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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세가(陳杞世家) 6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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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진기세가(陳杞世家)

호공(胡公) 만(滿)은 우순(虞舜)의 자손이다. 예전에 순이 평민의 신분이었을 때 요임금이 그의 두 딸을 그의 처로 주어 규예(嬀汭)라는 곳에서 살게 했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규(嬀)를 성씨로 삼았다. 순임금이 죽자 천하는 우(禹)에게 넘어가 순의 아들 상균(商均)은 제후에 봉해졌다. 하왕조 상균의 나라는 없어지기도 했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해서 은(殷)왕조 때에 이르게 되었다. 은의 주왕(紂王)을 토벌한 주무왕이 순의 후손 중 규만(嬀滿)이라는 사람을 찾아 진(陳)1)에 봉하고 순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이 규만이라는 사람이 호공(胡公)이다.

호공이 죽고 그의 아들 신공(申公) 서후(犀侯)가 섰다. 신공이 죽고 그의 동생 상공(相公) 고양(皐羊)이 뒤를 이었다. 상공이 죽자 신공의 아들 돌(突)이 뒤를 이었다. 이가 효공(孝公)이다. 효공이 죽고 그의 아들 신공(愼公) 어융(圉戎)이 섰다. 신공은 주나라 려왕(厲王)과 같은 시기에 재위에 있었다. 신공이 죽고 그의 아들 유공(幽公) 영(寧)이 뒤를 이었다.

유공 14년 기원전 841년, 주려왕이 국인들의 란을 피해 체(彘) 땅으로 달아났다.2)

유공 23년 기원전 832년, 유공이 죽고 그의 아들 리공(釐公) 효(孝)가 섰다.

리공 2년 기원전 830년, 주선왕이 즉위하여 공화가 끝났다.

리공이 재위 36년 만인 기원전 796년에 죽고 그의 아들 무공(武公) 령(靈)이 섰다. 무공이 재위 15년 만인 기원전 781년에 죽고 아들 이공(夷公) 열(說)이 섰다. 이 해에 주선왕이 죽고 주유왕(周幽王)이 즉위했다. 이공이 재위 3년 만인 기원전 778년에 죽고 그 동생 평공(平公) 섭(燮)이 섰다. 평공이 7년 기원전 771년 주유왕이 견융(犬戎)에게 살해되고 주나라는 동쪽으로 나라를 옮겼다. 섬진(陝秦)이 이 해에 비로소 제후들의 대열에 서기 시작했다.  

평공이 재위 23년 만인 기원전 755년에 죽고 그의 아들 문공(文公) 어(圉)가 섰다. 문공 원년 채(蔡)나라 여인을 부인으로 취하여 아들 타(佗)를 낳았다. 문공이 재위 10년 만인 745년에 죽고 장자 환공(桓公) 포(鮑)가 뒤를 이었다. 환공 23년인 기원전 722년은 노은공(魯隱公) 원년으로 춘추가 시작되는 해다.

환공 38년인 기원전 707년에 환공 포가 죽고 동생 타가 섰다. 타의 생모는 채나라 여인이었기 때문에 채나라 사람이 타를 위해 오보(五父)와 환공의 태자 면(免)을 죽이고 그를 진후(陳侯)로 세웠다. 이가 려공(厲公)이다. 환공이 병이 들었을 때 내란이 일어나자 국인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났음으로 그가 정작 죽었을 때는 부고를 재차 알려야 했다.

려공 2년 기원전 705년, 아들 경중(敬仲) 완(完)을 낳았다. 그때 마침 진나라를 지나가는 주나라의 태사에게 완에 대해 주역으로 점을 쳐보도록 부탁했는데 관괘(觀卦)3)를 얻고 다시 변괘인 비괘(否卦)4)를 얻어 점사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이는 나라가 번성하여 광채를 내어 천자의 빈객이 될 수 있는 괘입니다. 이에 진(陳)을 대신하여 나라를 갖게 되니 그가 갖게 될 나라는 이 나라가 아니라 타국이며, 또한 그 자신이 갖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자손이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타국이라 함은 필시 강(姜) 성의 나라일 것이오. 강씨 성은 태악(太嶽)5)의 후손들이오. 만물의 이치는 두 가지 면에서 능히 모두 크게 될 수 없으니 진나라가 쇠하게 되면 그의 후손들이 대신 창대하게 될 것이오.」

 려공의 부인 채녀가 채나라 사람과 간통을 하자 려공도 여러 차례 채나라에 들려 그곳 여인들을 범했다. 려공 7년 기원전 700년, 려공에 의해 살해당한 환공(桓公)의 태자 면(免)의 세 동생, 즉 첫째 약(躍), 둘째 림(林), 셋째 저구(杵臼) 등이 공모하며 채나라 사람을 시켜 미인계로 려공을 유인한 후에 채인들과 함께 려공을 살해했다. 약이 진후(陳侯)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리공(利公)이다. 리공이 5개 월 만에 죽자 둘째 림(林)이 뒤를 이었다. 이가 장공(莊公)이다. 장공이 7년 만에 죽자 그의 막내 동생 저구(杵臼)가 섰다. 이가 선공(宣公)이다.6) 선공 3년 기원전 690년 초무왕(楚武王)이 죽고 초문왕(楚文王)이 새로 섰다. 초나라는 이때부터 세력이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선공 17년 기원전 676년 주혜왕(周惠王)이 진녀(陳女)를 데려가 왕비로 삼았다.

선공21년 기원전 672년 선공이 총애하는 희첩 사이에서 아들 관(款)을 낳았다. 선공이 관을 후계로 삼기 위해 태자 어구(禦寇)를 죽였다. 평소에 태자와 친하게 지낸 려공의 아들 완(完)이 화가 자신에게 미치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제나라로 도망쳤다. 제환공(齊桓公)이 완을 제나라의 경(卿)으로 삼으려고 하자 사양하며 말했다.

「본국에서 쫓겨나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에 고된 노역을 면하는 처지가 된 것만도 행운이온데 제가 어찌 감히 높은 자리의 관직을 바라겠습니까?」

제환공이 진완을 공정(工正)7)의 직에 임명했다. 제나라의 대부 제의중(齊懿仲)이 진완에게 그의 딸을 주기 위해 점을 쳤는데. 점사가 다음과 같이 나왔다.

「이는 봉황 암수 두 마리가 함께 날며 웅장하게 우짖으며 화답을 하는 형상이로다. 규씨(嬀氏)들의 후손들은 장차 강성하게 일어나 오세가 지나면 창성하여 제나라의 정경(正卿)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고 팔세가 되면 그들보다 더 큰 자는 없을 것이다.」

선공 37년 기원전 656년, 제환공이 채나라를 정벌하고 다시 남쪽의 초나라를 향해 진격하다가 소릉(召陵)8)에 이르렀다. 초나라와 회맹을 행한 제환공은 진나라를 경유하여 돌아가려고 했다. 이에 진나라의 대부 원도도(轅濤塗)가 제후군들이 진나라의 경내를 통해 회군하는 것을 싫어하여 제환공을 속여 동쪽의 길로 나아가게 했다. 동쪽의 길이 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 제환공은 원도도를 붙잡았다. 이 해에 당진의 헌공(獻公)이 그의 태자 신생(申生)을 죽였다.

선공 45년 기원전 648년, 선공이 죽고 그의 아들 관(款)이 뒤를 이었다. 이가 목공(穆公)이다. 목공 5년 기원전 643년, 제환공이 죽었다. 목공 16년 기원전 632년, 당진의 문공(文公)이 초나라 군사들과 성복에서 크게 싸워 물리쳤다. 이 해에 목공이 죽고 그의 공공(共公) 삭(朔)이 섰다. 공공 6년 기원전 626년 초나라의 태자 상신(商臣)이 그의 부왕인 성왕(成王)을 시해하고 스스로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초목왕(楚穆王)이다. 공공 11년 621년 섬진의 목공(穆公)이 죽었다. 공공 18년 기원전 614년, 공공이 죽고 그의 아들 영공(靈公) 평국(平國)이 뒤를 이었다.

영공 원년 기원전 613년, 초장왕(楚莊王)이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영공 6년 기원전 608년, 초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해 왔다. 영공 10년 기원전 604년, 진나라가 초나라와 강화를 맺었다.

영공 14년 기원전 600년, 영공이 그의 대부 공녕(孔寗) 및 의행보(儀行父)와 함께 하희(夏姬)와 혼음(混淫)하고, 하희의 속곳을 조당에 가지고 와서 희롱했다. 대부 야설(冶泄)이 보고 간했다.

「군신이 섞여 혼음을 행하니 백성들이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영공으로부터 야설의 간함을 전해들은 두 대부는 그를 죽이겠다고 허락을 청했다. 영공이 금하지 않았음으로 두 사람이 모의하여 야설을 죽였다. 영공 15년 기원전 599년, 진영공과 두 대부가 하희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영공이 두 대부를 놀렸다.

「하징서(夏徵舒)가 경들을 닮은 것 같소!」

두 대부가 맞장구를 쳤다.

「주공도 닮은 것 같습니다.」

하희의 전남편 소생 하징서가 듣고 노했다. 이윽고 영공이 술좌석을 파하고 집을 나서자 마구간 뒷문에 숨어 있던 하징서가 활로 영공을 쏘아 죽였다. 공녕과 의행보는 초나라로 도망치고 영공의 태자 오(午)는 당진으로 달아났다. 하징서가 스스로 진후의 자리에 올랐다. 징서 역시 진나라의 대부였다. 하징서의 생모 하희는 하어숙(夏御叔)의 처로 鄭穆公의 딸이다.  

성공(成公) 원년 기원전 598년 겨울, 초장왕이 영공을 살해한 하징서를 정발하기 위해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에 쳐들어와 진나라 국인들에게 말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단지 하징서만을 주살하기 위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는 징서를 죽인 후에 진나라 사직을 없애고 초나라의 현으로 삼았다. 군신들이 초장왕을 찾아와 진나라를 얻었음을 경하했다. 그때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신숙시(申叔時)만이 유독 초장왕에게 경하를 올리지 않았다. 초장왕이 신숙시를 불러 그 이유를 물었다. 신숙시가 대답했다.

「속담에 농부가 소를 끌고 다른 사람의 밭을 지나가다가 작물을 해쳤다고 해서 그 밭 주인이 농부에게서 소는 빼앗아갔습니다. 밭을 밟고 지나간 행위는 비록 죄었다고 하나 그렇다고 소를 빼앗아 버리는 일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오늘 대왕께서 하징서가 행한 시군의 죄를 묻기 위해 제후들과 함께 군사를 징발하여 토벌하여 의를 밝히셨음으로 이미 목적한 바를 얻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밝혀 그 땅을 취하셨으니 후에 대왕의 령이 천하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경하의 말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초장왕이 듣고 말했다.

「옳은 말이오.」

 초장왕이 즉시 진영공의 태자 오(午)를 당진에서 데려와 진후(陳侯)로 세워 옛날처럼 진나라의 군주 자리가 계속 이어지도록 했다. 이가 성공(成公)이다. 공자가 사서를 읽다가 초나라가 진나라를 복국시키는 장면에 이르자 말했다.

「어질도다, 초장왕이여! 천승의 군사를 가볍게 여기고 대부의 한 마디 말을 중하게 여김이여!」

성공 8년 기원전 591년, 초장왕이 죽었다. 성공 29년 기원전 570년, 진나라가 초나라와의 회맹을 배반했다. 초공왕이 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이 해에 공공이 죽고 그의 아들 애공(哀公) 약(弱)이 섰다. 초나라가 진나라의 상을 이유로 군사를 물리쳐 본국으로 돌아갔다.

 애공 3년 기원전 566년 초나라가 군사를 보내 진나라를 포위했다가 다시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애공 28년 기원전 541년, 초나라의 공자 위(圍)가 그 군주 스스로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초영왕(楚靈王)이다.

애공 34년 기원전 535년 옛날 애공은 정나라 자매를 부인을 취해 언니에게서는 도태자(悼太子)9) 사(師)를 낳고 동생에게서는 언(偃)을 낳았다. 후에 다시 두 명의 첩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큰 첩에게서는 유(留)를 낳고 작은 첩에게서는 승(勝)을 낳았다. 유를 총애한 애공이 그의 동생이며 사도(司徒)인 공자 초(招)에게 맡겼다. 그 해 3월에 애공이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초가 도태자를 살해하고 유를 태자로 세웠다. 애공이 노하여 초를 주살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초가 군사를 발하여 애공을 포위하고 감금했다. 이에 애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가 결국 유를 진군의 자리에 세웠다. 4월 진나라가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 유의 즉위를 알렸다. 초영왕은 진나라에 란이 일어났음을 알고 진나라 사자를 살해하고 공자 기질(奇疾)을 시켜 진나라를 정벌하자 진군 유는 정나라로 달아났다. 9월 초나라 군사가 진나라를 포위했다. 11월 진나라를 멸한 초나라는 그 땅을 현으로 만들어 기질을 진공(陳公)에 봉했다.

초가 도태자를 살해할 때 태자의 아들 오(吳)는 당진으로 달아났다. 당진의 평공(平公)이 태사(太史) 조(趙)에게 물었다.

「진나라는 망하겠는가?」

태사조가 대답했다.

「진나라는 전욱(顓頊)10)의 자손입니다. 진나라의 선조는 막(幕)11)에서 고수(瞽叟)12)에 이르기 까지 모두 천명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순임금이 다시 덕을 밝히고 곧바로 수(遂)13)까지 이르러 세세손손이 기업을 지켜왔습니다. 이윽고 호공(胡公)에 이르게 되자 주나라로부터 규(嬀)라는 사성을 받아 순임금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습니다. 또한 큰 덕을 밝힌 후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백세에 이르기 까지 조상의 제사를 모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순의 후예들은 진나라 사람들은 아직 망할 때가 아니고 그들은 장래에 제나라에서 계속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초영왕이 진나라를 멸한지 5년 만에 초나라의 공자 기질(棄疾)이 영왕을 시해하고 대신 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초평왕(楚平王)이다. 초평왕이 왕위에 새로 올랐음으로 중원의 제후들과 우호를 맺고 싶어했다. 그래서 즉시 도태자 사(師)의 아들 오(吳)를 찾아 군주로 세우고 진나라를 복국시켰다. 이가 혜공(惠公)이다. 혜공이 서자 애공이 죽었을 때를 즉위 원년으로 삼아 비어있었던 해을 채웠다.

혜공 10년 기원전 524년, 진나라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혜공 15년 기원전 519년, 오왕 료(僚)가 공자 광(光)을 시켜 진나라를 공격해 와 호(胡)14)와 침(沈)15)을 빼앗은 후에 물러갔다. 28년 기원전 506년 오왕 합려(闔閭)와 오자서(伍子胥)가 초군을 무찌르고 초나라의 도성 영(郢)에 입성했다. 이 해에 혜공이 죽고 아들 회공(懷公) 유(柳)가 섰다.

  회공 원년 기원전 505년 초나라를 격파하고 영(郢)을 점령한 오나라가 진후를 소환했다. 진후가 오왕의 부름에 응하려고 하자 대부들이 말리며 말했다.

「오나라는 이제 막 국력이 떨치기 시작해서 초왕이 비록 망명 중에 있지만 우리 진나라는 옛날부터 초나라를 받들어 왔으니 배반할 수 없습니다. 」

회공이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오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혜공 4년 기원전 502년, 오나라가 다시 회공을 부르자 이를 두려워한 회공은 오나라로 들어갔다. 오나라는 옛날 회공이 부름에 응하지 않았던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억류시켰다. 이에 혜공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다. 진나라는 즉시 회공의 아들 월(越)을 세워 뒤를 이었다. 이가 민공(湣公)이다.

민공 6년 기원전 496년, 공자(孔子)가 진나라에 들어왔다. 오왕 부차(夫差)가 진나라를 정벌하여 세 고을을 빼앗은 후에 물러갔다. 13년 기원전 489년, 오나라가 다시 진나라를 정벌하자, 진나라는 이를 초나라에 고했다. 초소왕이 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성보(城父)16)에 이르자 오나라 군사들이 물러갔다. 이 해에 초소왕이 성보에 머물던 중에 죽었다. 그때 공자는 진나라에 있었다. 15년 기원전 487년 송나라가 조(曹)나라를 멸했다. 16년 기원전 486년, 오왕 부차가 제나라를 공격하여 애릉(艾陵)17)에서 제군을 크게 무찌른 후에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 진후를 소환했다. 진후가 두려워하여 오나라로 들어갔다. 이에 초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했다. 21년 기원전 481년 제나라의 전상(田常)이 그 군주 간공(簡公)을 시해했다. 23년 기원전 479년 초나라의 백공(白公) 승(勝)18)이 영윤 자서(子西)와 사마(司馬) 자기(子綦)를 죽이고 혜왕을 공격했다. 섭공(葉公) 심제량(沈諸梁)이 백공을 공격하여 싸움에서 패배시키자 백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4년 기원전 478년 백공의 란을 진압한 초혜왕이 왕의 자리에 복귀하고, 군사를 이끌고 북벌을 행하여 진나라를 공격했다. 초혜왕은 민공(湣公)을 죽이고 이어서 진나라를 멸하여 초나라의 영토로 삼았다. 이 해에 공자가 죽었다.

기(杞)19)나라의 동루공(東樓公)은 하나라를 세운 우(禹)임금의 후손이다. 은나라가 하나라를 대신하여 제후에 봉해지기도 하고 사직이 끊어지기도 했다. 주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토벌한 후에 우임금의 후손인 동루공을 찾아 그를 기나라에 봉해 우임금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동루공이 서루공(西樓公)을 낳고 서루공은 제공(題公)을 낳고 제공은 모취공(謀娶公)을 낳았다. 모취공이 재위에 있었던 기간은 주려왕(周厲王)의 집정 시기20)에 해당한다. 모취공이 무공(武公)을 낳았다. 무공은 재위 45년 만에 죽고 아들 정공(靖公)이 섰다. 정공이 재위 23년 만에 죽고 아들 공공(共公)이 섰다. 공공이 8년 만에 죽고 그 아들 덕공(德公)이 섰다. 덕공이 18년 만에 죽고 동생 환공(桓公) 고용(姑容)이 섰다. 환공이 17년 만에 죽고 아들 효공(孝公) 개(匃)가 섰다. 효공이 재위 17년 만에 죽고 동생 문공(文公) 익고(益姑)가 섰다. 문공이 재위 14년 만에 죽고 동생 평공(平公) 욱(郁)이 섰다. 평공이 재위 18년 만에 죽고 아들 도공(悼公) 성(成)이 섰다. 도공이 재위 12년 만에 죽고 아들 은공(隱公) 걸(乞)이 섰다. 은공이 재위에 오른지 7개 월 만에 그 동생 수(遂)가 은공을 시해하고 자립했다. 이가 리공(釐公)이다. 리공 이 재위 19년 만에 죽고 아들 민공(湣公) 유(維)가 섰다. 민공 15년에 초혜왕이 진나라를 멸했다. 16년 민공의 동생 알로(閼路)가 민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위에 올랐다. 이가 애공(哀公)이다. 애공이 재위 10년 만에 죽고 민공의 아들 칙(勅)이 뒤를 이었다. 이가 출공(出公)이다. 출공이 재위 12년 만에 죽고 아들 아들 간공(簡公) 춘(春)이 섰다. 간공이 선지 1년 되는 해는 초혜왕 44년이다. 이 해에 초나라가 기나라를 멸했다. 이로써 기나라는 진나라가 망한 지 34년 후에 망하게 되었다. 기나라는 미미한 나라로써 기록할만한 사적이 없다.

주무왕이 순임금의 후손들을 찾아 봉한 진(陳)나라가 초혜왕에 의해 멸망되었다. 진나라의 사적을 진기세가(陳杞世家)에 기록한다. 또한 주무왕이 우임금의 후예를 찾아 기(杞)나라에 봉했다. 기나라 역시 초혜왕에 의해 멸망되었다. 기나라의 사적도 진기세가에 기록한다.

 설(薛)의 후예들이 세운 은나라의 사적에 대해서는 은본기에 기록한다. 주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후예들을 봉한 송나라는 제민왕(齊湣王)이 멸망시켰다. 송나라의 사적은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 기록했다. 후직(后稷)의 후손들이 세운 주나라는 진소양에 의해 멸망당했다. 그 사적은 주본기(周本紀)에 기록했다. 고도(皐陶)21)의 후예들이 봉해진 영(英), 육(六) 등은 초목왕(楚穆王)에 의해 멸망당했으나 그 사적은 사라져 알 수가 없다. 백이(伯夷)의 후예들은 주평왕(周平王) 때 재차 제(齊)에 봉해져 태공망(太公望)이라 했으나 진(陳) 씨들에 의해 멸망당했다. 그 사적은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 기록했다. 백예(伯翳)22)의 후예들은 주평왕에 의해 진(秦)에 봉해졌는데 항우(項羽)에게 멸망당했다. 그 사적은 진본기(秦本紀)에 기록했다. 수(垂)、익(益)、기(夔)、용(龍) 등의 후예들은 어디에 봉해졌는지 알 수 없어 기록하지 못했다. 이상 11명의 모두 당요(唐堯), 우순(虞舜) 시대 때 공덕을 세운 명신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 중 다섯 사람의 후예들은 제왕(帝王)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제후로써 이름을 빛냈다. 등(滕), 설(薛), 추(騶) 등의 세 나라는 하(夏)、은(殷)、주(周) 때 봉해진 작은 나라였기 때문에 다른 제후국들과 함께 나열할 수 없음으로 논하지 않는다.

  주무왕 때 후백에 봉해진 사람은 천여 명에 이르렀으나 유왕(幽王) 및 려왕(厲王) 이후에는 여러 제후들이 서로 힘을 다해 공격하여 겸병했다. 강(江), 황(黃), 호(胡), 침(沈) 등과 같은 소국들의 수는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이들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는다.

 태사공이 말한다.

순임금의 덕은 가히 지극한 경지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도다! 하(夏)나라의 우임금에게 왕의 자리를 선양하지 그 후세들로부터 제사밥을 하은주(夏殷周) 세 왕조 2천 년 동안에 거쳐 받을 수 있었다. 이윽고 초나라가 진(陳)나라를 멸하니 진나라의 후손 전상(田常)이 제나라에서 정권을 얻어 마침내는 나라를 세우게 되어 우순의 제사는 백세 동안 끊어지지 않았고 자손들은 번창하고 그들 중 봉토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우임금의 후손들이 봉해진 나라는 주나라 때 기나라가 있었으나 세력이 매우 작아 열거하기 부족했다. 기나라가 초혜왕에게 멸망당하자 그 후예들은 월왕 구천을 도와 흥성하게 했다.

위대한 덕을 기려 받드는 제사는 필시 백세 동안 이어지는 법이다. 순임금과 우임금이 이룬 공덕을 진(陳)과 기(杞) 두 나라가 이어받았다. 규만(嬀滿)이 순임금의 공덕으로 진나라에 봉해지고 동루공이 우임금을 계승하여 기나라에 봉해졌다. 알로(閼路)가 찬역을 행하고 하희는 음란했다. 두 나라가 모두 쇠미해졌으나 한 나라는 부흥하고 한 나라는 다른 나라로 교체되었다. 진나라는 병탄되고 기나라는 포로가 되어 모두 초나라의 혜왕에게 멸망당했다. 그러나 기나라는 구천으로 다시 일어서고 진나라는 전화(田和)에 의해 제나라로 바뀌었다. 두 나라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고 그렇게 오래도록 면면히 이어졌으니 어찌 요순의 후예들이 아니겠는가?

- 진기세가 끝 -

주석

1) 주무왕이 봉한 진나라는 현 하남성 주구시(周口市) 동북(東北) 20키로의 회양시(淮陽市)이다.

2) 주려왕이 체 땅으로 달아난 해는 기원전 841년의 일로써 사마천의 제후연표 원년이다. 이 해를 중국역사상 공화(共和) 원년이라고 칭한다.

3)관괘(觀卦)/ 坤(☷)하 巽(☴)상의 괘로 관은 응시하는 것이다. 막연히 보는 것이 나리라 자세히 관찰하여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는 것이다. 이 괘는 음이 양을 밀어내는 형상이다. 또 땅(坤) 위에 바람(巽)이 거칠게 불어오는 상태를 나타낸다. 군자의 도가 회하고 이욕(利慾)이 서로 싸워서 질서가 붕괴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식사숙고해서 현상의 깊은 곳까지 투철하게 뫄야 한다. 이런 태도가 진실로 몸에 붙는다면 덕이 되어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가 있다.

4)비괘(否卦)/ 坤(☷)하, 乾(☰)상의 괘로 하늘은 위로 자꾸만 오르고 땅은 계속 밑으로 내려간다. 무슨 일이나 엇갈리고 배단되어 잘 들어 맞지가 않는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팔방이 꽉막힌 상태이다. 빈약한 기반 위에 강한 것이 올라타고 있어서 언제 무너지질지 모르는 모래 위의 누각과 같다.

5) 요순(堯舜)때 사시(四時)를 관장하고 사방(四方)을 순수(巡狩)하는 것을 임무로 한 관직의 장으로 태악(太岳)이라고도 한다.

6) 이를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①陳文公 → ②桓公(鮑) → 世子 면(免)

→④利公 약(躍)

→⑤庄公 림(林)

→⑥宣公 저구(杵臼)

→ ③厲公 타(他)▶ 陳敬仲 완(完)

7)공정(工正)/ 장인(匠人)들과 과 각종 건축을 담당하는 관리들을 감독하는 벼슬

8)소릉(召陵)/현 하남성 탑하시(漯河市)와 언성현(偃城縣) 사이에 있었다. 기원전 657년 제환공(齊桓公)은 일곱 제후국들의 군사를 규합하여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출정하여 소릉(召陵)에 집결하여 주둔했다. 제환공은 초나라가 주왕실에 조공(朝貢)하는 조건으로 초성왕(楚成王)과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체결한 후 철군하였다.

9)도태자(悼太子)/ 태자의 신분으로 군주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을 말한다.

10)전욱(顓頊)/ 삼황오제(三皇五帝) 중의 한 사람으로 황제(黃帝)의 손자이자 창의(昌意)의 아들이다. 그는 성격이 침착하고 지략에 뛰어났고, 사리에 통달했다. 또한 그는 알맞은 땅을 골라 곡물을 생산하였고 우주의 운행에 따라서 계절에 맞는 일을 하였으며, 귀신의 권위에 의지하여 예의를 제정하고, 백성을 교화하였으며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천지 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는 북쪽으로는 유릉(幽陵), 남쪽으로는 교지(交趾), 서쪽으로는 유사(流沙), 동쪽으로는 반목(蟠木)에까지 이르렀다. 각종 동물, 식물, 그리고 크고 작은 산천의 아들, 해와 달이 비치는 곳이면 어디든 평정하여 귀속시키지 않는 곳이 없었다.

11)막(幕)/ 진나라 선조 중의 하나다.

12)고수(瞽叟)/ 순임금의 아버지다.

13)수(遂)/상나라를 세운 탕임금이 순임금의 후손인 수를 찾아 진(陳)나라에 봉했다.

14) 호(胡)/ 춘추와 서주 때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부양시(阜陽市)에 있었던 귀성(歸姓) 제후국. 하남성을 가로질러 안휘성에서 회수(淮水)와 만나는 영수(穎水)의 하류 강안에 있었다. 주경왕(周敬王) 24년 기원전 496년 초소왕(楚昭王)에 의해 멸망당했다.

15)침(沈)/ 지금의 하남성 평여(平輿)에 있었던 희성(姬姓) 제후국. 주문왕의 막내 아들 계재(季載)가 처음으로 봉해진 나라였으나 춘추시대 초반에 채나라에 의해 멸망했으나 후에 다시 초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16)성보(城父)/지금의 하남성 평정산시(平頂山市) 부근의 보풍현(寶豊縣) 동쪽에 있던 춘추 때 초나라의 전략적 요충지.

17) 지금의 산동성 치박시(淄博市) 경내 남쪽에 있는 노산(魯山) 서쪽 산록으로 제나라의 남쪽 관문을 지키는 요해지였다. 춘추 때 당진과 오나라의 공격을 받자 이곳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18)백공(白公) 승(勝)/ 초평왕의 태자 건(建)의 아들 미승(羋勝)을 말한다. 태자건이 정나라에서 반란사건에 연루되어 살해되자 미승은 오자서를 따라 오나라에 들갔다가 후에 초나라를 점령한 오자서가 철수하면서 강화조건으로 미승을 귀국시켰다. 초나라는 미승을 백(白)에 봉했다. 백공의 란은 오자서열전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19)기(杞)/ 사(姒) 성의 제후국으로 주무왕이 은나라를 멸한 후에 하우의 자손을 찾아 봉한 나라다. 봉지는 지금의 하남성 기현(杞縣) 경내의 옹구에 있었다. 춘추에 이르자 지금의 산동성 안구현(安丘縣) 경내로 나라를 옮겼다. 기원전 445년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20)주려왕(周厲王)/즉위년은 기원전 871년이고 그의 학정으로 인해 일어난 국인들의 폭동으로 체 땅으로 달아난 해는 기원전 841년이다. 기원전 841년이 공화원년이다.

21)고도(皐陶)/ 순임금 때 동이족의 수령으로 형법을 관장하는 벼슬을 지냈다. 백성들은 모두가 그의 공평한 법 집행에 복종했다. 후에 우(禹)임금이 황하의 치수 공사를 할 때 도와 공을 세워 그에게 하나라의 임금자리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우임금보다 먼저 죽어 전할 수 없었다. 우임금은 그의 후손들을 영(英 : 지금의 호북성 영산(英山) 동북), 육(六), 허(許 : 지금의 하남성 허창시 부근) 등에 봉했다.

22)백예(伯翳)/ 진(秦)나라와 조(趙)나라의 선조로 대비(大費)를 말한다. 진본기 서두에 나오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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