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국연표

태사공이 진기(秦記)를 읽는데, 견융이 유왕(幽王)을 격파하자 주나라는 동쪽으로 가서 낙읍에 나라를 옮기고, 진양공(秦襄公)이 처음으로 제후에 봉해져서 서치(西畤)에 세워 상제를 제사 지냈다는 부분에 이르러 참람하게도 예를 범한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禮)에서는 “ 천자는 천지에 제사 지내고, 제후는 자신의 봉역(封域) 내에서 명산대천에 제사 지낸다.”라고 하였다. 당시에 진나라에는 융적(戎翟)의 풍속에 뒤섞여 그들은 포악함을 앞세우고 인의를 뒤로 하며, 번신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교사(郊祀)의 예를 행하니, 군자들이 걱정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문공에 이르러서는 농(隴)을 넘어 이적(夷狄)을 물리치고, 진보(陳寶)를 귀히 받들며 기(岐)와 옹(雍) 사이에서 기틀을 닦았다. 그리고 목공(穆公)이 통치하여 진나라의 동쪽 경계가 황하까지 확장되자, 제나라의 환공이나 진(晉)나라의 문공과 같은 중국의 후백과 세력이 대등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배신(陪臣)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대부들이 세습하여 녹을 먹고 육경이 진(晉)나라의 권력을 마음대로 하고 정벌이나 회맹을 할 때에 그들의 권세는 다른 제후들을 압도하였다.

전상(田常)이 간공(簡公)을 살해하고 제나라를 보좌하는데도 제후들은 태평하게도 그를 토벌하지 않았으며, 해내에서는 전공을 다툴 뿐이었다. 삼국은 나중에 끝내 진(晉)나라를 분할하였으며 전화(田和) 또한 제나라를 멸하고 이를 차지하니 육국이 강대해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각 제후들은 병력을 강화하여 적국을 병합하기에 힘써 음모와 사기가 자행되었으며 종횡(縱橫)의 유리함과 불리함에 대한 의론이 일어났다. 왕명을 사칭한 제후들이 벌떼처럼 판을 치고 맹세를 하고서도 믿음을 저버리니, 인질을 두고 부절(符節)을 나누어 갖어도 약속할 수 없었다. 진나라는 처음에는 작은 나라였으며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제하(諸夏)는 이를 배척하여 융적과 동등하게 대하였는데, 헌공 이후부터는 늘 제후들의 가운데서 군림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의 덕의를 논한다면 노나라나 위(衛)나라의 포악한 자보다도 못하였고, 진나라의 병력을 재보면 삼진의 강대함만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천하를 병탄한 것은 반드시 진나라의 지리적 위치가 험고하여 형세가 이로웠기 때문만은 아니니, 아마도 하늘이 도왔던 것이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동방은 만물이 처음 나는 곳이며, 서방은 만물이 성숙하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먼저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동남에서 일어나고,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는 곳은 언제나 서북이다. 그러므로 우(禹)는 서강(西羌)에서 일어났고, 탕(湯)은 박(亳)에서 일어났으며, 주왕조는 풍(豐)과 호(鎬)에를 근거로 은(殷)을 정벌하였으며, 진나라의 제왕들은 옹주에서 일어났고, 한나라가 일어난 곳은 촉과 한이었다.

진나라는 천하를 합병한 후에 천하의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불살버렸는데, 특히 제후국의 사기가 가장 심하였다. 이는 여기에 진나라를 풍자한 말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경과 서경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이러한 책은 대부분이 민가에 소장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애석하구나! 애석하구나! 다만 진기(秦記)만 만이 남아 있으나 일월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문장도 극히 간략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채용할만한 것이 있으니, 어찌 상고의 것만이 반드시 볼만하다고 하겠는가?

진나라는 천하를 얻은 후에 포악한 행위가 많았다. 그 전하는 말로 “후왕(後王)을 본받는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후왕은 자신과 근접해 있으므로 풍속의 변화도 서로 비슷하여 설사 그 의론이 천하다고 하여도 실행하기 쉽기 때문이다. 학자는 자기가 견문한 바에 얽매어서 진왕조의 재위 기간이 길지 않은 것만을 보고 그 처음과 끝을 살피지 못하여 이로 인하여 모두를 비웃으며 감히 칭찬의 말을 하려 하지 않으니, 이는 귀로 음식을 먹는 것과 다름이 없다. 슬프도다!

나는 그리하여 진기(秦記)의 기록에 의하여 춘추를 계승하여 주나라의 원왕(元王)에서 시작하여 육국시대의 시사(時事)를 표로 만들어 이세(二世)에 이르니 모두 270년이다. 여러 가지 견문한 바 흥폐의 원인을 적어 놓아 후대에 군자가 있어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까치출판사-사기2 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