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大釗, 이대교, 이대소, 이대조, 이대쇠?

이대조는 왜 적어 놨어?” 바깥양반의 말이다. 얼마 전에 그 이름에 관한 문제가 문득 생각나기에, 나중에 시간이 나면 자세히 파헤쳐보기 위해서 쪽지에다가 한자로 “李大釗”라고 적고, 그 밑에 “이대조”와 “이대교”와 “이대소”를 나란히 적어 놓았다. 그 쪽지를 내 책상 위에 놓아두었더니, 바깥양반이 무슨 일로 오가다가 그 쪽지를 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대교가 아니라 이대조가 맞지 않나? 내가 읽은 책에도 이대조라고 나왔고, A 선생도 강의에서 ‘이건 이대조라고 읽는다’라고 했는데 말이야.”

애초에 이 문제를 좀 더 파헤쳐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나도 원래는 ‘李大釗’라는 한자의 발음이 ‘이대조’라고 알고 있었다. ‘釗’라는 한자를 처음 알게 된 것도 바로 ‘李大釗’의 이름을 통해서였으니까. 다만 간혹 그의 이름을 ‘이대교’라고 적은 책이 있는 것을 보고, 그렇다면 ‘釗’자는 대략 ‘조’와 ‘교’로 두 가지 음이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짐작하고 있었다. 한자의 정확한 음이 무엇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이야 의외로 흔한데, 가령 ‘高句麗’에서 ‘麗’ 자를 ‘려’가 아니라 ‘리’로 읽어야 맞다는 설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얼마 전에 노신이 이야기한 위진 시대의 한식산 유행과 관련해서 읽은 가와하라 히데키의 <독약은 입에 쓰다>에 나온 표기였다. 이 책에서는 ‘李大釗’를 ‘이대소’라고 적어 놓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오타인가 싶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釗’자에 ‘소’라는 음도 있는 건가 하는 새로운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생각난 김에, 이 문제를 확실하게 짚어보고 넘어가려고 굳이 쪽지에 적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직후에 며칠간 잊어버렸다가, 바깥양반의 질문을 받고 다시 생각난 것이다.

일단 ‘釗’자를 옥편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제일 간단한게 인터넷이었으므로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조’라고 입력했는데, 어쩐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번에는 ‘교’라고 입력했는데, 역시나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서 부수로 찾아보았더니... 네이버 한자사전에서는 ‘釗’를 “쇠 쇠; 볼 소”라는 두 가지 음으로만 읽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조’나 ‘교’라는 음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나도 좀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내가 정확하다고 자신했던 발음이 아니라, 오히려 오류라고 여겼던 발음이 알고 보니 진짜였으니까.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찾아보기 위해서 이번에는 집에 있는 옛날 옥편을 찾아보았더니, 여기에는 “힘쓸 소; 사람 이름 교; 쇠 쇠”로만 나와 있었다. 결국 ‘쇠’와 ‘소’와 ‘교’까지는 가능해도 ‘조’는 아니라는 거였다. 나중에 바깥양반이 도서관에 간다기에, 그럼 거기서 큰 한자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서너 권을 뒤져 보았는데도 ‘쇠’와 ‘소’와 ‘교’만 나와 있을 뿐이고 ‘조’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조’라는 글자가 등장하기는 하는데, 이건 한자음이 아니라 중국어 원음이 ‘조’, 또는 ‘자오’라는 의미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지금은 ‘李大釗’를 ‘리다자오’라고 표기하는 모양이었다. 한자음 표기로는 ‘이대조’보다도 오히려 ‘이대교’가 더 많았고, 가끔은 ‘이대소’나 ‘이대쇠’도 나왔다. 중국 관련 분야의 전문 논문을 보면 예전에는 그냥 李大釗라고 한자로 썼기 때문인지, 아예 한 논문에서 제목은 ‘이대교’로 나오고 본문은 ‘이대조’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중국 관련 분야 전공자들이 모이는 블로그에서도 ‘이대조’와 ‘이대교’와 ‘이대쇠’ 중에 어떤 것이 맞는지 물어본 사람이 있었지만, 의외로 시원한 답변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이쯤 되자 나로서도 정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李大釗가 ‘이대교’ 아닌 ‘이대조’라고 내가 확신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에 간행된 그 인물의 유일한 전기에 ‘이대조’라고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 책이 바로 모리스 메이스너의 <李大釗: 중국 사회주의의 기원>(권영빈 옮김, 지식산업사, 1991)인데, 비록 제목은 한자이지만 초판 본문에서는 한글로 ‘이대조’라고 적어 두었다. 번역자는 중국사를 전공한 언론인이며, 이미 <진독수 평전>을 비롯해서 중국 근대사 관련서를 여러 권 옮겼으므로 충분히 믿을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메이스너의 책 역자해설에서는 李大釗의 발음에 관한 설명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인터넷이며 사전이며 관련서에서도 ‘이대조’라는 표기를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반드시 그렇게 읽어야 하는 이유를 명기한 경우는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일본어 위키에서 李大釗 항목을 李大ショウ(리다이쇼우)라고 표기한 것이었다. 어째서 굳이 한자와 가타가나를 뒤섞어 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釗라는 단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충분히 혼란을 일으키는 단어라는 점이었다.

釗라는 단어가 골칫거리라는 사실은 인터넷 검색으로 우연히 발견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단서에서 잘 드러나 있었다. 그 단서란 루쉰의 <화개집>(홍석표 옮김, 선학사, 2005)에 수록된 “문득 떠오른 생각 (8)”이라는 잡문에 등장한다. 즉 루쉰의 생시인 1925년에만 해도 釗라는 단어를 몰라서 釘(정)이나 劍(검)이나 鈞(균)으로 오인한 사람이 중국에서도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루쉰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 釗라는 단어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놓진 않았지만, 마침 李大釗와 관련된 일화는 한 가지 소개하고 있다.

조곤이 총통을 하던 시대에 이대조(李大釗) 선생을 처벌하려고 국무회의 석상에서 한 각료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이름자를 보면 본분을 지키는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고많은 이름 가운데 굳이 이대검(李大劍)이라 하였을까?!’ 그리하여 처벌이 확정되었다. 왜냐하면 이 ‘대검’[큰 칼] 선생은 이미 이름자로써 스스로 ‘대도왕오’[청대의 유명한 협객 이름 /역자]와 같은 부류의 사람임을 실증한 것이기 때문이다. (79쪽)

결국 이 당시의 일부 중국인은 李大釗라는 이름을 제대로 읽지도 못할 만큼, 釗자는 중국에서도 드물게만 사용되는 글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루쉰도 이 글자는 “대개 사람 이름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78쪽)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한자사전에서 釗를 “사람이름 교”로 읽은 것이 오히려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 이름”이라는 설명이 없다면 모를까, 적어도 그런 설명이 있는 한에는 굳이 “쇠”나 “소”라고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터이니까.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조”라는 한자 발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여기까지 내가 알아낸 사실은 이러했다. (1) 현재 우리나라에서 李大釗라는 이름은 이대조, 이대교, 이대소, 이대쇠로 표기된다. (2) 사전에 따르면 釗의 우리말 한자음은 교, 소, 쇠이다. (3) 釗를 사람 이름으로 읽을 때에는 ‘교’로 읽으라는 설명이 있다. (4) 李大釗라는 이름을 일본에서는 李大ショウ(리다이쇼우)라고 읽는다. (5) 李大釗를 ‘이대조’로 쓰는 이유는 분명하지가 않다. 그렇다면 李大釗가 ‘이대조’로 표기된 것은 중국어 발음인 ‘리다자오’나 일본어 발음인 ‘리다이쇼우’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李大釗가 중국 발음으로 ‘리다자오’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釗의 발음을 굳이 찾아보지도 않은 채 ‘조’라고 표기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비록 희박해 보이지만) 李大ショウ의 표기법에 착안하여 李大釗에서 처음 두 글자는 한자어 발음으로 읽고, 마지막 글자는 중국어 발음으로 읽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건 더 희박해 보이지만) 누군가가 ‘이대교’라고 한글로 쓰면서 ‘교’ 자를 워낙 악필로 쓰다 보니 ‘조’로 오인되어서 그때부터 ‘이대조’로 정착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釗를 釣나 다른 한자와 혼동했을 수도 있다.

내가 나름대로 조사한 바로는 이런 몇 가지 가설이 최선이고,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떤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통인 한 선배에게 물어보았더니, 자기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한자사전을 보니 발음 색인에는 ‘조’ 항목에 釗가 들어 있더라고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釗의 본음 ‘조’를 한자음 ‘조’라고 착각했을 가능성도 제시될 수 있지만... 물론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어쩌면 李大釗를 ‘이대조’라고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중국에 사는 조선족은 李大釗를 어떻게 읽을까? 생각난 김에 연변대학출판부의 책을 편집만 다시 해서 간행한 몇 권의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영인본 <노신 선집>이 딱일 것 같았는데 색인이 없어서, 그 대신 청년사에서 나온 <중국당대문학사>와 <중국현대문학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전자에서는 ‘이대소’라고 나오고, 후자에서는 ‘이대교’라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면 나도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이제부터는 李大釗를 무조건 ‘리다자오’로 부르자고 작정하면서 말이다.

[*] 비슷한 사례로는 櫟翁稗說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이 있다. 보통은 "역옹패설"이라고 하지만, "낙옹비설"이라고 해야 맞다는 주장도 있다. 한자마다 음이 두 가지나 있기 때문에 벌어진 혼란인데, 더욱 당혹스러운 점은 이 책의 저자인 이제현이 그 서문에다가 櫟과 稗의 정확한 의미와 읽는 법을 설명해 놓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지금은 대부분 "역옹패설"로 통일된 모양이다.

이대조(李大釗)

하북성 당산(塘山)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3년부터 1917년까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북경대학교의 도서관 주임으로 근무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였고 볼셰비키와 소련을 지지한 최초의 중국 지식인이었다.

그는 많은 중국인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소개하고 진보적인 사상을 도입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는데 모택동에게 대학 도서관의 보조사서로 일하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도 바로 이대조이다. 이대조는 중국의 농민이 중국 혁명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았는데 그런 점에서 모택동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초기 사상의 뿌리는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5.4운동을 비롯 다른 무정부주의 운동의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특히 러시아 혁명으로 소련이 탄생하고 나서부터는 마르크스주의로 경도되었다.

1921년 이대조는 진독수(陳獨秀)와 함께 중국 공산당을 창립했는데 이때 비로소 사적이고 학문적인 성격의 공산주의 연구회에서 처음으로 중국 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있었던 중국 공산당 창당대회에는 모택동도 참가하였다. 진독수와 이대조의 지도아래 중국 공산당은 코민테른과의 협력관계를 키워갔으며 1922년 코민테른의 지시로 중국 국민당과 연계하게 되고 이것이 제1차 국공합작으로 이어졌다. 이대조는 1924년 개인자격으로 국민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손문의 사후 국민당 우파와 공산당, 코민테른과의 관계가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국민당의 정권을 잡은 장개석은 상해에서 4.12사건을 일으켜 대대적인 공산주의자 탄압에 나서게 된다. 4.12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공산주의자에 대한 무자비한 대학살이 벌어졌는데 이대조도 이때 북경에서 다른 공산당 동료 19명과 함께 체포되었고 4월 28일 군벌 장작림의 명령으로 처형되고 말았다.

http://blog.aladin.co.kr/budapest/5910613 나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