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奕(한혁)

- 크고 넓은 한나라 -

주선왕이 한후을 후백(侯伯)에 명하니 한후의 위의가 크고 높았다. . 이에 한혁(韓奕)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모서는 “ 이 한혁 편은 윤길보가 주선왕을 찬양한 시로 선왕이 능히 명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주희는 이 시의 작자가 윤길보라는 모서의 해설은 근거가 없는 설이라고 부정했다. 주희는 이 시에 대한 한(漢)나라 유가들의 설을 시의 내용과 부합하도록 고치고 이 시의 작자에 대해 의심을 품고 매우 신중한 태도로 임했다. 그래서 모서의 설은 원래 시의 내용을 확대해석했다고 결론지은 주희는 이 시의 주제는 단지 송별을 노래했다고 했으나 그렇다도 주희 역시 완전히 의문점을 해소한 것은 아니다. 앞서의 숭고(崧高) 편과 같은 창작배경을 갖고 있는 이 시는 제후의 세자가 사위(嗣位)할 때 주나라의 왕도에 입경하여 천자에게 조현을 올리면 천자는 그를 제후의 후계자로 승인하는 것이 당시 주왕조의 제도였다. 그러나 주왕에게 조현을 올릴 때 주나라의 전례(典禮) 중, 반사(頒賜), 책명(冊名), 그리고 한후의 혼사까지도 찬양하며 노래한 것은 주나라 조정이 한후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한후의 봉국은 당시의 지리적인 정황으로 보아 주나라 강역의 변방과 만맥(蠻貊)의 거주지가 인접한 먼 땅으로 수렵과 유목을 위주로 생활을 영위하던 북방민족이 주나라의 국경을 침범하여 주나라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왕은 한후를 방백(方伯)으로 임명하면서 “ 왕명을 거스리는 나라는 바로잡아 그대의 임금 보좌하라[榦不庭方, 以佐我辟]”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는 당시 이민족의 빈번한 침략으로 주나라가 곤경에 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후는 주왕실과 동성의 가까운 귀족으로 제후국인 한나라의 군주다. 역사상 주왕조에 의해 책봉된 한나라는 두 개가 있었다. 두 나라의 시봉자는 모두 주무왕의 아들들이었다. 지금의 섬서성 한성시(韓城市)에 있었던 한나라는 춘추 초기에 진(晉)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진나라에 복속된 한나라의 유민들은 진나라의 유력한 세가가 되어 후에 진나라를 조(趙)와 위(魏)와 함께 삼분하여 한나라를 세워 전국칠웅의 일원이 되었다. 다른 한나라는 지금의 하북성 고안현(固安縣) 동북으로 연나라와 이웃했다. 시에 등장하는 나라는 하북성 소재의 한나라다.

시의 내용은 한후가 주나라에 들어와 조현을 올리니 주왕에 의해 후백에 책봉을 받고 귀중한 물품을 상품으로 무수히 하사 받았다. 이윽고 그가 호경(鎬京)을 떠나 도읍(屠邑)을 경유하여 궤리(跪里)에 당도하여 궤후(跪侯)의 딸 한길(韓姞)과 혼인했다. 다시 한나라의 풍부한 물산을 보고 한길이 머물 곳을 찾았다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마지막으로 주왕이 한후를 북방의 방백으로 임명하여 주위의 제후들을 통솔하도록 했다.

其一

奕奕梁山 維禹甸之(혁혁양산 유우전지)

크고 높은 양산(梁山)은 우(禹)임굼이 농사짓던 곳

有倬其道 韓侯受命(유탁기도 한후수명)

크고 높은 도를 지닌 한후(韓侯)가 왕명을 받드네

王親命之 纘戎祖考(왕친명지 찬융조고)

왕께서 친히 명을 내리시니‘그대여 조상들의 뒤를 이어

無廢朕命 夙夜匪解(무폐짐명 숙야비해)

나의 명을 저버리지 말고 밤낮으로 노력하여

虔共爾位 朕命不易(건공이위 짐명불역)

그대의 자리 삼가 지키면 내 명도 바뀌는 일 없으리

榦不庭方 以佐戎辟(간불정방 이좌융벽)

왕명을 거스리는 나라 바로 잡아 그대의 임금을 보좌하라!

부다. 혁혁(奕奕) 크고 높음이다. 양산(梁山)은 한나라 소재의 산이름이다. 한나라가 두 개가 있었듯이 양산 역시 두 곳이 있었다. 이곳의 양산은 하북성 소재의 산이다. 전(甸)은 다스림이다. 유탁(有倬)은 탁탁(倬倬)으로 탁탁(晫晫)이다. 매우 밝은 모습이다. 찬융조고(纘戎祖考)는 앞서의 증민(蒸民) 제3장에 보인다. “왕이 명을 내려서 대를 이어 제후가 되게 했다.”고 했다. 건(虔)은 공경함이요, 역(易)은 고침이요, 간(榦)은 간(幹)으로 바로잡음이다. 부정방(不庭方)은 입조하러 오지 않는 나라이다. 벽(辟)은 임금이다 .

○ 한후가 그 부군의 뒤를 사위했음으로 왕도에 들어와 조현을 올리고 책봉을 받아 돌아감으로 시인이 이 시를 지어 전송한 것이다. 모서에 또한 윤길보가 지었다고 했으나 근거 없는 말이다.

其二

四牡奕奕 孔脩且張(사모혁혁 공수차장)

네 필 숫말 씩씩하고 그 몸체 크고 당당하네

韓侯入覲 以其介圭(한후입근 이기개규)

한후가 입궐하여 조현을 올리니 그 큰 홀(忽)을 받들었네

入覲于王 王錫韓侯(입근우왕 왕석한후)

입궐하여 왕께 인사올리어 왕은 한후에게 하사품을 내리네

淑旂綏章 簟茀錯衡(숙기수장 점불착형)

교룡 그린 기에 새깃 단 깃발, 대자리 덮개와 고운 멍에채

玄袞赤舃 鉤膺鏤錫(현곤적사 구응루석)

검은 곤룡포에 붉은 신, 고리 달린 말배 띠에 금장식 당로

鞹鞃淺幭 鞗革金厄(곽굉천멸 조혁금액)

가죽 댄 수레의 횡목과 호피 덮개, 가죽고삐와 황금고리라네

부다. 수(脩)는 장(長)이고 장(張)은 대(大)다. 개규(介圭)는 옥으로 만든 대규(大圭)로 주나라 제도에 제후가 선군의 자리를 물려받아 새로 섰을 때 주천자에게 조현을 올리고 선군이 하사받은 가규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받아 군위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숙(淑)은 선(善)함이다. 제후가 달고 다니는 교룡(交龍)이 그려진 깃발을 기(旂)라 한다. 수장(綏章)은 새깃에 물을 들이거나, 혹은 소꼬리로 만들어서 깃대의 머리에 매달아 표장(表章)을 삼는 깃발이다. 루(鏤)은 금에 글자를 새기는 행위다. 말 눈썹 위의 장식을 석(錫)이라 하는데 지금의 당로(當盧)다. 곽(鞹)은 털을 제거한 가죽이다. 굉(鞃)은 ‘수레앞턱가로나무 감은 가죽’ 굉이다. 탑승자가 의지할 수 있게 설치한 양쪽 교(較) 사이를 털 없는 가죽으로 감은 가로대를 연결하여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멸(幭)은 횡목을 덮는 덮개로, 멱(幦) 혹은 멱(幎)이라고도 하며, 털 있는 가죽으로 횡목의 상단을 덮는 것이다. 조혁(鞗革)은 고삐의 머리부분이다. 금액(金厄)은 쇠로 고리를 만들어서 고삐의 머리를 얽어매고 쥐는 것이다.

其三

韓侯出祖 出宿于屠(한혁출조 출숙우도)

한후가 로제를 지내고 도 땅에 당도하여 머무네

顯父餞之 淸酒百壺(현부전지 청주백호)

주나라 경사(卿士) 현보가 전별하니 맑은 술 백 병이네

其殽維何 炰鼈鮮魚(기효유하 포별선어)

술안주는 무엇인가? 구운 자라에 싱싱한 생선이네

其蔌維何 維筍及蒲(기속유하 유순급포)

그 나물은 무엇인가? 갓 솟아난 죽순에 부들이네

其贈維何 乘馬路車(기증유하 승마로거)

그 선물은 무엇인가? 네 필 말에 로거네

籩豆有且 侯氏燕胥(변두유차 후씨연서)

음식을 수북이 담은 그릇, 제후들은 즐겁게 술잔 기울이네

부다. 이미 근례(覲禮)를 행하고 봉국에 돌아갈 때에 반드시 로신(路神)에게 로제를 지내는 목적은, 가고자 하는 곳을 높이고 또한 돌아갈 때나 처음 올 때나 한결같이 하기 위해서다. 도(屠)는 지명으로 기산(岐山) 동북 쪽의 두릉(杜陵)이라는 설도 있다. 현보(顯父)는 주나라 경사다. 속(蔌)은 나물반찬이다. 순(筍)은 죽순이고 포(蒲)는 부들이며, 차(且)는 많은 모양이다. 후씨(侯氏)는 근례(覲禮)를 올리기 위해 래조하는 제후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서(胥)는 서로이다.

其四

韓侯取妻 汾王之甥(한후취처 분왕지생)

한후가 장가드니 분왕(汾王)의 생질이고

蹶父之子 韓侯迎之(궤보지자 한후영지)

궤보의 딸이니 한후가 맞이하네

于蹶之里 百兩彭彭(우궐지리 백량팽팽)

궤씨네 마을로 들어가니 수많은 수레 팽팽하구나

八鸞鏘鏘 不顯其光(팔란장장 불현기광)

여덟 방울소리 요란하고 그 빛 더없이 찬란하네

諸娣從之 祁祁如雲(제제종지 기기여운)

따라오는 여자 몸종들 구름처럼 많구나

韓侯顧之 爛其盈門(한후고지 란기영문)

한후가 뒤돌아보니 눈부신 빛 문 안에 가득하네

부다. 한후(韓侯)가 이미 근례를 마치고 돌아와 친영(親迎)한 일을 말한다. 분왕(汾王)은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려왕(厲王)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국인폭동으로 려왕이 체(彘) 땅으로 쫓겨나 분수 가에 살았음으로 분왕이라고 칭했다고 했다. 궤보(蹶父)는 주나라의 경사이니 길성(姞姓)이다. 제제(諸娣)는 제후의 비와 여러 시첩이다. 제후가 장가들면 아홉 명의 여자를 취하고, 두 나라가 잉첩(媵妾)을 보내니, 모두 여동생과 조카딸이 있음이다. 기기(祁祁)는 느리고 단장함이요, 여운(如雲)은 중다(衆多)다.

其五

蹶父孔武 靡國不到(궐부공무 미국부도)

매우 용감한 궤보, 안 가본 나라 없고

爲韓姞相攸 莫如韓樂(위한길상유 막여한락)

딸 시집보낼 나라 찾아보니 한나라만한 곳이 없도다

孔樂韓土 川澤訏訏(공락한토 천택우우)

즐거운 한나라 땅이여, 시냇물 연못물이 넘쳐흐르고

魴鱮甫甫 麀鹿噳噳(방서보보 우록우우)

방어, 서어 뛰놀고. 암사슴 떼지어 우우대네

有熊有羆 有貓有虎(유웅유파 유묘유호)

곰과 말곰, 삵괭이와 호랑이도 있네

慶旣令居 韓姞燕譽(경기영거 한길연예)

기쁘게 시집살이하면 궤보의 딸도 좋아하리

부다. 한길(韓姞)은 궤보의 딸로 한후의 비다. 상유(相攸)는 시집갈만한 좋은 곳을 가리는 일이다. 우우(訏訏)·보보·甫甫)는 큼이고, 우우(噳噳)는 많음이다. 묘(貓)는 호랑이와 비슷한 짐승인데 털이 짧다. 경(慶)은 기쁨이고, 령(令)은 선(善)함이다. 시집간 곳이 살기 좋은 곳임을 기뻐했다. 연(燕)은 편안함이고, 예(譽)는 즐거워함이다.

其六

溥彼韓城 燕師所完(부피한성 연사소완)

저 웅대한 한나라 성은, 연나라 군사들이 완성시켰네

以先祖受命 因時百蠻(이선조수명 인시백만)

조상의 명을 받들어 여러 만족들을 다스리니

王錫韓侯 其追其貊(왕석한후 기추기맥)

왕께서 한후에게 하사하시기를, 추(追)와 맥(貊) 땅이라네

奄受北國 因以其伯(암수북국 인이기백)

북쪽 나라에 수봉되어 그 곳의 방백(方伯)이 되셨으니

實墉實壑 實畝實籍(실용실학 실무보적)

성 쌓고, 참호 파고, 밭 정리하고 부세를 받으니

獻其貔皮 赤豹黃羆(헌기비피 적표황파)

비휴가죽, 붉은 표범가죽, 누런 말곰가죽을 바치네

부다. 부(溥)는 큼이다. 연(燕)나라는 주왕실과 동성인 희성(姬姓)의 소공(召公) 석(奭)이 봉해진 나라다. 사(師)는 무리다. 추맥(追貊)은 이적(夷狄)의 나라다. 용(墉)은 성이고 학(壑)은 못이며, 적(籍)은 부세를 받기 위해 민적을 정리함이다. 비(貔)는 비휴(豼貅)로 맹수(猛獸)의 이름이다.

○ 한나라가 처음 봉해졌을 때 사공(司空)은 소공이었다. 주왕이 소공에게 명하여 연나라 사람들을 시켜 한후를 위해 성을 쌓으라고 한 것은 소백(召伯)을 시켜 사읍(謝邑)을 경영하게 한 일이나 중산보를 시켜 제나라에 성을 쌓으라고 한 일, 그리고 춘추 때 제후들을 거느린 제환공이 형(邢)나라를 위해 성을 쌓고 다시 위(衛)나라를 위해 초구(楚丘)에 성을 쌓아 준 일과 같다. 주왕은 한후의 선조가 맥만(貊蠻)의 도움으로 성장했음으로 추(追)와 맥(貊)을 내러주어 북방이 패자가 되게 하여 성지(城池)와 전무(田畝)를 다스리며 부세를 바르게 거두어 왕에게 바치게 했다.

韓奕 六章이니, 章 十二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