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
-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을 통해 관중으로 나오다. -

한군의 대장군에 임명된 한신은 한왕에게 한중(漢中)에서 나아가 삼진(三秦)을 다시 공략하여 점령한 관중을 근거지로 삼아 항우와 천하를 다투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한왕이 한중으로 들어올 때 불태운 자오곡(子午谷)의 잔도를 수리한다고 세상에 널리 알려 본래의 계획을 은폐하고 실제로는 서쪽의 고도(故道)로 우회하여 진창(陳倉)으로 나아가 장함을 기습하여 관중을 탈환하려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을 헌책했다. 한신의 계책을 받아들여 승상 소하에게 남정(南鄭)에 남아 후방에서 한군을 위해 양초를 보급하는 책임을 맡긴 한왕은 한편으로는 자오곡으로 통하는 잔도를 수리하라고 수천 명의 군사를 보냈다. 이어서 한왕 자신은 한신과 함께 한군을 이끌고 고도(故道)를 이용하여 진창을 향해 진군했다.
한편 함양 이서의 관중 땅을 지키고 있던 옹왕 장함이 보유한 군사들은 삼진(三秦) 중 최강이었고 한중에서 관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인 잔도와는 가장 근거리에 주둔하면서 한군의 움직임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계속 주시하며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 장함에게 한나라 군사 수천 명이 잔도를 수리하기 시작했다는 첩보가 전해졌다. 한번 불타버린 잔도는 쉽게 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장함은 불과 수천 명의 인원으로 공사를 시작했다는 보고에 한바탕 크게 웃고 마음 속으로 새로 한나라 대장군이 된 한신이라는 인물은 남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 다녔던 보잘 것 없는 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장함은 한나라에 대해 경계심을 풀고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기원전 206년 8월, 한신이 이끄는 한군이 진령산맥을 서쪽으로 길게 우회하여 마치 신의 군대가 하늘에서 갑자기 하강한 듯이 고도(故道)의 북단에 축조한 고도성(故道城)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봉장 조참(曹參)이 이끄는 한군이 갑자기 들이닥쳐 삽시간에 성을 함락시키고 계속해서 경무장한 정예군사들로 별동대를 편성하여 진창성을 불시에 기습하여 손에 넣었다. 실로 전광석화와 같은 군사작전이었다. 진창이 한군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은 장함은 꿈을 꾸다가 일어난 듯한 혼미한 정신으로 군사를 이끌고 출격하여 한군을 맞이해서 싸웠으나 진군은 버티지 못하고 패주했다. 결국 장함은 한군과의 싸움에서 대패하고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한군이 장함의 진군을 일거에 무찌를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은 첫째 한나라 군사들의 마음은 모두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다시 전투에서 승리할 경우 돌아올 물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백배했기 때문이며, 둘째 적군인 한군보다는 항우가 옛날 20만 명의 항복한 진나라 장졸들을 갱살할 때 옆에서 도운 장함에게 더 원한을 품고 있었던 진나라 군사들이 아무도 장함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함의 진나라 군사들은 한군과의 전투 한 번으로 일패도지(一敗塗地)하여 붕궤되고 장함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장함이 수습한 패잔병을 아들 장평(章平)에게 주어 호치(好畤 : 지금의 섬서성 건현(乾縣))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폐구(廢丘)로 들어갔다. 한왕은 드디어 옹(雍)의 땅을 평정하고 계속해서 함양을 향해 동진하여 폐구의 장함을 포위했다. 장함은 폐구성을 굳게 지키며 초왕의 구원군이 달려와 구원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폐구에 장함을 가둬놓은 한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군사를 나누어주어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 등의 땅으로 진격하여 점령하도록 했다. 또한 설구(薛歐), 왕흡(王吸) 등에게는 무관(武關)으로 나가 패현(沛縣)에 있는 태공(太公)과 여후(呂后)를 맞이해 오도록 했다. 초나라가 알고 군사를 내어 양하(陽夏 : 현 하남성 태강현(太康縣))에서 저지하자 한군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항왕은 옛날 오현(吳縣)의 현령이었던 정창(鄭昌)을 한왕(韓王)으로 삼아 한군(漢軍)을 막도록 했다.
한왕이 계속해서 관중의 옛 진나라 땅을 석권하기 위해 동진하자 새왕(塞王) 사마흔(司馬欣), 책왕(翟王) 동예(董翳)가 봉국을 들어 항복해 왔다. 마침내 폐구(廢丘)를 제외한 관중 땅 전역을 점령한 한왕은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 위남(渭南), 하상(河上), 중지(中地)① 등의 군을 설치하고 한나라 영토로 만들었다. 각 제후의 장수들 중 만 명의 군사나 혹은 한 개의 군을 들어 항복한 자가 있으면 만호(萬戶)에 봉했다.

주석
①위남(渭南), 하상(河上), 중지(中地) 등의 세 군은 한나라가 통일 후에 관중의 삼보(三輔)로 발전했다. 위남군은 후에 경조윤(京兆尹), 하상(下上)군은 좌풍익(左馮翊). 중지군은 우부풍(右扶風)으로 바뀌었고 삼군의 치소는 모두 장안성내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