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창슈에 자주 가시네요 !" "거래처가 있어서... 하지만, 너무 멀어요." "그래도 창슈 정도면 괜찮은 편이지요."
누군가 저를 기억해 준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요.
버스를 타려고 하자 게이트에서 제지를 합니다. 그러면서 무슨 이상하게 생긴 기계 - 무슨 레이저총 비스름하게 생긴 - 를 바라보고 잠깐동안 꼼짝 말라고 하는군요. 공란이 잔뜩 있는 종이 한 장을 주면서 공란을 채우라고 합니다. 그 종이위에 써진 내용인 즉슨...
이름, 성별, 주소, 연락처, 목적지, 시간, 열있나 ? 기침하나 ? 최근에 SARS환자에 접촉하거나 가까이 있었던 적이 있는가 ? -> 마지막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사람은 당연히 없죠...
등등의 질문이었습니다.
공란에 기입하고 나서 버스를 타려는데, 제 앞전에 있던 아저씨하고 검표원이 실랑이를 벌입니다. 제가 기입했던 바로 그 서류를, 그 아저씨가 기입을 안 했던 모양입니다. 버스에 타고 나서 하겠다고 하지만, 끝내 게이트로 다시 쫓겨났습니다. 작성을 하지 않으면 절대 못 태운다고 하면서....
버스에 타니까, 또 서류를 가지고 옵니다. 이번 것은 아까 것보다 더 규격이 큰 종이인데, 내용은 대동소이하군요. 다 작성하니까 검표원이 일일이 다 수거를 합니다.
버스 안을 한번 훑어보니 승객이 평소에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버스 안이 텅 비어 있는 것 같군요.
버스가 출발하자니 터미날 입구에서 잡히는군요. 입구 경비원이 서류의 작성여부를 점검하고 나서야 버스가 나갈 수 있었습니다.
창슈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가는 길에 주변 풍경은 물끄러미 봤습니다. 밖의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이곳 남부지역은 물이 아주 많습니다. 강폭이 좁기는 하지만, 충분히 깊기 때문에 Barge선(항국에서 하역된 화물을 강이나 하천을 통해 내륙도시까지 운송하는 작은 배. 이런 류의 운송은 Europe의 Rhine강이 특히 유명함)들이 내륙의 농촌마을까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가랑비가 촉촉히 내리면서 안개가 끼어있고, Barge선들이 한가로이 정박되어 있는 모습이 주변의 농촌풍경에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 같이 느껴집니다.
상숙의 거래처에 도착하니 담당자들이 반갑게 맞아주는군요. 교포과장님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법원에 계류 중인 일이 있어서 어찌 되어가냐고 여쭤 보니까 아직까지 진전이 전혀 없다고 하십니다. SARS때문에 재판일정도 늦어지고 있다고 하시는군요.
SARS에 걸린 사람은 보기 힘든데도 막연한 불안심리에 사람들이 얼어있다고 그동안 생각해 왔었는데, 그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그것도 한 때나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SARS 그 자체보다는 엄격한 방역조치가 오히려 중국인들의 실생활에 더 많은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 같군요.
한국에서 파견된 대리님은 최근에 아메리카에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화물들을 항국에서 잡고 있다고 그럽니다. 혹시나 SARS균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눈군요. 거의 모든 화물들이 한 달 가까이 잡혀있다고 합니다.
참 기가 막힙니다. 이곳 현지사정은 그 누구보다도 양키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언론보도망에, 현지에서 사귄 중국인들, 유학생들, 주재원들, 대사관에... 거기에 몰려 뿌려놓은 007까지... 민관협조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남일에 유난히도 관심많고 주제넘게 간섭하기 좋아하는 양키들의 특성을 생각해 봤을 때, SARS가 북경, 광동지역 이외에 다른 지역에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을텐데...
돌아올 때는 여느 때와 같이 중국의 토속버스를 탔는데, 타자마자 여지없이 종이쪽지를 디밉니다. 공란을 채우라는군요.
톨게이트에 도착하니 훨씬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귀밑까지 완전히 덮는 하얀, 무어냐 ? 하여간 수술실에서 의사, 간호사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하얀 까운을 걸치고, 마스크가 안면을 완전히 가려서 눈만 빼꼼하니 나온... 한마디로 살벌한 모양새를 한 의료요원 한 사람이 버스에 올라타서 승객들마다 아까 올 때 버스터미날에서 보았던 전자총으로 쏩니다. 움직이지 말라고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일일이 쏘네요.
그 일을 끝내고 나서는 승객들이 작성한 카드를 수거해서는 간단한 검토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몇 분 정도 지나자 다시 돌아와서는 일부 승객들을 호명합니다. 순간 분위기가 다시 한번 썰렁 ~... 그 의료요원 대뜸 하는 소리가...
"상해가 얼마나 큰 도시인데... 목적지를 이렇게 '상해'라고만 달랑 적어놓으면 어쩝니까 ?!?! 구체적으로 적어요 !!!"
의료요원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상해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반... 터미날에서 택시를 잡아타니 손잡이가 축축하게 젖어있을 정도로 소독약이 뿌려져 있군요 !
일과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주변에서 한 마디씩 농담을 던집니다.
"어라 ! 격리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셨네요..."
이곳 상해는 SARS를 주제로 해서 농담이 나올 정도로 평온합니다. 제가 상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쁘구요.
저번에 어디선가 본 것인데 북경과 광동지역 사이에 끼어 있고, 유동인구가 유난히도 많은 상해가 정작 SARS가 창궐하지 않는 이유로 상해 특유의 개방성에 있다고 분석한 기사가 생각나는군요.
항구 특유의 개방성이 행정의 투명성을 유도했고, 행정의 투명성이 SARS가 창궐한 가능성을 원천봉쇄했다는 것이지요. 북경은 항구가 아닌 성곽에 둘러쳐진 도시의 특성으로 인해 폐쇄적이고, 폐쇄적인 행정시스템으로 말미암아 SARS를 초기에 제압할 수 있는 적기를 놓쳤다는 논리입니다.
2004-05-13 1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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