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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6-25 09:08:087893 
마늘사태를 보고 생각나는 바나나 이야기
양승국
일반

한국사람들은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변한 곰 할머니의 후예들이라 그런지 마늘 없이는 못 사는 모양입니다. 한국의 농부들은 언제 봐도 항상 불쌍하기만 합니다. 노동귀족들과 정부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불쌍한 노동자 입장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한국 사람이 일년에 먹는 마늘의 양은 50만 톤 좌우라고 하니 지금 도매시세인 키로 당 1500원을 곱하면 다 합해서 7500억 원 어치이며, 달라로 치면 약 6억 불이 어치가 됩니다. 그런데 마늘 농사를 떼려 치우고 전량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수입해서 먹으면 국제가가 대충 톤당 400불 정도 되니 달라로 2억 불에다 원화로 2,400억 정도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국민들은 마늘 한 종목만으로 일년에 약 5000천 억이라는 돈을 농민들에게 보태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농민들은 항상 불쌍하기만 합니다. 차라리 마늘 농사를 떼려 치우게 만들고 전부 수입산으로 대치시킨 다음 그 이익금을 전부 노인복지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지원하면 적어도 농민들의 불만을 가라앉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환경문제를 걱정하시는 분들은 ‘마늘 농사를 포기하는 것은 한국의 농사 주권을 포기하는 것을 말하며 이 것은 외국의 농업 식민지화를 의미한다’ 뭐 이렇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농산물은 품목마다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마늘만 먹는 것이 아니라 고추도 먹고, 파도 먹고, 채소라고 생긴 것은 다 먹고사는데 모든 품목마다 마늘과 같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니 정부 당국자도 머리가 아플 만도 하겠습니다. 너무 서론이 길었습니다.


지금은 바나나가 널린게 지천입니다. 옛날 친구 집에 들를 때 그냥 들어가기도 뭐하고 해서 사 가지고 들어가는 과일 중 제일 인기 있는 품목이 바나나 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 송이에 만원이 넘었던 같았는데 좌우지간 무지하게 비싼 과일이었습니다. 내 귀여운 딸에게 가끔 가다가 바나나를 낱개로 사줄라 치면 어찌 그렇게 맛 잇게 먹던지... 그것을 보고 흐믓한 생각을 갖고 있다가 어쩌다가 술먹고 대취하여 인성 불성되었을 때 바나나를 송이채 뭉치로 사 가지고 집으로 가져가서 어부인에게 무지하게 야단 맞았던 기억도 납니다. 바나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 맨 정신으로는 바나나를 송이채 살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 바나나 한 뭉치 값은 두 사람의 불알 친구가 포장마차에 들려 떡되게 마실 수 있었으니까 우리 같은 주당은 술을 마실 수 있는 귀한 돈으로 하찮은 과일을 먹는데 허비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 기회비용을 생각하여 비싼 바나나를 뭉치로는 살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 다니던 회사에서 사우디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더럽고 지겨웠던 사우디 생활 중에도 재미있었던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 양담배를 입맛대로 골라서 마음껏 피울 수 있었고, 야매이기는 했지만 술이라는 것은 박정희가 마시다가 죽었다던 시바스레갈, 쟈니워카, 발랜타인 그런 것들만 즐비하게 있어 처음에는 황홀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우리 같은 화이트칼라들도 회사로부터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살았을 때 였습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경영진은 <덜 먹이는 것이 남는 것이다>라는 신조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동안, 많이 먹여, 먹인 만큼 많은 돈을 벌려고 했던 숱한 회사들은 무너졌지만 그 회사만큼은 아직도 건재하는 것을 보면 경역학이라는 것 무지 웃기는 학문인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아침밥이라고 나오는데 그 품질이 불량하여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사우디까지 가서 굶어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되니까, 살길을 찾아 궁리를 한 끝에 아침 식사는 과일로 대신하기로 했었습니다. 과일을 사러 가게에 들려 바나나 값을 치르려다 보니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나 두 뭉치에 한국 돈으로 환산해서 단돈 1000원 밖에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당시 사우디의 기름 값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사우디 주유소의 기름 값은 리터당 얼마가 아니라 한 번 넣는데 얼마 였습니다. 즉 당시 포니원을 끌고 가서 가득 넣어도 20리알, 지엠의 8기통 시보레를 끌고가서 가득 넣어도 20리알 즉 4000원이었다는 이야기인데 포니원의 연료탱크의 크기는 30리터, 지엠의 시보레 연료탱크의 용량은 100리터 이상이었던 것 같은데 지불했던 기름 값은 같았던 것이었습니다. 시보레 8기통 넣었던 기름 값을 당시 한국 기름 값으로 환산해 보면 10만원 어치 이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4000원 대 10만원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마찬가지로 제가 경험한 바나나 가격은 참으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중상주의 시대 때 대항해가 유행했던 것은 수백 배의 이익을 찾아 나선 당시의 모험가들이 발휘한 벤처기업 정신의 결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대충 제 계산으로 두들겨 보니 한국과 사우디의 바나나 가격 차이는 물경 20배에 이른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최고급 과일을 매일 마다 아침 식사를 대신할 수 있었던 것에 일말의 위안을 삼으며 일주일 가까이 바나나를 아침 식사 대용으로 상용했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바나나 때문에 뭉쳐 대변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저는 그때 사우디의 불쌍한 원혼이 되 버릴 줄 알았습니다. 다행히 무지 애쓴 덕분으로 죽음만은 면하고 무사히 귀환해서 아직도 소주 한 잔씩을 기우리며 세상을 즐기며 살고 있지만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1984년 경인가 칼007 피격사건, 아웅산폭발사건 등의 와중에 귀국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바나나는 맛잇고 귀한 과일이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싸구려 과일에 속한다고 바나나 장사들이나 맛잇게 먹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초를 치고 다녔습니다. 후에 전경환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고려무역과 짜고 바나나 수입권을 이용하여 수 백원을 착복하고 다시 노태우 정부 들어서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시에도 별도 품목으로 분류되어 수입제한 품목으로 묶이고, 그 수입제한 품목으로 묶인 이유가 한국의 바나나 재배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수입을 막아 놓고 제한된 공급을 하게 되면 그곳에는 100% 이권이 발생합니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니 특히나 농산물의 경우는 그 가격 탄력성 때문에 가격의 등락폭은 엄청난 것입니다. 농산물의 가격은 조금만 부족해도 천장부지로 치솟고, 조금만 남아도 가격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제주도에는 바나나 재배를 위한 온실을 갖춘 사업자가 한 20여명 존재했다고 했습니다. 30억 정도의 자금을 투자하여 규모의 시설을 갖춘 사업자가 연간 300-500톤 정도의 바나나를 독점 생산하여 키로당 4-5천원 정도의 독점 가격으로 재미를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바나나를 더 이상 수입제한 품목으로 묶어 둘 명분을 잃어버린 업자들과 관계부서가 체념한 끝에 바나나는 수입자유화가 행해지게 됩니다. 바나나라는 것은 생산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작목입니다. 그저 드는 것이라고는 수확할 때 드는 인건비, 포장비, 운송비 뿐입니다. 그저 열매를 따 주기만 하면 계속 열리는 것이 바나나입니다. 비료도, 농약도, 전지도 아무런 관리가 필요 없는 바나나인 것입니다. 한가지 약점은 해상운송을 할 때 저온컨테이너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소나마 가격이 나가는 것이지 그것도 아니라면 사료와 비슷한 수준의 일톤 당 100불 미만의 품목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나나 가격의 50% 이상은 운송비입니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그 귀한 석유를 먹여 생산된 한국산 바나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입니다. 수입자유화가 행해진 첫 해에, 연간 기껏해야 500톤 정도의 한국시장에 물경 20만톤의 바나나가 밀려들어온 것입니다. 그 동안 가격 때문에 마음껏 먹지 못했던 바나나를 한국 사람들은 원 없이 먹어댄 결과인 것입니다. 전라도 말로 허천나게 먹어 재낀 것입니다. 잘못된 정부 정책의 부작용 중 하나는 그 국민들을 거지나 촌놈으로 만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외국 여행 나가서 바나나보고 환장했던 한국관광객들, 한국 내의 가격과 비교를 해보고 여행 가방에 몇 송이 씩 넣어 가지고 와서 친지들에게 한 개 씩 선물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외국 여행 나가서 바나나를 선물로 사 들고 들어오는 촌스런 사람은 없어 졌을 것입니다. 그 귀한 바나나가 나중에는 너무 많이 반입되어 운임만 내면 제 삼국으로 다시 내다 팔 정도 였습니다. 통관을 포기한 결과 식물검역소에서 폐기처분 되었던 바나나도 몇 만 톤에 달하기도 했고요! 그 결과 그 동안 한국에서 가장 귀한 과일이었던 바나나는 가장 흔해빠진 천한 과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20-30명의 바나나 재배농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를 위해 한국국민들은 수 년 간에 걸쳐 몇 천억 혹은 조 단위의 계산되는 금액을 추가 지불하며 살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농수산부 차관께서 티브이에 나와 마늘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일조 팔 천 억 원을 투자해서 마늘 농가를 지원하겠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고추농가는? 아니 벼 재배 농가는? 무 배추 농가는? 양파 , 생강, 파 등 그때마다 몇 조원씩을 투자해서 계속 국제경쟁력이 있는 작목으로 육성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미봉책으로 일관할 것인지 참으로 답답한 생각뿐입니다. 한국의 마늘을 국제경쟁력 있는 작목으로 키우겠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이야기올시다. 차라리 농사를 포기하면 포기한 만큼 수입하여 그 남은 금액만큼 돈으로 환산해서 보상해 주겠다 하는 것이 훨씬 깨끗한 계산 법이 아닌지.... 언제까지 미봉책으로만 일관할 것인지 답답한 생각뿐입니다. 이때 이 순간만 모면하면 나중에게 다른 놈이 대신 당하겠지 등의 생각일 것입니다. 저도 마늘의 국제경쟁력을 어떻게 하면 키우는 것인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국제경쟁력이라는 말을 알고나 쓰는 것인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마늘이 국제경쟁력이 없어 중국산 마늘 때문에 마늘 농가가 못 살게 되었다고 아우성치는 판국에, 한국의 마늘농사를 향후 몇 년간에 일조 팔천억을 들여 국제경쟁력있는 작목으로 육성하겠다? 국제경쟁력만 있으면 수출도 가능합니다. 이왕 경쟁력을 갖출 바에야 왕창 갖추어 아예 이 참에 중국산 농산물이 한국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중국으로 역수출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냐 하면 행정당국은 옛날 바나나에 대한 것과 같은 행정을 하면 안되고 그리고 농민들도 바나나 재배업자와 같은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농민들 행동은 바나나 재배업자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마늘만 짓는 것이 농사가 아니고 또한 농사는 마늘만 재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늘의 수입 자유화에 대한 농민들의 정당한 요구는 ‘ 우리가 더 이상 마늘 재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어떻게 도와줄래, 이왕 도와 줄 것 같으면 화끈하게 밀어주라! ’ 즉 마늘 수입자유화로 어떤 작목을 심어야 되겠느냐? 즉 작목 전환에 대한 의견과 지원 방안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대해 세워 달라고 해야지, 마늘의 수입은 절대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은 너무 주제넘은 이야기인 것 같아 장문의 글을 써 봤습니다.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이왕 막 나가는 김에 정부에게 농정에 관한 권한을 농민단체에게 넘겨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행정권을 가지고 있어 봤자 별로 도움이 안되고, 기껏해 봤자 욕만 써빠지게 먹으니 농정에 관한 행정권을 농민 단체에 이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농정에 대한 권한을 농민 단체에서 위임받아 마음먹은 대로 한 번 해보는 것입니다. 고저 농민만을 위한 수입행정을 한 번 행하는 것입니다. 고저 농사지천하지대본이니 소비자가 조금은 불편해도 참고 살아야지 별 다른 수가 있겠습니까? 노동행정은 노총 같은 데서 행합니다. 노동자 없는 공장 없다. 노동자 없는 국가 없다. 서울시 행정은 서초구의 청계산 살리기 운동본부에서 이관 받습니다.‘ 40만이 찾는 서울의 허파에 화장터가 왠 말이냐?’ 서울시 행정을 서초구 구민만을 위해 행합니다. 서초구를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듭니다.


이제 한국산 마늘의 명맥이 끊어지게 된 날, 4335년 전 마늘을 밥 대신 잡수시고 우리를 낳으신 곰 할머니를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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