 기간 중 가장 규모가 큰 중요한 의미의 전쟁이다. 이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긴 고사성어로 ‘퇴피삼사(退避三舍)’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그의 그런 행동은 진문공이 유랑생활 중 약속한 바대로 그 은혜를 갚은 도의적인 행동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진문공의 ‘퇴피삼사’라는 행위는 표면상으로는 신의를 지키기 위한 도의적인 행동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후발제인(後發制人) 즉 상대방의 예봉을 피해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제압하는 책략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을 분석해 보면 두 가지 모두 내포되어 있는 아주 두려울 정도로 정교한 책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퇴피삼사(退避三舍)’는 진문공이 유랑생활 중 초나라에 들렸을 때 그를 후대한 초성왕에게 약속한 것에서 유래한다. 당시 초성왕은 비록 유랑공자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중이는 후에 틀림없이 당진국의 군주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큰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중이에게 초성왕은 중이가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무엇으로 자기의 은혜에 보답할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중이는 성왕이 뜻하는 바 즉 중원을 향하여 세력을 확장시켜 패자가 되려는 야심의 일환으로 당진국도 초나라의 받드는 위성국의 지위를 요구한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그래서 중이는 초성왕에게 대답하기를 자기가 귀국하여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원컨대 초나라와는 우방으로 지낼 것이며, 만약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초성왕의 군대와 교전이라고 하게 된다면, 삼사(三舍)를 양보하겠다고 한 것이다. 중이의 대답은 우선 초성왕의 후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함께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국권을 보존하고 나라를 욕보이지 않겠다는 생각을 견지한 것이다. 그래서 ‘퇴피삼사’라는 고사는 원래는 모략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군이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조(曹)의 도성 도구(陶丘)로 진격하자 진문공은 즉시 당진군을 위나라 방향으로 후퇴시켰다. 그는30리씩3번을 계속해서 후퇴시켜 위나라 도성부근인 성복(城濮)에 이르렀다. 당진군이3사의 거리를 계속해서 후퇴하자 초군은 당진군이 싸움을 겁내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 뒤를 추격했다. 당진군은 성복에서 초군과 천하의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려고 한 것이다. 당진군은 먼저 초군의 취약한 곳을 먼저 공격한 다음 다시 후퇴하여 그 뒤를 추격하도록 유인하고 최후적으로 앞 뒤에서 협공을 가하여 초군을 대파했다.

‘퇴피삼사(退避三舍)’의 작전은 적군을 아군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유인하고 적군의 예봉을 피함과 동시에 교만에 빠지게 했고, 섬진과 제라는 강대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또한 아군의 군사들의 사기를 고무시켜 당진군에게 유리하고 초군에게는 불리한 정세를 조성했다. 당진군이 초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열세의 병력으로 우세한 병력을 격파한 최초의 전형적인 전쟁으로 여겨지고 있다.

‘퇴피삼사’는 후에 고사성어의 전거가 되었으며, 후세의 병법가들은 강적과 대치할 때 먼저 일보를 후퇴하고 적이 약점을 잡아 일격에 적을 분쇄하는 사상의 기본으로 삼았다.

성복의 싸움 이후 강대한 초나라의 위세에 어쩔 수 없이 받들었던 중원 중소제후국들은 태도를 바꿔 당진국에 붙었다. 기원전632년 개최한 천토(踐土)의 회맹(會盟)에서 주천자는 진문공을 방백(方伯)에 책봉하여 패자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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