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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06 06:10:576365 
방효유의 예양론(禮讓論)
양승국
일반

 

예양론(禮讓論)


방효유(方孝儒)


  선비가 출세하여 임금을 섬김에 임금이 자기를 알아주면, 지모를 다하고 충심으로 간하여 선한 길로 인도해서 환란이 생기기 전에 없애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잘 다스려, 자신을 안전하게 하고 임금님도 평안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살아서는 명망있는 신하가 되고 죽어서는 덕이 높은 귀신이 되어 백 대에 이름을 남기고 역사서에 빛나게 되니 이것이 훌륭한 일이다. 임금이 자기를 알아주는데도, 난이 일어나기 전에 위험에서 구해내지 못하고 나라가 망한 후에 목숨을 바쳐 이름을 내고 명예를 얻어,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짓은, 군자가 볼 때 취할 만한 것이 못된다.


  이런 면에서 논해 보겠다. 예양이 지백(智伯)의 신하가 되어 섬겼는데, 조양자(趙襄子)가 지백을 죽이고 난 후에야 예양이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그리하여 예양의 명성이 자자하여, 비록 어리석은 백성이나 부녀자라 할지라도 그가 충신이며, 의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아! 슬프다. 예양이 죽은 것은 정말 충성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택한 방법에 충성스럽다고 할 수 없는 곳이 있었으니, 애석하다. 왜 그런가?  그가 몸에 옻칠하여 문둥이가 되고 숯을 삼켰을 때 그의 친구에게 말했다.

“ 내가 이렇게 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장차 후세에 신하된 자가 두 마음을 품는 것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충(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참의삼약(斬衣三躍), 즉 조양자가 입고 있던 옷을 세 번 발로 밟은 후에 칼로 벤 것을 본  조양자가 어찌 중행씨를 위해 죽지 않고 지백만을 위해 죽느냐고 책하자, 예양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중행씨는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접해 주었기에 보통 사람으로 보답했고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접해 주었기에 나도 국사의 절개와 지조로써 보답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논하면 예양에게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

  단규(段珪)가 한강자(韓康子)를 섬기고, 임장(任章)이 위헌자(魏獻子)를 섬겼지만 한강자나 위헌자가 그들을 국사의 예절로 대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단규와 임장은 온 힘을 다해 임금에게 지백의 요구대로 땅을 주어 지백의 마음을 교만하게 해서 빨리 망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치자(郗疵)가 지백을 섬길 때도 지백이 그를 국사로 대접하지 않았지만, 치자는 한(韓)과 위(魏) 두 나라 실정을 살펴 지백에게 간했다. 지백이 비록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패망하였으나, 치자의 지모와 충고는 마음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 예양이 이미 스스로 지백이 자기를 국사 대우해 주었다고 했다. 국사라면 나라를 구하는 선비여야 한다. 지백이 다른 제후의 많은 땅을 빼앗고도 만족하지 못할 때나 멋대로 음란하고 난폭한 짓을 할 때에, 신하된 예양은 당연히 그의 지위와 재능을 다해서

“ 제후와 대부들이 각각 받은 땅이 있어 서로 침임하여 빼앗을 수 옶는 것이니, 이는 옛날 법제입니다. 지금 아무런 까닭도 없이 다른 제후와 대부의 땅을 달라고 하시는데, 그가 땅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분노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고, 분한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싸우게 되며, 싸우게 되면 반드시 패하게 됩니다. 또한 교만하게 되면 반드시 방종하게 되고, 방종하게 되면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라고 간해야 했다.

  간절히 간했는데도 듣지 않으면 또 간하고, 또 간하였는데 듣지 않으면 세 번 간했어야 했다. 세 번 간했는데도 듣지 않으면 칼에 엎드러져 죽어야 했다. 그러면 비록 지백이 완고하고 영민하지 못한 사람이었을지라도, 그 지성에 감동되어 깨닫고서 한(韓)과 위(魏) 두 나라와 화해하고 조(趙)나라의 포위를 풀어 지백의 종묘를 보존하고 제사를 지켰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예양이 죽더라도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니, 어찌 칼로 옷을 베고 죽는 것 보다 낫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예양은 이때 자기가 섬기는 지백이 깨닫도록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동남쪽에 있는 월(越)나라 사람이 서북쪽에 있는 진(秦)나라 사람의 마르고 살찐 것을 보듯, 지백이 위험에 처해 망하게 된 것을 보기만 했다. 수수방관하고 앉아 성패를 기다리기만 했으니, 국사의 보답이 어찌 이럴 수 있었는가? 지백이 죽은 뒤에야 혈기를 누르지 못하여 스스로 자객의 무리에 끼어들었으니 어찌 올바른 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올바른 길이 아니었다. 국사의 자격으로 논해 볼 때, 예양이 국사가 되기에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침에 원수였다가 저녁에 군신이 되는 뻔뻔스럽고 의기양양해 하는 것들은, 또한 예양에게도 죄인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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