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 황하(黃河) 유람

17년 전에 중국 서북부 영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의 수도 은천(銀川)에 있는 영하대학(寧夏大學)에서, 방문학자의 자격으로 공부한 적이 있다. 영하 지역은 봄철이면 한반도로 밀려오는 황사의 주요 진원지이며,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텅그리(騰格里: 몽고어로 일망무제의 하늘을 뜻한다.)’ 대사막이 있는 곳이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모래사막의 한 가운데 ‘은천’이라는 오아시스 도시가 있다. 은천은 이른바 ‘변새(邊塞) 지방 밖의 강남(江南)’이라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풍광이 수려하고 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구기자(拘杞子)의 집산지로 아주 유명하여 중국에서 생산되는 구기자는 대부분 영하 지역에서 나온다.

처음 은천에 도착했을 때 1년 강우량이 200㎜도 안 된다는 은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나의 궁금증은 얼마 후 황하에 가서 금방 풀렸다. 황하가 은천 지역에 이르러 실핏줄처럼 퍼져 그 광대한 사막에 생명수를 공급하고 있었다. 황하 덕분에 수량이 풍부하여 어떤 농작물을 심어도 언제나 대풍이 드는 것이다.

물만 공급되면 사막만큼 좋은 옥토가 없다는 것을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당시 영하 지역에서 본 황하는 강폭이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휘감고 도도하게 흐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하늘과 사막 그리고 황하가 수평선에서 만나 혼연일체를 이룬 모습은 이백(李白)의 유명한 시, <장진주(將進酒)> 중,

“그대는 모르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차게 흘러 바다로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하는 것을.(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라는 시구가 결코 과장만은 아니었다. 그 후 나는 이런저런 일로 산동성 제남(濟南)에 자주 갈 기회가 있었다. 제남도 황하가 만들어 낸 도시라는 얘기들 듣고 제남에 처음 갔을 때, 먼저 황하부터 가보았다. 제남에서 본 황하는 은천에서 본 황하와는 너무 달랐다. 우선 강폭이 넓고 물빛이 온통 누런빛이었다. 마치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고 강변에는 고운 모래 입자가 쌓여 충적토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다시 제남의 황하를 찾았을 때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제방 위를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는 데 황하가 사라져 버렸다. 이른바 ‘황하 단류(斷流)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천지 사방을 집어삼킬 듯 탕탕하게 흐르던 황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실개천만이 졸졸 흐르고 있는 것이다. 너무 놀라 함께 간 중국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몇 년에 한 번 씩 가끔 이런 단류 현상이 발생하는 데, 가뭄이 주된 원인이겠지만 중상류 지역에서 물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지.”

개혁, 개방 이래 황하 중상류 지역에 자리 잡은 도시들이 공업을 발전시키고 불모지를 개간하기 위하여 과도하게 황하의 물을 끌어 쓰는 까닭에 하류 지역에 위치한 도시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만약 황하가 여러 나라를 흐르는 강이었다면 전쟁이 일어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국 내에서도 각 성(省) 별로 황하의 물 배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황하를 ‘어머니 강(母親河)’이라 부른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자신을 희생했듯이, 황하는 중국문명을 낳았고 중국인들에게 풍요를 안겨주었으며 영원한 안식처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선조가 황하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신의 피부색마저도 황하의 색깔을 닮았다고 예찬한다. 하지만 황하는 상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재앙을 안겨준 ‘해하(害河)’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역사적으로 중국인이 겪어야 했던 고난들은 대부분 황하의 범람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황하의 발원지는 청해성(靑海省) 파안커라산(巴顔喀拉山)의 해발 4200m의 지점에 있는 작은 샘이다. 황하는 세계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청장고원(靑藏高原)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발원하여 청해, 사천, 감숙, 영하, 내몽고, 섬서, 산서, 하남, 산동 등 9개 성을 거쳐 황해로 흘러든다.

황하는 마치 중국대륙에 놓인 거대한 활 모양이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거침없이 흐른다. 전장(全長) 5464㎞, 유역면적 75만㎢, 40여 개의 주요 지류 강(江)과 1000여 개의 작은 천(川)이 황하로 유입되며 전 유역 연평균 강우량은 400㎜이다.

또 황하는 세계에서 함사량(含沙量)이 최대인 강이다. 한반도의 서해를 황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황하가 쏟아낸 황토물이 바다를 누렇게 물들였기 때문이다. 1919년부터 시작한 황하 토사량(土砂量) 조사의 통계에 의하면 매년 황하는 16억 톤 가량의 토사를 나르는데, 토사의 대부분이 화북평원(華北平原)에 쌓인다.

화북평원은 중국에서 동북대평원(東北大平原) 다음의 두 번째로 큰 평원이다. 그 범위로는 북쪽은 연산(燕山)에서 시작하고 서쪽 경계는 태행산(太行山) 동쪽 기슭이며, 서남쪽으로는 복우산(伏牛山)과 동백산(桐柏山) 그리고 대별산(大別山)에 이르며 동쪽으로는 산동성의 구릉 지대와 바다에 이르는 지역이다.

이 평원은 북경, 천진, 하북성, 하남성, 산동성, 안휘성, 강소성 등의 성시(省市)를 품고 있으며 총면적이 35만㎢에 달한다. 황하와 회하(淮河) 그리고 해하(海河)의 하류가 이 대평원을 지나고 있으므로 화북평원을 또 ‘황회해(黃淮海) 평원’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황하수리워원회(黃河水利委員會)의 결정에 의하면 황하 발원지부터 내몽고자치구 탁극탁현(托克托縣) 하구진(河口鎭)까지를 상류, 하구진에서 하남성 도화욕(桃花峪)까지를 중류, 도화욕부터 산동성 동영(東營)을 거쳐 발해만으로 들어가는 구간을 하류로 규정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상류지역의 황하는 산악지대를 관통하므로 물살이 세고 강폭이 좁다. 중류지역은 황토고원 지대이므로 황하가 이 지역을 통과하면서 강물이 누렇게 변한다. 상류와 중류지역에서는 황하가 험준한 산세와 고원의 물리적 구속을 받기 때문에 물길이 일정하다. 하지만 산악지대를 힘겹게 통과한 황하가 화북평원의 서쪽 끝이라 할 수 있는 정주에서 비로소 고도가 낮은 대평원을 만나므로 강폭이 넓어지고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며 평야지대를 관통한다. 역사적으로 황하의 범람은 대부분 하류지역에서 발생했다.

황하는 하남성 맹진(孟津)의 소랑저(小浪底) 댐 아래에서 비로소 산악지대를 벗어나 정주지역으로 들어온다. 황하가 하남성 경내에서 자연재해인 홍수로 인해 제방이 붕괴되어 범람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군사적 목적으로 제방을 트는 경우도 있었다. 1938년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는 일본군의 서진(西進)을 저지하기 위하여 정주 화원구(花園口)에서 황하의 제방을 터서 물길을 바꾸어놓자 하남성, 안휘성, 강소성 일대가 장장 9년 동안 범람했다.

황하가 범람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토사가 쌓여 부채꼴 모양의 거대한 충적층의 지형을 만들어놓았는데, 이를 ‘황하고도구(黃河故道區)’라고 칭한다. 이 충적층의 면적이 41,000㎢이며 하남성의 28개 현(縣)과 구(區)가 속해 있고 인구는 약 3천백만 명이다. 현재 이 지역은 사막화 현상이 나타나 농민들이 농산물 경작에 애를 먹고 있다. 지형의 특성상 황하가 이 지역을 흐르면서 물길을 멋대로 바꾸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제방의 위험과 변덕스러운 물길을 이른바 ‘두부허리(豆腐腰)’라고 표현했다.

내가 정주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이 정주를 통과하는 황하였다. 올 봄부터 여러 차례 갔다 왔는데 최근에 본 황하에 대해 소개하겠다.

11월 8일 오전 정주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황하풍경명승구(黃河風景名勝區)에 가는 16번 버스에 올라탔다. 차비는 5위안이다. 정주 시내 다른 지역에서도 16번 버스를 탈 수 있지만 서서 가야 하는 불편이 있으므로, 반드시 정주역 앞 버스정류장 종점에서 타라고 학생들이 일러준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올라 간지 1시간 만에 황하풍경명승구 입구에 도착했다.

망산(邙山)이 바로 눈앞에 있다. 망산은 낙양 북쪽에서 황하 남안(南岸)을 따라 정주까지 이어진 진령산맥(秦嶺山脈)의 끝자락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300m 밖에 안 되는 작은 산줄기다. 황하풍경명승구 입구의 망산은 높이가 50m 정도다. 산이라기보다는 구릉에 가깝다. 하지만 황하를 조망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입장료는 30위안,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거대한 석조 인물상이 보인다. 염황제(炎黃帝) 인물상이다.

이 인물상은 산 가운데를 통째로 절개하고 난 뒤 돌을 산처럼 쌓아 만든 세계 최대의 인물상이라고 한다. 염제와 황제는 이른바 ‘중화민족의 시조’라 한다. 이 지상 최대의 인물상은 하남성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여 만들었는데, 내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화교들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성지로 꾸며 놓았다.

동상 아래 광장에는 중국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들의 언어로 염황제를 찬양한 글귀를 새긴 금속판들이 보인다. 요즘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논리에 의하면, 염황제는 중국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의 시조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족도 ‘중화민족’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들을 보면서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훗날 중국인들이 한국인도 ‘중화민족’의 일파라고 주장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정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또 속국 소리나 듣고 사는 민족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망산에서 바란 본 황하는 하늘과 맞닿아 있어 끝을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은천의 상류 지역과 제남의 하류 지역의 황하보다 강폭이 넓고 수량이 풍부하다. 광장에는 벤츠 자동차 회사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한창이다. 아마 신차 출시를 앞두고 염황제 인물상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면서 염불을 하고 있다. 황하 강변으로 내려가 보았다. 선상 식당에서 민물고기 요리를 팔고 있다. 예전에 은천의 황하에서 수염이 팔자(八字)로 난 황하잉어를 먹어 본 적이 있다. 몸통이 어른 허벅지만큼 큰 물고기다. 하지만 정주의 황하에는 황하잉어가 거의 잡히지 않고 양식한 것을 판다고 한다.

11월 12일 황하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정주 시내 자형산(紫荊山) 공원 옆에 있는 황하박물관에 갔다.

관람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황하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자, 안내원이 얼른 키를 가지고 와 전시실 문을 열어준다. 전시실은 설렁했지만 황하에 대해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다양하게 설명해 놓았다.

1949년 이전까지 역사 기록에 의하면 황하 하류에서 제방이 터져 물난리가 난 적이 1500 차례, 청조(淸朝) 통치 267년 기간 동안 황하 유역에서 201 차례의 한발이 발생했다. 특히 1942년에 하남성, 안휘성, 하북성을 휩쓴 대한발 때 굶어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는데, 하남성에서만 3백만 명이 죽었다. 하지만 1949년 중국정부가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황하 유역에 많은 댐을 건설하여 치수 사업에 필사적으로 매진한 끝에 황하는 아직까지 더 이상 범람하지 않고 순한 강으로 변했다고 한다.

지금은 황하 유역에 식수 사업을 대규모로 벌여 토사 유출을 막는 게 가장 큰 역점 사업이라고 한다.

정주에서는 황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황하화원구(黃河花園口)다. 11월 13일 시내 화원로(花園路)에서 220번 버스를 타고 갔다. 차비는 1.5위안이다. 종점에 내리자 바로 황하 입구가 나온다.

입장료는 10위안이다. 황하 강변 도로에 심어놓은 리기다소나무들이 도시 공해에 지친 심신을 편하게 한다.

이곳은 황하풍경명승구에 비해 강폭이 좁다. 황하대교의 끝이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대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1938년에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일본군의 서진(西進)을 저지하기 위하여 제방을 폭파한 곳에 세운 기념비가 나온다. 문득 6. 25 때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하여 한강대교를 폭파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떠오른다. 지도자와 정부가 무능하면 무고한 국민들이 물귀신이 되는 것이다.

장개석 정부가 황하의 제방을 폭파하여 일본군의 침략을 막겠다고 했지만, 결국 아무런 효과도 없이 정주가 함락되고 시민들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