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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식열전-2000년을 앞선 중상주의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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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000年을 前한 重商主義


사학과 20040255 정충근


1. 사마천의 사후 2000년 이후의 중상주의

2. 입고 먹는 것이 다스림의 근원이다.

3.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

4. 물건과 돈은 흐르는 물처럼 유통시켜야 한다.

5. 시세의 변동에 따라 새처럼 민첩하게 사고 팔아라.

6. 부귀해지려는 몸부림

7. 부를 얻는 데는 상업이 최고이다.

8. 사마천의 상업적 인식과 그 한계




1. 사마천의 사후 2000년 이후의 중상주의


우리가 친숙하게 알 고 있는 重商主義라는 말은 유럽에서 통용되던 것으로, 유럽이라는 한 대륙이 상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시기는 15세기 말부터 시작된 地理上-發見, geographical discoveries 이후로 절대왕정의 시기에 그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리고 근대자본주의가 산업혁명에 의해 지배를 확립하기까지의 초기 단계에서 원시적 축적을 수행하는 데 사용된 여러 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이론체계로서 重商主義를 내걸었다.

重商主義 理論은 국가 전체의 번영을 증대시키기 위한 정부의 직접적인 간섭을 강조하는 이론으로 단순히 무역차액이나 산업보호라는 관점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국내시장 확대와 자본축적이라는 관점에서 有効需要의 분석에도 진전을 보여 마침내는 화폐경제이론의 초기적 체계를 완성시켰으며, 한편으로는 고전학파의 前史로서는 W.페티의 노동가치설이나 D.데포의 自由貿易론까지 포함하고 있다. 부르봉 절대왕정 하에서의 프랑스의 중상주의 정책은 산업 ·무역통제로 유명한 콜베르의 이름을 따 콜베르티슴이라고 하며, 神聖로마제국에 속하였던 18세기 독일의 여러 領邦의 재정정책은 官房主義라는 형태를 가진 절대주의적 중상주의 체계 하에 있었다.


2. 입고 먹는 것이 다스림의 근원이다.


老子는 이렇게 말했다.


지극히 잘 다스려지는 시대는 이웃 나라끼리 바라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음식을 달게 먹,고 자기 나라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자기 나라의 습속을 편히 여기고, 자신들의 일을 즐기며,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1)


이에 태사공은 “神農씨 이전의 일은 알지 못하지만 詩經과 書經에서 말하는 우나 하나라 이래의 것을 보면, 귀와 눈은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즐기려고 하고 입은 소와 양 따위의 좋은 맛은 다 보려 하며, 몸은 편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마음은 권세와 유능하다는 영예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풍속은 백성들의 마음속까지 파고든지 오래다. 그러므로 老子의 玄妙한 이론이라도 백성을 교화시킬 수 없다”라 하였다.

그리고 사마천은 “최선의 방법으로 자연스러움을 따르고(그들의 심성을 그대로 존중하고), 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이끌고, 그 다음은 백성을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또 그 다음은 백성들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고, 강제로 백성을 규제하는 것은 이 보다 못하지만 가장 정치를 못하는 사람은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사마천이 노자의 小國寡民論2)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하고 道를 내세워 無爲自然을 주장하지만 이는 결국 백성의 귀와 눈을 막는 것이라고 폄하였다.


3.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


이전에 태공망이 영구에 봉해졌을 때 그곳 땅은 소금기가 많고 백성들이 적었다. 그래서 태공만은 부녀자들의 길쌈을 장려하여 기술을 높이고 또 각지로 생선과 소금을 유통시켰다. 그러자 사람과 물건이 돌아왔으며, 줄을 지어 잇달아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제나라는 천하에 관ㆍ띠ㆍ옷ㆍ신을 공급하였고, 동해와 태산 사이의 제후들은 옷과 관을 바로하고 제나라로 가서 조회하였다. 이리하여 제나라의 부강함은 威王과 宣王의 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고 한 것이다. 예라는 것은 재산이 있는데서 생겨나고 없는 데서는 사라진다. 그런 까닭에 군자가 부유하면 덕을 실천하기를 즐겨하고, 소인이 부유하면 자신의 능력에 닿는 일을 한다. 못은 깊어야 고기가 있고, 산은 깊어야 짐승이 오가며, 사람은 부유해야 인의가 따른다. 부유한 사람이 세력을 얻게 되면 세상에 더욱 드러나게 되고, 세력을 잃으면 빈객들이 갈 곳이 없어져 따르지 않는다.

속담에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빈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익을 위해 기꺼이 모여들고, 모두 이익을 위해 분명히 떠난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마천 본인이 궁형을 당하였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다.


4. 물건과 돈은 흐르는 물처럼 유통시켜야 한다.


옛날 월나라 왕 구천은 회계산에서 고통을 겪으면서 范蠡와 計然을 기용했다. 計然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있을 것을 알면 미리 방비를 해야 하고, 때와 쓰임을 알면 그대 필요한 물건을 알게 됩니다.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알면 모든 재물의 실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성(歲星)이 서쪽에 있으면 풍년이 들고, 북쪽에 있으면 수해가 발생하며, 동쪽에 있으면 기근이 들고, 남쪽에 있으면 가뭄이 듭니다. 가뭄이 든 해에는 미리 배를 준비해 두고, 수해가 있는 해에는 미리 수레를 준비해 두는 것이 사물의 이치입니다. 6년마다 한차례 풍년이 들고, 6년마다 한차례 가뭄이 들며, 12년마다 한차례 흉년이 듭니다. 쌀값이 한말에 20전이면 농민이 고통을 받고, 90전이면 반대로 상인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상인들이 고통을 받으면 상품이 유통되지 않고, 농민이 고통을 받으면 논밭이 황폐해집니다. 쌀값이 비싸도 80전을 넘지 않고, 싸도 30전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하면 농민과 상인 다 함께 이롭습니다. 쌀값을 안정시키고 물자를 고르게 유통시켜 관문이나 시장에 물건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길입니다. 물자를 축적하는 원칙은 물건을 온전한 채로 보존하는 데 힘써야 하는 것이지 물화를 오래 쌓아 두는 것이 아니며, 물자는 서로 교환하고, 상하기 쉬운 것을 팔지 않고 남겨두어서는 안 되며, 또 비싼 것을 오래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물건이 남아도는지 모자라는지를 알면, 그것이 귀한지 천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비쌀 대로 비싸지면 헐값으로 돌아오고, 쌀 대로 싸지면 비싼 값으로 되돌아갑니다. 비싼 물건은 오물을 배설하듯이 내다 팔고, 싼 물건은 구슬을 손에 넣듯이 사들입니다. 물건과 돈은 흐르는 물처럼 원활하게 유통시켜야 합니다.3)


이러한 것을 실천에 옮긴 지 10년이 되니, 나라는 부강해지고 병사들은 많은 상을 받게 되었다. 병사들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얻는 것처럼 적군의 화살과 돌을 향해 용맹스럽게 달려 나가게 되었고, 드디어 강한 오나라에 복수하여 중국에 병력을 떨치고 오패로 불리게 되었다.


5. 시세의 변동에 따라 새처럼 민첩하게 사고 팔아라.


白圭는 주나라 사람이다. 魏文侯 때, 李克은 토지의 생산력을 발휘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였으나, 백규는 시세의 변동을 살피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백규는 사람들이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때는 사들이고, 세상 사람들이 사들일 때는 팔아 넘겼다. 풍년이 들면 곡식은 사들이고 실과 옻은 팔았으며, [흉년이 들어] 누에고치가 나돌면 비단과 풀솜을 사들이고 곡식을 내다 팔았다. 태음이 동쪽에 있는 해는 풍년이 들지만, 그 이듬해는 흉년이 든다. 또 남쪽에 있는 해는 가물고, 그 이듬해에는 풍년이 든다. 서쪽에 있는 해는 풍년이 들고 그 이듬해에는 흉년이 든다. 북쪽에 있는 해는 크게 가물고, 그 이듬해에는 흉년이 든다. 그리고 홍수가 나는 해가 있으면 태음이 다시 동쪽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백규는 풍년과 흉년이 순환하는 것을 살펴 사고팔았으므로 해마다 물건을 사재기하는 것이 배로 늘어났다. 돈을 불리려면 값싼 곡식을 사들이고, 수확을 늘리려면 좋은 종자를 샀다. 거친 음식을 달게 먹고, 하고 싶은 것을 억눌렀으며, 옷을 검소하게 입고, 노복들과 고통을 함께 했으며, 시기를 보아 나아가는 것은 마치 사나운 짐승이나 새처럼 빨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산업을 운영할 때 마치 伊尹과 呂尙이 계책을 꾀하고, 孫子와 吳子가 군사를 쓰고, 商鞅이 법을 시행하는 것과 같이 한다. 그런 까닭에 임기응변하는 지혜가 없거나 일을 결단하는 용기가 없거나 주고받는 어짊이 없거나 지킬 바를 끝까지 지킬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내 방법을 배우고 싶어도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겠다.


대체로 천하에서 사업하는 방법을 말하는 사람들은 백규를 그 원조로 보았다. 백규는 직접 시험을 해보았고, 남보다 뛰어났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이것은 아무렇게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猗頓은 염전을 팔아 귀하게 되었고, 한단의 郭縱은 철광 제련으로 성공하였는데, 그들은 王者와 어깨를 겨룰 만큼 부유했다.


6. 부귀해지려는 몸부림


이러한 이치로 볼 때, 어진 사람이 묘당에서 도모하고 조정에서 논의하며 신의를 지켜 절개에 죽고,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가 높은 명성을 얻으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부귀로 귀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렴한 벼슬아치도 시간이 오래 되면 더욱 부유해지고, 공정한 장사꾼도 마침내 부유해진다. 부라는 것은 사람의 타고 난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얻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건장한 병사가 전쟁에서 성을 공격할 때 먼저 오르고 적진을 점령하여 적군을 물리치며, 적장을 베고 깃발을 빼앗으며,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끓는 물과 불의 어려움도 피하지 않는 것은 큰 상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또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강도질을 일삼고, 사람을 때려죽인 뒤 묻어 버리고, 사람들을 협박하고 사악한 짓을 일삼고, 무덤을 파헤쳐 보물을 훔치고, 돈을 위조하고, 협객인 체하면서 같은 패거리들을 대신하여 원수를 갚으며,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 물건을 빼앗고 사람들을 내쫓는 등 법에 저촉되는 것을 피하지 않고 말을 달리듯이 죽을 곳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사실 모두 재물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뿐이다.

지금 조나라와 정나라의 미녀들이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 거문고를 손에 들고, 긴 소매를 나부며 가볍게 발을 놀리며 눈짓으로 유혹하여 마음을 사로잡아 천 리를 멀다 않고 나아가고,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는 것은 큰 부를 좇아가는 것이다. 한가하게 노니는 공자들이 관과 칼을 장식하고, 수레와 말을 줄지어 따르게 하는 것도 부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주살로 고기를 잡고 활을 쏘아 사냥하면서 새벽과 밤을 갈지 않으면서 서리와 눈을 무릅쓰고 동굴과 깊은 골짜기를 뛰어다니며 맹수의 위험을 피하지 않는 것은 맛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이다. 도박ㆍ경마ㆍ닭싸움ㆍ개싸움 등을 하면서 얼굴빛을 바꿔가며 서로 k랑하고, 반드시 싸워 이기려고 다투는 것은 져서 돈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나 돠 그 밖의 여러 가지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이 노심초사하며 자신의 재능을 다하려는 것은 막대한 보수를 얻기 위해서이다. 벼슬아치가 글을 교묘하게 꾸며 법을 농간하고 도장과 문서를 위조하여 자신들에게 내려질 형벌마저 피하지 않는 것은 뇌물을 탐닉하기 때문이다. 농ㆍ공ㆍ상들이 저축을 하고 이익을 늘리는 것은 부를 구하고 재산을 불리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혜와 능력을 다할 뿐 힘을 남겨 남에게 재물을 넘겨주는 일은 없다.

속담에 “백 리 먼 곳에 나가 땔나무 장사를 하지 말며, 천 리 먼 곳에 나가 양식을 팔지 마라.”고 했다. 1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으며, 백년을 살려거든 덕을 베풀어라. 덕이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관직의 지위에 따라 받는 봉록도 없고, 작위에 봉해짐에 따라 받는 식읍의 수입도 없으면서 이런 것을 가진 사람들처럼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素封이라고 한다.


7. 부를 얻는 데는 상업이 최고이다.


생활을 꾸려 나감에 있어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수입을 얻으려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 힘쓰는 일이다. 그러므로 농업으로 부를 얻는 것을 으뜸이라 하고, 상업으로 부를 얻는 것은 그 다음이며, 간사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부를 얻는 것은 가장 저급한 것이다.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의 괴상한 행동도 없이 오랫동안 가난하고 천하게 살면서 인의를 말하는 것만을 즐기는 것 또한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대체로 일반 백성들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백 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하고 만 배 많으면 그의 하인이 된다. 이것은 사물의 이치다. 대체로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는 길에는 농업이 공업만 못하고, 공업이 상업만 못하며, 비단에 수를 놓는 것이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것만 못하다. 이것은 말단의 생업인 상인이 가난한 사람들이 부를 얻는 길임을 말한다.


8. 사마천의 상업적 인식과 그 한계


사마천은 부유해지는 데는 정해진 직업이 없고, 재물은 정해진 주인이 없으므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기왓장 부서지듯 흩어진다고 말했다. 또 천금의 부자는 한 도읍의 군주에 맞먹고, 만금을 가진 부자는 王者와 즐거움을 같이 한다고 하였다.

그는 역사 속에 경제활동의 기재를 필수화하였고 소박한 유물관점으로 사회경제활동을 파악하였다. 농업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지만 동시에 상품경제의 자유발전을 강조 하였다.

당시의 시대적 조건에서 상품경제를 강조한 사상가는 매우 적었는데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사마천은 일견 매우 합리적이며 현실적이고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隱者, 官吏, 將軍 등 모두가 물질에 지배를 받으며 물질이 모든 것의 동력이 되어 역사를 형성하고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며 자연의 理法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일견 물질주의자로 보이는 사마천은 그 찬양자가 아닌 財貨의 위력과 그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자학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비추어진다.

또 사마천은 동양적 봉건제에서 보여주는 사ㆍ농ㆍ공ㆍ상의 순서에서 가장 하위에 있는 상을 중요시함으로서 중화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마천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부귀의 중요성을 누누이 설파하였지만 사마천 이후의 훗날 중국이라는 넓은 영토 내에서의 상업 활동만이 진흥되었을 뿐 대내외적으로의 활발한 중상주의적 면모는 보여주지 못하였다. 이는 중화라는 통일된 넓은 대륙이 필요로 하던 모든 것들이 자급자족이 가능하였기에 중국 정부가 상업의 진흥에 발 벗고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6세기 초 발해에서 등자가 사용되었지만 그것이 기마문화로의 장을 여는데 크게 공언한 바가 없기에 역사적으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중화는 훗날 불평등 차등 상행위로 인해 阿片戰爭(Opium War)이라는 크나 큰 수모를 당하였고 여러 가지 모욕 속에서 오늘날에 와서 다시 중상주의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개방된 중국 사회의 중국인들이라면 사마천의 화식열전을 보고 그 뜻을 되새기며 그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자유경쟁의 시장에 뛰어들어볼만하다.

이는 사마천의 역사가 오늘날의 시장경제에서도 통용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사기열전(史記列傳) 하』, (주)을유문화사, 2002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윤화 교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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