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Order입니다.

한국 내수시장에서 판매될 잡화품이지요. 수량은 몇 개 되지는 않지만, 품목은 꽤 다양합니다. 대분류(?)로 하면 시계, 가방, 천장에 다는 장식, 조화(造花), 저금통, 램프... 이전에 첫 번째 수출품은 섬유원단이었습니다. Invoice Value를 얼마 되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그 때는 제가 신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원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그러나 이번에는 제가 직접 챙겨야 했습니다. 잡화품은 제가 담당하니까....

절강성 의오시에는 제 회사의 일을 봐주는 업체가 있는데, 그 곳 L사장님을 저번 4월달에 한번 뵌 이래로 계속 전화, 채팅으로만 연락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단지 업무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남자들의 영원한 관심사 등을 서로 논하면서 아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두 번째 수출건을 검품하기 위한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동기로 인하여 기꺼이 의오시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저 빼고는 갈 사람도 없었지만.... 검품이라고 해봐야 별로 할 것도 없으려니 생각도 했고, 검품보다는 L사장님하고 한 잔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의오시는 한국경제신문에도 소개될 정도로 이제는 유명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원자탄 빼고 다 있을 정도로 큰 잡화 도매시장이지요. 인구가 15만 정도되는 도시라고 하는데 한국인이 무려 2천명이 상주한다고 합니다. 꽤 높은 비율입니다. 신문에서도 한국인들이 키워놓은 도시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들이 바글바글거리는 도시입니다.

상해에서 의오시를 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라, 먼저 상해에서 항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항주로 가면 그곳에서 의오시로 가는 차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상해에서 우리나라 버스회사(교통대우 交通大宇)의 깨끗하고 안락한 버스에 몸을 실고 고속도로를 1시간 반 정도 내달려서 항주에 도착...

강소성(江蘇省)의 소주(蘇州)와 절강성(浙江省)의 항주(杭州)가 중국미인의 고향이라고 하던데... 도착해 보니 완전히 허위 날조된 유언비어인 것 같습니다. 미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몽땅 쪼글쪼글한 아줌마들만 있어요.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 - 위에는 천당이 있고, 아래에는 항주와 소주가 있다)이라는 말도 부질없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몽땅 네모반듯한 빌딩뿐이군요. 좋은 곳은 아주 멀리 따로 떨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나중에라도 시간이 있으면 한번...

자, 이제 의오시로 가는 버스를 타야지. 저의 상해발 항주향 버스의 착지는 항주시 동부터미날이었는데, 항주발 의오향 버스를 타려면 남부터미날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행상인에게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이렇게 가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그가 시킨대로 열심히 가니까... 당연히 있어야 할 남부터미날이 없습니다 ! 그래서 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또 이렇게 이렇게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또 이렇게 이렇게 가니까 역시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동부터미날을 중심으로 사방 1 Km 정도 해메이다 반쯤 맥이 풀려서리... 게다가 날씨는 덥죠... 동부터미날 앞에서 조그마한 간이의자에 앉아 있는 아줌마한테 의오시 가는 버스가 어디서 서는지 혹시 아시냐고 여쭤보니... 바로 그 자리랍니다 ! 자기가 손님들을 모아서 인솔해 간다나요. 그러더니 바로 따라오라고 하면서 열심히 뛰어갑니다. 그나마 의오행 버스가 설자리가 마땅치 않다고 하면서 서지 않는 바람에 500미터 정도 부지런히 뛰어가서야 간신히 탈 수 있었습니다.

버스가 한 10분 정도 달린 것 같은데... 웬 큼직한 건물 앞에 버스가 서더니 안내군(안내양이 남자임)이 모두 내리랍니다. 뭣도 모르면서 따라 내렸는데 내리는 승객들에게 버스표를 나눠 주면서 5번 출구로 가라고 하는군요. 알고 보니 그 큼직한 건물이 바로 남부터미날이었어요. 저는 그 버스가 바로 중간에 서지 않고 의오시로 직행할 줄 알았는데, 그런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운행을 하는군요.

어이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전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동부터미날에 서지 않은 이우행 버스가 그냥 지나쳤더라면 동부터미날에서 별도로 남부터미날까지 가야 하는데, 그래도 지나가는 길에 이우에 갈 손님들을 태운 것 아닙니까 ? 물론 길을 엄하게 가르쳐 준 행상인들까지 고마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안내군이 나누어 준 버스표로 가지고 5번 출구에서 개찰한 다음에 다시 그 버스에 타고 그런대로 이우로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검품을 하러 창고로 나갔습니다. 창고가 주택가들이 다닥다닥 몰려 있는 동네에 있었습니다. 한 50평정도 되어 보이는 1층에 아가씨 4명(좀더 정확하게 해서 아가씨 3명에 아줌마 한 분)이 옹기종기 앉아서 열심히 검품을 하고 있습니다. 시계는 배터리를 껴서 알람이 제대로 울리는 지, 조화는 표면에 흠결은 없는지, 도자지 저금통은 어떤지, 가방은 어떤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가방 총 세 가지 모델 중에 두 개 모델은 반품입니다. 가방의 안감이 다 터져 있더군요.

시계는 총 4개 모델 중 한 개의 모델이 반품입니다. 애시당초 우리가 주문한 모델이 아닌데, 재고가 없다고 하면서 다른 모델을 납품한 것입니다.

저금통은 그런대로 봐줄만한 하긴 한데, 표면들이 모두 꺼칠꺼칠합니다. 거죽에 안료를 바를 때 먼지가 묻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걸 흠결사항으로 잡으면 100% 반품이 불가피할 것 같아서 그냥 납품하기로 하고...

천정에 매다는 방울은 제가 보기에 국내시장의 요구에 반영되기 어렵겠구나 싶은 디자인은 퇴짜 놓아서 50% 합격...

조화는... 헝겊으로 만든 꽃은 괜찮은데... 열매가 문제입니다. 줄기에 열매를 꽂으면서 꼭지가 어떤 것들은 위로 0.5mm이상 돌출해 있어요. 까짓 거 서울에서 가위로 자르면 되지....

그래서 이렇게 솎아 내고 저렇게 솎아 내고 하다보니... 음... 30% 정도가 퇴짜를 맞았습니다.

L사장님이 그러는데 싼 거 비지떡이랍니다. 의오시에서도 이보다 좋은 것을 찾아내자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답니다. 다만, 그 가격으로는 죽었다 깨다 안 된다고 하는군요. 이 물건들, 모두 국내에서 만원이 채 되지도 않는 금액에 팔릴 물건들입니다. 정말 싼 게 비지떡이네요. 품질 좋은 것을 원하면 돈을 더 내야 한다. 신문에서 떠들어대는 중국의 가격경쟁력이라는 것이 이 정도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광동에서 일하던 제 친구도 품질이 걱정되면 차라리 돈 더 주고 광동성에서 물건을 소싱하랍니다.

그러는 동안 L사장님은 그대로 열 잔뜩 받을 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지만, 사무실을 하나 예약을 했는데, 창고 딸린 사무실을 예약했는데, 정작 주인은 창고가 딸리지 않은 사무실을 예약한 것이라고 하면서 양쪽에 Trouble이 발생했다는군요. 그래서 L사장은 선금 천 위안을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사무실을 알아본다고 합니다. 아무리 부하직원이 실수로 엉터리 계약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일 이외에도 여러 가지로 열 받는 일들이 많다고 하는군요. 제품들이 하자가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하고, 또 한국에 있는 바이어들은 바이어들대로 사람 미치게 한다고 합니다. 어떤 어떤 품목에 관심이 있다, 알아봐 달라고 해놓고는 정작 알아봐 주면 연락이 없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아예 품목을 문구류, 신발류 하는 식으로 뭉뚱그리 제시하는 통에 이쪽에서 쩔쩔 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문구류도 노트, 필기구, 필통, 포스팃, 등등 다양하고 신발류도 테니스화도 있고, 런닝화도 있고, 골프화도 있고, 품목이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품목이 다양하다 보니 물건이 한꺼번에 납품되지 않고 띄엄띄엄 들어옵니다. 생산업체들이 서로 다른 회사이기 때문이지요. 이틀 동안 의오시에 체류하면서 그런대로 검품을 완료할 수는 있었지만 처음 간 날은 정말 골 잡았습니다.

물이 안 나와요 ! 물이...!!

온 동네가 단수랍니다. 따로 정수시설이 없기 때문에 옆 도시에서 수돗물을 사서 공급한다고 하는군요. 그나마 그 옆 도시가 물이 모자라면 아예 수돗물이 2-3일 동안 중단된다고 합니다. 흐미....

이 의오라는 도시가 너무 갑작스럽게 맵집이 불어나는 바람에 사회간접시설들이 제대로 따라와 주지 못 했다는 것이 L사장님의 변입니다. 그 덕에 그 비싼 생수로 샤워를 했지요. 물에 흠뻑 적신 수건으로 비누칠 안 하고 몸에 끈적끈적한 땀만 쓸어냈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날에는 물이 제대로 나와서 샤워를 할 수가 있었지요. 그래도 징그러운 생각이 지워지진 않았습니다.

16일 저녁 8시 반이 되서야 꿈에도 그리던 상해에 다시 오니 온 몸이 물에 풍덩 적신 솜 같습니다. 이제 막 심천에서 올라온, 2년 만에 보게 되는 대학동기를 만나기 위해, “세두, 휴식(洗頭, 休息)”이라는 글씨가 씌여진 창문 사이에서 저에게 손짓하는 아가씨들을 지나쳐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