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베트남 영토분쟁

남중국해는 중국 남쪽과 인도차이나반도, 필리핀과 보르네오섬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말한다. 면적 230만㎢, 길이 3,000㎞, 너비 1,000㎞인 남중국해의 북쪽 끝은 대만해협이다. 남중국해에는 둥사(東沙․Pratas), 시사(西沙․Paracels), 중사(中沙․Macclesfield), 난사(南沙․Spratlys) 등 4개 군도가 산재해 있다. 남중국해에는 엄청난 자원이 묻혀있다. 원유는 2,220억 배럴이 매장(세계 4위 규모)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천연가스, 망간, 주석, 알루미늄도 대량 매장됐다. 이 지역은 풍부한 해산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전 세계 대형 유조선의 절반 이상이 통과하는 해상 교통의 요지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남중국해는 정치, 외교 및 군사, 경제적으로 전략적 요충지라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놓고 현재 중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회원들인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브루나이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은 과거 무력 충돌까지 벌인 적이 있다. 중국은 1974년 1월 베트남이 관할하던 시사군도의 일부 섬을 점령했다. 중국과 베트남은 또 1988년 3월 과 1998년 3월 각각 두 차례에 걸쳐 소규모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



중국-베트남, 남중국해 영유권 놓고 한치의 양보 없이 팽팽하게 대립

특히 시사군도와 난사군도를 놓고 중국과 베트남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티격태격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전진기지인 하이난다오에 핵 잠수함 기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앞으로 건조할 항공모함도 남중국해에 배치할 계획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의 해군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도 분쟁지역을 자국 영토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또 중국 국무원은 지난 1월 4일 자국의 하이난성과 인근의 시사군도를 향후 10년 내에 국제적인 관광지로 적극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 베트남을 자극했다. 중국 정부의 시사군도 관광지 개발 계획을 추진하는 이유는 시사군도를 자국의 영토로 확실하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중국 정부의 시사군도 개발 계획이 나오자 강력히 반발했다.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는 지난 1월 25일 남중국해에서의 국가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불법 국경침입을 단호하게 대처하는 방안을 담은 시행령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베트남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시사 군도와 난사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자국의 영유권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또 남중국해에서 점증하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킬로급 잠수함 6척(20억 달러 규모)과 SU-30MK2 전투기 12대(6억 달러 규모)를 구입키로 했다. 킬로급 잠수함은 길이 73.8m, 배수량 2350t, 최대 300m 깊이까지 잠수할 수 있고, 승조원 52명이 재보급 없이 45일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SU-30MK2도 러시아의 최신예 전투기이다. 베트남의 러시아제 무기구매는 베트남 전쟁 이후 35년 만에 최대 규모이다. 이로써 베트남은 러시아의 최대 무기 구매국이 됐다. 칼 타이어 호주국방과학연구소 교수는 '베트남이 중국에 맞서 러시아의 무기들을 도입하는 것은 매우 대담한 결정'이라면서 '앞으로 남중국해에서 미묘한 군사력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베트남은 지난해 5월 말레이시아와 공동으로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남중국해에서 200해리를 초과하는 대륙붕에 관한 경계 획정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베트남은 또 지난해 8월남중국해의 대륙붕을 관할하는 해군 특별전대(제2 해역사)를 발족시켰다.

러시아, 중국 VS 베트남의 남중국해 갈등 이용 어부지리로 원전 수주

중국과 베트남이 이처럼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주목할 점은 러시아가 상당한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에 비해 군사력이 약한 베트남은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부터 러시아제 무기로 무장해온 베트남 군은 다른 국가들의 무기를 선뜻 도입할 수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베트남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가 지난해 12월 15일 모스크바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양국 총리 회담을 갖고 러시아제 잠수함과 전투기를 비롯한 무기와 군사 장비 도입에 관한 양해 각서에 서명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러시아는 베트남에게 무기를 팔면서 또 하나의 이득도 챙겼다. 바로 베트남이 추진해온 원자력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이다. 양국 총리는 원전 건설에 관한 양해 각서에도 서명했다. 푸틴 총리는 오는 2020년까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베트남의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베트남 정부는 지난 2월 9일 오는 2014년부터 건설할 첫 원전(2,000㎿급)의 시공 회사로 러시아의 국영원자력공사인 로스아톰(Rosatom)을 선정했다. 이에 따라 로스아톰은 조만간 1단계 타당성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베트남의 첫 원전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그동안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베트남 국회는 지난해 11월 정부가 제출한 원전 건설계획안을 승인한 바 있다. 정부안은 중부 닌 투안성 등 두 곳에 모두 4기(4,000㎿)의 원전을 건설하는 것을 골자로 했으나, 국회는 예산 등을 이유로 이를 2,000㎿ 규모로 축소 승인했다.



러시아는 현재 중국과는 준(準)동맹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원전 수주라는 자국의 국익을 위해 베트남이 중국에 대항할 수 있도록 잠수함과 전투기를 판매한 것이다. 러시아의 전략에서 보듯이 국제사회에선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는 셈이다. 러시아로선 오히려 중국과 베트남이 남중국해 문제로 더욱 대립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일본, 베트남 원전수주 실패…공든 탑이 무너진 셈



러시아가 베트남의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함에 따라 가장 실망하고 당혹스런 입장에 빠진 국가는 일본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베트남 원전 수주에서 일본 패퇴, 러시아 획득'이라는 제목의 톱기사를 게재했다.(2월 9일자) 이 신문은 베트남 원전이 동남아 최초의 원전 건설 프로젝트였다면서 이 프로젝트의 1기 공사 수주 경쟁에서 도시바, 미쓰비시, 히타치 등이 참여한 일본의 컨소시엄이 로스아톰에 패배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원전 1기 공사의 사업비는 7,500억엔(약 9조7000억 원) 규모로, 2기 공사까지 합하면 1조5,000억엔(약 19조4, 000억 원)이다. 일본이 베트남 원전을 수주하지 못한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이유는 베트남에 엄청난 공을 들여온 것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그동안 베트남에 연간 10억불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를 제공하는 등 엄청난 구애 공세를 벌여왔다. 일본이 북부 하노이시와 남부 호치민시를 잇는 총 연장 1,560㎞에 달하는 남북 고속철도를 건설 사업(560억 달러 규모)을 수주한 것도 ODA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6～7일 도쿄에서 열린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등 메콩강 유역 5개국 정상과의 '일-메콩 정상회의'에서도 이들 국가에 향후 3년 간 5,000억엔(약 6조5,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일본은 2008년 12월 10번째로 베트남과 일종의 자유무역협정(FTA)인 경제연대협정(EPA)를 체결, 지난해부터 향후 10년 동안 양국 수입액의 92%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일본 기업들도 베트남을 아세안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연합(EU), 중동. 아프리카 지역 등에 대한 수출전진기지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시설의 대대적인 확충을 추진 중이다. 또 일본은 경제 분야 이외에도 정치.외교적으로도 베트남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는 당시 정상회의에서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를 따로 만나 일본 기업의 베트남 원전 수주에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일본 언론들이 분석하고 있는 베트남 원전 수주 패배의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일본 원전 기업들과 러시아 로스아톰은 기술력, 자금지원, 핵연료의 안정공급, 원전 운전을 위한 인재양성 협력 등 4가지 조건에서는 비슷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문제는 베트남이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본이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원전 건설과 군사협력을 패키지로 제시하지 못한 것이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일본이 이런 점을 알았다 해도 베트남에 무기와 군사 장비를 수출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평화헌법에 따라 일본 정부가 무기 수출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베트남에 엄청난 경제지원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무기 수출 금지라는 걸림돌 때문에 수주에 실패한 셈이다.



일본, 미국과 국가차원 원전 공동 수주 모색



이에 따라 일본은 앞으로 원전 수주를 위해 미국과 공동으로 나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도시바와 웨스팅하우스, 히타치와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미국과 일본의 민간 분야에선 이미 긴밀한 제휴 및 협력 관계가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 공동 수주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국가 차원의 협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조만간 워싱턴에서 원자력운영위원회를 열고 공동으로 원전을 수주하는 방안을 검토할 실무회의를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양국 정부가 앞으로 어떤 협력 방안을 논의할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이 일본 대신 무기 판매 또는 안보 보장 등을 약속하는 방안이 거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의 베트남 원전 수주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한 국가가 원전을 수주하려면 종합적인 전략과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 다른 국가와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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