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고야, 오늘은 정말 정신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시아오꾸가 어제부로 퇴사를 했지만, 아직 새로운 사람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진다고 하나요 ? 그 얘가 떠나니까 바로 사고가 터지는군요. 목요일에 물건이 나가야 한다고 거래업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선박회사에 연락을 해보니 시간이 너무 빡빡하다고 하는군요.
배가 출항하면 통상적으로 그 전날에 부두로 화물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수출통관도 진행해야 됩니다. 그러한 과정이 배가 출항하기 전날에 모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물이 배가 출항하는 바로 전날 아침에야 공장에서 출고된다는 것입니다. 공장도 상해에서 훨씬 남쪽에 위치한 항주(杭州)입니다.
"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蘇州와 항주杭州가 있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오늘 같은 경우에는 그저 끔찍하기만 지옥인 것 같군요. 항주에서 상해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온다 하더라도 최소 3시간은 소요될 것 같은데, 상해는 일과시간에 콘테이너차량이 도심을 관통하지 못합니다. 상해항은 상해 북쪽에 위치한 양자강 하구에 있지요. 그러니 항주에서 북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와서는 상해경계선을 우회해서 항구로 가야 합니다. 하루 일과시간내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지요. 부두는 이미 Closing되어서 물건도 못 들어가고... 목요일 출항이라고는 하나 목요일 새벽이면 그대로 배 놓칩니다. 그럼 세관에 수출통관신고를 다시 해야하고, 1주일동안 부두에서 발이 묶이게 되지요.
그런데 거래처에서는 난리입니다. 반드시 목요일에 물건이 나가야 한다고... 그래서 금요일 배로 태우자고 겨우 설득해 놓으니 금요일배는 이미 만선이라서 더 이상 물건을 싣을 수 없다는군요. 하늘이 노오래지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통사정을 해서 다음주 월요일배에 태우자고 설득하니까, 목소리가 아직 어리게 들리는 거래처 교포직원 왈...
"사장님(한국사람)한테 저 혼나요..."
대신 혼나 주겠다고 하면서 간신히 설득에 성공, 다음주 월요일 배에 선적하는 것으로 낙찰을 보고, 다시금 선박회사에 전화를 하니.... 다음주 월요일에도 선복이 남을지 두고봐야겠답니다. 하이고야....
시아오꾸가 있었을 때는 별걱정이 없었습니다. 똑똑하지요, 일도 똑 부러지게 하지요, 영어도 잘 하지요, 거기에 선박회사, 트럭회사, 통관사들 하고 관계도 좋아서 일을 하는데 별 애로사항이 없었습니다. 저는 내부업무가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영업활동을 했습니다.
영업은 회사의 꽃입니다. 개인에게도 엄청난 득이 되지요.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듣는 것도 많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제조업분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지요. 그게 다 재산입니다. 능력좋은 영업사원들은 이 회사, 저 회사에서 오십시오 하지만 그냥 사무실 안에서 관리업무만 한 사람들에게는 그럴 기회조차 없습니다. 제가 작년말에 귀국해서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입니다.
저 같은 선박회사 출신들이 복합운송회사에서 환영받는다는 것은 아득한 옛날 일이지요. 선박회사 출신들보다는 영업으로 뼈가 굵은 같은 복합운송회사의 영업경력을 더 선호합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이 회사에 들어온 것도 천우신조인 셈이지요.
일은 일대로 바쁘지만, 그 와중에 면접을 두 사람 보았습니다. 제 중국어실력도 실력이지만, 이전에는 입사지원자로서만 생각했지, 한번도 면접관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같이 있는 대만주재원 Ye 1과 말레이시아 화교주재원 Wang에게 면접관노릇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저도 배석하고요.
그 전까지만 하여도 끔찍했습니다. 영어실력이 영 꽝인 경력직원이 자기는 물류업을 3년동안 해봤다고 하면서 급여를 월 4,000위안을 요구하더군요. 정말 끔찍했습니다. 시아오꾸는 영어도 잘 하고 일도 잘 하면서 월 3,500위안을 받았는데...(물론 그 급여수준에 만족 못해서 뛰쳐나갔지만...) 영어잡지 한 권을 펼쳐 보이고 읽고 해석하라고 하니까 발음은 아메리카식, 중국식 혼용이고, 뜻은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합니다. 그래서 종쳤습니다. Ye 1이 그러는데, 저 정도면 월 2,500위안이면 되겠다고....
오늘 면접 본 사람은 두 사람인데,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입니다. 남자는 흑룡강성출신입니다. 저 멀리 북쪽에서 온 친구입니다. 나이는 20대 초반.... 영어책 펼쳐 놓고 읽어보라고 하니까 더듬더듬 하면서, 무조건 혀를 말아서 읽습니다. 아주 열심히... 뜻은... 많이 헤매이더군요. 이 친구는 같은 사무실에 있는 여직원이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소개해 준 사람입니다. 과묵하니, 수수해 보이더군요.
여자는 상해출신, 역시 20대 초반입니다. 그런대로 봐줄만한 용모에 영어책 앞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는군요.
나중에 Ye 1에게 의견을 구하니까, 아주 좋답니다. 뭐가 좋으냐 ? 두 사람 모두 Royalty가 있어 보인다고 하는군요. 여기서 충성심이라는 것은 다름 아니고 최소한 2년 정도는 딴 생각 안하고 이 회사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복합운송중개업이라는 직종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직률이 아주 높은 업종입니다. 영업사원들은 영업사원들대로 자기가 실적이 좀 있으면 쉽게 독립을 꿈꾸거나 더 좋은 처우를 보장하는 회사로 떠나버리지요. 여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세한 업체들이 난립하고 강도 높은 근무환경에 비해서 처우는 그리 후한 편이 못되기 때문에 쉽게 자리를 옮기게 되지요. 하물며, 이곳 중국은....
지난 3월 17일 글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천진에서 알고 지내던 아주 예쁜 아가씨가 있습니다. 제가 흑심을 품고 접근을 했었고, 식사도 여러 번 같이 했지요. 그런데, 제가 상해에 와서 연락을 해보니 그 아가씨, 백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Ye 1에게 혹시 일자리를 좀 알아볼 수 없겠느냐고 그 아가씨의 이력서를 디미니... 불안정하답니다. 평균근무일수가 1년이더군요. 그런데, 그 아가씨만 그런 것 같지가 않습니다. 다 그런 것 같아요.
이곳 중국에서 믿고 일을 맡길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 면접 본 그 두 사람은 아직 사회초년생이고 해서 순수하기 때문에 키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되는군요. 물론 제가 반쯤 죽을 정도로 고생해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긴 하지만....
직원뿐만 아니라, 믿을만한 사업파트너를 찾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모양입니다. 중국은 외국인들이 중국현지기업의 사장이 될 수 없도록 법률로서 규정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독자기업(100 % 외국자본)도 있고, 합자회사도 있고 여러 가지의 형태의 회사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제가 더 알아야 합니다만, 중국인 바지사장을 초빙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바지사장 말입니다. 김강자 서장의 자서전 "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라는 책에서 나오는 내용인데, 악덕한 포주들이 유흥업소를 차리고는 아는 사람을 그 업소 사장으로 등록시킨다고 하네요. 그래서 단속에 걸리면 바지사장이 유치장에서 좀 살고 나온다고 합니다. 물론 월급은 꼬박꼬박 받겠지요. 별로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중국에 진출한 상당수의 업체들이 안면이 있거나 관계가 있는 현지인들을 사장으로 초빙한다고 합니다. 물론 경영에는 관여 안 합니다. 이름만 올려놓고 월급은 꼬박꼬박 받지요. 이 정도면 상당히 좋은 직업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 그 바지사장이 진짜 사장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합니다. 원래의 진짜 사장을 회사에 못 들어오게 하고 바지사장이 그 회사를 차지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률적인 것들이 모두 그 바지사장 명의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순전히 인간 하나만 믿고 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는 케이스지요. 결국 그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한 비운의 회사들이 더러 있다고 하는군요.
상해에서 복합운송중개업을 영위하는 많이 회사들이 자금력은 충분하지만, 바로 이런 위험부담 때문에 정식으로 법인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Ye 1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원인으로 가난을 꼽았습니다. 먹고살기가 힘들다, 그런데 회사가 자기 명의로 되어 있다, 평생 부족한 삶을 살지만 그 회사만 차지하면 팔자를 고친다, 사장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러니 안면 몰수하고 자기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법적으로도 걸릴 것도 없다... 그러니 유혹을 안 받겠는가 ?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충성심 아닙니까 ? 주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그들에 대해서 성심성의껏 자신의 의무를 다 하는 것... 그 충성심이라는 것은 누군가에 대한 진실성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유혹에 대한 꿋꿋한 저항이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이곳 중국에서는 그것을 얻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2004-05-13 11: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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