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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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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37. 역생육가(酈生陸賈)

역생(酈生) 이기(食其)라는 사람은 진류(陳留) 고양(高陽)① 출신이다. 독서를 좋아했으나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영락하여 의식을 해결할만한 생업이 없어 마을의 성문을 관리하는 소리(小吏)가 되었다. 그러나 현내의 행세하는 사람이나 호족들도 감히 역생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음으로 현내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즉 고양주도(高陽酒徒)란 그를 두고 한 말이다.

이윽고 진승(陳勝)、항량(項梁) 등의 호걸들이 기의하자, 성을 공략하면서 고양을 지나가는 장령들이 수십 명이나 되었다. 역생이 그 장령들이 모두 도량이 좁고 자질구레한 예절에 얽매여 스스로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하여 도량이 큰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이에 자신의 재능을 깊이 감추고 있었다. 후에 역생은 군사를 이끌고 진류(陳留)의 교외를 공략하고 있는 패공(沛公)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마침 패공의 휘하에 역생과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의 아들이 기사(騎士)로 종군하고 있었다. 패공은 자주 진류 일대에 현사와 준걸이 있는지를 그 기사에게 묻곤 했다. 집에 들린 기사를 역생이 보고 말했다.

「내가 들으니 패공은 오만한 성격에 사람을 업신여기지만 가슴에는 웅지를 품고 있다고 했다. 이 사람을 진실로 내가 따르려고 하나 나를 위해 먼저 소개해 주는 사람이 없다. 자네가 돌아가 패공을 만나거든 다음과 같이 내말을 전하라! 『신의 고향마을에 역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나이는60세가 넘었고 키는8척에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친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기사가 대답했다.

「패공은 유자들을 좋아하지 않아 유관(儒冠)을 쓴 손님이 찾아오면 재빨리 관을 벗겨 그 안에 오줌을 누곤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할 때도 항상 유자들에 대해 큰소리로 욕을 합니다. 아마도 유생의 신분으로는 그를 설득할 수 없을 듯합니다.」

「자네는 내가 하는 말만 전하게나!」

기사는 휴가를 끝내고 패공의 진영으로 돌아가 역생이 일러준 대로 침착하게 말을 전했다.

이윽고 고양(高陽)에 당도하여 역사에 묵은 패공이 사람을 시켜 역생을 불렀다. 역생이 방에 들어와 패공을 뵐 때 패공은 그때 마침 거만하게 다리를 벌리고 양 옆에 여인들로 하여금 발을 씻기고 있으면서 역생이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역생이 들어와 패공을 보고 길게 읍을 했을 뿐 절은 하지 않았다. 역생이 패공을 향해 말했다.

「족하께서는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공격하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십니까? 」

패공이 듣고 역생을 꾸짖었다.

「이 비루한 유자 놈아! 지금 천하가 진나라의 폭정으로 고통을 받은지 오래 되었다. 그래서 제후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몸을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공격한다고 하느냐?」

「무리를 모아 의병을 일으켜 무도한 진나라를 멸하기 위해서는 장자(長子)를 거만한 태도로 맞이하심은 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패공이 그 즉시 발씻기를 멈추고 일어나 옷깃을 저미며 역생을 인도하여 상좌에 앉히고 사죄했다. 역생은 전국 때 육국의 합종연횡책에 대해 말했다. 패공이 기뻐하며 역생에게 잔치상을 차려 대접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장차 어떤 계책을 써야하겠습니까?」

「족하께서는 오합지중을 규합하고 흩어져 도망치던 군사들을 수습해서 만든 만 명이 넘지 않은 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 군사들을 이끌고 강포한 진나라로 곧바로 쳐들어가는 행위는 마치 호랑이 입을 더듬는 어리석은 짓과 같습니다. 무릇 진류는 사통오달할 수 있는 천하의 요충지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 성안에는 막대한 곡식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신이 진류의 현령을 잘 알고 있으니 청컨대 저를 사자로 보내시면 족하를 위해서 항복하게 만들겠습니다. 그가 제 말을 듣지 않으면 족하께서 군사로 공격하신다면 신이 내응하겠습니다. 」

그래서 역생을 진류로 보낸 패공은 군사를 이끌고 그 뒤를 따라가 얼마 후에 진류를 함락시켰다. 패공은 역식기에게 광야군(廣野君)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역식기에게는 역상(酈商)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그는 수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패공을 따라 서남쪽 땅을 공략하기 위해 원정에 나섰다. 역생은 항상 유세객으로써 제후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한왕3년 기원전204년, 항우가 한군을 격파하고 형양(滎陽)을 함락시키자 한군은 공(鞏), 락(洛)으로 달아나 숨었다. 회음후 한신은 조나라를 점령하고 팽월은 여러 차례 양나라 땅에서 반격을 가하자 초나라는 병력을 절반으로 나누어 구원하려고 했다. 회음후가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동쪽으로 진격하자 한왕은 여러 번 형양과 성고(成臯)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어 성고 이동의 땅을 버리고 공(鞏)과 락(洛)을 방어선으로 초군을 막으려는 계책을 세웠다. 그런 정황에서 역생이 한왕에게 말했다.

「신은 듣기에 하늘을 하늘로 받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왕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을 하늘로 받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왕자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왕자는 백성을 하늘로 섬겨야 하며, 또한 백성들은 밥을 하늘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지금 오창(敖倉)②이란 곳에 천하에서 양식을 운송해와 저장해온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신은 오창에 쌓인 양식이 매우 많다고 들었습니다. 초나라가 형양을 함락시켰지만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오히려 군사를 이끌고 동으로 나아가고 형양은 형도(刑徒)③로 하여금 지키게 했으니 이는 곧 하늘이 오창의 곡식을 한나라의 군자로 삼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야흐로 초나라를 공격하여 취하기 쉬움에도 한나라는 오히려 퇴각하여 스스로 호기를 놓치려고 하고 있음은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데 그것은 잘못 된 일입니다. 또한 양웅은 같이 설 수 없으나 초와 한이 오랫동안 대치하여 결정이 아직 나지 않고 있어 백성들은 동요되고 해내는 불안하여 농부는 쟁기를 버리고 베 짜는 여인은 베틀에서 내려오게 되니 천하의 민심은 아직 안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원컨대 족하께서는 급히 군사를 진격시켜 형양을 취하신 후에 오창의 곡식을 차지하십시오. 성고의 험고를 막으시고 태항산으로 통하는 길을 차단하며, 비호(蜚狐)④의 어귀와 백마진(白馬津)을 지켜 제후들로 하여금 현재의 형세가 실제적으로 누구에게 기울고 있는지를 보여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제후들은 누가 천하의 주인이 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연(燕)과 조(趙) 땅은 평정되었으며 오로지 제나라 땅만이 평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전광(田廣)은 사방 천리의 제나라 땅에 웅거하고 있으며, 전간(田間)은20만의 장병들을 이끌고 역성(歷城)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전씨들 종족의 힘은 매우 강하여 바다를 등지고 하수와 제수를 방패로 삼아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접하고 있으면서 또한 인구는 많고 변사(變詐)가 심합니다. 족하께서 수십 만의 군사를 보낸다한들 한 해나 몇 달만에 격파할 수 없습니다. 신이 청하건대 조명을 받들어 제왕을 설득하여 한나라를 위해 동쪽의 번국이 되도록 해보겠습니다.」

한왕이 좋다고 허락했다.

역생의 계책을 따른 한왕은 오창을 다시 지키고 역생을 보내 제왕에게 유세하도록 했다. 제나라에 당도한 역생이 제왕을 보고 말했다.

「왕께서는 천하가 장차 어디로 돌아갈지 알고 계십니까?」

「모르오.」

「왕께서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지를 아신다면 제나라를 얻어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지를 모른다면 제나라를 얻지 못하고 보존할 수 없습니다.」

「천하가 어디로 돌아간단 말이오?」

「한나라입니다.」

「선생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십니까?」

「한왕과 항왕은 처음 힘을 합해 서쪽으로 진군하여 진나라를 공격할 때 함양에 먼저 들어가는 자가 그곳의 왕이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한왕이 먼저 함양에 입성했으나 항왕이 약속을 배반하고 한왕을 한중에 봉했습니다. 다시 항왕이 의제를 몰아내고 도중에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한왕은 촉한에서 군사를 일으켜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관중을 나와 의제를 시해한 항왕에게 그 책임을 묻고 천하의 군사를 규합하고 제후들의 후예들을 종묘를 다시 세웠습니다. 성을 함락시키면 그 장수를 그곳의 후로 삼고 재물을 얻으면 그 사졸들에게 나누어 천하와 함께 그 이익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호족, 영웅, 현인, 재사 등의 모든 사람들은 쓰임을 받아 스스로 즐거워합니다. 그 결과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으며 촉한에서 산출되는 양식은 배를 나란히 하여 수로를 이용하여 내려옵니다. 그러나 항왕이라는 위인은 제후들과의 약속을 배반했을 뿐만 아니라 의제를 살해한 악명을 얻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세운 공은 기억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죄는 잊지 않습니다. 싸움에서 승리를 해도 상을 받을 수 없으며 성을 함락시켜도 후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위인이 각박하여 인장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작거리기만 할뿐 건네지 않으며 성을 공격하여 취한 재물은 쌓아두기만 할뿐 상으로 나누어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천하는 그에게서 이반하여 현능한 사람이나 재사들은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그를 위해 아무도 힘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왕은 앉아서 귀의한 선비들의 계책을 쓸 수 있습니다. 마침내 한왕이 촉한의 험지를 나와 삼진을 일거에 평정하고 서하를 건너 상당의 병사를 얻은 후에 정형(井陘)⑤의 싸움에서 성안군(成安君) 진여(陳餘)를 주살했습니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나아가 위(魏)나라를 격파하고 위왕 표(豹)를 사로잡은 후에32개에 달하는 성을 점령했습니다. 이곳 출신의 한나라 군사들은 치우(蚩尤)의 군사들과 같이 용맹하니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복으로 그리 되었습니다. 현재 한왕은 이미 확보한 오창(敖倉)의 양식을 군량으로 삼아 성고의 험애를 막고, 백마진을 수비하고, 태항산으로 통하는 양장판(羊腸坂)의 길을 차단했으며 비호의 어귀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하의 제후들 중 나중에 항복하는 자는 먼저 망할 것입니다. 왕께서 바람과 같이 한왕에게 달려가 항복하시면 제나라의 사직은 보존할 수 있겠지만 항복하지 않는다면 위험에 빠져 망하는 날만 서서 기다리는 신세가 됩니다.」

역생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의 말을 따르기고 한 제왕 전광은 역하에 포진하고 있던 제나라 군사들의 경계를 풀라고 명하고 역생과 함께 매일 주연을 즐겼다.

회음후 한신은 역이기가 수레에 편히 앉아 제나라의70여 개 성의 항복을 받아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즉시 밤을 도와 평원(平原)을 건너 제군을 기습했다. 한군이 진격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제왕 전광은 역생이 자기를 속여 한나라에 팔았다고 여기고 말했다.

「그대가 능히 한나라 군사들의 진군을 막을 수 있다면 살려주겠고 그럴 수 없다면 너를 팽살형에 처하겠다.」

역생이 대답했다.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자질구레한 일을 개의치 않으며, 덕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책망을 사양하지 않는다고 했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내가 공을 위해 무슨 일을 다시 할 수 있겠소?」

제왕이 즉시 역생을 삶아 죽이고 병거를 이끌로 평원을 빠져나가 도망쳤다.

한12년 기원전195년, 곡주후(曲周侯) 역상(酈商)이 승상의 신분으로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경포(黥布)를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다. 고조가 열후와 공신들을 논공하다가 역이기를 생각했다. 역이기의 아들 역개(酈疥)는 여러 번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으나 그가 세운 전공은 열후를 받을만한 정도는 못 되었으나 고조가 그의 부친의 공로를 생각해서 고량후(高梁侯)에 봉했다. 후에 다시 식읍은 무수(武遂)로 바뀌어3대로 이어졌다. 원수(元狩) 원년 기원전122년, 무수후 역평(酈平)이 거짓 조서(詔書)로 형산왕(衡山王)을 속여 황금 백근을 사취한 죄에 연좌되어 기시(棄市)의 형에 해당되었으나 그 사이에 병이 들어 죽고 후국은 없어졌다.

육가(陸賈)는 초나라 사람이다. 객의 신분으로 천하를 평정한 고조를 호종하며 구변이 좋은 세객으로 이름을 얻어 고조의 측근에서 항상 제후들에게 사자로 가곤했다.

 이윽고 고조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중국을 가까스로 안정시킬 때 남월(南越)을 평정한 위타(尉他)⑥는 스스로 그곳의 왕이 되었다. 고조가 위타를 남월왕에 봉한다는 인장을 주어 육가를 사자로 보냈다. 이윽고 육생이 남월에 당도하자 위타는 머리에 상투를 방망이처럼 틀고, 다리를 벌려 거만하게 앉은 자세로 육가를 맞이했다. 육생이 그런 위타를 보고 말했다.

「족하는 중국 사람으로, 친척이나 형제나 선조들의 묘소는 모두 진정(眞定)이란 곳에 있습니다. 지금 족하께서는 하늘의 도리에 위반하여 관대를 버리고 구구한 월나라의 군사로 천자에게 반항하여 적대국이 되려고 하니 화가 머지않아 귀하의 몸에 미치려고 합니다. 또한 진나라가 실정(失政)하자 천하의 제후들과 호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어나더니 오로지 한왕만이 먼저 관중으로 들어가 함양을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항우가 약속을 어기고 스스로 서초패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제후들은 모두 부하로 거느리니 지극히 강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촉(巴蜀)에서 몸을 일으킨 한왕은 천하를 채찍질하여 제후들을 겁략(劫略)하고 이어서 항우를 주살하여 멸했습니다. 단지5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해내를 평정했음은 하늘의 도움 없이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군왕께서 남월의 왕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신 천자께서는, 과거 천하가 폭도와 역도들을 주멸하는데 군왕께서 돕지 않았기 때문에 조정의 장상(將相)들이 군사를 동원하여 군왕을 주멸하자고 상주했으나, 백성들을 새롭게 노고를 끼치게 됨을 애석히 여겨 잠시 멈추게 하고 군왕의 인장을 신에게 주어 보내며 황제의 부절을 쪼개 통호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군왕은 교외에 나와 영접하고 북면하여 칭신해야 마땅한 일이거늘 이제 비로소 창건되어 백성들을 새로 모으지도 못한 상태로 이 처럼 순종하지 않고 오만한 태도로 취하고 있습니다. 한나라가 이런 정황을 알게 된다면 군왕의 선조들 분묘를 파헤치고 종족들을 멸족시키고 한 사람의 편장에게10만의 장병을 주어 남월로 진군시킨다면 월나라 사람들은 군왕을 죽이고 한나라에 항복할 것입니다. 이는 손바닥을 뒤집는 일보다 쉽습니다.

그러자 위타가 분연히 자리에 일어나 좌정하며 육생에게 사과의 말을 했다.

「오랫동안 만이의 나라에 살아 크게 실례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육생에게 물었다.

「나와 소하(蕭何), 조참(曹參), 한신(韓信) 등과 비교해서 누가 더 현능합니까? 」

「왕께서 더 현능합니다. 」

「황제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

「황제께서는 풍패(豐沛)에서 몸을 일으켜 포악한 진나라를 토멸하고 강포한 초나라를 주살하여 천하를 위해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제거했습니다. 황제는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의 공업을 계승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다스리고 계십니다. 중국의 인구는 억 명이 넘고 땅은 만리에 천하의 기름진 땅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과 거마는 많고 재화는 풍부하여 정령은 모두 황실 일가를 거치고 있어 이런 일은 천지가 개벽한 이래 유래가 없었던 일입니다. 오늘 왕의 백성들은 수십 만에 불과하고 게다가 만이(蠻夷)에 영토는 산과 바다 사이에 끼어있어 마치 한나라의 일개 군에 불과한데 어찌 왕과 황제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위타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나는 중국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의 왕이 되었소. 내가 중국에 살았다면 어찌 한나라의 황제만 못하겠소?」

마음이 크게 흡족하게 된 위타는 육생을 후대하여 몇 달 동안을 같이 기거하며 음식을 즐겼다. 위타가 말했다.

「남월에는 더불어 말을 나룰 사람이 없소. 선생께서 이곳에 온 이래 매일 내가 듣지 못한 소식을 전해주셨소.」

그리고는 육생에게 천금이나 나가는 보물이 든 보따리를 따로 주고 다시 천금을 보내주었다. 육생은 마침내 위타를 남월왕에 봉하고 그로 하여금 칭신하여 한나라를 받들게 했다. 이윽고 한나라에 돌아온 육생이 복명하자 고조께서는 크게 기뻐하고 그를 태중대부에 제수했다.

육생이 옛날 시경과 서경을 때때로 인용하여 유세하자 고조가 꾸짖었다.

「나는 마상에서 천하를 얻었다. 어찌 시․서(詩書) 따위를 운운하는가?」

육생이 대답했다.

「마상에서 얻은 천하를 어찌 마상에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상탕(商湯)과 주무왕(周武王)이 신하의 신분으로 천하를 취했으나 민심에 순응하여 지킬 수 있었음은 문무를 같이 사용해야 나라를 오래 지탱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옛날 오왕 부차(夫差)나 진(晉)나라의 지백(智伯)⑦은 무력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또한 진시황은 엄혹한 형법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진나라도 망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진나라가 천하를 겸병한 후에 인의를 행하고 옛 성왕들의 법을 본받았다면 폐하께서 어찌 나라를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

고제는 육생의 말이 마땅치 않았지만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말했다. 「나를 위해 진나라가 어떻게 천하를 잃었고, 내가 어떻게 천하를 얻었으며 이어서 옛날 나라를 얻고 잃은 일을 글을 지어 올리시오.」

그래서 육생은 국가의 흥망의 기미(機微)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모두13편의 책을 저술하여 바쳤다. 육생이 한 편 한 편 지어 올릴 때마다 고제는 훌륭하다고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좌우의 측근들은 만세를 불렀다. 그 책의 제목을 《신서(新書)》라고 지어 불렀다.

효혜제(孝惠帝) 때 정권을 잡은 여태후가 여씨 종족들을 제후왕으로 봉하려고 하자 대신들은 모두 입을 열어 간하는 행위를 두려워했다. 육생 역시 스스로 간쟁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병을 칭하고 관직에 물러나 집에 칩거하다가 호치(好畤)의 땅이 비옥했음으로 그곳에 정착했다. 그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옛날 남월에 사자로 갔다가 받은 자루 속의 보물을 팔아 천금을 마련하여 그 아들들에게 각기2백 금씩 나누어주어 생활하도록 했다. 육생은 항상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안거(安車)를 타고 다니며 가무와 금슬을 잘 타는 시종10명을 따르게 했다. 백금이나 나가는 보검을 차고 다니던 그가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들과 한 가지 약속을 해야 하겠다. 내가 너희들 집에 들를 때는 너희들은 내가 데리고 다니는 말과 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주도록 해라! 실컷 놀고 마시다가10일이 지나면 다른 아들에게 가겠다. 내가 죽는 집은 내가 차고 다니는 보검과 시종들의 주인이다. 일 년 동안을 오가도 간혹 가다가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무를 수도 있으니 너희들 집은3번 이상 들를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자주 보면 새롭지 않으니 오래 머물러 너희들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

여태후 때 여러 여씨 종족들을 제후왕으로 세워 정권을 휘두르고 어린 황제를 겁박하여 유씨들이 위태롭게 되었다. 우승상 진평(陳平)이 이를 근심했으나 힘이 미치지 않아 쟁간하지 못하고 화가 자기 몸에 미치지나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항상 집에 쳐박혀 있으면서 깊이 생각했다. 육생이 보고 진평의 집에 들려 곧바로 들어가 좌정했지만 진평은 상념에 잠겨 육생이 왔는지도 몰랐다. 육생이 물었다.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십니까? 」

「선생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대감께서는 지위가 우승상이시고 식읍은3만 호를 갖고 계십니다. 가히 부귀가 극에 달해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근심하는 바가 있다면 아마 여씨 종족들과 어린 황제 때문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렇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천하가 안정되면 승상의 뜻을 살피지만, 천하가 위태로우면 장군들의 뜻을 살핍니다. 만일 승상과 장군이 서로 마음을 합치면 선비들은 힘써 따르게 됩니다. 선비들이 힘써 따르면 천하에 비록 변란이 일어난다 해도 정권은 나누어 지지 않습니다. 사직을 휘해 계책을 드린다면 승상과 장군이 손을 잡아야만 합니다. 저는 항상 태위의 직에 있는 강후(絳侯) 주발(周勃)에게도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강후와 저는 농담을 잘 나누는 처지라 내 말을 흘리곤 했습니다. 대감께서는 어찌하여 태위 강후와 깊이 친교를 맺지 않으십니까?」

육생은 진평을 위해 여씨 종족들을 누를 몇 가지 계획을 일러주었다. 진평이 육생의 계책대로5백 금의 황금으로 강후의 생일을 축하하고 수많은 가무를 동원하여 성대한 술자리를 마련하여 즐겼다. 태위 역시 그에 상응하는 재물과 연회로 보답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친밀해지자 여씨들의 음모는 더욱 힘을 잃었다. 진평이 노비100명, 거마50승, 현금5백만 전을 육생에게 보내 생활비에 보태도록 했다. 육생은 이로써 한나라의 조정의 공경들과 교유를 맺어 그 명성이 매우 높아졌다.

여씨 종족들을 주살하고 효문제를 세우는 데에는 육생의 힘이 매우 컸다. 황제로 즉위한 효문제는 육생을 다시 남월에 사자로 보내고 싶어했다. 승상 진평 등은 육생을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천거하여 위타에게 사자로 보내 그로 하여금 황옥(黃屋)⑧과 제(制)⑨의 제도를 버리고 일반 제후들처럼 행하도록 설득하게 했다. 육생의 활약으로 모든 일들이 황제의 뜻에 부합하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남월열전(南越列傳)에서 볼 수 있다. 육생은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평원군(平原君) 주건(硃建)은 초나라 사람이다. 원래 회남왕 경포(黥布)의 상(相)이었으나 죄를 얻어 떠났다가 후에 다시 경포를 받들게 되었다. 황제에게 모반하려는 뜻을 품은 경포가 평원군에게 묻자 평원군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경포가 평원군의 말을 듣지 않고 양보후(梁父侯)의 말을 쫓아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가 반란을 진압하고 경포를 주살했으나 평원군이 간언하고 모반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죽이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경포열전(黥布列傳)에 있다.

평원군이란 위인은 말재주가 좋고 엄격하며 청렴하고 강직했다. 그의 집은 장안에 있었다. 그는 구차하게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의리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벽양후(辟陽侯) 심이기(審食其)⑩는 하는 행동이 바르지 않았지만 여태후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벽양후가 평원군과 사귀고 싶어 했으나 평원군을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윽고 평원군의 모친이 죽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육생이 조문을 들렸다. 평원군의 집은 가난하여 미처 상을 발하지도 못하고 마침 의복과 기구들을 빌리려고 하던 참이었다. 육생이 경비를 대어 발상을 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벽양후를 찾아가 축하한다고 말했다.

「평원군의 모친이 죽었습니다.」

벽양후가 물었다.

「평원군의 모친이 죽었는데 어찌 나에게 축하한다고 하십니까?」

「예전에 대감께서는 평원군과 친교를 맺으려고 했으나 평원군은 의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거절한 이유는 그의 모친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그의 모친이 돌아가셨으니 대감께서 성의를 다해 그의 모친상을 후하게 발상하도록 하십시오. 그는 대감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것입니다.」

벽양후는 즉시 백금의 돈을 조의금으로 보냈다. 벽양후로 인해 열후와 귀인들 역시 조의금을 냈는데 모두5백 금에 달했다.

여태후의 총애를 받고 있는 벽양후를 어떤 사람이 여태후와 간통했다고 효혜제에게 헐뜯었다. 효혜제가 대노하여 관리를 보내 주살하려고 했다. 여태후가 부끄러워하여 벽양후를 위해 아무 말도 못했다. 대신들도 대부분 벽양후의 행실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가 죽기를 바랐다. 위험한 처지에 놓인 벽양후가 사람을 시켜 평원군을 불러 보기를 원했다. 평원군이 벽양후의 청을 거절하며 말했다.

「옥사가 급하게 되었음으로 감히 대감을 뵐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그 즉시 효혜제의 총신 굉적유(閎籍孺)를 찾아가 말했다.

「대감께서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벽양후가 태후와 간통한 죄로 관리에게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시중에는 대감께서 참소하여 살해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만일 지금 벽양후가 주살되면 다음 날 아침에는 태후의 분노를 사서 대감 역시 주살될 것입니다. 어찌하여 육단(肉袒)을 행하여 벽양후를 위해 황제게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황제가 대감의 말을 듣고 벽양후를 풀어준다면 태후는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두 주인이 동시에 대감을 총애하게 되니 대감의 부귀는 예전보다 배로 되지 않겠습니까?」

평원군의 말에 크게 놀란 굉적유는 평원군을 계책을 쫓아 황제게 심이기를 위해 변호했다. 황제는 과연 심이기를 풀어 주었다. 벽양후가 관리에게 잡혀 있을 때 평원군을 불러 만나려고 했으나 평원군이 거절했음으로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크게 노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평원군의 노력으로 벽양후 자신이 풀려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또한 크게 놀랐다.

여태후가 붕어하자 대신들이 여씨 종족들을 주살할 때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벽양후만은 종내에는 같이 주살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두 육생과 평원군의 계책과 노력에 의해서였다.

효문제 때 회남려왕(淮南厲王) 유장(劉長)이 여씨 종족들에게 맺힌 원한으로 인해 벽양후를 살해했다. 효문제는 벽양후를 위해 그의 문객 평원군이 계책을 세웠음을 알고 관리를 보내 체포하여 치죄하려고 했다. 이윽고 관리가 집 앞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은 평원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여러 아들들과 관리들이 말했다.

「일의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찌하여 미리 죽으려고 하십니까? 」

그러자 평원이 대답했다.

「내가 죽으면 화는 이 한 몸으로 끝나고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리고는 그 즉시 목을 찔러 죽었다. 효문제가 듣고 애석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내가 원래 죽이려는 뜻은 아니었다. 」

효문제는 즉시 그의 아들을 불러 중대부의 벼슬을 주었다. 후에 평원군의 아들은 흉노에 사자로 가게 되었는데 선우(單于)가 무례했음으로 꾸짖다가 결국 흉노 땅에서 죽고 말았다.

옛날 패공이 군사를 이끌고 진류를 지날 때 역생이 군문 앞에서 서성이며 접견을 청하면서 말했다.

「고양(高陽)의 천민 역이기가 가만히 소문을 들으니 패공은 따가운 햇살과 찬 이슬을 맞으며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도와 불의한 자를 토벌하려 한다기에 삼가 종군자들을 위로하고 원컨대 접견을 청해 천하의 대사를 위한 계책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자가 안으로 들어가 역생의 말을 전했다. 그때 마침 몸을 씻고 있었던 패공이 시자를 보고 물었다.

「그 자는 어떤 사람인가? 」

시자가 말했다.

「신체는 우람하여 대유(大儒)처럼 보였고 옷은 유자의 복장에 측주관(側注冠)⑪을 쓰고 있습니다. 」

「그대는 나가 내가 지금 바야흐로 천하의 일로 바빠 유자들을 만날 시간이 없다고 전하라!」

시자가 나가 패공의 말을 전했다.「패공은 천하의 일로 바빠 유자들을 만날 시간이 없다고 삼가 미안하다는 말을 선생께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

역생이 눈을 부릅뜨고 패검을 어루만지며 시자를 질책했다.

「다시 달려가서 패공께 전하라! 나는 고양의 술주정뱅이지 유자가 아니라고!」

시자가 놀라 떨어뜨린 명패를 몸을 구부려 다시 주어들고 달려가 패공에게 고했다.

「손님은 천하의 장사입니다. 저를 질책하는 모습이 무서운 나머지 명패를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손님이 소리치기를『달려가 나는 고양의 술주정뱅이라고 전하라!』라고 말했습니다.」

패공이 재빨리 발을 닦고 창을 잡으면서 말했다.

「손님을 들여라!」

이윽고 역생이 들어와 패공에게 읍을 하고 말했다.

「족하께서는 매우 고생이 많으십니다. 옷은 햇볕에 쪼이고 관에는 이슬을 맞아가며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도와 불의한 자를 토벌하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족하께서는 어찌하여 스스로를 자중하지 않으십니까? 신이 접견을 청했음에도 말씀하시를『나는 천하의 일로 인하여 유자들을 만날 여가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천하의 대사를 도모하여 천하에 대공을 이루려고 마음먹은 족하께서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시니 천하의 재사들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제가 헤아려보건대 족하의 지혜는 저보다 못하고 용기 또한 나보다 못합니다. 만약 천하를 얻고 싶음에도 재사들을 접견하지 않음은 가만히 생각건대 족하의 실수입니다.」

패공이 사과하며 말했다.「조금 전에는 선생의 용모에 대해 들었는데, 지금은 선생의 큰뜻을 보았습니다. 」

패공이 역생을 인도하여 좌정케 하고 천하를 취할 수 있는 방도를 물었다. 역생이 말했다.

「대저 족하께서 대공을 이루고 싶다면 진류에 머물러야 합니다. 진류라는 곳은 천하의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병가들이 차지하려고 다투는 곳이며 저장된 양식은 수천 만 석이고 성은 심히 견고하여 지키기 쉽습니다. 제가 평소에 진류의 현령과 친교가 있으니 원컨대 족하를 위해 그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만일 그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제가 족하를 위해 그를 죽이고 족하를 위해 진류성을 점령하겠습니다. 족하께서는 진류의 무리를 이끌고 그 성에 의지하여 쌓아둔 양식을 군량으로 삼아 천하에서 군사를 불러 모으십시오. 일단 군사들이 모이게 되면 족하께서는 그들과 함께 천하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데 누가 감히 족하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패공이 대답했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

그래서 역생은 즉시 그날 밤으로 진류령을 만나 설득했다.

「대저 진나라가 무도하여 천하의 인심이 떠났습니다. 오늘 족하께서 천하와 함께하면 바로 대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금일 오로지 망한 진나라를 위해 족하 혼자만이 외로운 성에 의지하여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족하께서는 생명이 매우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

진류령이 듣고 물었다.

「진나라의 법은 매우 가혹하여 망녕된 말을 허용하지 않고 있소. 망녕된 말을 하는 자는 멸족되니 나는 그 말을 따를 수 없소. 선생이 나를 깨우치고자 한 말은 나의 뜻과 같지 않소. 원컨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역생이 머물러 유숙하다가 한 밤중이 되자 진류령의 목을 베고 성을 몰래 빠져나와 패공에게 고했다. 패공이 군사를 이끌고 성을 공격하면서 현령의 수급을 장대에 높이 달아 성벽의 군사들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빨리 항복하라! 현령의 목을 이미 베었다. 이후로 항복한 자는 먼저 목을 베리라!」

현령이 이미 죽었음을 확인한 진류 사람들은 모두 함께 성을 나와 패공에게 항복했다. 패공은 진류성 남쪽 성문 위헤 숙소를 마련하고 무기고에서 병장기를 꺼내 무장한 후에 쌓아 둔 양식을 먹고 석달을 머물며 출입하자 병사로 자원한 자가 만 수천 명에 달해 이윽고 무관으로 통해 함양으로 들어가 진나라를 격파할 수 있었다.

태사공이 말한다.

세상에 역생이 쓴 글이 전하는데 대부분이 한왕이 삼진을 평정하고 동쪽으로 나아가 항적(項籍)을 공격하다가 공․락(鞏洛) 일대로 물러나 주둔한 일과 역생이 유자의 옷을 걸치고 한왕에게 유세한 일에 대해서다. 그러나 이는 잘못 전해진 것이다. 패공이 관중에 미처 들어가지 않았을 때 항우와 헤어져 고양에 이르러 역생 형제를 휘하에 두게 되었다.

나는 육가의 신어(新語) 12편을 읽어 봤는데 진실로 그는 당대의 변사였다. 나는 평원군의 아들과 친분이 있었음으로 그의 행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역생육가열전 끝》

  

 

주석

①진류(陳留) 고양(高陽) : 진류는 지금의 하남성 개봉(開封) 동남 일대에 진나라가 설치한 군 이름으로 치소는 개봉시 경내 남쪽이다. 고양(高陽)은 하남성 기현(杞縣)으로 진류성 동남20키로다.

②오창(敖倉) : 진나라가 비상시를 위해 오산(敖山)에 건설한 식량창고다.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동북쪽에 있었다.

③형도(刑徒) : 죄수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말한다.

④비호(蜚狐) : 하북성 협원현(浹原縣)과 설현(薛縣) 사이의 요새로 옛날 화북평원을 지키는 북방변경의 중요한 요해지였다.

⑤정형(井陘) : 지금의 하북성 석가장시(石家庄市) 서 약20키로 되는 곳의 정형현(井陘縣)으로 산서성에서 하북성으로 통하는 관문이 있었던 곳이다. 초한쟁패 시 한신이4만여의 한군으로 진여가 이끌던 조나라의20만 대군과 배수의 진으로 싸워 승리를 취한 전쟁으로 유명하다.

⑥위타(尉他) : 지금의 하북성 정정현(正定縣)에 있었던 진정(眞定) 출신으로 원래의 이름은 조타(趙他) 혹은 조타(趙陀)다. 위⑥(尉)는 관직 이름이고 진나라 때 용천현(龍川縣) 현령을 지내다 후에 남해의 군위(軍尉)을 지냈기 때문에 위타라고 칭했다.

⑦지백(智伯)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453년에 죽은 춘추 말 당진국의 정경(正卿)이다. 희성(姬姓)에 원래 순씨(荀氏)였으나 후에 지(智) 혹은 지(知)로 바꾸어 지백(智伯)으로 불렀다. 진출공(晉出公: 재위 전475-458전) 즉위 초에 부친 지선자(智宣子)로부터 당진국의 정경이 되어 제나라와 정나라를 정벌하고 중산국을 무찔렀다. 주정왕11년 기원전458년 조(趙), 한(韓), 위(魏) 삼가와 연합하여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멸하고 그 봉읍들을 나누어 가졌다. 이어서 출공(出公)을 쫓아내고 그의 손자 교(驕)를 새로 세웠다. 이가 진애공(晉哀公)이다. 교만해진 지백은 당진국의 정권을 오로지하고 대신들을 모욕하는 것을 즐겼다. 후에 한위조(韓魏趙) 삼가에 봉지의 할양을 요구하여 한과 위 두 가문으로부터는 만 호에 해당하는 성읍을 빼앗았으나 조가로부터는 거절당했다. 분노한 지백이 한위 이가를 위협하여 삼가가 연합군을 결성하여 조가들의 근거지 진양성(晉陽城)을 공격했다. 3년을 공격했으나 성이 함락되지 않자 진수(晉水)의 물을 막아 진양성을 물에 잠기게 했다. 조가들의 모사(謀士) 장맹담이 한위 이가를 설득하여 반격을 가하자 지백은 잡혀 참수되고 지가는 멸족되었다. 지가를 멸한 한위조 삼가는 지가의 봉지를 포함하여 당진의 공실의 땅까지 모두 삼분하여 나라를 세움으로써 기존의 진(秦), 초(楚), 제(齊), 연(燕) 등과 함께 전국칠웅이 되어 전국시대를 열었다. 이를 역사상 삼가분진(三家分晉)이라 한다.

⑧황옥(黃屋) : 황색의 덮개를 설비한 수레로 황제가 탔다.

⑨제(制) : 황제가 내리는 명령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⑩심이기(審食其)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177년에 죽은 서한의 대신으로 패현(沛縣) 출신이다. 진말 유방이 패현에서 기의할 때 사인(舍人)의 신분으로 종군했다. 유방이 정벌을 위해 밖으로 출전할 때 그는 패현에 남아서 여태후와 아들 유영(劉盈)을 받들었다. 이윽고 초한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여태후와 유영이 항우에게 사로잡히게 되자 그는 곁에서 극진히 모셨다. 후에 초한이 홍구를 경계로 강화를 맺을 때 태공 등의 유방 가족들과 함께 석방되어 한나라에 돌아왔다. 고조6년 기원전201년 벽양후(辟陽侯)에 봉해졌다. 섭정이 된 여후는 심이기를 좌승상에 임명하고 매우 신임하고 총애했다. 문제3년 기원전177년 회남왕 유장(劉長)에 의해 살해되었다.

⑪측주관(側注冠) : 고산관(高山冠)이라고도 하며 진나라 때에는 황제의 측근들이나 알자(謁者)들이 착용하던 관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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