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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31:044704 
제80회. 違諫釋越(위간석월) 竭力事吳(갈력사오)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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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80회 違諫釋越 竭力事吳(위간석월 갈력사오)

오자서의 간함을 듣지 않고 구천을 석방하는 부차와

있는 힘을 다하여 부차를 받드는 구천.

1. 句践入臣(구천입신)

- 오나라에 들어가 오왕의 신하가 된 월왕 구천 -

한편 월나라의 대부 문종(文種)은 오왕 부차가 월왕의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허락을 받고 돌아와 회계산에서 농성하고 있던 구천에게 그 결과를 복명했다.

「오왕은 군사를 이끌고 이미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대부 왕손웅에게 명하여 신과 함께 동행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와 대왕의 행차를 감독하도록 하고 태재 백비에게는 군사를 주어 강안(江岸)에 주둔하고 있다가 대왕께서 강을 건너게 되면 마중하여 오나라로 호송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월왕 구천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처지가 기가 막혀 두 눈에 눈물을 흘렸다. 문종이 보고 말했다.

「5월 중순까지는 행차를 하여 오나라에 들어가셔야 하기 때문에 속히 도성으로 돌아가 국사를 미리 요리하셔야지 무익하게 슬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구천이 즉시 눈물을 거두고 회계산에서 내려와 곧바로 월나라 도성으로 들어갔다. 월성의 시가지는 예전과 변함이 없었으며 백성들은 그 표정이 모두 숙연하고 얼굴에는 매우 부끄러운 기색을 띄웠다. 오나라 대장 왕손웅을 관사에 묶도록 조처한 구천은 부고에 보관하고 있던 보물들을 모두 꺼내 수레에 가득 싣고 다시 국중의 여인들 330명을 뽑아 300명은 오왕에게 30명은 백비에게 보냈다. 드디어 구천이 오나라로 들어가기로 한 약속일이 되었으나 월왕 구천은 미적거리며 선뜻 행차하려고 하지 않았다. 왕손웅이 구천의 행차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구천이 눈물을 흘리며 월나라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선왕께서 물려주신 위업을 이어 받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맡은 일을 열심히 행하고 감히 태만하지 않았는데 오늘에 이르러 부초(夫椒)①에서의 한번 싸움에 패해 그 결과 나라는 망하고 사직은 허물어지게 생겼소! 더욱이 천리 떨어져 있는 적국의 포로 신세가 되어 이번에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게 되었소!」

군신들은 모두가 눈물 흘리며 흐느껴 울었으나 문종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으로 나와 말했다.

「옛날 은나라를 세운 탕왕이 하대(夏臺)에서 걸왕에게 잡혀 감옥에 갇혔고, 주문왕은 은의 주왕(紂王)에게 잡혀 유리(羑里)에 유폐를 당했으나 모두가 한 번 일어서자 천자가 되었습니다. 제환공은 제나라에서 쫓겨나자 거나라로 망명하였으며 진문공은 적(翟) 땅으로 달아났으나 한번 일어서니 천자를 대신하는 패자가 되었습니다. 무릇 하늘이 고난을 제후들에게 내리는 목적은 그들을 왕과 방백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왕께서 하늘의 뜻을 잘 받들면 틀림없이 월나라가 흥성하게 되어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는데 어찌하여 하필이면 지나치게 마음을 상하게 하여 하늘의 뜻을 손상하려고 하십니까?」

문종의 말에 구천이 깨닫고 즉시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월나라를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드디어 출발할 날이 되자 왕손웅이 하루 먼저 길을 출발하고 구천과 그 부인은 다음 날 그 뒤를 따랐다. 월나라의 군신 모두는 절강(浙江)의 강변까지 나와 전송했다. 그때까지 고릉(固陵)을 지키고 있던 범려도 배를 타고 와서 절강의 나루에서 월왕을 맞이하여 강안에 잠시 머물며 전별연을 열었다. 문종이 술잔을 들어 월왕에게 바치면서 위로의 노래를 불렀다.

하늘이 보호하고 도우시니

처음에는 고생을 하겠으나 후에는 일어나리라!

지금의 화는 후일 덕의 근원이며

지금의 걱정거리는 후일에 복이 되리라!

皇天佑助(황천우조)

前沉後揚(전심후양)

禍爲德根(회위덕근)

懮爲福堂(우위복당)

남을 위압하는 자는 망하게 되고

남을 섬기는 자는 흥하리도다!

왕께서는 남에게 몸을 굽히시더라도

그 후로는 아무런 곤난을 받지 않으시리라!

威人者滅(위인자멸)

服從者昌(복종자창)

王雖淹滯(왕수엄체)

其後无殃(기후무앙)

군신이 이렇게 살아서 이별하니

하늘의 상제가 어찌 감동하시지 않으리이까?

군신들이 모두 슬피 울 제

누구인들 마음이 아프지 않으리요마는

신이 청컨대 안주와 함께

두 잔의 술을 바치옵니다.

君臣生離(군신생리)

感動上皇(감동상황)

衆夫哀悲(중부애비)

莫不感傷(막불감상)

臣請荐脯(신청천포)

行酒二觴(행주이상)

구천이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면서 흘리는 눈물을 손에 든 술잔에 떨어뜨리며 한 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범려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신이 듣기에 ‘깊고 그윽한 곳에 살아보지 않은 자는 그 뜻이 클 수 없고 행동하는데 근심해 보지 않는 자는 그 생각이 먼대 까지 미치지 못한다.’②라고 했습니다. 옛날 성현들께서는 모두 고난에 처해 치욕을 겪지 않으신 분들이 없으셨는데 어찌 유독 대왕께만 일어난 일이라 하겠습니까?」

「옛날 요임금이 순임금과 우임금에게 정사를 맡겨 천하를 다스리게 할 때 나라에 큰 홍수가 졌으나 사람들이 큰 해를 입지 않았소. 과인이 지금 월나라를 떠라 오나라에 들어가고 나라의 정사는 모두 여기 남아 있는 대부들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대부들은 무슨 말로 과인의 바라는 바를 위로 할 수 있겠소?」

범려가 뒤로 돌아 배열해 있는 군신들을 향한 후에 말했다.

「내가 들으니 모시고 있는 ‘주군의 근심은 신하된 자들의 욕됨이며 모시고 있는 주군이 욕됨을 받으면 신하들은 죽어야 한다’③라고 했소. 오늘 주상께서 나라를 떠나시면서 근심하고 계시니 이것은 신하들인 우리들의 욕됨이며, 우리 절강(浙江) 동쪽 땅의 사대부들 중에 주상과 함께 그 근심을 같이 할 수 있는 호걸이 한 두 명쯤 없을 리 있겠습니까?」

그러자 반열의 여러 대부들이 구천을 향해 일제히 한 목소리로 소리 높여 외쳤다.

「이 중 누가 대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있겠습니까? 오로지 대왕께서 내리신 명만을 따를 뿐입니다.」

「여러 대부들께서 이 부족한 구천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니 그렇다면 각 대부들은 자기의 뜻하는 바를 말해 주시기 바라오. 누가 나를 따라 오나라에 가서 고난을 같이 하고 누가 남아서 이 월나라의 정사를 돌보겠소?」

문종이 나서서 말했다.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백성들의 일에 대해서는 범상국이 신 문모 보다는 못하고 주군을 옆에서 모시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하여 주군을 안전하게 모시는 일은 제가 범상국보다 못합니다.」

범려가 나서서 구천을 호종하겠다고 자청했다.

「문대부께서 이미 스스로 심사숙고한 끝에 하는 말이니 주공께서는 나라의 일을 모두 문종에게 맡기시고 그로 하여금 주공이 계시지 않으실 때 군사를 길러 전력을 확충하게 하고 백성들을 화목시켜 잘 다스리게 하소서! 신은 주군을 따라 오나라에 들어가 곁에 있으면서, 주군께서 오나라에서의 치욕을 참고 견디어 우리 월나라에 필히 다시 돌아와서 주군과 함께 원수를 갚을 수 있게 돕도록 하겠습니다. 신이 어찌 감히 마다하겠습니까?」

그러자 모든 대부들이 순서대로 월왕 앞으로 나와서 각자 자기의 각오를 맹세했다. 태재 고성(苦成)이 먼저 나와 말했다.

「임금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임금의 어진 덕을 밝게 하며 번잡스러운 것은 하나로 묶고 복잡한 것은 정리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작기 자기들의 직분을 알게 하는 것이 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행인(行人)④ 예용(曳庸)이 뒤를 이었다.

「사방의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우리나라와 걸린 분쟁을 해결하고 그들의 의심을 풀며 다른 나라에 군주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으며 나라에 외국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이어서 사직(司直)⑤ 호(晧)가 맹세했다.

「임금이 잘못을 저지르면 신은 간하여 그 잘못을 들어 의심나는 점을 깨닫게 하여 그 마음을 돌리게 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절대 주위의 사정에 흔들리지 않으며 왕의 친척들이라 할지라도 아부하여 잘못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 것이 저의 직분입니다.」

사마(司馬) 제계영(諸稽郢)이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적군의 침입에 대비하여 진지를 세우고 활쏘기를 훈련시키며 흐르는 피가 강을 이루더라도 앞으로 전진할 뿐이지 절대 퇴각하지 않게 병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신의 직분입니다.」

사농(司農) 고여(皐如)의 차례가 되었다.

「제가 몸소 백성들의 집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초상집을 조문하고 병자는 간호하며 음식의 찬은 두 가지 이상을 먹지 않으며 묵은 곡식은 꺼내어 말리고 새로운 신곡은 새로 저장하는 것인 신의 직분인가 합니다.」

태사(太史) 계예(計倪)가 나와 말했다.

「천기를 읽고 지맥을 살피며 음양의 조화를 짚어 복을 발견하고 길한 일을 알아 요망한 것은 쫓아내며, 흉조를 예측하여 화를 미리 방지하는 것이 신의 일입니다.」

「내가 비록 북쪽의 오나라에 가서 한낱 그들의 포로가 되겠지만 여러 대부들이 아름다운 뜻을 품고 각기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여 사직을 보존시키겠다고 하니 내가 어찌 걱정할 필요가 있겠소?」

곧이어 여러 대부들은 남아서 자기들의 맡은 바 직분을 다하여 나라를 지키게 하고 자기는 오로지 범려 한 사람만을 데리고 같이 오나라로 가기로 했다. 월나라의 군신들이 모두 절강을 건너는 나루에 이르자 모두 눈물을 흘렸다. 구천이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사람들은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나는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절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구천이 말을 마치고 이윽고 배에 올라 길을 떠났다. 전송 나온 모든 신하들은 강나루에서 엎드려 통곡을 하며 울었으나 월왕 구천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강을 건넜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구천이 오나라에 들어가는 광경을 노래했다.

서산에 해가 지는데 외로운 배에 돛을 다는데

봄바람 강물에 파도를 일으켜 땅을 요동시킨다!

오늘 술 한 동이를 백사장에 내와 이별을 슬퍼하니

언제나 다시 돌아와 강 건너 고향을 볼 수 있거나?

斜陽山外片帆開(사양산외편범개)

風卷春濤動地回(풍권춘도동지회)

今日一樽沙際別(금일일준사제별)

何時重見渡江來(하시중견도강래)

배가 남쪽 강안에서 멀어져 보이자 뱃머리에 앉아있던 구천의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강변을 날아다니던 물새 떼들이 백사장의 새우를 입으로 쪼아서 물고 갔다가 다시 날아드는 분주한 모습이 오히려 매우 한가롭게 느껴져 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봄이여,

물새와 솔개로구나!

막막하고 종잡을 수 없는 하늘이여,

경쾌한 날개 짓이로다!

모래톱에 모여서 노는 모습이여,

한가롭구나!

건장한 한 번의 날개 짓이여,

저 구름 사이에 날고 있도다!

仰飛鳥兮鳥鳶(앙비조혜조연)

凌玄虛兮翩翩(능현허혜편편)

集洲渚兮憂恣(집주저혜우자)

奮健翮兮雲間(분건우혜운간)

새우를 부리로 쫌이여,

물을 마시는도나!

마음대로 노니도다,

마음대로 오가도나!

첩은 무죄임이여,

이 땅을 등지도다!

무슨 잘못 때문인가?

하늘이 나를 책하도다!

啄素蝦兮飮水(탁소하혜음수)

任厥性兮往還(임궐성혜왕환)

妾无罪兮負地(첩무죄혜부지)

有何辜兮譴天(유하고혜견천)

산들산들 한가롭게 부는 바람이여,

서쪽으로 부도나!

다시 돌아 올 수 있음을 앎이여,

그때가 언제인가?

괴로운 마음이여,

가슴이 찢어지도다!

흐르는 두 줄기의 눈물이여,

강물에 비치도다!

風飄飄兮西往(풍표표혜서왕)

知再返兮何年(지재판혜하년)

心輟輟兮若割(심철철혜약할)

泪泫泫兮雙懸(루현현혜쌍현)

월왕 구천이 부인의 원망하는 노래를 듣고는 마음속으로는 무척 고통스러웠으나 얼굴에는 억지로 미소를 띠고 부인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말했다.

「나야말로 여섯 개의 날개를 달고 다니는 사람인데 어찌 후일에 높이 날 때가 없겠소?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이윽고 월왕 구천의 일행이 오나라의 경계에 들어서자 먼저 범려를 오산(吳山)에 주둔하고 있던 태재 백비에게 보내 황금과 비단 및 미녀 30명을 바치게 했다. 백비가 범려를 보고 물었다.

「문대부는 어찌하여 같이 오지 않았소?」

범려가 대답했다.

「우리 주군을 위해 나라의 정사를 대신 맡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오지 못했습니다.」

백비가 범려의 인도를 받아 월왕의 막사로 가서 구천을 만났다. 구천이 백비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주어 대단히 감사하다고 치하의 말을 했다. 백비는 있는 힘을 다하여 오왕에게 상주하여 월나라에 귀국시켜 주겠다고 장담을 하자 월왕 구천의 마음은 그때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백비가 군사를 시켜 월왕을 함거에 실어 오도로 압송하여 오왕 부차 앞에 대령시켰다. 구천이 웃옷을 벗은 맨 몸으로 부차가 앉아 있는 왕좌의 계단 밑에 꿇어앉자 구천의 부인도 따라 같이 무릎을 꿇었다. 범려가 월나라에서 가져온 보물과 미녀들의 명세를 적은 장부를 부차에게 바쳤다. 월왕 구천이 부차에게 재배하고 말했다.

「동해에 사는 대왕의 신하인 구천이 스스로의 힘도 헤아리지도 못하고 대왕님의 나라 변경을 어지럽혀 죄를 얻었습니다. 대왕께서 저의 크나큰 잘못을 사하여 주시어 대왕을 위해 빗자루나마 잡게 해 주시니 진실로 황공스러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더욱이 보잘것없는 저의 이 목숨을 붙여 주셨으니 그 은혜에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 구천은 삼가 머리를 길게 빼고 조아릴 뿐입니다.」

「과인이 만약 선군의 원수를 생각했다면 어찌 네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겠느냐?」

구천이 다시 머리를 길게 빼고 조아리며 말했다.

「신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오로지 대왕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때 부차의 곁에 서 있던 오자서가 두 눈에서 분노의 불꽃을 일으키면서 벼락과 같은 큰 소리로 부차를 향해 말했다.

「무릇 날개가 달려 구름위로 날아다니는 새를 잡고자 한다면 마땅히 활을 힘껏 잡아 당겨 화살을 쏘아야 하는 법인데 하물며 뜰 안에 내려앉아 가까이 있는데 어찌 잡으시지 않으십니까? 구천이란 위인은 약삭빠르고 음험한 자라 지금은 어항 안에 든 고기 신세가 되어 어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말로 죽음을 면하기 위해 아첨하고 있습니다. 일단 그가 한번 뜻을 얻기만 한다면 마치 호랑이를 산으로 풀어주고, 고래를 바다로 놓아주듯이 두 번 다시는 잡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항장을 죽이고 복종을 맹세한 외적을 살해하면 그 화가 3대에 미친다고 했소. 내가 구천을 죽이지 않는 이유는 월나라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항복한 그를 죽여 하늘에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백비가 나서서 부차를 거들었다.

「오상국은 단지 일시적인 계략에는 밝지만 나라를 편하게 하는 도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대왕의 처사는 진실로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서는 오왕 부차가 백비의 아첨하는 영언(佞言)에 현혹되어 자기의 말을 듣지 않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 나와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부차가 월나라에서 가져와 바친 공물을 받아들이고 왕손웅에게 명하여 합려의 묘 옆에 석실을 짓게 하여 구천 부부를 그 곳으로 들어가 죄수의 신분으로 머물게 했다. 또한 의관을 모두 벗기고 머리를 풀어헤치도록 한 모습으로, 더러운 옷을 입혀 마구간 일을 시켰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백비가 아무도 몰래 보내준 음식으로 간신히 굶주림만은 면할 수 있었다. 오왕이 매번 수레를 타고 나들이를 나갈 때마다 구천으로 하여금 수레 앞에서 말고삐를 잡게 했다. 시정의 오나라 백성들이 모두 손가락질을 놀려댔다.

「저자가 월왕 구천이다!」

구천이 머리를 숙여 얼굴을 감추고 말을 끌었다. 그때의 일을 노래한 시가 있다.

구덩이에 빠진 있는 영웅의 모습이 참으로 슬프구다!

평생의 갈고 닦은 의기는 녹아 없어지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지만 기약이 없어

가슴속의 한은 눈물이 되어 장강을 채우는 구나!

堪嘆英雄値坎坷(감탄영웅치감가)

平生意氣盡銷磨(평생의기진소마)

魂離故苑歸應小(혼리고원귀응소)

恨滿長江泪轉多(한만장강누전다)

구천이 석실에서 살기 시작하여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그 동안 범려는 아침저녁으로 구천의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모셨다. 어느 날 갑자기 부차가 구천을 궁궐로 불렀다. 부차 앞에 대령하여 무릎을 꿇고 엎드린 구천의 뒤에 범려가 서서 시립했다. 부차가 구천의 뒤에 시립하고 있던 범려를 향해 말했다.

「과인이 듣기에 지혜로운 아녀자는 망한 집안에 시집을 가지 않으며 어진 신하는 망한 나라에서 벼슬을 하지 않는다 했다. 오늘 구천이 무도하여 나라를 이미 망해 먹고 그대 군주와 신하가 모두 같이 남의 나라의 종복이 되어 한방에 갇혀 살게 되었으니 참으로 처량한 신세가 되지 않았는가? 과인이 그대의 죄를 용서하려고 하는데 그대가 능히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새로이 다짐하여 망한 월나라를 버리고 오나라에 귀의한다면 과인이 마땅히 중용 하리라! 힘들고 걱정스러운 신세를 버리고 부귀를 누리게 되니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월왕 구천이 땅에 엎드려 부차가 범려에게 하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혹시라도 범려가 부차의 말을 따라 오나라에 귀의하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그러나 범려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부차에게 자기의 뜻을 말했다.

「신은 듣기에 망한 나라의 신하는 감히 정사를 논할 수 없으며 싸움에서 진 장수는 그 용기를 말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신이 월나라에서 벼슬을 살면서 충과 신으로 보좌하여 월왕으로 하여금 옳은 길로 나가지 못하게 하여 이렇듯 대왕께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대왕께서 저희들을 죽이지 않으시어 군신이 이렇듯 서로 위로하며 소제하는 일을 맡기시고 먹을 것과 의복을 주시면서 대왕의 행차를 모실 수 있는 기회까지 만들어 주시니 이것으로 신은 만족할 따름입니다. 어찌 감히 저와 같은 망국의 신하된 자가 부귀를 바라겠습니까?」

「그대가 뜻을 굽히지 않으니 다시 석실로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 하도록 하라!」

「삼가 대왕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부차가 자리에서 일어나 궁궐 안의 자기 처소로 들어가 버렸다. 범려와 함께 석실로 돌아온 구천은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는 두건을 메어 나무꾼과 같은 모습으로 짚단을 썰어 말먹이를 만들었다. 구천의 부인은 바느질을 하지 않은 통치마에 왼쪽에 깃을 단 오랑캐 여자들이 입는 저고리를 입고 물동이에 물을 길러 날랐다. 그들은 마구간의 말똥을 치우고, 물을 뿌리며 빗자루로 쓸었다. 범려도 매일 땔나무를 하고 밥을 짓기 위해 불을 지펴야 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여위어 수척해 졌다. 부차가 가끔 사람을 보내 구천 일행의 행동을 살펴보게 했다. 두 사람의 군주와 신하는 힘껏 일하고 결코 원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사람을 시켜 계속해서 밤새도록 지켜서 살펴보도록 했으나 역시 근심하는 빛이나 한탄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부차는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이후로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루는 오성의 고소대(高蘇臺)에 올라 밑을 살펴보던 부차가 월왕 구천과 그의 부인이 말똥 무더기 옆에서 단정하게 앉아 있고 범려는 채찍을 들고 구천의 왼쪽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세 사람의 모습이 군주와 신하 사이에 예를 잃지 않고 있었으며, 또한 부부 사이에도 예를 갖추고 있었다. 부차가 곁에 서있던 태재 백비를 쳐다보고 말했다.

「저 월왕은 작은 나라의 군주에 불과하고 범려는 그 나라의 일개 신하일 뿐인데 그들이 비록 궁핍하고 불행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군주와 신하로써의 예의를 잃지 않으니 과인이 실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소!」

「그렇다고 존경할 만한 일은 못 되고 가련한 생각은 듭니다.」

「진실로 태재의 말대로 과인이 차마 그냥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쌍한 신세들이오. 만약 그들이 옛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를 새롭게 한다면 이제 그만 용서해 줘도 되지 않겠소?」

「신이 듣기에 베풀지 않는 덕은 돌아오지 않는다 했습니다. 대왕께서 성인의 마음으로 외롭고 불쌍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가련하게 생각하시어 월나라에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시니 월왕이 어찌 그 은혜를 크게 갚지 않겠습니까? 원컨대 대왕께서는 결심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태사에게 길일을 택하게 하여 월왕을 사면하여 귀국시키기 위한 날짜를 잡게 하시오.」

백비가 아무도 몰래 자기 가신을 시켜 오고가 되기를 기다려 석실로 달려가서 그 기쁜 소식을 구천에게 전하게 했다. 구천이 크게 기뻐하여 그 소식을 범려에게 말했다. 범려가 말했다.

「제가 한번 점을 쳐서 그 길흉을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이 무인(戊寅) 일이고 묘시(卯時)에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戊)는 갇히는 날이나 묘(卯)와는 상극입니다. 그 점괘가 다음과 같이 나왔습니다. ‘천하 사방이 그물에 덮였으니 만물이 모두 상하고 상서롭게 여긴 일이 재앙으로 변하리라.’⑥ 비록 좋은 소식이긴 하나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다고 하겠습니다.」

구천은 범려의 말을 듣고 기뻐하던 마음이 다시 근심으로 변했다.

2. 求糞嘗之 虎口餘生(구분상지 호구여생)

- 오왕의 대변을 핥아 호랑이 굴에서 탈출하다. -

한편 오왕이 장차 월왕을 사면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오자서가 황급히 입궐하여 부차를 접견하고 말했다.

「옛날 하나라의 걸왕은 상(商)을 일으킨 탕(湯)을 잡아 가두었으나 죽이지 않았고 다시 상나라의 주왕(紂王)은 주문왕을 역시 잡아 가두었으나 죽이지 않아서 하늘이 이를 뒤집어 화가 바뀌어 복이 되게 하였습니다. 걸이 탕을 방면하여 하나라가 상나라에 망했고 다시 주가 문왕을 풀어주어 상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망했습니다. 오늘 대왕께서 월나라의 임금을 이미 잡아 가두었으나 죽이시지 않으시니 진실로 하(夏), 상(商)의 종말을 다시 일어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부차가 자서의 말로 인하여 다시 월왕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게 되어 구천을 불러들이게 하였다. 백비가 먼저 사람을 보내 그 사실을 구천에게 전하게 했다. 구천이 크게 놀라 다시 범려에게 말했다. 범려가 듣고 말했다.

「대왕께서는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오왕 부차가 우리를 석실에 가둔지가 벌써 3년이 되도록 살려 두었는데 어찌 다시 우리를 하루 만에 죽일 수 있겠습니까? 조당에 들어가 오왕을 접견해도 무사하실 것입니다.」

「과인이 지금까지 죽지 않고 견디어 낼 수 있었음은 모두 경의 계책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오.」

구천이 즉시 궁궐 안으로 들어가 오왕을 뵙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3일을 기다려도 오왕은 조정에 나타나지 않아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백비가 궁중에서 나오더니 오왕의 명을 전하여 구천으로 하여금 석실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구천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그 연고를 물었다. 백비가 대답했다.

「대왕께서 잠시나마 오자서의 말에 혹하시어 왕을 죽이려고 불렀다가 마침 감기가 들려 자리에 일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제가 입궁하여 병문안을 드리면서 왕을 위해 ‘재앙을 물리치려면 마땅히 복된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 월왕이 궁 안으로 기어 들어와 궐하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 아마도 그의 쓰라린 원한이 하늘까지 뻗친 듯합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보중하시어 잠시 그를 석실로 돌아가 있도록 명하셨다가 병이 완쾌된 후에 논해도 늦지 않으실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왕께서 저의 말을 들으시고 월왕 전하를 석실로 다시 돌려보내시라 명하셨습니다.」

구천이 백비에게 감사의 말을 수없이 했다. 구천이 돌아와 석실에서 생활하기를 다시 3개월이 되었는데도 부차의 병에 차도가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구천이 범려에게 점을 쳐서 길흉을 알아보게 하였다. 범려가 점을 쳐서 점괘를 얻어 말했다.

「오왕은 죽지 않겠습니다. 기사(己巳) 일이 되면 병에 차도가 있기 시작하여 3일 후인 임신(壬申) 일이면 반드시 병이 완쾌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오왕의 문병을 청하시어 만약에 접견을 허락 받으신다면 그의 대변을 달라 하여 맛을 보시고 대변의 색을 살피고 오왕에게 두 번의 절을 올려 경축의 말을 올리고 병에 차도가 있는 시기를 말씀하십시오. 그때가 되어 병이 완쾌되면 필시 오왕이 대왕께 마음속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 아마도 사면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천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비록 불초한 인간이기는 하지만 역시 옛날에는 남면했던 한나라의 임금이었소. 비록 내가 오욕을 참고 견디어 가며 살고는 있다 하지만 어찌 남의 더러운 대변까지 맛을 보며 살아야 한단 말이오?」

「옛날 은주(殷紂) 서백을 잡아 유리(羑里)에 가두고 그의 장자 백읍고(伯邑考)를 죽여 가마솥에 삶아 끓인 고깃국을 서백에게 주자 서백이 고통을 참고 그 자식의 고기를 뜯어먹었습니다. 무릇 큰일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조그만 일에 구애받으면 안 되는 법입니다. 오왕은 부녀자의 정을 갖고 있는 자라 대장부가 지녀야 할 결단력을 갖추지 못하여 이미 우리를 사면하고픈 마음을 먹고 있는데 또다시 갑자기 다른 생각을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방법을 쓰지 않는다면 어찌 그의 동정심을 자아내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구천이 그날로 태재의 부중으로 들어가 백비를 보고 말했다.

「임금의 병은 곧 신하된 자들의 근심거리라 했습니다. 오늘 대왕께서 병이 나셔서 아직까지 쾌유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구천의 마음은 외롭고 실망하여 침식이 불안합니다. 원컨대 태재를 따라 대왕의 병문안을 한번 드려 신자 된 자의 정을 표하고 싶습니다.」

「군주께서 이와 같이 아름다운 마음 갖고 계시니 제가 어찌 감히 그 뜻을 대왕께 아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백비가 이어 입궐하여 부차를 접견하고 구천의 간절한 마음에 대해 구구절절이 말하고 그가 들어와 병문안을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부차가 병이 들어 심신이 매우 피로한 중에 구천의 뜻을 기특히 여겨 입견을 허락했다. 백비가 인도를 받아 부차의 침실로 들어간 구천을 보고 부차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구천은 무슨 일 때문에 나를 보러 왔는가?」

구천이 머리를 조아리며 부차를 향해 말했다.

「죄를 지어 갇혀 지내는 외신 구천이 대왕의 옥체가 편안하시지 못하다는 소식을 듣고 간과 폐가 찢어지듯이 아파 그저 대왕의 안색을 한 번 뵙고 문안을 여쭙고자 해서입니다.」

부차가 갑자기 아랫배에 통증이 오며 변의를 느끼고 대변을 보기 위해 손을 저어 주위의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라고 명했다. 구천이 보고 부차를 향해 말했다.

「신이 옛날에 동해에 있을 때 의원으로부터 의술을 조금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대변을 살펴 능히 병세가 나아지거나 악화되는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구천이 말을 마치고 침실 밖으로 나가 두 손을 앞으로 내어 맞잡고 부차의 침실 문 앞에 시립하였다. 왕을 모시는 시자가 변기를 부차의 침실 안으로 가져갔다. 부차가 대변보기를 다 마치자 시자가 변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구천이 시자의 앞으로 나가 변기의 뚜껑을 열고 손을 넣어 통 속의 대변을 꺼내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맛을 봤다. 구천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코를 손으로 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구천이 다시 들어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수신(囚臣) 구천이 감히 재배하여 대왕께 경축을 드리는 바입니다. 왕의 병은 기사(己巳) 일이 되면 차도가 있기 시작하여 3일이 지나 임신(壬申) 일이 되면 쾌유되겠습니다.」

「어떻게 쾌유될지를 아는가?」

「신이 예전에 의원에게 듣기를 무릇 사람의 대변이란 곡식의 맛이라 순한 기운이 있으면 살고 역한 기운이 있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죄인 구천이 대왕의 변을 맛을 보니 그 맛이 쓰고 시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봄과 여름의 기운에 상응하는 자연의 섭리라 그것으로써 대왕의 쾌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부차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어진 사람이로다. 부차여! 그 어느 신하가 그 임금을 모시면서 대변을 기꺼이 맛보아 그 병세를 살펴본단 말인가?」

그때 부차의 곁에 서있던 태재 백비에게 물었다.

「경도 이와 같이 할 수 있겠소?」

백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신이 비록 대왕을 매우 사랑하지만 저 역시 구천과 같이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단지 태재뿐만 아니라 비록 내 자식인 태자라 할지라도 역시 그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부차가 즉시 구천에게 명하여 석실에서 떠나 그 곳에서 더 이상 머물러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말했다.

「나의 병세가 그대의 말대로 차도가 있게 되면 내 그 즉시 방면하여 돌려보내 주리라!」

구천이 재배하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말을 올리고 물러났다. 그 당시 구천 일행은 민가에 거처를 옮겨 살게 되었지만 구천은 예전과 다름없이 말을 길렀다. 이윽고 3일이 지나자 구천이 예언한 대로 부차의 병은 말끔히 낫게 되자 부차는 구천의 충성심에 감동했다. 조정에 나와 정사를 돌볼 수 있게 된 부차는 문대(文臺)에다 술상을 차리고 구천을 불러 참석하라고 했다. 구천이 짐짓 모르는 척 하고 평상시처럼 죄수가 입는 복장을 하고 연회장에 들어왔다. 부차가 보고 즉시 령을 내려 목욕을 시킨 후에 죄수 복장을 벗게 하고 의관을 주어 갈아입게 했다. 구천이 연신 절을 올리며 그럴 수 없다고 완강히 사양하였지만 결국은 못이기는 체 하고 부차의 명을 따랐다. 구천이 옷을 갈아입고 들어와 부차에게 절을 다시 올렸다. 황망 중에 자리에서 일어난 부차가 구천을 부축하여 일으켜 좌정시킨 후에 령을 내렸다.

「월왕은 어질고 덕이 있는 사람이라! 어찌 오랫동안 욕을 보일 수 있겠는가? 과인이 장차 그를 감옥에서 석방하여 죄를 용서하고 그의 나라로 돌려보낼 생각이오. 오늘 월왕을 위해 좌석의 북쪽에 자리를 마련하고 여러 군신들은 그를 손님의 예로써 대하기 바라오!」

구천을 향해 읍을 행하고 손님의 자리에 앉힌 부차는 참석한 대부들에게는 서열에 따라 그의 곁에 앉게 했다. 오자서가 서 있다가 오왕이 원수를 보고도 갚지 않고 오히려 극진히 대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화를 삭이지 못하더니 연회에 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옷소매를 떨치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백비가 앞으로 나와 부차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어진 마음으로 어진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계십니다. 신은 듣기에 같은 목소리는 서로 어울리며 같은 의기는 서로 구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자리는 어진 마음을 갖춘 자는 마땅히 자리를 지켜야 하고 어질지 못한 마음을 갖은 자는 마땅히 물러가야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상국께서 비록 용력은 있다하나 이 자리에 머물지 않으시니 그것은 인자하지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부차가 듣고 웃으며 말했다.

「태재의 말이 옳소!」

이윽고 술잔이 세 번 돌자 범려와 구천이 두 사람이 자리에 일어나더니 술잔을 들어 오왕의 만수무강을 빌며 노래를 불렀다.

대왕께서 위에 앉아 계시니

그 은혜 펴심이 화창한 봄 날 같구나!

인자하신 마음은 비할 바 없고

그 높으신 덕은 하루가 다르게 새롭구나!

오호라, 아름다운 일이로다!

皇王在上(황왕재상)

恩播陽春(은파양춘)

其仁莫比(기인막비)

其德日新(기덕일신)

於乎休哉(어호휴재)

그 덕을 세상 끝까지 전하시고

만세까지 사시옵고

오나라를 길이 보전하시며

사해를 다스리옵서소!

이 술잔을 바치오니

만복을 누리소서!

傳德无極(전덕무극)

延壽萬世(연수만세)

長保吳國(장보오국)

四海咸承(사해함승)

觴酒旣升(상주기승)

令愛萬福(영애만복)

3. 縱虎歸山(종호귀산)

- 호랑이를 풀어주어 산으로 돌려보내다. -

오왕 부차가 크게 기뻐하여 그 날 마음껏 마셔 취하게 되어 술자리가 끝난 뒤에 휴식을 취하며 왕손웅에게 명하여 구천을 객관으로 모시고 가서 머물게 하며 말했다.

「3일 내에 내가 그대들을 고향으로 보내 주겠노라!」

다음 날 아침 오자서가 입궐하여 오왕을 보고 말했다.

「어제 대왕께서 원수인 월왕을 마치 손님 접대하시듯이 환대 하셨는데 그것은 과연 무슨 연유에서입니까? 구천은 호랑이나 승냥이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겉으로는 공손하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일시적으로 하는 아첨하는 말로 대왕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에 빠져 앞날의 환란을 걱정하지 않으시니 그것은 충성스럽고 옳은 말을 물리치고 아첨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시는 어리석은 처사입니다. 작은 인정에 빠진 대왕께서 행한 지금의 일은 앞으로 커다란 우환 거리를 만드시는 일입니다. 활활 불타는 난로 위의 머리털을 올려놓고 타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며 천근의 바위 밑에 계란을 놓아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일과 같은 형상이온데 어찌 온전하기를 바라십니까?」

오왕 부차가 오자서에게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과인이 병이 들어 석 달을 자리에 누워 있었건만 상국은 한 마디의 위로말도 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상국이 나에게 불충하다는 사실을 뜻하오. 또한 상국으로 있으면서 나에게 바치는 것이 없으니 상국이 나에게 어질지 못함을 말함이오! 신하된 자가 어질지도 못하고 충성을 바치지도 않으니 이는 쓸모가 없음을 말함이오. 그러나 월왕 구천은 나라를 버리고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과인을 찾아와 그의 보물과 재화를 바치고 그 몸은 나의 노비가 되었으니 그것은 그가 나에게 충성스럽다는 사실을 뜻하고 과인이 병에 걸렸을 때 친히 나의 대변을 맛보아 나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을 잊었으니 그것은 그가 또한 어질다는 사실을 뜻하오. 과인이 만약에 상국의 사사로운 마음에 얽매어 그와 같은 훌륭한 사람을 죽인다면 하늘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왕께서는 어찌하여 그와 같이 상반된 말을 하시는 것입니까? 무릇 먹이를 덮치려는 호랑이는 그 자세를 낮추는 법이며 다른 짐승을 공격하는 삵은 자기의 몸을 줄이는 법입니다. 오나라에 들어와 신하가 되어 왕을 모시게 된 월왕은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고 있는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사실을 모르십니까? 월왕이 대왕의 대변을 맛본 행위는 사실은 대왕의 마음을 맛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 만일 이를 헤아리지 않으신다면 그의 간교한 계책에 떨어져 오나라는 필시 그의 손에 멸망할 것입니다.」

「상국은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내 뜻은 이미 정해졌소!」

더 이상 간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오자서는 화를 삭히며 부차 앞에서 물러 나와 대궐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부차가 약속한 3일이 지나자 왕이 다시 좌우에게 명하여 오성의 사문(蛇門) 밖에 술자리를 차리라 하고 자기가 몸소 월왕의 귀국 길을 성 밖에서 전송하려고 하였다. 오나라의 군신들은 모두 구천에게 술을 따라 올리고 귀국 길을 전송했으나 오자서만은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부차가 구천에게 말했다.

「내가 그대의 죄를 용서하고 돌려보내니 그대도 마땅히 나의 은혜를 감사하게 여기고 절대 이곳에서 한 고생을 원망하지 마시오.」

구천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왕께서 저의 외롭고 곤궁한 처지를 애처롭게 생각하시어 목숨을 살려주시고 다시 저의나라로 돌아가게 해 주시니 마땅히 연년세세로 있는 힘을 다하여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오나라를 배반한다면 신의 마음을 지켜볼 저 푸른 하늘이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자의 일언은 천금과 같이 무거운 것이니 그대는 약속한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시오.」

구천이 절을 다시 두 번 올리고 부차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 마치 자기가 오나라를 떠나고 싶지 않는 듯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모습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부차가 친히 구천을 부축하여 수레에 태워 주자 범려가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를 잡았다. 구천의 부인도 역시 땅에 엎드려 부차에게 절을 하며 감사의 말을 올렸다. 구천의 일행이 한 대의 마차에 타고 남쪽의 월나라를 바라보며 길을 떠났다.

그때가 주경왕(周敬王) 29년 기원전 491년의 일이었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노래했다.

월왕은 이미 가마 솥 안의 물고기 신세였었는데

간신히 목숨을 건져 회계로 돌아갈 지 누가 알았겠는가?

가소로운 부차여! 어찌 그리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가?

그물을 풀어 고래를 바다로 놓아 주었도다!

越王已作釜中魚(월왕이작부중어)

豈料殘生出會稽(개료잔생출회계)

可笑夫差无遠慮(가소부차무원려)

放開羅网縱鯨鯢(방개나망종경예)

4. 臥薪嘗膽(와신상담), 韜光養晦(도광양회)

- 섶나무에서 자고 쓸개를 핥으며 속마음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다.-

구천이 절강의 북안에 당도하니 건너편의 월나라 산천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들어 쳐다보니 산은 첩첩하고 강물은 수려하며 하늘은 밝았고 땅은 비옥하여 자기도 모르게 탄식의 말을 하였다.

「내가 지난 날 월나라 백성들과 영원히 작별하여 내 뼈가 이역의 나라에 묻힐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찌 오늘 내가 다시 돌아와 사직에 제사를 받들 수 있게 될 줄 알았겠는가?」

말을 끝낸 구천이 그의 부인을 쳐다보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월왕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문종은 그 동안 나라를 맡아 다스리고 있던 신료들과 성안의 백성들을 이끌고 절강 남안의 나루터까지 나와 영접했다. 월나라의 군신들과 백성들의 환성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구천이 범려에게 명하여 점을 쳐 오도에 입성할 길일을 잡게 하였다. 범려가 손가락으로 간지를 짚더니 말했다.

「이상합니다. 왕께서 입성하시는데 길일은 내일이 가장 좋은 날입니다. 왕께서는 마땅히 말을 달려 내일까지 월성에 입성하시어 점괘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구천이 수레를 끄는 말을 채찍으로 재촉하여 밤에도 쉬지 않고 비호처럼 달리게 하여 그 다음 날 월성에 당도했다. 구천이 그날로 태묘에 자기가 돌아왔음을 알리고 월왕의 자리에 앉아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다.

자기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회계산의 치욕을 잊지 못하여 그 곳에 성을 세우고 월나라의 도성을 옮겨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했다. 회계산에 새로운 성을 축조하는 공사를 범려가 맡았다. 범려가 즉시 천문과 지리를 살펴 새로운 성을 회계산에 세웠다. 서북 쪽 와룡산(臥龍山)에는 비익루(飛翼樓)를 지어 하늘로 통하는 문을 형상하고 동남 편에는 배수로로 구멍을 뚫어 땅으로 통한 문을 상징하게 하였다. 회계산의 주위는 모두 성곽으로 둘러치고 오직 서북쪽만큼은 성곽을 쌓지 않았다. 범려는 그 이유를 사람들에게 시켜 소문을 내게 했다.

「우리 월나라가 이미 오나라에 복종하기로 명세를 했는데 어지 감히 공물을 바치러 가는 길을 성벽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실은 오나라를 공격하기 위하여 출동할 때의 편함을 위해서였다. 드디어 새로운 도성의 축조가 완성되려던 어느 날 갑자기 성안에 둘레가 몇 리나 되는 산이 하나 땅 속에서 솟았다. 그 모양이 마치 거북이를 닮고 그 산 속에는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월나라 백성들 중에 그 산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그 산은 낭야(琅琊)의 동무산(東武山)인데 어찌하여 낭야에 있던 산이 하루 저녁에 월나라 도성으로 옮겨왔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범려가 구천에게 말했다.

「신이 성을 하늘의 형상에 맞추어서 쌓았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곤륜(昆侖)을 우리 월나라에 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 월나라로 하여금 중원의 패자가 되라고 하는 계시입니다.」

월왕 구천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그 산의 이름을 괴산(怪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다시 비래산(飛來山)으로 부르다가 또한 구산(龜山)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그 산 정상에 영대(靈臺)라는 누각을 삼층으로 짓고 이 신령스러운 산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성을 쌓아 도성으로서의 모든 제도를 갖춘 구천은 도읍을 제기(諸曁)⑦에서 회계로 천도했다. 구천은 회계에 머물면서 정사를 보았다. 구천이 범려를 향해 말했다.

「내가 사실은 덕이 없는 사람이라 결국은 나라를 잃고 몸은 남의 나라의 노예가 되고 말았소! 만일 범 상국과 여러 대부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도움이 없었다면 어찌 나에게 오늘이 있었겠소?」

「오늘이 있기까지는 대왕의 복이지 어찌 우리 신하들의 공이라고 하겠습니까? 단지 원하옵건대 한시라도 오나라의 석실에서 생활할 때의 쓰라림을 잊지 마시고 노력하시어 월나라의 중흥을 이루어 그때의 원수를 갚도록 하옵소서!」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소!」

문종에게는 계속해서 나라의 내치에 힘쓰도록 하고 범려에게는 군사의 일을 맡긴 구천은 현자는 높이고 선비는 예로써 대했으며 노인을 공경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보살폈다. 월나라의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월왕이 스스로 부차의 대변을 입으로 맛본 이후로 항상 그의 입에서 입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범려가 월성의 북 쪽에 있는 산에서 삼백초(三白草)에 속하는 즙(蕺)이라는 약초가 있어 사람들이 먹을 수는 있으나 단지 그 풀에는 냄새가 조금 난다는 사실을 알고서 사람을 시켜 캐오게 하였다. 범려가 그 즙채(蕺菜)를 데려서 모든 신하들에게 먹게 하여 그 기운을 어지럽게 하여 구천의 입냄새를 제거할 수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그 산의 이름을 즙산(蕺山)이라고 불렀다.

구천이 오나라에 당한 수모를 못 잊어 그 원수를 하루라도 빨리 갚고자 몸을 고되게 하고 한시라도 마음을 놓지 않고 밤을 새워 정사를 돌봤다. 심신이 피곤하여 두 눈이 감기려고 하면 뾰쪽한 여뀌 풀로 그의 눈을 찔러 졸음을 쫓았으며 겨울에는 발을 시리게 하고 추위에 참을 수 없게 되면 다시 찬물에 발을 담갔다. 겨울에는 항상 얼음을 안고 자고 여름에는 다시 화로를 쬐었다. 잠자리는 요 대신에 섶을 깔아 그 위에 누워 자고 이불을 덮지 않았다. 다시 자기의 침실과 거실에는 쓸개를 달아 놓고 음식을 먹을 때는 항상 먼저 한 번 맛본 다음 수저를 들었다. 한 밤중에 몰래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는 때가 많았으며 이윽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 구천의 입에서는 회계(會稽)라는 두 말이 떠나지 않았다. 지난날 월나라가 회계의 싸움에서 진 이래로 월나라의 인구가 많이 줄게 되었다. 구천이 즉시 령을 내려 나이가 젊은 남자가 늙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금했고 늙은 남자 역시 젊은 여인과 혼인을 하지 못하게 했다. 여자가 17세가 되어도 시집을 가지 않거나 남자가 20세가 되어도 장가를 가지 않으면 그들의 부모에게 모두 죄를 주었다. 임산부가 출산을 하게 되면 곧 관가에 고하게 하고 의자(醫者)를 시켜 임부와 아이를 보살피게 하였다. 남자아이를 낳으면 술 한 동이와 개 한 마리를 하사했으며 여자아이를 낳으면 술 한 말에 돼지 한 마리를 상금으로 주었다. 사내아이를 셋을 나면 그 중 둘은 관가에게 데려가 기르며 둘을 낳으면 하나를 데려다 길렀다. 백성의 집에서 상이 나면 구천이 친히 방문하여 곡을 했으며, 성 밖으로 나들이를 할 때면 항상 밥과 국을 수레에 싣고 나가다가 도중에 어린 아이를 만나면 필히 먹게 하고 그 이름을 물어 관심을 표했다. 또한 도중에 밭을 가는 농부를 만나게 되면 그 자신도 수레에서 내려 밭으로 들어가 친히 몸을 굽혀 밭일을 했다. 구천의 부인도 스스로 베를 짜고 민간의 아낙네들 사이에 섞여 일 하면서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7년 동안을 세금을 걷지 않고 밥상에는 고기를 올리지 않게 하였으며 옷은 두 겹을 껴입지 않았다. 또한 오나라의 부차에게는 매 달마다 문안을 여쭙는 사자는 잊지 않고 계속 보내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다시 성안의 남녀 백성들을 산으로 들여보내 칡넝쿨로 황사세포(黃絲細布)를 짜서 오왕 부차에게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구천이 황사세포를 미처 보내기도 전에 그 소식을 듣게 된 오왕 부차는 기뻐하며 사자를 보내 구천이 자기를 극진히 모시고 있다고 칭송함과 동시에 월나라의 봉지를 넓혀 주었다. 그래서 월나라의 영토는 동으로는 구용(句甬)에 이르고 서로는 취리(檇里), 남으로는 고멸(姑蔑), 북으로는 평원(平原)⑧에 이르러 동서남북 800 리에 달하게 되었다. 구천이 곧 갈포(葛布) 10만 필과 월나라의 특산인 꿀 백 통, 암컷과 수컷의 여우 가죽 5쌍 진죽(晉竹)을 가득 실은 배 10척을 봉지를 더해준 은혜에 대한 답례로 공물을 바쳤다. 부차가 크게 기뻐하여 월왕이 행차할 때 그 깃발에 우모(羽旄)를 장식해 제후로써 의식을 갖춰도 좋다고 허락했다. 부차가 월왕에게 봉지를 넓혀 주고 우모의 기를 사용해도 좋다는 것을 허락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오자서는 몸에 병이 들었다고 하면서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월왕이 이미 자기에게 진정으로 복종하여 두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부차는 백비가 한 말을 더욱 굳게 믿게 되었다. 하루는 부차가 백비를 향해 물었다.

「지금 우리 오나라의 변경이 평화로워 태평성대라 할 만 하오. 과인이 궁실을 넓혀 그 즐거움을 누릴까 하는데 어느 땅에다 지어야 할지 모르겠소.」

「오도(吳都)에 경치가 좋은 숭대(崇臺)가 있기는 하나 고소대(高蘇臺)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 선왕인 합려께서 고소대에 궁궐을 짓기는 했지만 크게 구경하며 즐기기에는 부족합니다. 대왕께서 만약 고소대를 다시 증축하여 그 누각을 높여 사방 백 리를 볼 수 있도록 하고 그 안에 6천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크게 짓고 동남동녀를 불러모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한다면 가히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5. 文種七計(문종칠계)

- 오나라를 멸하기 위한 문종의 일곱가지 계책-

부차가 백비의 말을 따라 곧이어 고소대를 지을 커다란 재목을 구한다고 현상금을 걸었다. 월나라의 대부 문종이 듣고 월왕 구천에게 고했다.

「신이 듣기에 ‘하늘 높이 나는 새도 땅 위에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다 잡혀 죽고 깊은 물 속에 있던 고기도 강물 위의 향기 나는 미끼를 먹으려다가 낚시꾼에게 잡힌다’⑨고 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오나라에 당한 치욕을 갚으시려고 하시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오왕이 구하는 것을 던져 주어 유인하여 기회를 보아 그의 목숨을 얻으십시오」

「내가 비록 그가 원하는 것을 구해 바친다 한들 어찌 능히 그의 목숨을 끊을 수 있겠소?」

「신에게는 오나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에는 일곱 가지가있습니다.

첫째, 재물을 보내 오나라의 임금과 신하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줍니다.

둘째, 곡식의 가격을 올려 그들의 창고를 비우게 합니다.

셋째, 아름다운 미녀를 보내어 그들의 마음과 의지를 빼앗습니다.

넷째, 솜씨 좋은 목공과 좋은 재목을 보내어 그들의 궁실을 크게 짓게 하여 그 나라의 재물들을 탕진하게 만듭니다.

다섯째, 아첨을 잘하는 신하를 보내어 그들의 생각을 어지럽힙니다.

여섯째, 직간 하는 충신들을 구석으로 몰아 스스로 죽게 만들어 그 나라의 임금을 보좌할 수 있는 인재의 벽을 얇게 만듭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는 그들로 하여금 사사로이 재물을 축적하게 만듬과 동시에 나라 밖으로 멀리 원정을 나가도록 유도하여 나라의 재정을 피폐하게 만습니다.」⑩

「참으로 훌륭한 계책이요. 먼저 어느 방법부터 시행해야 하겠소?」

「제가 소문을 들으니 오왕 부차가 얼마 전에 고소대(姑蘇臺)를 개축하여 대대적으로 토목공사를 일으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합니다. 맨 먼저 명산에 사람을 보내 신목(神木)을 찾아 바치십시오」

월왕 구천이 즉시 목공 3천여 명을 모아 산으로 들여보내어 신목을 찾으라고 했으나 일 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목공들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하나 같이 월왕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 노래를 지어 불렀다. <목객지음(木客之吟)>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아침에도 나무를 찾고 저녁에도 나무를 찾아

아침이면 아침마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심신산골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높이 솟은 바위와 깎아지른 듯한 봉오리를

공연히 왔다 갔다 할뿐이네

하늘이 내리지 않고

땅이 키우지 않은 것을 찾아내라 하니

목공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듯 고생을 심하게 시키는가?

木朝采木, 暮采木(조채목,모채목)

朝朝暮暮入山曲(조조모모입산곡)

窮岩絶壑徒往復(궁암절학도왕복)

天不生兮地不育(천불생혜지불육)

木客何辜兮受此勞酷(목객하고혜수차노혹)

목공들이 매일 밤 길게 불러대는 노래는 듣는 자들의 마음을 처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신목 한 쌍이 내려 왔는데 둘레가 20위(圍)⑪에 그 높이는 50심(尋)⑫에 달했다. 산의 양지에 있던 것은 가래나무였고 그늘진 곳에 있던 것은 녹나무였다. 목공들이 놀래어 생전보지 못한 그 큰 나무의 모습을 월왕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여러 신하들이 구천에게 축하의 말을 올리며 말했다.

「대왕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 상제가 그 충정을 위로하기 위해 신목을 내려준 듯 합니다.」

구천이 크게 기뻐하여 친히 신목이 있는 곳까지 가서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 후에 나무를 베어 넘어뜨렸다. 목공들이 달려들어 다듬고 대패질을 한 나무의 겉에 단청을 사용하여 오색의 용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윽고 신목을 다듬는 일이 완료되자 문종에게 명하여 오나라에 가져가 오왕에게 바치게 했다. 강물에 띄워 신목을 오나라로 운반한 문종이 오왕에게 바치며 월왕의 말을 전했다.

「동해의 보잘것없는 신하 구천이 대왕의 보살핌에 힘입어 근근이 조그만 궁궐을 짓기 위해 재목을 찾다가 우연히 세상에 보기 드문 큰 나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감히 제가 사용할 수가 없어 기꺼이 저의 신하를 보내어 바치오니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부차가 문종이 가져온 재목의 크기가 어마어마함에 놀라 즐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였다. 오자서가 보고 간했다.

「옛날에 하나라의 걸왕은 영대(靈臺)를, 상의 주왕은 록대(鹿大)를 짓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자 국가가 피폐하게 되고 이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구천이 우리 오나라를 해치려는 마음에서 이렇게 큰 재목을 보내어 궁궐을 축조하는 역사(役事)를 일으키게 하려는 뜻에서이니 대왕께서는 절대 받지 마십시오.」

「구천이 이와 같은 좋은 재목을 얻고도 자기가 쓰지 않고 과인에게 가져다 바치니 그것은 곧 좋은 마음에서인데 어찌하여 구천이 역심을 품고 있다고 하시오?」

부차가 오자서의 간함을 듣지 않고 월나라에서 가져온 커다란 재목을 고소대(高蘇臺)를 짓는데 사용하게 했다. 고소대를 짓는데 3년 동안 재목을 모으고 5년 만에 간신히 완성을 보게 되었다. 고소대는 높이가 3백 장(丈)에 달하고 그 둘레는 84장이었다. 고소대에 오르면 가면 사방 2백 리를 조망할 수 있었다. 나라 안의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옛날의 도성에서 산으로 오르던 구비구비 구부러진 좁은 길도 크게 넓혔다. 오나라 백성들은 밤낮으로 끌려 나와 일을 해야 했으며 공사 중에 피로에 지쳐 죽은 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후세에 양백룡(梁伯龍)⑬이라는 사람이 시를 지어 고소대의 모습을 노래했다.

천길 높이의 높은 누각이 태호에 면했는데

고소대에서 열린 잔치 하루 종일 종고소리 울리네!

하늘을 닿을 듯한 위엄이 삼천리를 굽어보니

강남의 제일가는 도읍은 이곳인가 하노라!

千仞高臺面太湖(천인고대면태호)

朝鐘暮鼓宴姑蘇(조종모고연고소)

威行海外三千里(위행해외삼천리)

覇占江南第一都(패점강남제일도)

월왕 구천은 고소대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종을 향해 말했다.

「경의 칠계 중 넷째 번에 해당하는 ‘솜씨 좋은 목공과 좋은 재목을 보내 궁실을 짓게 하라’는 계책을 사용하여 이로써 오나라가 그들의 재정을 탕진하게 만들었으니 이 계책은 이미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소. 오왕은 필시 지금 숭대(崇臺) 안에 가무에 능한 묘령의 여인들을 선발하여 채우려고 할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그 세 번째 계책을 위해 아직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 보내지 않았으니 오왕으로 하여금 사치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오. 경은 나를 위해 그 일을 도모해 주기 바라오.」

「한나라의 흥하고 망하는 운수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 이미 우리에게 신목을 내려 주었는데 어찌 아름다운 여인인들 주지 않겠습니까? 아름다운 여인을 민간에서 찾자면 백성들의 마음을 놀라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신에게 따로 계책이 있어 가히 나라 안에서 여인을 뽑아 올리면 대왕께서는 단지 선택만 하면 됩니다.

《제81회로 계속》

주석

①부초(夫椒)/ 지금의 강소성 태호의 서동정산(西東庭山)을 말한다.

②居不幽者志不廣, 形不愁者思不遠.

③主懮臣辱, 主辱臣死

④행인(行人)/ 옛날 춘추전국 시대 때 신하들이 군주를 접견하거나 군주가 신하들을 찾아가 만날 때의 일을 돌보던 관직. 즉 군주를 위해 조근(朝覲) 및 조빙(朝聘)의 일을 맡아 하던 관리를 말한다.

⑤사직(司直)/ 관리들을 감찰하는 벼슬

⑥天网四張, 萬物盡傷, 祥反爲殃

⑦제기(諸曁)/ 원래 월나라의 도성은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제기시(諸曁市)에 있었다.

⑧월나라의 판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취리(檇里)/ 지금의 절강성 항주만(杭州灣) 북한의 해녕시(海寧市).

고멸(姑蔑)/ 지금의 금화시(金華市) 서쪽 50키로의 용유현(龍游縣) 경내에 있었다.

구용(句庸)/ 즉 용구(庸句)를 말하며 지금의 영파시(寧波市) 앞 바다의 주산도(舟山島)를 말함. 후에 구천이 오나라를 멸할 때 부차에게 이 곳에 들어가 살라고 했으나 부차는 받아들이지 않고 자살했다.

평원(平原)/ 원래 지금의 산동성 덕주시(德州市) 남 평원현(平原縣)을 말하나 여기서는 어디를 말하는지 알 수 없음.

⑨高飛之鳥, 死于美食, 深泉之魚, 死于芳餌

⑩1. 捐貨幣, 以悅其君臣 2.貴糴粟槁, 以虛其積聚 3. 遣美女, 以惑其心志 4. 遣之巧工良材, 使作宮室, 以罄其財 5. 遣之諛臣, 以亂其謀 6.强其諫臣使自殺, 以弱其輔 7.積財練兵, 以承其弊.

⑪위(圍)/ 일위는 1/2자 이며 춘추 때의 일위는 22-23CM 였음. 즉 20위(圍)="10자(尺)=22미터(춘추" 때의 한 자는 22센티 였음)

⑫심(尋)/ 일심은 8자이다. 즉 50심(尋)="400자이니" 그 나무의 높이는 88미터이다.

⑬양백룡(梁伯龍)/ 명나라 때의 문인 양진어(梁辰魚)를 말한다. 백룡은 그의 자이다. 곤산(昆山) 출신으로 협객과 사귀기를 즐겨했다. 호는 소백(少白)이다. 생몰(生沒) 연대는 모두 확실하지 않고 대략 명 세종(世宗) 가정(嘉靖 : 1522-1566) 연간 30년 전후를 활약하면서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이반룡(李攀龍), 왕세정(王世貞) 등 당시 칠자(七子)라 불리던 인사들과 교유관계를 맺고 협객들과 어울리며 오초(吳楚) 간을 배회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 저서에 오자서와 합려의 고사를 주제로 전기(傳奇) 소설 <완사기(浣紗記)> 1본과 산곡집(散曲集) < 강동백저(江東白苧)> 2권, <속강동백저(續江東白苧)> 2권이 전한다.

[평설]

당진과 초나라의 패권 다툼이 후반부에 이르자 당진은 오(吳)나라와 연합하여 초나라를 제압하려고 하자 초나라는 다시 월(越)나라와 연계하여 오나라의 공격에 대비하려고 했다. 이로써 자연히 오월(吳越) 두 나라는 제후국들의 패권 싸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오와 월 두 나라는 ' 삼강(三江)과 오호(五湖)의 이(利)'를 서로 다투는 쟁패전으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오월의 싸움은 상호간에 승패를 주고받으며 장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기원전 494년 태호 연안의 부초(夫椒)의 싸움에서 오나라가 월나라에게 이겼다. 월왕 구천은 항복하여 오나라로 들어가 오왕 부차의 신하가 되어 3년 동안 직접 섬겼다. 이윽고 ' 간언을 무시하고 월왕을 석방시킨' 오왕의 전략은 커다란 잘못이 되었다.

옛날 부차의 부왕 합려가 오군을 이끌고 초나라 도성 영도(郢都)에 입성했을 때 초나라의 궁실이 화려하고 처첩들의 미모가 빼어난 것에 연연하여 조를 짜서 궁궐과 민가에 머물며 군신간의 서열에 따라 초왕의 비빈들과 대부들의 처첩들을 범했다. 한편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던 오자서는 평왕의 묘를 파헤쳐 그 시신에 300대의 채찍을 가했다. 그런 행위들은 모두가 순리에 어긋날 일이었다. 그래서 그 동안 초평왕의 폭정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던 초나라 백성들은 그 원망을 오나라 군신들에게 돌리게 되었다. 오나라 군사들은 몇 개월을 동안을 영도에 머물렀지만 그들의 야만적인 행위로 결국은 초나라에 새로운 조직 체계를 수립할 수 없었다. 기원전 505년 오나라의 도성이 비어 있는 틈을 노린 월왕 윤상(允常)이 오나라를 공격하고 다시 진(秦)나라가 초나라를 위해 구원병을 출동시켰다. 그 틈을 탄 합려의 동생 부개(夫槪)가 아무도 몰래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돌아가 스스로 오왕이 되었다. 이에 오왕 합려는 어쩔 수 없이 군사를 물리쳐 본국으로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전설에 따르면 월나라는 하우(夏禹)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라고 했다. 하왕조부터 주왕조를 지나 모두 33세에 해당하는 윤상(允常)에게 이르게 되어 국세가 점차 강성하게 되었다. 남쪽에 강대한 세력의 월나라가 존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오나라는 기원전 544년(여제(餘祭) 4년)에 처음으로 월나라에 대해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역시 오나라에 대해 약점을 노출시키려고 하지 않았던 월나라 역시 오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동한 틈을 타서 오나라를 공격했다.

오왕 합려가 영도(郢都)에서 귀국하여 부개의 반란을 진압하고 당시 오도(吳都) 고소성(姑蘇城)을 점령하고 있던 윤상을 기습했다. 월왕은 오군의 공격을 피해 월나라로 철군했다. 기원전 495년 월왕 윤상(允常)이 병이 들어 죽고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뒤를 이었다. 남쪽의 월나라를 멸하여 오나라 땅으로 만드는 일을 평생의 숙원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던 합려는 자신이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나라를 비운 틈을 이용하여 고소성을 습격한 월왕 윤상에 대해 복수전을 행하려고 하던 참에 윤상이 죽고 그 뒤를 구천이 잇자 월나라의 사회가 미처 안정되지 않은 틈을 기회로 삼아 월나라를 정벌하기로 했다. 그러나 합려는 월나라를 너무 경시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때는 이미 노쇠해진 자기의 나이도 감안하지 않고 출전하여 취리(檇里)에서 월군과 교전한 결과 오군은 참패하고 그 자신은 싸움 중에 입은 부상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월왕 구천이 그 전쟁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오왕 합려를 패퇴시키고 그의 목숨을 잃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구사한 독특한 포진법에 의해서였다. 그는 사형수 300명을 오군 진영 앞에 도열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목을 찔러 자살하도록 시켰다. 오군이 그 장면에 경악하여 공포에 떨고 있던 틈을 이용하여 오군 진영으로 돌격하여 합려의 본진을 무너뜨렸다. 본진이 무너진 오군은 그 여파로 대패했다. 죽은 합려의 뒤를 그의 아들 부차가 이었다. 부차는 그 부친의 원수를 잊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월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기원전 494년 오월 두 나라는 태호 가운데의 부초(夫椒)라는 곳에서 크게 싸웠다. 그 전쟁에서 오군은 초나라와 싸울 때의 사기를 되살려 월군을 대파했다. 오군은 승세를 타고 월군의 뒤를 추격하여 월나라의 도성 회계(會稽)를 점령했다. 이에 구천은 5천여 명에 달하는 잔여병을 이끌고 회계산으로 들어가 농성전에 돌입했다. 오군은 계속 월군의 뒤를 따라 진격하여 회계산의 구천을 포위했다. 그때 만약 부차가 오자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구천을 공격했다면 월나라를 완전 전멸시키고 오나라에 합병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뇌물을 받은 백비의 건의를 받아들여 월나라를 멸하지 못했다. 오나라는 매우 중대한 전략상의 잘못을 저질렀다. 이로 인하여 후에 오나라가 반대로 망하고 부차는 목숨을 잃었다.

오나라는 북쪽으로 당진(唐晉)과 제(齊)를 위협하여 중원에 대한 패권을 차지하는 것을 전략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나라 배후에 있는 위협요소를 철저히 제거했어야 했었다. 월나라를 멸하지 않고 강화를 허락한 부차는 결국은 오나라의 배후를 안정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부차가 그와 같은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르게 된 원인은 오왕이 자기의 역량을 너무 과신한 데에 있었다. 그는 월왕이 변하겠느냐 아니면 변하지 않겠느냐, 그가 진정으로 항복했느냐 거짓으로 항복한 척 한 것이냐 헤아리다가, 결국은 월나라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부차는 만일 월나라가 계속해서 우리 오나라에 대항한다면 내가 출정하여 정벌하면 그만일 것이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윽고 크고 작은 전쟁에서 승리를 취했으나 월나라에 대해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특히 제(齊)와 당진(唐晉)과는 적대국이 되어 중원의 패권을 다투는 정황 하에서는 당연히 월나라를 제압할 수 없었다. 부차는 월나라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는 오자서의 간언을 물리쳤다.

월왕 구천이 귀국 후,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속마음을 감추고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의 심모원려는 중국 역사상 실로 보기 드문 희귀한 일이다. 그러나 명철한 선비들이 무수히 설파한 바가 있지만 구천은 마음속에 흉칙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자기 자기자신을 낮추고 남을 공경하는 공손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오왕 부차는 그에 대해 관대하게 대하고 결코 그를 경계하라는 간언을 듣지 않았다. 구천은 오나라에서 노복으로 3년을 지내다가 결국은 기원전 491년 석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귀국 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생활을 시작하고 자기의 실패를 교훈 삼아 비밀리에 복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다. 오나라는 그 배후에 가장 위험한 상대를 키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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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회 違諫釋越 竭力事吳(위간석월 갈력사오) 오자서의 간함을 듣지 않고 구천을 석방하는 부차와 있는 힘을 다하여 부차를 받드는 구천. 1.
양승국 04-05-11
[일반] 제79회. 遊說天下(유세천하) 會稽之恥(회계지치)

제79회 遊說天下 會稽恥辱(유세천하 회계치욕) 노나라를 떠나 천하의 제후들에게 유세를 행하는 공자와 회계에서 오왕에게 치욕을 당한 월왕 구천 (1)
양승국 04-05-11
[일반] 제78회. 夾谷却齊(협곡각제) 墮城伏法(타성복법)

제78회夾谷却齊 伏法聞人(협곡각제 복법문인) 협곡의 회맹에서 제나라의 불손함을 물리치고 요설을 퍼뜨리고 다니는 문인(聞人)을 법에 따라 처형
양승국 04-05-11
[일반] 제77회. 泣庭借兵(읍정차병) 退吳返國(퇴오반국)

제77회 泣庭借兵 退吳返國(읍정차병 퇴오반국) 칠주야를 눈물로 호소하여 군사를 빌린 신포서와 오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찾은
양승국 04-05-11
[일반] 제76회. 柏擧之戰(백거지전) 掘墓鞭尸(굴묘편시)

제76회 柏擧之戰 掘墓鞭尸(백거지전 굴묘편시) 백거의 싸움에서 이겨 영성을 점령한 오왕 합려와 무덤의 시신에 채찍질하여 부형의 원한을
양승국 04-05-11
[일반] 제75회. 演陣斬姬(연진참희) 納質乞師(납질걸사)

제75회 演陣斬姬 納質乞師(연진참희 납질걸사) 진법 훈련 중에 오왕의 총희를 참한 손자와 인질을 바쳐 오나라에 군사를 청하는 채소후 1. 단지
양승국 04-05-11
[일반] 제74회. 誅戮無極(주륙무극) 貪名刺客(탐명자객)

제74회 誅戮無極 貪名刺客(주륙무기 탐명자객) 희대의 간신 비무극을 주살하는 초나라의 영윤 낭와와 명예를 탐하여 가족을 버리고 경기를 죽인
양승국 04-05-11
[일반] 제73회. 吹簫乞吳(취소걸오) 進炙刺王(진자자왕)

제73회 吹簫乞市 進炙刺王(취소걸시 진자자왕) 오성에서 피리를 불며 걸식하는 오자서(伍子胥)와 생선구이 속에 숨긴 비수로 왕료를 찔러 죽인
양승국 04-05-11
[일반] 제72회. 捐軀父難(연구부난) 變服過關(변복과관)

제72회 捐軀父難 變服過關(연구부난 변복과관) 목숨을 버려 부친과 위난을 같이 맞이한 오상과 변복하여 소관을 넘어 오나라로 들어간 오자
양승국 04-05-11
[일반] 제71회.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取媳逐太子(취식축태자)

제71회 二桃殺三士 取媳逐太子 (이도살삼사 취식축태자) 복숭아 두 개로 제나라의 세 장사를 죽인 안평중과 며느리를 가로채고 태자를
양승국 0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