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랑(中山狼)

전국시대 진(晉)나라의 재상 조간자(趙簡子)가 중산에 사냥을 하다가 이리 한 마리를 쏘아 맞추었다. 상처를 입은 이리는 길을 벗어나 도망쳤다. 그때 마침 동곽(東郭)선생이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본 이리가 구원을 청했다. 동곽선생은 묵자(墨子)의 제자로 평소에 겸애사상을 숭상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이리의 심성은 흉악하지만 부상을 당했음으로 구해주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곽선생은 보자기를 풀어 이리를 넣고 묶어 숨겨주었다. 잠시 후 조간자 일행이 달려와 조간자에게 부상당한 이리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동곽선생은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간자가 칼을 빼어들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위협했다. 그대로 동곽선생은 여전히 모른다고 잡아뗐다. 조간자는 할 수 없이 돌아갔다. 그후 동곽선생은 노새에 올라 가던 길을 계속 나아갔다. 얼마 후 이리가 조자기 속에서 큰 소리로 아픔을 호소했다. 선생은 이리를 꺼내어 그 몸에 박힌 화살을 빼주었다. 몸이 풀린 이리는 상처의 통증이 사라지자 곧 험악한 인상으로 동곽선생을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 내 목숨을 살려준 것은 고맙지만 난 지금 배가 고프오. 당신을 잡아먹지 않으면 허기를 면하기 어렵겠소. 기왕에 나를 살려줄 마음이었따면 내가 배고파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겠지요?"

그러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동곽선생을 잡아먹으려고 했다. 깜짝 놀란 동곽선생은 황망히 노새를 잡아토고 모당치며 이리를 꾸짖었다.

" 너의 목숨을 살려주었는데 오히려 나를 잡아먹으려 하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이 배은망덕한 놈아!"

그러나 이리는 계속해서 선생을 잡아먹으려고 했다. 동곽선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피해다니다가 해가 기우는 것을 보았다. 상황이 더욱 나빠지자 이리에게 말했다.ㅣ

" 속담에 이르기를 ;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인 세 명에게 물어라!'라고 했다. 우리가 서로 지쳤으니 이제 함께 길을 가다가 세 명의 노인을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 물어보기로 하자. 그들 모두 내가 마땅히 잡아먹혀야 한다고 하면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먹이가 되어 배불리 해주겠다. "

배고픔에 지친 이리도 이 조건에 동의했다. 그들은 노새와 함께 길을 가다가 오래된 은행나무를 만났다. 그러자 이리는 선생에게 은행나무에게 물어볼 것을 강요했다. 은행나무가 말했다.

" 내가 젊었을 때에는 많은 은행을 낼 수 있어서 사람들이 나를 보호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은행이 생기지 않자 사람들은 나를 베어 장작으로 삼으로고 합니다. 세상일이 모두 이러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당연히 이리에게 잡아먹혀야 합니다. "

이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만족하여 선싱에게 달려들었다. 동곽선생은 이리에게 조건을 지킬 것을 일러주고 다시 다른 사람을 찾았다. 얼마 후 늙은 소를 발견하자 이리는 또다시 동곽선생을 강요했다. 늙은 소가 말했다.

" 내가 젊었을 때에는 피와 땀을 흘리며 사람들을 위해 농사를 도왔습니다. 힘들게 일하여 공로가 컸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나이가 들어 일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나를 버리고 학대하며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세상일이란 모두 이러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당연히 이리에게 잡아먹혀야 합니다!"

이렇게 되자 이리는 이빨을 드러내고 큭큭 웃으면서 말했다.

" 선생 내가 보기에 더 이상 물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소. 순순히 나의 먹이가 되시오!"

" 동곽선생이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때 마침 한 노인이 다가았다. 선생은 급히 달려가 지금까지 있었떤 일을 말했다. 그리고 초목과 짐승은 무지하여 나의 생명을 해치려고 하니 최종적인 판단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은 동곽선생의 말을 듣고 손에 들었던 나무지팡이로 중산의 이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이리는 급히 항의했다.

" 그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오. 당시 그는 나의 몸을 묶어 책보자기에 속에 넣었습니다. 처음부터 나를 해칠 생각이었지 나를 구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 나는 당신들의 말만 듣고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알 수가 없네. 당시의 상황을 다시 합 번 실제로 보여주면 내가 보고 나서 다시 엃고 그름을 판단해주겠네!"

동곽선생과 이리는 노인의 제시한 방법에 동의했다. 그래서 이리는 다시 끈에 묶여 보자기 속에 넣어졌다. 그러자 노인은 동곽선생에게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이리를 칼로 찔러 후환을 없애라고 했다. 그러나 동곽선생은 이때에도 칼을 다지 못했다. 이에 오인은 그에게 한순간의 자비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동곽선생은 그제야 칼을 꺼내 중산의 이리를 찔러 죽였다.

간단히 말해 물에 빠진 사람구해주었다니 보따리 내놔라라는 한국속담의 중국 버전이다. 심성이 고약하고 악의에 찬 사람을 선의로 대해 낭패를 당한다는 고사다. 그래서 공자는 소인배들과는 가까이 사귀지 말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