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벌써 3개월이 다 되어 가는군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명심하고, 또 명심해도, 부질없는 욕심, 괜한 초조감에 첫술에 배부르기를 자꾸 바라게 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의 학교선배님들이 자기 돈 털어 넣어서 세우고 운영하는 회사이니 비록 제 돈은 땡전 한 푼 들어가지는 않아도, 밥 한 숟가락 입에 집어넣고, 똥 한 덩어리 변기 속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모두 부담, 그 자체입니다.

그간 온 사방 찔러댔습니다. Buyer 좀 소개해 주라, 중국에서 Sourcing할 물건이 있으면 이야기 좀 해주라,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신통치 않은 물건이 있으면 이야기해라, 공급해 주겠다, 우리한테 이런 물건이 있다, 흥미가 당기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애걸 반, 애원 반 해가면서 건수 제법 올렸습니다. 여기저기서 Inquiry가 들어옵니다. 관상용 붕어사료, 컴퓨터 주변기기, 양말, 꽃종자 등등...

그나마 한국과 중국에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인연이 분들에게 틈있을 때마다 전화연락이라도 해서 안부도 좀 묻고, 지나가는 길에 그냥 지나치지 않은 덕이지요. 하지만, 그래도 거래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어요.

Inquiry를 제일 부지런히 던져주는 것이 한국에 있는 제 옛 직장동료인데, 아는 사람들끼리 출자를 해서 베네주엘라에 무역회사를 차렸답니다. 하지만, 꼭 베네주엘라로 가는 물건 말고도 이것저것 열심히 캐고(?) 있지요. 하지만 제대로 엮어지는 것은 없어요.

거의 대부분 바이어(최종구매자)가 툭 ! 던지는 Inquiry를 잽싸게 주워다가 저에게 다시 던집니다. 그럼 저는 온사방팔방에다 전화하고 인터넷을 뒤져서는 해당 품목의 생산자를 찾아내지요. 이런 식으로 거의 손에 들어온다 싶었는데 그냥 허무하게 날아 가버린 것이 이번 달에만 두 번입니다. 그래도 이번 달은 확실한 매듭이라는 것이 있지만 가격오퍼하고 나서 영영 소식없는 것들이 어디 한 둘인가요 ?

한번은 인조가죽 구두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그래서 열나 뒤졌지요.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평소에 제가 들락날락하던 세계무역상성(世界貿易商城)에 무역사무소들이 잔뜩 몰려 있는데 그 중 한군데를 잡았습니다.

절강성(浙江省) 온주시(溫洲市)에 구두공장에 몰려있다고 하던데, 그 중 하나였습니다. 담당직원도 아주 친절했지요. 그래서 우선 어떤 구두가 있는지 샘플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래픽 파일이지요. 메신저를 오픈해 놓을테니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우선 그래픽 파일을 바이어에게 보내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라고 한 다음 가격협상에 들어갈 요량이었습니다.

보내준 샘플사진이 족히 200개는 됐습니다. 흥분되는 마음으로 바이어에게 발송하니 그 다음날 바이어가 어느 디자인 몇 개, 몇 개하는 식으로 답장이 왔습니다. 그래서 가격협상에 들어가려니까... 참내...

두 개 모델만 빼고 나머지는 생산을 하려면 생산설비를 새로이 셋팅을 해야된다나요. 그러니 모델당 최소한 만 켤레는 주문해야 한다고 하는군요. 바이어는 총 10개 모델에 2000켤레를 주문했는데...

생산이 제대로 될지 안 될지 제대로 확인도 안 해보고, 무조건 샘플사진이랍시고 보낸, 참 친절하고 성실해 보이지만 띨팍한 구두공장 무역담당자... (그리고 급한 마음에 그 한 사람의 말만 굴뚝같이 믿고 바이어한테 샘플사진을 송부한 저도...) 하기사 우리말고도 바이어가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 우리 같은 소량주문자들은 눈에나 차겠습니까 ? 그 젊은 바이어는 성심성의껏 우리를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 친구의 사장님은 생각이 다를 수가 있지요.

말이 더 필요없지요. 그냥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마우스... 이 건은 국내시장에 유통될 목적이었습니다.

마우스라... 그래도 소시적에 한 컴퓨터하고 노트북만 다섯 번이나 갈아 치운 관록의 허행민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컴퓨터회사 좋은 일만 해준 셈이지요. 삼성, 대우, IBM, 컴팩... 이 회사들 성장한 것도 제 덕 무시못할 겁니다)

컴퓨터와 관련된 제품이니 더욱 흥미가 땡겼고, 거기에 이 친구, 평소처럼 야 급해, 빨리.. 하며 다그쳐대는 통에 서가회(徐家匯)거리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 컴퓨터와 주변기기 매장들이 모여 있거든요. 우리나라치면 용산전자상가인 셈이지요.

마우스, 마우스... 뒤지고, 뒤지고, 또 뒤져서 회사 몇 군데를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들이 모두 광동성(廣東省)에 위치한 회사더군요. 그 중 두 군데에 전화를 하니 한 회사가 제 시간에 가격표를 보내왔습니다. 샘플 그림은 그 회사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해서 이렇게, 저렇게 가격표를 다시 정리해서 한국에 있는 바이어(친구)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이번에는 가격이 턱없이 높다고 하는군요. 이래저래 한숨만 팍! 팍! 나옵니다.

종쳤구나 싶었는데, 그 다음날 다시 연락이 옵니다. 자기가 시장에서 알아봤던 것들은 정말 초저가의 제품들이고, 제가 보내준 제품(샘플사진)들이 가격도 적당한 것 같고, 디자인도 다양해서 아주 좋다고 하는군요. 결제문제를 논의하잡니다. 주문량도 곧 파악해 주겠다고 하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마다했습니다. 예전에 선배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선배님은 지금은 섬유원단을 취급하고 계시지만, 예전에는 가전제품을 취급했다고 하시는군요. 그런데 제품을 공급한 제조업자가 광동성에 있었다고 합니다.

선배님은 제품이 출고하는 날 반드시 그 공장에 가셔서 제품을 아무거나 무작위로 추출해서 품질검사를 손수 하셨답니다. 혹시 제품에 하자가 없는지... 그리고 컨테이너에 들어가는 물건들이 주문한 그 수량이 정확하게 들어가는지도 일일이 확인하셨다고 하는군요. 그런 식으로 일곱 번 무사히 수출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여덟 번째에... 갑자기 스케줄이 엉키는 바람에 공장에 안 가셨답니다. 물론 벌써 여덟 번째 출고고 하니 별 일없으리라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물건이 인도되고 나서 분노한 바이어의 연락을 받았다고 하시는군요. 몽땅 불량품이랍니다. 그 광동성 제조업자는 선배가 출고현장에 오질 못하니까 이때다 하고 그동안 처분 못하고 창고에 쌓여있던 불량품을 몽땅 처분해 버린 것입니다. 흐미....

그래도 선배님은 대단하신 분입니다. 일곱 번 수출하면서 쌓인 돈이 있었을테니 그 돈으로 어떻게 대충 떼우셨겠지요.(속된 말 다 까먹었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안목입니다. 중국인들은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나요 ? 제품이 출고할 때 그 자리에 없었던 자기 탓으로 돌리십니다. 하긴 그 정도로 대범하시니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신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현금거래에 온 열정을 쏟고 계십니다. 물건을 직접 전달하면서 왼손에는 물건, 오른손은 수입자의 코앞에 펼쳐 보인다는군요. “돈 내놔...”

하지만 전 그렇지가 못해요. 선배님은 일곱 번 성공하고 마지막 여덟 번째에 당하신 것이지만, 저는 여차하면 첫 빵에 케이오되기 딱 ! 좋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금이 있습니까 ? 그렇다고 제품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습니까 ?

40피트짜리 콘테이너 두어개 정도의 주문량이면 제가 광동성에 내려가서 제품출고를 직접 관리할 수도 있습니다. 마우스 품질검사라야 제가 노트북에 직접 꼽아서 요리조리 굴려도 보고, 클릭도 해보고... 몇 만번이나 클릭할 수 있는지 테스팅하는 것도 있다지만 어느 소비자 클릭할 때마다 한번, 두 번, 세 번 하면서 세어보겠습니까 ? 수량이나 제가 제품출고할 때 한 박스, 두 박스 직접 세어보면 되는 일이고...

하지만, 국내내수가 침체되어 있다는 감안하면 극히 소량일 것이 뻔합니다. 그럼 제 수중에 떨어지는 돈이라고 해봐야... 제품출고 관리한답시고 상해에서 광동성까지 이동하고, 거기서 하룻밤 묵으면서 자고, 먹고 하면... 결국 비용으로 다 까먹을 뿐만 아니라 그 마저도 상쇄못할 것이 뻔하지요.

협의를 더 해야 되겠지만 선금 30%를 달라니.... 왜냐하면 물건을 기껏 만들어서 내보려고 할 때, 혹은 물건이 수입지에 도착했을 때 바이어가 물건인수를 거부하면 안되기 때문에 미리 일부 돈을 선금으로 받지요. 만약 물건 인수를 거부하게 되면 그 선금은 그대로 수출자의 몫이 됩니다. 그러니 바이어의 입장에서는 저울질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선금을 포기할 때의 손실과 물건을 그냥 받아들일 때의 손실(그러니까 계절적인 요인이나 시장상황의 변화에 따라 판매가 잘 안될 경우의 손실)을 저울질하게 되지요. 하지만 그건 남미의 바이어들한테 하는 관행인데... 물론 그 제조업체에서 보내온 가격표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바이어들에게 뿌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하여간 이래저래 앞뒤좌우를 재보니...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판단이 됐어요. 그래서 결국 보류...

이번 주는 한국에서 손님이 세 분 오셨습니다. 두 분 모두 현업하고 관련이 없으신 분입니다. 인맥이지요. 화요일에 오신 손님 두 분은 사장님께서 한국에서 사업하실 때 알고 지내신 분들이랍니다. 그 분들은 전광판 사업을 하시는데 상해의 전광판을 보고 싶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가이드를 부탁하셨어요. 하지만 그 분들 오시는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지요. 그래도 저는 하면 합니다. 오시는 한 분, 한 분 소중히 모셔야지요.

그 분들 가이드를 하고 나니 온 몸이 물에 풍덩 솜뭉치마냥 추-욱 쳐지는 기분이군요. 그 와중에 위에 두 건도 날아가고...

언제간 꽃 필날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