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회 華陽敗秦 趙燕相殘(화양패진 조연상잔)

신릉군은 화양에서 진장(秦將) 몽오를 패주시키고

멸망의 문턱에서 서로 해치기에 여념이 없는 조․연 두 나라

1. 從毛薛(종모설)

-모공과 설공의 설득으로 위급한 위나라를 구하기 위해 환국하다. -

위나라의 사자로 온 안은이 신릉군의 접견을 청했으나 오랫동안 만나보지도 못하고, 빈객들도 기꺼이 자기의 말을 전해주지도 않고 해서 발만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 마침 신릉군을 찾아온 도박꾼 모공(毛公)과 술장사 설공(薛公)을 문 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안은은 그들이 신릉군이 상객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처지를 호소하였다. 두 사람이 안은의 말을 듣고 말했다.

「선생은 문 앞에 수레를 대령하여 출발할 준비를 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우리 두 사람이 마땅히 있는 힘을 다하여 권해 보리라!」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된 안은이 말했다.

「두 분의 처사만 믿겠습니다.」

두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가 신릉군을 보고 다짜고짜로 물었다.

「공자께서 고국으로 돌아가시기 위해 거마를 수습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전송을 해 드리기 위해 이렇게 특별히 찾아 왔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위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말했다.

「진나라 병사들이 위나라를 침입해와 대량성을 포위하고 있어 나라가 언제 망할게 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라 하는데 공자께서는 아직도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계십니까?」

「저라고 모르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무기는 위나라에서 쫓겨난 지 10년이 넘어 지금은 이미 조나라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찌 감히 위나라 일에 왈가왈부 할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동시에 목소리를 높여 신릉군을 향해 말했다.

「공자께서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조나라가 공자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고, 제후들이 공자님의 명성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이나, 또한 공자께서 선비들을 기르며 천하의 빈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것은 위나라가 공자님의 뒤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진나라가 위나라를 침략하여 위급함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가는데 공자님은 오히려 외면을 하고 계심은 잘못된 일입니다. 만약 진나라 군사들이 어느 날 아침 대량성을 함락시킨다면, 위나라의 선왕들의 위패를 모신 종묘가 부서져 없어질 텐데, 공자께서 고향집이야 염두에 두지 않고 돌아가지 않는다 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겠지만 조종에 지내는 제사야 끊어지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리된다면 공자께서는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며 조나라에 얹혀 살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릉군은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서더니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며 두 사람을 향해 사죄의 말을 올렸다.

「두 분 선생들께서 이 무기의 잘못을 바로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두 분 선생이 아니었다면 무기는 하마터면 천하의 죄인이 될 뻔했습니다.」

그날로 늘히 빈객들에게 명하여 행장을 꾸리라 명한 신릉군은 자신은 조나라 조정에 입조하여 조왕을 알현하고 작별인사를 고했다. 신릉군의 귀국하겠다는 말을 들은 조왕은 선뜻 허락하지 않고 그의 두 팔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과인은 평원군이 세상을 뜨고 난 다음부터는 오로지 공자만을 믿고 이 나라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과인을 버리고 가신다 하니 과인은 진실로 누구와 함께 우리 조나라 사직을 지켜야할 지 암담할 뿐입니다.」

「이 무기는 선왕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종묘가 진나라 군사들에게 부셔지려는 위급한 사태를 보고 참을 수 없어 귀국하려고 합니다. 만약에 대왕의 홍복에 힘입어 위나라의 사직을 보전할 수 있게 된다면 후일에 다시 뵐 날이 있을 것입니다.」

「공자께서 위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우리 조나라를 구하여 조나라 종사를 보전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공자의 나라가 국난을 당하여 돌아가 구원하려고 하는데 과인이 어찌 감히 조나라가 가지고 있는 바를 아까워하며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효성왕은 즉시 조나라의 상장군 인장을 공자에게 주고 다시 장군 방훤(龐煖)을 부장으로 삼아 조나라의 군사 십만을 일으켜 위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조나라의 상장군에 임명된 신릉군은 우선 안은을 위나라에 먼저 보내 자기가 곧 조나라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할 것이라는 소식을 위왕에게 전하게 했다. 다시 자기 휘하의 빈객들에게 각기 편지를 써서 주어 각국의 제후들에게 보내 구원병을 청했다. 평소에 신릉군을 존경하고 있던 연, 한, 초 세 나라는 그가 다시 조나라의 상장군이 되어 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세 나라의 군주들은 모두 군사들과 함께 대장들을 위나라로 보내 신릉군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연나라는 장거를, 한나라는 공손영(公孫嬰)을, 초나라는 경양(景陽)을 각각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보냈다 그러나 제나라만은 홀로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

2. 河外敗秦 威振天下(하외패진 위진천하)

- 진군을 하외에서 격파하여 위엄을 천하에 떨치다. -

한편 안은이 위나라에 돌아와 위급한 사태에 절망하고 있던 안리왕에게 복명하였다.

「신릉군께서 연, 조, 한, 초 네 나라 연합군의 대장군이 되어 우리 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나고, 불길 속에서 물을 얻은 듯이 크게 기뻐한 안리왕은 그 즉시 위경에게 명하여 위나라의 모든 군사들을 데리고 나가 신릉군을 도우라고 했다. 그때 진나라 군사들은 두 대로 나뉘어 일대는 몽오(蒙驁)의 지휘하에 겹주(郟州)1)를 다른 한 대는 왕흘(王齕)의 지휘 하에 화주(華州)2)를 포위한 후에 맹렬히 공격하고 있었다. 신릉군이 오국의 대장들을 모아놓고 자기의 계책을 말했다.

「진나라 장수들이 내가 오국의 대장군이 되어 구원군을 이끌고 출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두 고을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것입니다. 겹주와 화주는 남북으로 5백리 떨어져 있습니다. 위경과 경양이 위군과 초군을 각각 이끌고 겹주로 진격하여 몽오의 군사들을 묶어 놓는 사이에 나는 조, 한, 연 삼국의 병사들 중에 날래고 용감한 군사들을 선발하여 화주로 달려가 왕흘을 기습하겠습니다. 내가 왕흘의 군사를 패퇴시킨다면 몽오도 혼자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각 국의 대장들은 신릉군의 계책에 승복했다. 이어서 신릉군은 군령을 발하여 위장 위경 초장 경양이 위군과 초군을 각각 거느리고 겹주로 달려가 진군의 후위에 보루를 높이 쌓고 몽오의 공격에 대항하지 말고 막기만 하라고 했다. 겹주로 달려간 위경과 경양은 신릉군의 대장기를 보루 위에 꽂아 놓고 진채를 굳게 지키며 몽오의 공격을 막아내기만 할 뿐 결코 진나라 병사들의 도전에 응하지 않았다. 한편 조, 연, 한 삼국의 병사들 중 선발한 정예병 10만을 이끌고 야음을 틈타 화주로 진군한 신릉군 자신은 전투에 앞서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작전을 지시했다.

「숭산(嵩山)의 작은 봉우리인 소실산(少室山)은 그 주봉인 태실산(太室山)과 동쪽으로 잇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하수(河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진나라의 수군이 군량을 운반해 온 배는 모두 하구(河口)에 정박해 있습니다. 소실산에는 관목이 우거져 있어 그 사이에 군사를 매복시켜 놓을 만한 장소입니다. 하구에 있는 군량을 빼앗기 위해 한 떼의 군마를 보낸다면 왕흘은 알고 모든 병사들을 이끌고 하구로 달려 올 것입니다. 그때 내가 소실산 길목에 매복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왕흘의 군사들을 요격한다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릉군은 즉시 각각의 장수들에게 군령을 내렸다. 조나라 대장 방훤(龐煖)은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하구로 가서 진군의 군량을 약탈해 오도록 하고, 한군 대장 공손영과 연군 대장 장거에게는 각기 한 떼의 군사들을 이끌고 뒤따라가서 진병의 군량을 약탈하는 방훤의 군사들을 소리쳐 도운 후에 소실산의 좁은 계곡 길로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왕흘의 군사들이 나타나면 같이 힘을 합하여 공격하도록 했다. 신릉군 자신은 친히 정예병 3만을 이끌고 소실산 밑의 산길 옆에 매복했다.

방훤이 군사를 이끌고 진병의 양식을 빼앗기 위해 행군을 시작하자 중도에 매복하고 있던 진나라 군사가 발견하고 본진으로 달려가 왕흘에게 보고하였다.

「위나라의 신릉군이 오국 연합군의 대장이 되어 지름길을 이용하여 하구로 진격하여 우리 군사들의 양식을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왕흘이 듣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신릉군은 병법에 밝은 사람이라 이 화주를 구원하려고 출전했으나 우리와 직접 부딪치지 않고 하구에 저장하고 있는 군량을 끊어 우리의 목줄을 죄려고 하고 있다. 내가 마땅히 달려가 하구를 구하리라!」

이어서 왕흘은 군령을 내렸다.

「군사들의 반은 여기 남아서 계속해서 화주성을 포위하고 나머지 반은 나를 따라 하구를 구하러 간다!」

왕흘의 부대가 소실산 근처에 당도하자 산 속에서 한 사람의 대장이 앞으로 달려나와 길을 가로막았다. 왕흘이 보니 그 깃발에는 <연상국장거(燕相國將渠)>라고 써 있었다.

왕흘이 영을 내려 진열을 정돈하고 진세를 펼쳐 장거의 군사들과 교전에 들어갔다. 이어서 몇 합도 겨루기도 전에 다시 한 사람의 장수가 장수기를 앞에 세우고 한 떼의 군사를 몰고 달려 들었다. 그 깃발에는 <한상국공손영(韓相國公孫嬰)>라고 써 있었다.

왕흘은 황급히 군사들을 두 대로 나누어 각각 적군을 막도록 했다. 그러나 다시 정탐을 나갔던 군사가 돌아와 소리쳤다.

「군량을 싣고 하구에 정박해 있던 우리의 배들이 방휜이 이끄는 조연(趙燕) 두 나라 연합군에 의해 나포되어 그 배 안에 있던 양식들을 모두 빼앗겼다 합니다.」

왕흘이 말했다.

「일이 이왕지사 이렇게 되었으니 눈앞의 적을 물리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다행히 우리가 조와 연 두 나라의 군사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그때 가서 별도의 계책을 강구하여 대처하면 될 것이다.」

진과 조연 두 진영의 군사들이 뒤섞여 혼전을 거듭하여 오시에 시작한 싸움이 유시가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그때 3만의 위나라 정예병을 이끌고 소실산 숲 속에 매복하고 있던 신릉군은 진나라 군사들이 오랜 동안의 싸움에 지쳤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복병을 일으켜 진나라 진영을 향해 일제히 돌진하며 군사들로 하여금 큰 소리로 외치게 만들었다.

「신릉군이 친히 이곳에 임하여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다. 진나라 장수들은 속히 항복하여 우리들의 칼과 도끼를 더럽히는 수고를 덜게 하라!」

왕흘은 비록 수많은 전쟁을 누비고 다닌 백전노장의 장수였지만 신릉군의 본대가 싸움에 합세하자 더 이상 삼국연합군의 공세를 당해 내지 못하게 속수무책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더욱이 평소에 신릉군의 이름을 두려워해 왔던 진나라 군사들은 신릉군이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자 모두 간담이 서늘해져 병사들은 저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왕흘은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거느린 군사들 중 5만 명 이상을 잃어버리고 다시 하구의 배 안에 실어 놨던 군량미마저도 모두 빼앗기 말았다. 간신히 잔병을 수습한 왕흘은 남쪽의 길로 나아가 몸을 숨기더니 함곡관으로 들어가 관문을 닫아 버렸다. 승세를 탄 신릉군의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겹주(郟州)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한편 겹주를 공격하던 몽오는 신릉군이 정예병을 이끌고 왕흘이 이끄는 화주의 진군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즉시 진나라 병사들 중 노약한 군사들을 남겨, <대장몽(大將蒙)>이라는 깃발에 의지하여, 위(魏)와 초(楚) 두 나라 군사들과 대치하도록 한 후에 자기는 정예병사들을 모두 이끌고 입에는 함매를 물려 화주를 향해 소리 없이 달려가 화주의 왕흘군과 호응하여 앞뒤에서 신릉군의 연합군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신릉군은 왕흘의 군사를 대파하고 패주시킨 후였다. 화주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몽오의 진군은 그때 마침 겹주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던 신릉군의 군사들과 도중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뜻밖에 진군과 조우하게 된 신릉군은 빗발치듯 쏟아지는 화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사들의 선두에 서서 싸움을 독려했다. 신릉군의 왼쪽에는 공손영이 이끄는 한군이, 오른쪽에는 장거가 이끄는 연군이 진군의 허리를 공격했다. 초전에서 만여 명의 군사를 잃고 쟁이를 쳐서 군사를 본진으로 불러들인 몽오는 그 자리에 진채를 세우도록 해서 전열을 재정비하여 죽기를 무릅쓰고 싸움에 임하려고 했다. 한편 겹주에서 진군의 잔병들과 대치하고 있던 초장 경양과 위장 위경은 몽오가 진나라 진영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장군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진채를 나가 진나라 진영에 총공세를 퍼부어 노약한 진군을 물리치고 겹주성에 대한 포위를 풀었다. 이어서 두 장군은 몽오가 달려간 화주로 가는 길을 따라 진군의 뒤를 추격했다. 그때 진열을 정비하여 신릉군과의 다시 한 번 싸우기 위해 준비 중에 있던 몽오의 진군은 뜻밖에 경양과 위경이 이끄는 두 부대를 그 배후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진장 몽오가 비록 용맹스러운 장군이기는 했지만 다섯 나라의 수많은 군사들로부터 앞뒤에서 협공을 당하게 되어 진나라 군사들은 대부분이 무너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나머지 잔병을 수습한 몽오는 허둥지둥 서쪽을 바라보며 도망쳐 함곡관으로 들어가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몽오의 뒤를 쫓아 함곡관 밑에 당도한 신릉군은 오국의 대장에게 각각 영을 전하여 관문 앞에다 각 군마다 한 개씩의 대영을 세우고 군사들을 영문 밖으로 출전시켜 손에 무기를 휘두르며 성안의 진군을 향해 싸움을 돋우게 했다. 한 달이 넘게 계속 진군을 향해 야유를 퍼부으며 도전을 했으나 진나라 군사들은 관문만을 굳게 지키며 감히 관문 밖으로 나와 오국의 군사들의 도전에 응하지 못했다. 신릉군은 어쩌는 도리 없이 결국 군사를 물리쳐 군사들을 해산하고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후세의 사관이 이을 두고 시를 지어 논하며 신릉군이 세운 전공은 실은 모공(毛公)과 설공(薛公)의 덕분이라 했다.

병마를 동원하여 포위된 성을 구원한 사람은 누구인가?

합종으로 열국의 군사들을 얻음은 모두 신릉군의 덕분인데

당시 신릉군에게 출전을 권한 사람은 누구인지 아는가?

그 사람은 바로 흰 베옷을 입은 두 사람의 처사였다!

兵馬臨城孰解圍(병마인성수해위)

合縱全仗信陵君(합종전장신릉군)

當時勸駕誰人力(당시권가수인력)

却是埋名兩布衣(각시매명양포의)

3. 秦之反間 醇酒婦人(진지반간 순주부인)

- 진나라의 반간계에 걸려 술과 여인에 빠져 죽다 -

위나라의 안리왕은 신릉군이 진나라 군사들을 대파한 후에 개선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대량성 밖 30리나 나와서 신릉군의 일행을 맞이하였다. 형제가 이별한 지 10년 만에 상봉하게 되어 기쁨과 슬픔을 번갈아 가며 나누다가 수레의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도성 안으로 들어왔다. 안리왕이 조회를 열고 논공행상을 벌려 신릉군을 상국 위의 상상국(上相國)에 제수하고 봉지에 다섯 개의 성을 더하여 주었으며 나라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신릉군이 전결하게 하였다. 다시 진비를 임의대로 척살한 주해의 죄를 사면하여 그를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했다. 이때 신릉군의 위명은 천하를 떨게 하여 각국의 제후들은 모두 많은 예물을 보내어 신릉군으로부터 병법을 배우려고 했다. 신릉군은 자기의 빈객들을 시켜 매일 자기의 말을 받아 적어 책을 만들어 모두 21편의 저서와 진법에 대한 도해 7권을 완성하고 그 이름을 <위공자병법(魏公子兵法)>이라고 했다.

한편 진나라 장수 몽오와 왕흘은 패잔병을 수습하여 한 부대로 재편성한 다음 장양왕을 찾아가 알현하며 주청을 올렸다.

「위나라 공자 무기가 오국과 합종하여 그 군사는 많고 장수들은 즐비하여 저희들이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군사들을 잃고 장수들을 전사하게 만들었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장군들은 여러 번 전쟁터에 나가 수 없이 많은 공을 세우고 우리 진나라의 강역을 넓히셨습니다. 오늘 장군들이 패전한 것은 곧 중과부적으로 인했지 결코 장군들의 죄가 아니오!」

군신들 대열에 섞여 있던 강성군 채택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열국들이 합종을 행하여 서로 돕는 일은 오로지 공자 무기 한 사람이 있음으로 인해서 입니다. 오늘 대왕께서 사자를 위나라로 보내시어 수호를 청하시면서 한편으로는 무기를 진나라에 청하시어 만나보고 싶다고 하십시오. 그가 우리나라 경계 안으로 발을 들여 놓게 되면 잡아서 죽이십시오. 그것은 우리 진나라의 화근을 제거하는 일이니 이 또한 훌륭한 계책이 아니겠습니까?」

장양왕이 채택의 말을 쫓아 수호 사절을 위나라에 보내면서 강화를 원한다는 말과 함께 신릉군을 진나라에 초청하였다. 당시 맹상군의 문객 풍환이 위나라에 남아 위왕을 모시고 있었다. 진나라가 신릉군을 초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말했다.

「맹상군과 평원군 두 사람은 모두 진왕의 초청에 응하여 진나라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억류되었으나 다행히 탈출하여 화를 면했습니다. 공자께서는 결코 그들이 전철을 밟으시면 안 됩니다.」

신릉군도 역시 진나라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안리왕에게 주해를 자기 대신 사자로 삼아 벽옥 한 쌍을 보내어 진왕의 수호 요청과 자기에 대한 초청에 감사의 마음을 표해주도록 청했다. 신릉군이 자기의 청에 응하지 않아 신릉군을 죽이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장양왕은 마음속으로 크게 분노했다. 몽오가 장양왕을 찾아와 아무도 몰래 고했다.

「지금 위나라의 사신으로 온 주해는 곧 옛날에 위나라의 대장 진비를 철퇴로 내리쳐 일격에 죽인 사람입니다. 주해야말로 위나라의 용맹스러운 장수이니 붙잡아 두었다가 진나라 장수로 써스기 바랍니다.」

장양왕이 주해에게 진나라 관직에 봉하려고 했으나 주해는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왕은 더욱 노하여 좌우의 측근들에게 명하여 주해를 호랑이 우리에 넣어 죽이도록 했다. 얼룩무늬의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우리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주해를 보자 즉시 몸을 일으켜 달려들었다. 주해가 호랑이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짐승의 주제에 어찌 감히 사람을 해하려고 하느냐?」

주해가 눈에 힘을 주자 두 눈동자는 거의 튀어나오려는 듯하여 그의 두 눈은 마치 두 개의 술잔에 핏물을 받아 놓은 것처럼 되었고 눈언저리는 모두 찢어져 핏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호랑이를 노려봤다. 호랑이가 놀라 웅크리며 땅에 엎드려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장양왕이 보고 좌우에게 명하여 주해를 호랑이 우리에서 나오게 하며 감탄의 말을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 오획(烏獲)과 임비(任鄙)가 오더라도 저 사람에게는 당하지 못하겠다. 만약에 저 자를 위나라에 돌려보내 준다면 신릉군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되겠다.」

장양왕이 더욱 주해를 핍박하여 항복을 권유하였다. 주해는 결코 진왕의 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양왕이 명하여 주해를 역사에 가두어 놓고 음식을 주지 말라고 명했다. 주해가 말했다.

「내가 신릉군에게 발탁되어 그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내 마땅히 죽음으로서 그의 은혜에 보답하리라!」

주해는 즉시 머리를 역사의 기둥에 부딪쳐 죽으려고 했으나 기둥만 부러지고 그 머리는 멀쩡하였다. 그래서 손으로 자기의 목을 졸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로운 선비란 주해 같은 사람을 두고 말함이다.

장양왕은 주해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다시 군신들과 다음의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 말했다.

「주해가 비록 죽었다고 하나 신릉군이 여전히 조나라의 국정을 담당하고 있으니 과인은 그것을 걱정하는 바라! 과인은 조왕과 신릉군을 이간하여 두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고 하는데 여러 경들은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강성군 채택이 말했다.

「옛날 신릉군이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위나라의 병부를 훔침으로써 위왕에게 죄를 얻어 결국 위왕은 신릉군을 용서하지 않고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신릉군은 할 수 없이 10여 년 간 조나라에 머물며 위나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후에 위나라가 우리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위급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신릉군을 불러들여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4국과 합종하여 우리 진군을 물리쳐 큰공을 세운 신릉군은 그 이름에 천하에 떨쳐 열국의 왕들이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위왕이라고 해서 어찌 의심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신릉군이 주해를 시켜 아무 죄도 없는 진비를 철퇴로 격살하자, 진비의 죽음에 대해 그 종족들과 빈객들은 신릉군에게 깊은 원한을 갖고 있습니다. 대저 대왕께서는 아깝다 하시지 마시고 황금 만 근과 함께 세작을 비밀리에 위나라에 보내 진비의 일당을 찾아가서 많은 황금을 주며 그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하십시오! ‘제후들은 신릉군의 명성을 두려워하여 모두가 그를 위왕으로 받들고 싶어 한다. 신릉군은 머지않아 위왕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이 같은 유언비어를 위왕이 듣게 된다면, 필시 신릉군이 자기의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고 의심한 위왕은 그를 멀리할 것입니다. 신릉군이 조나라의 정사를 맡아보지 않게 되면 천하의 제후들은 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다시 군사를 내어 열국을 공격한다면 아무도 우리를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경의 계책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하오! 그러나 지난번 우리 군사들이 위나라에게 크게 패하였는데, 지금까지 위나라의 태자가 인질로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소. 과인이 그를 죽여 싸움에 패한 분풀이를 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태자 한 사람을 죽여봐야 위나라는 다시 다른 사람을 태자로 세울 것인데 어찌 위나라에 손해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위나라 태자를 죽이는 대신 살려서 반간계에 이용하십시오.」

장양왕이 문득 깨닫고 위나라 태자를 더욱 후하게 대접하였다. 한편, 세작에게 황금 만금을 주어 위나라로 가게해서 진비의 일당들을 시켜 유언비어를 유포하게 만들고, 다시 진비의 빈객들을 진나라에 있는 위나라 태자 증(增)을 방문하게 하여 친분을 맺게 하였다. 진비의 빈객이 태자증을 찾아와 비밀리에 고했다.

「신릉군이 나라밖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열국의 제후들과 친교를 맺어 제후들의 장군들과 상국들은 아무도 감히 신릉군을 존경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다시 위나라의 대장이 되어 제후들의 병사들까지도 그의 지휘 하에 들어갔습니다. 천하에는 단지 신릉군만을 알고 있을 뿐이지, 아무도 위왕이 있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위나라와 수호를 맺으려고 하는 이유도 역시 신릉군의 위명을 두려워하여 그를 위왕으로 세우려는 생각에서 입니다. 신릉군이 만약 위왕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는 반드시 진나라로 하여금 태자 전하를 죽이도록 하여 백성들이 더 이상 태자님을 그리워하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태자께서는 결코 위나라에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진나라에서 마치셔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어찌하시려고 하십니까?」

태자증이 눈물을 흘리며 좋은 계책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 사람이 말했다.

「진나라가 바로 얼마 전에 위나라와 강화를 맺기 위해 수호 사절을 위나라에 보냈는데 태자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위왕에게 올리시어 태자님의 귀국을 청하지 않으십니까?」

태자증이 대답했다.

「내가 편지로 부왕에게 귀국을 시켜 달라고 청한다 한들, 진나라가 어찌 나를 석방하여 귀국하게끔 허락하겠는가?」

그 빈객이 다시 말했다.

「만약에 태자께서 귀국하여 나라를 들어 진나라를 받들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진나라가 원하고 있는 일인데 어찌하여 태자님의 청이 거절당하리라고 미리부터 걱정하십니까?」

태자증이 그 빈객의 말을 쫓아 밀서를 한 통 써서 그에게 주며 위왕에게 전하게 했다. 제후왕들의 마음은 모두 신릉군에게 쏠려 있고, 진나라 역시 그를 위왕으로 옹립하려 한다는 말과 함께 말미에 자기는 귀국하고 싶다는 심정을 글로 써서 그 빈객에게 주며 아무도 몰래 위왕에게 바쳐달라고 부탁했다. 장양왕이 다시 두 통의 국서를 쓰게 하여 한 통은 위왕 앞으로 써서 주해가 병이 들어 죽어 그 시신을 보낸다고 하고 다른 한 통은 신릉군에게 경하의 말을 하며 별도로 황금과 예물 등의 뇌물을 보낸다고 했다.

한편 진비의 빈객들이 퍼뜨린 유언비어를 전해 듣고 이미 신릉군을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위왕은 진나라 사자가 국서를 가지고 와서 두 나라는 전쟁을 그만두고 수호를 맺고 싶다는 진왕의 말을 전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면서 그의 입에서는 말끝마다 신릉군을 존경한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뒤를 이어 진비의 빈객이 가져온 태자의 편지를 아무도 몰래 받아 보고는 마음속에 더욱 신릉군을 의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진나라의 사자가 다시 별도로 가져온 진왕의 국서와 폐백을 신릉군의 부중으로 보내며 일부러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여 위왕의 귀에 들어가게 하였다. 한편 신릉군은 진나라에서 사자를 보내와 강화를 맺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데리고 있던 빈객들을 불러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지금은 진나라와 싸움을 하지도 않는데 어찌하여 하필이면 강화를 청한단 말인가? 아마도 진나라에게 무슨 계략이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신릉군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문지기가 달려와 진나라 사자가 문 앞에 당도했다고 하면서 그의 말을 전했다.

「진왕께서 역시 신릉군께 경하의 말을 국서로 써서 전하게 하셨습니다.」

「남의 신하된 자는 결코 적국의 왕과 사사로운 교분을 맺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진왕이 구태여 국서를 따로 써서 예물과 함께 보내는 것 예의에 벗어난 일이라 이 무기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진나라의 사자가 재삼 진왕의 간절한 뜻을 전했으나 신릉군도 역시 한사코 받지 않았다. 그때 마침 위왕이 보낸 사람이 신릉군의 부중에 당도하여 진왕이 신릉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알고 싶어했다. 신릉군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진왕이 나에게 별도로 보낸 국서가 있다는 사실을 위왕이 이미 알고 있으니 만약에 내가 받지 않는다면 필시 의심을 사리라!」

신릉군이 즉시 진왕이 보낸 국서와 예물을 진나라 사자로부터 받아 가지고 원래의 모습대로 봉하게 한 다음 수레를 타고 궁궐로 가서 위왕에게 그대로 바치면서 고했다.

「신이 진나라의 국서와 예물을 계속해서 거절했으나 대왕께서 보고 싶다기에 어쩔 수 없이 받기는 했으나 감히 편지의 겉봉을 뜯을 수 없어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지금 직접 국서의 내용을 보시고 뜻대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안리왕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국서에는 필시 내가 알아서는 안 될 사사로운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뜯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안리왕은 진왕이 보내온 국서의 겉봉을 뜯고 읽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공자의 위명은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천하의 제후들과 열국의 왕들은 아무도 공자님을 향해 마음이 기우려져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조만간 남면(南面)하시어 제후들을 이끌어 주실 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 과인은 위왕이 언제나 그의 자리를 공자님에게 물려주실 지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 과인은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변변치 못한 예물이오나 공자님의 등극을 기다리며 미리 바치는 것이니 허물하지 말고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위왕이 읽기를 다 마치고 편지를 신릉군에게 주어 읽게 하였다. 신릉군이 편지를 읽고 나서 위왕에게 말했다.

「진나라 사람들은 원래 남을 속이기를 잘합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우리 위나라의 군주와 신하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이 편지와 예물을 받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국서 중에 무슨 말이 써져 있는지 몰라 나중에 그들의 계략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자가 국서의 내용과 무관하다면 바로 과인의 면전에서 답장을 써서 보내시면 될 일이다.」

안리왕이 좌우에게 명하여 목간과 붓을 가져오게 하여 신릉군의 이름으로 국서에 대한 답장을 쓰도록 했다. 답장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우리 위왕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은 이 무기는 몸이 가루가 되어도 갚지 못할 것인데 남면을 말하며 왕의 자리를 운운함은 신하된 자에게 할 말이 아닙니다. 대왕의 과분한 선물은 신하된 자에게 욕됨을 안겨주는 것이니 제가 설사 죽을지언정 결코 받지 못하겠습니다.」

신릉군이 쓴 답장을 진왕이 보내온 황금이 포함된 예물과 함께 진나라 사신에게 돌려주어 가지고 돌아가게 하였다. 위왕 역시 사자를 진왕에게 보내어 감사의 말을 전하게 하였다. 위나라 사신이 진왕에게 말했다.

「연로하신 과군께서 자기가 갑작스럽게 죽게 되면 태자증이 환국하여 위왕의 자리를 물려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진나라의 장양왕이 위왕의 청을 허락했다. 태자증이 위나라에 돌아와 위왕에게 위나라의 정사를 신릉군에게 맡기며누 안 된다고 간했다. 신릉군은 비록 아무런 잘못도 범하지 않았으나 위왕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응어리를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위왕의 의심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신릉군은 몸에 병이 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조회에 참석하지 않고 상국의 인장과 병부를 비단에 싸서 위왕에게 돌려주었다. 조나라의 모든 관직에서 물러난 신릉군은 빈객들과 어울려 밤을 지새며 술을 마시고 매일 밤마다 몇 번에 걸쳐 여인들을 가까이하여 환락을 즐기며 지냈다. 이렇게 함으로서 자기의 울분을 잊고자 했다. 이 일을 두고 사관이 노래한 시가 있다.

호쾌한 기개는 고금에 능가할 자가 없었고

드높은 이름은 귀신도 놀라게 하였다.

혼자 몸으로 조위(趙魏)의 사직을 보전하게 하고

싸웠다하면 이겨 진나라 군사를 물리쳤도다!

俠氣凌今古(협기능금고)

威名動鬼神(위명동귀신)

一身全趙魏(일신전조위)

百戰却嬴秦(백전각영진)

나라를 안정시켜 견고한 초석을 세운 신릉군이건만

미친개가 짓듯이 신릉군을 헐뜯는 인간들이 있었다.

불세출의 영웅도 쓰이지 못하니

주색에 빠져 남은 인생을 끝냈구나!

鎭國同堅礎(진국동견초)

危詞似呔狺(위사사태은)

英雄無用處(영웅무용처)

酒色了殘春(주색료잔춘)

한편 진나라의 장양왕은 재위 3년 만에 몸에 병이 들었다. 승상 여불위가 병문안을 드리기 위해 내궁에 들렸다가 밀서를 써서 내시에게 주어 왕후에게 전하여 옛날 자기와 맹세한 일을 잊지 말라고 상기 시켰다. 왕후가 옛날의 정리를 끊지 못하고 즉시 여불위를 불러 정을 통했다. 장양왕은 여불위가 지어다 준 약을 먹고 난 후에 한 달 만에 죽었다. 여불위가 태자 정(政)을 옹립하여 진왕의 자리에 올렸다. 이때 진왕 정의 나이는 겨우 13세에 불과했다. 진왕은 그의 생모를 태후로 받들고 그의 동모제 성교(成嶠)를 장안군(長安君)에게 봉했다. 또한 진나라의 정사는 모두 여불위가 전결하도록 하고 그의 지위를 태공 여상(呂尙)에 준하여 그를 상보(尙父)라고 부르게 하였다. 그때 여불위의 부친이 노환으로 죽었다. 열국의 제후들이 보낸 사자들이 문상을 하기 위해 줄을 잇고 조문을 행하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빈객들로 인해 여불위의 집은 마치 큰 시장이 선 듯 대성황을 이루었고, 그들이 타고 온 거마들은 함양 시내의 큰길을 가득 메워 진왕이 죽었을 때 치른 장례식 때 보다 더욱 성대했다. 여불위의 권세가 나라 밖으로까지 미쳐 제후들에게 위협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진왕 정(政) 원년 즉 기원전 246년, 위나라의 신릉군이 상국의 자리에서 물러나 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불위는 다시 군사를 일으키기 위해 군신들과 의논했다. 이윽고 몽오(蒙驁)를 대장으로 장당(張唐)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조나라로 진격하라고 명했다. 두 사람의 장군들이 이끄는 진군은 조나라의 진양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개선했다.

진왕 정 3년 기원전 244년, 다시 몽오를 대장으로 왕흘을 부장으로 삼아 한나라를 공격했다. 한나라는 공손영(公孫嬰)을 시켜 진나라 군사들을 막게 하였다. 왕흘이 출전을 앞두고 몽오에게 말했다.

「제가 조나라와 연여의 싸움에서 조나라 장수 조사에게 패하고 다시 지난번 위나라의 신릉군에게 화주에게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왕께서는 나에게 패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제가 이번에 출전하면 마땅히 죽음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왕흘은 그의 문객들과 종족들 천여 명을 이끌고 곧바로 한나라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왕흘은 한나라 군사들과 힘껏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죽었다. 진나라 대장 몽오는 한나라 진영에 큰 혼란이 일어난 틈을 이용하여 대군을 몰아 공격하여 한군을 크게 파하고 공손영을 잡아서 목을 베었다. 몽오는 한나라의 열두 개의 성을 점령하여 진나라 영토로 만들고 개선했다. 신릉군이 위나라 상국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로 조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관계는 두절되었다. 조나라의 효성왕이 염파(廉頗)에게 위나라를 정벌하도록 명했다. 염파가 위나라의 번양(繁陽)3)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기 전에 효성왕이 죽었다. 태자 언(偃)이 그 되를 이어 조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조나라의 도양왕(悼襄王)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번양을 함락시킨 염파는 승세를 타고 위나라로 진격했다. 그러나 조나라의 대부 중에 곽개(郭開)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평소에 남을 모함하고 아첨을 잘했기 때문에 염파가 미워하여 연회가 있어 같이 모일 때면 항상 염파로부터 무안을 당하곤 했다. 곽개가 이에 앙심을 품고 도양왕에게 참소했다.

「염파는 이제 나이가 들어 군사를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여 위나라를 정벌하러 떠난 지 오래되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양왕은 곽개의 말에 혹하여 무양군(武襄君) 악승(樂乘)을 보내 염파를 대신하게 하였다. 염파가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내가 혜문왕 이래로 지금까지 40여 년에 이르도록 전장터를 누비고 다니며 한 번도 싸움에서 진 적이 없거늘 악승이라는 자가 도대체 누구이건대 나를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염파는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악승을 공격하자 그는 두려워하여 조나라 도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염파는 위나라로 망명했다. 위나라 안리왕은 염파를 높이 사서 객장(客將)에 비록 임명하기는 했으나 조나라 출신임을 의심하여 그에게 군사를 맡기지 않았다. 염파는 대량에서 살다가 결국 위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생을 마쳤다.

진왕 정 4년 기원전 243년 10월, 메뚜기 떼가 동쪽으로부터 날아와 하늘을 덮었다. 메뚜기 떼가 농작물을 모조리 먹어버려 그 해에는 전혀 수확을 하지 못하고 다시 역병이 크게 일어났다. 여불위와 그의 빈객들은 의논하여 일반 백성들이 곡식 천 석을 가져와 나라에 바치면 일급(一級)에 해당하는 작위를 내린다고 공포했다. - 후세에 들어 곡식을 받고 벼슬을 내리는 제도는 이때 여불위가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 해에 주색으로 몸을 상한 신릉군이 병을 얻어 죽었다. 맹상군의 식객이었던 풍환(馮驩)은 이를 너무 슬퍼한 나머지 그 역시 마음을 상해 신릉군의 뒤를 따라 죽었다. 신릉군의 빈객들 중 신릉군을 따라 칼로 목을 찔러 자살한 사람도 100여 명에 달했다. 이것은 신릉군이야말로 능히 선비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해인 기원전 242년 위나라의 안리왕이 죽고 태자 증(增)이 위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경민왕(景湣王)이다. 진나라는 위나라의 왕이 방금 죽고 또한 신릉군도 이미 죽고 없어져 옛날 화주에서의 패전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장군 몽오를 시켜 위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몽오는 위나라로 쳐들어가 산조(酸棗)4)를 함락시키고 그 주위의 20여개 성을 합하여 동군(東郡)을 설치했다. 몽오는 계속 북쪽으로 진격하여 조가를 점령하고 다시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위(衛)나라 원군(元君)이 살고 있던 복양성(濮陽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안리왕의 사위였던 위원군은 복양성을 탈출하여 동쪽으로 도망쳐 야왕성(野王城)으르 들어가 험한 산세를 의지하여 위나라의 명맥을 유지했다. 위나라의 경민왕이 진나라의 침략으로 많은 땅을 빼앗기자 탄식하며 말했다.

「신릉군께서 살아있었다면 어찌 진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우리나라를 이렇듯 횡행하며 돌아다닐 수가 있었겠는가?」

3. 趙燕再戰(조연재전)

- 진나라를 앞에 두고 또다시 싸우는 조․연 두 나라 -

위왕은 조나라에 사자를 보내 두 나라가 수호를 맺어 진나라에 대항하자고 했다. 조나라의 도양왕도 역시 진나라의 침략이 끊이지 않은 것을 걱정하여 바야흐로 사자들을 열국에 보내어 신릉군과 평원군이 제창한 합종을 다시 일으켜 보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변방을 지키던 관리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지금 연나라가 극신(劇辛)을 대장으로 군사 10만을 보내어 우리나라의 북쪽 경계를 침범하고 있습니다.」

원래 조나라 출신 극신은 연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방훤(龐煖)과 친교가 있었다. 후에 방훤은 조나라에 출사하고 극신은 연나라의 소왕(昭王)에게 몸을 맡겨 헤어지게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연소왕은 극신을 계군(薊郡)의 수장으로 삼았다. 소왕으로부터 4대에 이르러 연왕의 자리에 오른 희(喜)는 예전에 조나라가 진나라와의 장평싸움에서 40여 만 명의 군사를 잃어 병력에 여력이 없을 것임을 생각하고 대장 율복에게 30여 만의 군사를 주어 조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그러나 조나라의 대장 염파가 이끄는 조군(趙軍)에게 율복의 연군은 호성(鄗城)에서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승세를 탄 염파의 조군이 패주하는 연군의 뒤를 추격하여 연나라 도성을 포위했다. 위급한 처지에 놓인 연왕은 조나라와의 전쟁을 반대했던 장거(將渠)를 내세워 간신히 강화를 맺기는 했으나 조나라와의 전쟁에서 대패한 것에 대해 절치부심하며 치욕을 갚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연왕이 조나라와의 화평을 주장한 장거를 상국으로 삼았지만 그것은 조나라의 강요에 의해서 였기 때문이지 연왕의 본마음은 아니었다. 연왕이 비록 장거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보내 신릉군의 합종군에 참여하여 진나라 군사들을 물리쳐 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연왕과 장거 두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는 석연치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연왕의 마음을 헤아린 장거는 연나라 상국의 자리에 일 년 조금 넘게 앉아 있다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상국의 인장을 연왕에게 돌려주었다. 연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극신을 계성에서 불러들여 연나라 상국으로 삼고 둘이 모의하여 조나라에 원수를 갚을 의논했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에는 백전노장 염파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 감히 군사를 함부로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염파가 조왕에게 죄를 지어 이미 위나라로 도망치고 그 후임에 방훤(龐煖)을 임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원래 방훤의 사람됨을 아주 경시하고 있었던 극신은 조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즉시 연왕의 뜻을 받들기 위해 상주했다.

「방훤은 그 재주가 용렬한 사람이라 염파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진나라 병사들이 조나라 경계로 쳐들어가 진양(晉陽)을 함락한 관계로 조나라 군사들은 모두 싸움에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그 틈을 타서 공격하면 율복이 당한 치욕을 갚을 수 있습니다. 」

연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과인도 경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소. 상국께서는 과인을 위해 한번 출정을 해 줄 수 있으십니까?」

「신은 원래 조나라 출신이라 그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저에게 연나라 군사들을 맡겨주신다면 제가 마땅히 방훤을 사로잡아 대왕의 안전에 바치겠습니다.」

연왕이 기뻐하며 즉시 극신을 대장으로 삼고 군사 10만 명을 주어 조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조나라의 도양왕은 연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방훤을 불러 그 대책을 의논하였다.

「스스로 자기가 싸움에 능한 장수라고 자부하고 있는 극신은 있어 필시 우리를 경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대군(代郡)을 지키고 있는 이목에게 그곳의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여 경도(慶都)5)를 지나서 극신의 후위를 끊고 신은 한단에서 일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나가 연나라의 군사들을 앞뒤에서 협공한다면 극신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4. 龐煖斬劇辛胡盧河(방훤참극신호로하)

- 호로하의 강변에서 연장 극신의 목을 베는 방훤 -

한편 극신은 역수(易水)6)를 건너 중산(中山)의 땅을 지나 곧바로 상산(常山)7) 땅의 경계에 당도했다. 극신이 거느린 연나라 군사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방훤은 조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한단성을 나와 동원(東垣)에 진을 치고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세워 연나라 군사들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극신이 동원의 북쪽에 도착하여 진채를 세운 후에 휘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우리들은 적지에 깊이 들어와 만약에 조군이 깊은 해자와 높은 보루에 의지하여 우리의 도전에 응하지 않고 단지 굳게 지키기만 한다면 결코 전공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극신이 막하의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감히 선봉을 맡아 싸움을 걸어 보겠는가?」

연나라의 맹장 율원(栗元)은 곧 율복(栗復)의 아들인데 자기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으로 흔연히 앞으로 나와 선봉을 자원했다. 극신이 다시 말했다.

「한 사람의 장수가 그 뒤를 쫓아가 도와야 하는데 누가 가겠는가?」

말장 무양정(武陽靖)이 같이 출전하기를 청했다. 극신은 연나라의 정예병 만 명을 내어 주며 곧바로 조나라 진영을 공격하도록 했다. 방훤은 악승(樂乘)과 악한(樂閑)으로 하여금 양쪽에 날개를 치고 적군을 기다리게 하고 자기는 친히 본대의 군사를 인솔하고 출전했다. 양쪽의 군사들이 교전에 들어가 약 20여 합을 싸웠을 때 갑자기 일성포향이 울리더니 조나라 진영의 양쪽 날개가 앞으로 전진하며 준비한 강궁으로 연군을 향하여 쇠뇌를 빗발치듯 쏘았다. 무양정은 쏟아지는 활에 맞아 죽고 혼자 남은 율원은 도저히 조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수레의 방향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방훤은 악승, 악한 두 장수들과 함께 달아나는 연군의 뒤를 추격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연나라 군사들의 목을 베었다. 율원이 이끌고 출동한 만 명의 군사 중 삽시간에 삼천 명의 사상자가 났다. 극신은 대노하여 황급히 대군을 재촉하여 율원을 도와 조나라 군사들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방훤은 이미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 버린 후였다. 극신이 조나라 진영 앞으로 전진하여 공격하였지만 조나라의 보루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극신이 군사들을 불러들이고 나서 편지를 써서 양쪽 진영 앞에서 단 둘이서 수레를 타고 나와 회견을 하자고 했다. 방훤이 허락하고 양쪽 진영은 각기 싸움 준비를 했다.

다음 날 두 나라 군사들은 마주 바라보며 진세를 펼치고 각기 자기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절대 활을 쏘아서는 안 된다.」

방훤이 먼저 혼자 병거를 타고 조나라 대열 앞으로 나와 멈추어 서더니 극신의 면회를 청했다. 극신도 역시 혼자서 병거를 타고 연나라 대열 앞으로 나왔다. 방훤이 병거를 탄 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다음 말했다.

「장군의 무양한 모습을 오랜만에 뵈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옛날 장군과 작별하고 조나라를 떠난 지가 어느덧 40년이 되어 나는 이미 늙어 쇠하였고, 장군도 역시 백발이 성성하게 되었구려! 인생은 나르는 화살과 같다고 하더니만 과연 그런 것 같소.」

「옛날 연소왕이 예로서 천하의 선비들을 초빙하자, 장군은 조나라를 떠나 연나라에 가서 등용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천하의 호걸들이 연나라에 몰려들어 마치 용에 구름이 일듯이, 호랑이에 바람이 일듯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연나라의 황금대(黃金臺)8)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연소왕이 묻힌 무종산(無終山)9)의 무덤 위 나무는 자라 아름드리가 되었습니다. 소대와 추연은 잇달아 세상을 뜨고 창국군 악의도 역시 연왕의 내침을 당해 우리 조나라로 돌아와 연나라의 운세는 이미 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는 이미 60세가 넘은 늙은 몸의 장군께서 쇠락한 연나라의 궁정 뜰에서 홀로 서서 아직도 권력에 연연하여 흉기를 들고 위험한 병정놀이를 벌이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원해서입니까?」

「내가 삼대에 걸쳐 연왕들로부터 입은 두터운 은혜는 뼈가 부스러진다 한들 갚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내가 남은 여생이나마 바쳐 나라를 위해 옛날 율복이 당한 치욕을 갚고자 함이오.」

「율복이라는 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나라의 호읍(鄗邑)을 침범한 결과 싸움에 패하여 스스로의 죽음을 재촉했습니다. 그 일은 곧 연나라가 조나라를 침범해ㅉ지, 조나라가 연나라를 침범한 것이 아니었소.」

두 사람이 마주보고 반복해서 문답을 주고받다가, 방훤이 갑자기 큰 소리로 조나라 진영을 돌아보며 외쳤다.

「저 극신의 머리를 베어오는 자는 황금 3백 근을 상으로 주리라!」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대하기를 이렇듯 가볍게 대하는가? 너무 심하지 않는가?」

「서로가 모시고 있는 임금의 명을 받았으니 각기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울 뿐이오.」

극신이 대노하여 병거에 꽂혀 있던 대장기를 한번 휘저으니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율원(栗元)이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앞으로 돌진해 왔다. 조나라 진영에서도 악승, 악한 두 장수가 병거를 타고 내달아 율원의 군사들과 접전을 벌렸다. 두 진영의 싸움은 연나라 쪽에 점점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극신이 대군을 이끌고 율원을 돕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자 방훤도 역시 대군을 이끌고 앞으로 나왔다. 두 나라의 군사들이 서로 뒤엉켜 혼전을 한바탕 벌린 결과 연나라 쪽의 인원 손실이 조나라 쪽 보다 많이 났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양쪽 진영은 쟁이를 쳐서 군사들을 불러 들였다.

극신이 본영에 돌아와 전투의 결과 예상 밖으로 병력의 손실이 크자 앙앙불락하였다. 이어서 회군을 하려고 해도 자기가 연왕 앞에서 큰 소리를 친 결과 면목도 없었고, 또한 조나라 군사들을 상대로 승리를 취하기도 어렵고 해서 주저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영채를 지키던 군사들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조나라 진영에서 편지를 전하고자 사람을 보내왔으나 저희가 임의로 편지를 접수하지 못하고 그를 원문 밖에서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극신이 명하여 편지를 받아 오도록 했다. 그 편지는 세 겹으로 견고하게 봉해져 있었다. 극신이 편지의 겉봉을 뜯고 읽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대주(代州)의 수장 이목이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독항(督巷)10)으로 진격하여 장군의 퇴로를 끊으려 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속히 회군하기 바랍니다. 만약 지체하시어 시기를 놓치신다면 크게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옛날 장군과의 정리를 생각하여 감히 알려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방훤이 나의 마음을 동요시켜 우리 연나라의 군심을 어지럽히려고 보낸 편지다. 비록 이목의 군사들이 당도한다고 한들 내가 어찌 그를 두려워하겠는가?」

극신은 좌우의 사람에게 명하여 답장을 쓰도록 하여 다음 날 다시 결전을 하여 죽기로 한번 싸우기로 결심을 굳혔다. 조나라 사자가 극신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돌아가자 율원이 찾아와 말했다.

「방훤의 말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이목이 과연 군사를 이끌고 나와 우리의 후방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앞뒤에서 적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는 어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극신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 역시 그것을 우려하고 있는 바라! 내가 그렇게 큰 소리를 친 이유는 군사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대는 즉시 비밀리에 군령을 전하여 영채를 거짓으로 세우고 군사를 거두어 회군하도록 하고 나는 친히 후위를 맡아 조나라 추격병의 뒤를 끊으리라!」

율원이 극신의 군령을 받아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방훤은 연나라가 군사들이 영채를 거짓으로 세워놓고 철수를 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방훤은 악승, 악한과 함께 세 갈래의 길을 취하여 조나라 군사들의 뒤를 추격하였다. 극신은 조나라 추격병들과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달아나 이윽고 용천하(龍泉河)에 이르렀다. 정탐병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우리의 전면에 정기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어 알아보니 그들은 대군(代郡)의 군사들이라고 합니다.」

극신이 크게 놀라 말했다.

「방훤이 과연 나를 속이지 않았구나!」

극신은 감히 북쪽으로 계속 후퇴하지 못하고 방향을 바꿔 부성(阜城)11)을 거쳐 요양(遼陽)12)으로 들어가려 했다. 방훤(龐煖)은 극신의 뒤를 추격하여와 호로하(胡盧河)13)에서 조우하여 두 나라 군사들은 크게 싸운 결과 극신이 이끄는 연나라 군사들은 대패하고 말았다. 싸움에서 진 극신이 탄식했다.

「내가 어찌 조나라의 포로가 될 수 있겠는가?」

극신은 스스로 자기의 목을 찔어 자결했다. 이때가 연왕 희 13년, 진시황 정(政) 5년인 기원전 242년의 일이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황금대(黃金臺)로 초빙되자 의기가 양양하여

묻 호걸들과 함께 날개를 펼쳐 연나라의 실지를 되찾았으나

창국군 악의가 새운 공명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홀로 남았던 백발의 극신도 호로하의 강가에서 생을 마쳤구나!

黃金應聘氣昻昻(화금응빙기앙앙)

共翼昭王復舊疆(공익소왕북구강)

昌國功名今在否(창국공명금재부)

獨將白首送沙場(독장백수송사장)

율원(栗元)은 악한(樂閑)에게 사로잡혀 참수 당했다. 연나라 군사들 중 이만 여 명이 머리를 베이고 나머지는 뿔뿔히 흩어져 달아나거나, 일부는 항복을 하여 조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방훤과 이목이 휘하의 군사들을 합류시켜 일제히 연나라 경계로 진격하여 연나라의 무수(武遂)14)와 방성(方城)15)의 땅을 점령했다. 연왕 희(喜)가 친히 장거의 집으로 찾아가 사자가 되어 조나라 군영을 찾아가 연나라의 죄를 사과하고 강화를 맺어줄 것을 애걸했다. 장거가 연왕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방훤의 조군 진영을 찾았다. 방훤은 옛날 진나라와 싸울 때 장거와 맺은 옛날의 정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강화를 허락했다.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에 개선한 방훤은 조왕에게 복명했다. 이목은 옛날 대군의 수장 자리로 돌아갔다. 도양왕은 도성을 나와 교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방훤을 맞이하며 그 노고를 위로하며 말했다.

「장군의 무용이 이렇듯 뛰어나니 염파나 인상여가 아직 우리 조나라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연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복종하였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합종을 주창하시어 열국들과 군사를 합하여 진나라를 도모하면 가히 나라의 근심을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제 103회로 계속 >

각주

1)겹주(郟州)/지금의 하남성 겹현(郟縣)이다. 춘추 때 정나라 땅이었으나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한나라 땅이 되었다가 위문후 때 위나라에 편입되었다.

2)화주(華州)/ 지금의 하남성 신정시 북쪽의 화양(華陽)이다.

3)번양(繁陽)/전국시대 때 위나라 성읍. 지금의 하남성 내황현(內黃縣) 경내 서북. 번수(繁水)의 북쪽에 있는 고을이라는 뜻에서 번양이라고 했다. 후에 한나라 때 번양현(繁陽縣)을 설치했다.

4)산조(酸棗)/지금의 하남성 연진(延津) 서남. 춘추 때 정나라 땅이었다가 후에 위나라의 영토가 되었음. 위문후 32년 기원전 393년 위문후(魏文侯)가 정나라의 정벌하고 산조(酸棗)에 성을 쌓았다.( 魏文侯32年‘ 伐鄭, 城酸棗) 후에 진나라가 산조현(酸棗縣)을 설치했다.

5)경도(慶都)/지금의 하북성 당현(唐縣) 동북. 전국 때 조나라의 읍

6)역수(易水)/하북성 이현(易縣)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서수현(徐水縣)에서 황하로 흘렀던 중국의 고대 하천. 전국 때 조나라와 연나라는 이 강을 경계로 하였다.

7)상산(常山)/①항산(恒山)의 별명. 중국 오악(五嶽) 중 북악. 한문제(漢文帝)의 이름이 유항(劉恒)이었던 관계로 그 휘(諱)를 피하여 상산(常山)이라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하북성 곡양현(曲陽縣) 서북과 산서성과의 접경지대에 걸쳐 있다. ②진나라 말 한초전쟁 때의 제후국의 이름. 기원전 206년 항우(項羽)가 장이(張耳)를 제후로 봉하고 상산(常山), 한단(邯鄲), 거록(鉅鹿) 등의 세 군을 관할하게 하였다. 상산은 지금의 하북성 형태시(邢台市)이다.

8)황금대(黃金臺)/연소왕(燕昭王)이 역수(易水)의 강변에 높은 누각을 짓고 황금을 쌓아 놓고 사방의 어진 선비들을 불러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그 이름을 초현대(招賢臺)라고 부르다가 그곳에 선비들에게 주려고 황금을 쌓아 두었다고 해서 다시 황금대(黃金臺)라고도 불렀다. 본문 92회 참조

9)무종산(無終山)/지금의 천진시 계현(薊縣)에 있던 산 이름.

10)독항(督巷)/ 지금의 하북성 탁현(𣵠縣) 동. 전국 때 연나라 영토.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진나라에 들어갈 때 선물로 바치려고 한 땅이다. 형가는 독항의 지도와 번오기(樊於期)의 가지고 진시황을 접견할 때 독항의 지도 속에 숨겨가지고 간 비수로 찔러 죽이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1)부성(阜城)/지금의 하북성 남쪽의 산동성과의 경계에 있는 부성(阜城)이다. 명나라 때도 같은 지명이었다.

12)요양(遼陽)/ 지금의 요녕성 요중현(遼中縣)으로 한나라 때 설치한 현 이름이다. 요중현은 심양시 서남 50키로 떨어져 있다. 원작자의 잘못이다.

13)호로하(胡盧河)/ 지금의 하북성 형태시(邢台市) 서쪽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흘러 형수시(衡水市)를 지나 천진에서 황해로 들어가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의 지류로 명나라 때의 강이름이다.

14)무수(武遂)/지금의 하북성 서수현(徐水縣) 서쪽 북수(北遂)에 옛 고성이 남아 있다

15)방성(方城)/지금의 하북성 고안현(固安縣). 북경시(北京市) 남쪽 경계와 접하고 있음.

[평설]

“ 화음도에서 진장 몽오(蒙驁)를 패퇴시킨 신릉군” 편은 위나라가 신릉군의 명성을 이용하여 합종을 성사시킨 후에 진군에게 반격을 가하여 승리를 한 이야기다.

이것은 기원전 247년에 일어난 일이다.

이 일이 있기 전, 진군은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한 틈을 타서 조나라의 서쪽지역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이어서 다시 위, 조, 한 세 나라를 차례로 공격했으나 삼국은 진나라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다. 진군의 치열한 공세로 위나라는 매우 위급하게 되었다. 그러자 위안리왕은 조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신릉군을 돌아오라고 불렀다. 신릉군이 합종을 주재하여 진군에게 반격을 가한 결과 승리를 얻은 것이다. 위왕의 그와 같은 행마법은 적절했다.

합종군의 일부 병력으로 하여금 진장 몽오의 진군을 겹주(郟州)에서 견제하도록 한 다음 신릉군 자신은 주력을 이끌고 바람처럼 재빠른 행동으로 달려가 100리 밖의 화주(華州)에서 진장 왕흘의 군대를 포위했다. 화주에 이른 신릉군은 먼저 진군의 군량미를 운송하기 위해 위수(渭水) 강안에 정박하고 있던 진나라의 수군을 덮침으로 해서 화주의 본진에 있던 주력군이 구원에 나서게 한 다음 중도에 매복하고 있다가 진군을 타격했다. 겹주에 주둔하고 있던 몽오군이 왕흘군을 구원하기 위해 화주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왕흘군은 싸움에서 져서 그 군사들은 이미 흩어진 상태였다. 합종군 주력의 집중공격을 받은 몽오와 그 군사들은 어쩔 수 없이 함곡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신릉군은 군사적인 재능을 갖춘 출중한 인물이었다.

합종을 주재한 신릉군에게 타격을 받게 된 진나라는 육국이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더욱 빨리 통일전쟁을 진행시키기 위해 즉시 사람을 위나라에 보내 많은 황금으로 간첩을 매수하여 신릉군과 위왕 사이를 이간하도록 만들었다. 진나라의 이간책에 떨어진 위왕은 신릉군의 병권을 빼앗고 말았다. 이때 조(趙)와 위(魏), 연(燕)과 조(趙) 사이에 다시 전쟁이 발생했다. “ 방훤(龐煖)이 호로하(胡盧河)에서 연장 극신(劇辛)을 참수” 한 것은 기원전 244년의 연과 조 두 나라 사이의 전쟁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전쟁은 진나라에 대항하려는 관동 육국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에 진나라는 삼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여 진나라의 영토는 이미 제나라와 직접 접하게 되어 자연히 초와 조를 단절시켜 한과 위 두 나라를 삼면에서 포위하는 국면을 조성했다. 산동 육국의 영토는 이미 진군에게 분할되어 국제 정세는 매우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