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까지만 하더라도 SARS문제에 관해서 이곳 상해는 거의 무풍지대로 보였습니다. 거리는 평온했고 SARS가 창궐하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외국언론으로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부터 슬슬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는군요. 월요일부터 화요일 사이에 출근길에 마스크를 한 사람을 한 세 명 정도 보았는데, 수요일 아침에 갑자기 건물관리실장이 사무실마다 방문하면서 주의를 당부합니다. 앞으로 당 빌딩으로 오는 모든 택배, 소포, 그밖에 화물에 대해서는 1층 로비에서 우선적으로 검역을 실시할 거라고 하는군요.
그 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보니 제가 있는 빌딩 벽면에 SARS에 관한 포스터가 붙어 있더군요. 환풍에 신경써라, 외출 후에 반드시 씻을 것 등등.... 그걸 보면서도 별로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거리의 사람들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제가 매일 같이 한국언론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면서 본 바로 그 장면은 볼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 다음날 여직원 하나가 마스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저에게 하나 주는군요. 쓰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장난스럽게 그 마스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삼성전자에 A/S를 받으러 갔습니다.
상해는 최첨단이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교통이 불편합니다. 지하철은 아주 단조로워서 우리나라하고하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니.... 상해의 교통은 오직 자전거하고 자가용에만 맞추어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회사에서 버스를 타고 인민광장(상해의 중심지)에 간 다음에, 다시 전철로 갈아탔습니다.
타고 보니 정말 SARS가 제 곁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승객들 중 절반은 마스크를 했더군요. 오싹한 기분입니다. SARS를 예방하기 위해서 통풍에 신경 쓰라더니... 환기가 잘 안 되는 지하철 안에서는 상해시민들도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와서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북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전화를 했으니 됐고, 상해와 천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들의 안부도 걱정되고, 이럴 때일수록 별일 없는지 연락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하니, 사람들의 반응도 중구난방입니다. 상해에서 섬유업에 종사하는 선배님한테 전화를 하니, 절강성에 가는 기차 안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조심하라고, 마스크는 썼냐고 물으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안 했는데, 자기 혼자만 하면 어쩌냐고 오히려 묻습니다.
다른 학교선배님에게도 전화를 했습니다. 그 분은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상해는 별 일 없는 것 같으니 안심해도 되지 않겠느냐 말씀드렸더니, 상해인구가 1천 7칠백만이다, 유동인구가 엄청 많은 지역이다, 없을 리가 없다, 당국에서 사실대로 발표를 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시는군요. 그 말씀 들으니 기분 썰렁합니다.
또 다른 선배님께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분은 세계 유수의 물류업체에 근무하시는 분인데, 현지직원만 9백명입니다. 그 분의 말씀은 또 달랐습니다. 요새 들어 상해시에서도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긴 하지만 언론의 호들갑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불안심리 확산이 SARS보다 더 큰 문제라고 하시는군요.
어떤 이는 지금 권력의 중심이 상해방(상해출신 정치인)이고, 또 북경, 광동지역에 이어 상해마저 SARS로 인하여 오염되었다는 식으로 외신을 타면, 중국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상해지역만큼은 절대 비밀로 부치고 있다고 합니다.
북경지역에 주재원으로 파견나와 있는 동문은 이미 가족들을 일시 귀국시켰다고 합니다.
천진에 있는 주재원은 자기도 들은 이야기인데 천진의 뭐 대학은 일종의 폐쇄조치를 취했다고 하는군요. 학생들로 하여금 외부로 나가지 말 것, 일단 나가면 다시는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았다고 합니다. 일단, 나가면 자퇴로 간주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 안에 콕 ! 박혀서는 옴싹달싹 안하고 있다네요. 들은 본 것 중 제일 썰렁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양키언론 Time지의 내용이 다 사실이라고 그럽니다.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천진에서 아주 가깝게 지냈던 동문에게 전화를 하니, 그럽니다. 사스 환자들이 많다고 떠들기나 했지 이 나라 인구가 무려 14억이나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안 하고 있다, 걸린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사스에 걸릴 확률도, 걸려서 죽을 확률도 로또복권 당첨될 확률보다 훨씬 낮다고 그럽니다. 한 마디로 중구난방입니다. 어떤 사람은 소문과 외신보도에 바싹 쫄아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천하태평이고...
여느 때와 같이 이번 주 금요일에도 특식을 먹기로 결정했습니다. 특식메뉴는 핏자로 결정했고요. 핏자헛에 가니까 종업원들이 모두 마스크를 했군요. 핏자에 정신이 팔려 있는 손님들과 마스크를 쓰고 서빙하는 종업원들...
2004-05-13 12: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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